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지는 빙탑 바로 아래쪽에 있던 슈나이더 대원은 기적적으로 전혀 부상을 당하지 않았고 대장 및 다른 대원들도 간신히 화를 모면했지만, 셰르파 체탄은 얼음 덩어리에 매몰되어 사망했다. 스마이드에 의하면 그 당시 대규모 눈사태로 쏟아져 내린 무게 100만 톤 이상의 눈과 얼음이 사방 1.6km의 설원에 2m 이상의 두께로 쌓였다고 한다. 후에 어빙(Irving)을 비롯한 영국 알파인 클럽 여러 회원들은 등반대장 디렌퍼스 교수가 대원들을 죽음의 덫으로 몰아넣었다고 맹비난을 퍼부었으나, 북서벽 최초의 등반이라 디렌퍼스 대장은 그 벽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더그 스코트 대는 디렌퍼스 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북서벽을 직등하지 않고 벽 좌측의 북릉을 등로로 선택하고, 그 출발점이 되는 노스콜을 향해 높이 900m의 암빙벽을 오를 작정이었다. 1899년 영국 탐험가 프레시필드는 이 루트의 등반 가능성을 최초로 언급했는데, 그는 멀리 떨어진 베이스캠프에서 노스콜에 도달할 때까지의 빙하와 빙벽의 험로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판단했다.
사실 노스콜 밑의 빙벽을 돌파하는 것도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자살행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캉첸중가의 북서벽 앞에 위치한 트윈스피크(Twins Peak) 아래에 제1캠프를 구축했다. 캠프 지는 전날 트윈스피크 상부의 빙탑들이 붕괴되며 발생한 대규모 눈사태가 미치지 못한 비교적 안전한 장소였다.
그러나 그들의 텐트 밑에서 들려오는 빙하 갈라지는 기분 나쁜 소리, 그리고 북서벽에서 빙탑들이 연속적으로 무너져 내리며 내는 쿵쿵 소리들이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들은 캉첸중가 북서벽에서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대규모 얼음사태의 후폭풍에 대비해 여차하면 탈출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그들이 셰르파 체탄이 비극을 당한 지 49년 만에 최초로 캉첸중가 빙하의 쿰에 들어섰을 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빙하 좌측의 빙탑들과 수많은 크레바스의 미로(迷路), 그리고 상부에서 쏟아져 내려 빙하 바닥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바위 더미와 눈과 얼음 더미 사이로 술주정뱅이 걸음걸이처럼 꾸불꾸불한 갈지 자(之) 루트를 개척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이 기울어진 위태로운 빙벽들 밑에 위치한 거대한 크레바스의 바닥을 식은땀을 흘리며 통과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 구간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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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서벽을 통해 캉첸중가 등정에 성공한 영국의 더그 스코트 원정대. 신성을 해치지 않으려고 정상 1.5m아래에서 등반을 멈췄다.
- 그들은 트윈스피크 사면의 바위 밑에 제2캠프를 설치했다. 그들은 눈사태의 통로인 현수 빙하 상부로 계속 전진하여 빙탑 지대를 돌파하고, 6,096m 지점의 베르크슈룬트를 스노브리지(Snow bridge)로 건넜다. 피터 보드만은 발목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고 태스커는 질병에 시달려, 고소적응이 더 잘 된 더그 스코트와 베탕부르가 앞장서서 노스콜까지의 등반의 최대 관건인 가파른 벽의 오버행 침니 구간을 돌파했다. 이어서 45도의 설사면에 고정자일을 설치하며 노스콜(7,010m)에 올라 제3캠프를 구축했다.
그들 앞에는 아직도 정상까지 수평거리 3.6km가 남아 있었다. 태스커는 고산병의 징후인 심한 두통 때문에 등반을 중단하고 제2캠프로 급히 하산했다. 더그 스코트 대장, 보드만, 베탕부르 세 사람은 북릉 상의 설릉으로 7,437m 지점까지 진출한 후, 그곳에 위치한 높이 183m의 바위 버트레스(Buttress·버팀 벽) 밑에 얼음 동굴을 파고 제4캠프를 구축한 뒤 ‘몽블랑 터널’이라 명명했다. 그들은 바위 버트레스 사이의 경사도 60도 빙벽과 높이 17m의 바위 스텝에 고정 자일을 설치하고 버트레스 상부에 올라, 이 버트레스를 성(城)이라는 뜻의 ‘캐슬(Castle)’이라고 이름지었다.
5월 4일 그들은 몇 주째 캉첸중가를 계속 강타하고 있던 시속 112km의 강풍인 제트기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등반을 강행해 북릉 상의 7,739m봉의 울퉁불퉁한 바위 정상의 아래쪽으로 트래버스하며 등반을 계속했다. 이 봉우리의 정상은 시킴 쪽에서 솟아오른 북동 스퍼의 정점으로 북릉과의 교차 지점이었다. 그 북동 스퍼는 독일 바우어 대장이 이끄는 뮌헨 대가 두 차례 등반하며 비극을 겪었던 장소였고, 1977년 인도 육군 등반대가 캉첸중가를 2등할 때 이용했던 바로 그 스퍼였다.
