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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퀵서비스 / 장경린
은하수 추천 0 조회 39 17.02.25 14: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퀵서비스 / 장경린

 

 

봄이 오면 제비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발정 난 고양이를 담장 위에

덤으로 얹어드리겠습니다 아기들은

산모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노을이 물들면 망둥이가 뛰노는 안면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은

가나다순으로 잘 정돈해두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제비들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쌀쌀해지면 코감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시집『토종닭 연구소』(문학과지성사,2005)

.................................................


 퀵서비스는 말 그대로 빠른 배달 서비스다. 수수료만 지불하면 의뢰인이 필요한 것을 보낼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제 시간에 받을 수 있다. 요즘엔 임신한 아내가 불현 듯 먹고 싶은 별별 희한한 것들도 전화 한 통이면 바로 해결해주는 곳이 퀵서비스다. 처음엔 고작해야 서류나 작은 물품을 주고받는데서 출발했겠으나 지금은 뭐든 편하게 빨리 주고받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심리에 시장의 과다경쟁이 부채질하여 서비스 품목이 많이도 늘었다. 사실상 택배까지도 넓은 의미에서 퀵서비스의 형태이다. 실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란 욥기의 말씀처럼 창궐해있고 취급품목도 버라이어티 하다.


 ‘봄이 오면 제비들을’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 드리는’ 얌전한 서비스로부터 시작해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와 ‘꽁치 타는 냄새’같은 아직은 서정적인 것들을 거쳐, 시험관이니 대리모니 해서 ‘아기들을 산모의 자궁까지 직접 배달’하는가 하면, 자신이 남처럼 느껴질 때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까지 해준다니 서비스의 다변화가 참으로 놀랍다. 낡고 헛김 빠지는 정경유착 이야기는 건너뛰기로 하고 혼백을 정리해 주고 코감기까지 빌려주겠다니 가히 우리네 삶 전반이 퀵 서비스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 속도의 경쟁에 휘말려들어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일을 급하게 서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급증이 생기고 성질도 더러워진다. 속도가 마음을 옥죄어 너그러움을 빼앗고 심성을 거칠게 만든다. 또한 추가비용이 발생하여 그걸 벌충하자니 마음은 더 불안해지고 붐빈다. 자신을 일찍 배달시켜봐야 별 볼일이 없음에도 꼭 KTX에 몸을 실어야 하고, 우체국에서도 비싼 등기 속달이라야 마음이 놓인다. 요즘 우체국에서는 아예 보통우편은 찬밥 신세라 창구직원은 미리 이렇게 말한다. "언제 배달될지 우리도 모르고 배달 확인은 물론 안 됩니다" <시와시와>를 부칠 때면 늘 듣는 말이다. 그럼에도 한 통에 750원짜리 “보통으로 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몸과 머리와 마음을 덜 쓰게 하는 기술은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손발뿐 아니라 머리와 가슴마저 고생시키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편리와 효율과 안락에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퀵서비스로 배달 받고 싶은 품목이 있긴 있다. 주말에 함께 여행을 떠날 종아리 싱싱한 '프리티 우먼' 그딴 것 말고, 얼른 얼른 탄핵이 종결되고 산뜻한 새 대통령을 여왕의 계절에 꼭 만나고 싶다. 박근혜를 비롯해 신속히 보낼 사람은 ‘가나다순으로’ 가지런히 정돈하여 보내야겠다. 계절을 갈아타는 이 무렵 개화의 속도도 따라잡지 못하는 칙칙한 마음인데 목젖이 보이도록 까르륵 웃을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권순진



Pure White - Isotonic 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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