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죽으신 것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속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벽 성조는 예수님의 죽음을 하느님의 사랑을 다하기 위한 희생으로 보았다.
그래서 <中庸>에 나오는 誠의 정신으로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誠은 본래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이벽 성조는 誠이라는 글자에서 말씀(言)과 완성(成)하는 글자가 합쳐서 형성된 글자로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완성하신 구원의 의미를 보았다.
誠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계명인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척도로서,
유가의 관념을 통해서 복음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신앙과 정신이 들어있는 글자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사도들과 초기 교회 신자들은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자기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공동체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초기 교회의 산앙 공동체는 후대에 계속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가 살아가야 할
모습을 보여주었다.
초기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은 함께 기도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따뜻한 형제애를 나누며 친교를 돈독히 하고,
서로에게 봉사를 실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의 생활 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어떻게
誠實하게 실천하고 있는지 묵상하고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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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독서
친구가 갖추어야 할 德에는 아홉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마음으로 서로 화합하는 것이다.
곧, 옳고 그름을 하나로 하고,
사랑과 미움을 똑같이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참된 친구는 그의 마음을 친구에게 완전히 기울여 남기는 것이 없다.
따라서 친구가 되면 마음에 이미 사사로움이 없어지므로 생각은 모두 서로 일러주고
일은 모두 함께 헤아린다.
세 번째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친구의 은혜에 보답할 때에는 저울질을 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기름진 밭처럼 생각해서,
하나를 받았더라도 백으로 갚아야 한다.
그러나 너와 벗의 능력을 넘어서서는 안된다. .....
네 번째는 (잘못을) 바르게 인도하고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인들 잘못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참된 벗이라면,
친구의 잘못을 보았을 때는 그를 바르게 이끌어주고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해야 한다. ....
다섯 번째는 친구에게 옳지 않은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를 맺더라도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먼저이고 친구에 대한 사랑은 나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구를 맺어서 남을 해치거나 남과 원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
여섯 번째는 (친구의) 근심이나 재난 때문에 (그를) 잊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 "친구는 언제나 사랑해 주는 사람."(잠언 17,17)이라는 말씀이 있고,
또 이웃이 궁핍할 때 "그의 신임을 얻어라.
그가 잘될 때 함께 배부르게 되리라."(집회서 22,23)라는 말씀이 있다.
일곱 번째는 친구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 "비밀을 폭로 하는 자는 신의를 깨뜨려 목숨 같은 친구를 결코 얻지 못하리라.
"(집회 27,16)는 말씀이 있다.
여덟 번째는 친구의 나쁜 점을 숨겨준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쁜 점을 가리고 싶으면 친구를 찾으라,"는 말씀이 있다.
아홉 번째는 친구가 찾으면 (그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마라"(잠언 3,27-28)는 말씀이 있다.
(칠극, 용서로서 질투를 가라앉히다 7,143-146쪽)
-영성의 길 김동원(비오) 신부님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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