더그 스코트, 피터 보드만, 베탕부르는 캉첸중가 북서벽의 정상 피라미드 밑에 위치한, 초승달처럼 생긴 버트레스인 ‘크루아상(Croissant·높이 610m)’을 목표로 계속 전진했다. 세 사람이 얼음과 스크리(Scree·잡석)가 섞여 형성된 ‘그레이트 테라스(Great Terrace)’ 좌측면을 등반할 때, 강풍에 몸이 날려가지 않도록 아이스 액스 또는 스키 폴로 버텨가며 전진했다.
더그 스코트, 난생 처음 산에서 죽을 것 같은 불길한 생각 들어
강풍이 점점 기승을 부리더니 시속 160km까지 육박했다. 그 강풍이 얼마나 거센지 접시 크기의 돌 조각들이 운석처럼 공중으로 날아다녀 공포감을 자아냈다. 돌풍이 맹위를 떨칠 때, 세 사람은 강풍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질 때까지 몸을 숙여 서로 부둥켜안고 잠시 기다렸다가, 강풍이 주춤해지면 벽에 박힌 둥근 돌 위로 건너뛰며 전진했다. 그들은 때로는 발이 돌에 걸려 비틀거리며 넘어지기도 했고, 다시 웅크리고 강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들은 방한 복장을 철저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혹한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더그 스코트 대장은 혼자 마음속으로 강풍 속의 무모한 등반을 합리화하려고 애썼다. ‘강풍아,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냐? 너는 단지 지구 주위를 돌고 도는 공기의 미립자들일 뿐이야. 해볼 테면 해봐라. 나는 결코 여기서 얼어 죽지 않을 테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큰 소리를 치다가도, 실은 그 강풍 속에서 정말로 동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때로는 용기가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들은 강풍에 휘청거리며, 또 몇 발자국 전진했다. 그들이 북릉의 능선 마루로 더 가까이 접근했을 때 강풍은 암벽에 부딪혀 귀신의 곡성 같은 소리로 더 사납게 포효하며 시킴 쪽으로 달아났다.
그들이 북릉 상의 8,001m 지점에 위치한 V자형 샤르테(작은 콜) 밑에 도달했을 때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킴 쪽 동벽 상부로 넘어가 피신하려고 했다. 그들은 등에 강풍을 짊어지고, 한 사람씩 콜(Col) 마루로 올라서기 무섭게 다이빙하듯이 북릉 너머로 내려갔다.
더그 스코트 대장이 능선 마루를 넘어갈 때, 공중에 방전된 전류가 그의 등을 덮쳤다. 그는 척추에 100개의 바늘이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는 그 지역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고도가 15m 낮은 시킴 쪽 동벽 상부의 빙사면으로 내려가 텐트를 설치할 장소를 물색했으나 허탕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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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스콜을 향해 등반하는 더그 스코트 팀 대원들.
- 세 사람은 하는 수 없이 3시간 동안 가파른 빙사면에 아이스 액스로 길이 1.8m, 폭 1.2m의 레지(ledge)를 깎아내고, 터널형 텐트 한 동을 설치했다. 체무빙하(Zemu Glacier)에서 3,000m 높이의 절벽 위쪽에 설치된 독수리 둥지 같은 텐트 안은 널찍했으나, 강추위 때문에 텐트 문을 닫은 상태에서 스토브로 음료수를 장만하느라고 배출되는 매연가스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희박한 공기가 더욱 희박해져 숨을 헐떡거려야 했다.
더그 스코트 대장은 희박한 산소로 인해 자꾸 꺼져 버리려는 스토브와 씨름하며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일 음료수를 서둘러 장만하려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베탕부르는 그런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자신의 언 발을 녹일 수 있도록 자신의 수통에 뜨거운 물을 빨리 채워달라고 졸라댔다. 더그 스코트 대장은 짜증을 참고 먼저 베탕부르의 수통에 온수를 채워주었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두통약을 복용하고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피터 보드만이 급히 그를 깨웠다. 더그 스코트 대장이 1시 반에 깨어나 보니, 그가 잠든 사이 풍향이 바뀌었고, 강풍이 연속적으로 텐트에 망치질을 가해 텐트 중앙의 플라스틱 폴이 부러진 상태였다. 부러진 폴의 예리한 끝이 텐트 천을 찢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그 스코트와 피터 보드만은 강추위로 손가락이 얼어 무감각해질 때까지 교대로 부러진 폴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들이 차가운 폴을 붙잡고 있는 동안 장갑 손가락으로 습기가 흡수되며, 장갑 속이 온통 물기로 젖었다가 그대로 얼음장갑이 되었다.
새벽 2시 반에 강풍의 강도가 최고조에 달했고, 그들은 줄에 널린 빨래 신세처럼 강풍에 의해 당장이라도 텐트 속의 장비와 함께 통째로 날려갈 판이었다. 스코트와 피터가 교대로 폴을 잡으면서 탈출 준비를 위해 급히 방풍복과 등산화를 착용했다. 그때 그들을 최대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악몽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텐트를 고정시킨 한쪽 앵커 자일이 강풍에 의해 풀리며, 텐트가 절벽 쪽으로 60cm 이상 이동했다.
다급해진 스코트 대장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텐트 밖으로 뛰쳐나가 텐트가 날려가지 않도록 움켜잡았다. 강풍에 날린 얼음 조각들이 소낙비처럼 그의 방풍복 위로 쏟아져 내리고, 그의 얼굴도 강타했다. 그는 재빨리 아이스 액스를 움켜쥐고 앵커 줄이 풀린 쪽 텐트 천 위에 박고 등산화 신은 발로 내리 눌러 텐트가 강풍에 날려 가는 것을 방지하려고 기를 썼다.
그러나 강풍이 점점 더 위세를 떨치자 텐트는 강풍에 의해 다시 10cm가량 이동했고, 다른 폴들도 부러지며 텐트 천이 강풍에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기 시작했다. 스코트는 두 손으로 텐트를 다시 움켜잡았다. 그것은 마치 파도타기를 할 때 커다란 윈드서핑 보드를 붙잡고 파도와 씨름하는 형국이었다.
그 판국에 베탕부르는 자신의 크램폰을 찾아달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스코트는 그의 크램폰을 찾아 텐트 속으로 던져 넣어 주었다. 그리고 중요한 물건들을 빠뜨리지 말고 모두 배낭에 잘 챙겨 넣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안개와 눈보라 속에서 텐트 외피가 벗겨져 검은 그림자를 남기고 동쪽의 오렌지색 하늘로 사라졌다.
스코트는 텐트 내피를 붙잡고 씨름하다가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언 손으로 그것을 비틀어 레지 위로 끌어내렸다. 그는 점점 기운이 빠져 친구들과 장비와 함께 자신도 절벽 밑의 체무빙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감에 시달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타일렀다. ‘노련한 산악인이 강풍에 날려 미지의 계곡에서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 있는 힘을 다해 꼭 붙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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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릉 상의 피너클 지대에서 쉬고 있는 피터 보드만과 조 태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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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급한 마음에 동료들에게 서둘러 밖으로 나오라고 고함을 질러댔지만, 그들은 굼벵이처럼 꾸물대고 있는 것 같았다. 먼저 매트와 침낭을 챙겨 넣은 배낭들이, 그리고 피터가 뒤따라 나오고, 베탕부르는 스위스제 군용 주머니칼로 텐트 뒤쪽을 찢고 텐트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그는 수면제를 너무 많이 복용한 나머지 아직도 졸음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더그 스코트가 잡았던 텐트 자락을 놓아버리자, 텐트는 강풍에 걸레 조각처럼 찢겨져 풍선처럼 날아가며 까만 점으로 변했다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새벽 4시 반, 그들은 자신들이 그때까지 산에서 겪었던 가장 강력한 폭풍 속에서 고도 8,000m 부근의 얼음 레지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그 순간 정상이고 뭐고, 당장 생존을 위해 강풍 속에서 능선 마루로 기어 올라가 하산을 강행해야 할 안타까운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우선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레지 위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피터 보드만은 시종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저체온증에 시달리고 있는 눈치였다. 스코트는 이번에 자신이 한계능력을 초월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두었다고 자책했다. 그들이 처해 있던 가혹한 상황은 빠른 속도로 악화일로에 있었기 때문에 더그 스코트는 난생 처음 자신이 산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베탕부르도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사지가 마비될 정도의 차가운 강풍 속에서 분발해 그들이 전날 밤 3m 위쪽 설벽에 데드맨 확보판(deadman belay plate)을 묻고 설치해 둔 고정 로프를 잡고 올라갔다. 그는 그곳에서 강풍과 맞서며 12m 위쪽 콜 마루로 올라가려고 과감하게 시도했으나, 강풍에 의해 그가 휴대한 고정로프가 꼬이며 길이가 짧아져서 실패했다.
그는 두 번 더 시도하고 실패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음 레지로 되돌아 왔다. 이제 스코트 대장이 나설 차례였다. 그가 일어섰을 때 공중으로 얼음 조각들과 눈보라가 심하게 날아다녔고, 그는 그것들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가슴에 묻고 강풍에 비틀거리다 다시 주저앉았다. 그는 5분 후에 다시 일어나 배낭을 벗어놓고 두 개의 아이스 액스를 잡고 설벽의 데드맨 확보판까지 올라갔다.
그는 언 손가락으로 강풍에 도리깨질치는 자일을 잡고 엉킨 곳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베탕부르가 올라와 그를 확보해 주었다. 그가 콜 마루 밑에 도달했을 때 허리케인이 강타해 그는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을 피하려고 빙벽에 박은 두 개의 아이스 액스에 매달려 프런트포인팅(front-pointing·크램폰의 두 앞발로 빙벽에 박으며 오르는 등반법) 자세로 고개를 숙여 얼굴을 빙벽에 대고, 가쁜 숨을 몰아가며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