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들에게는 율법만 보이고
예수님께는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이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딸을 일으켜 주시고
혈루증으로 고통 받는 여인을 고쳐 주시며, 바리사이들에게
‘희생 제물보다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비가 더 크다.’는
율법의 정신을 몸소 보여 주신다(복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장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려 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닥불을 비롯해서 난로, 이불 등 갖가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손’을 그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누구의 손이냐고 물어 보자 아이는 수줍게 ‘선생님의 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가난하지만 밝게 생활하는 그 아이를 선생님은 평소에 자주 쓰다듬어 주었고,
아이는 그 손길의 따뜻함을 마음으로 느껴 왔던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읽은 아름다운 글입니다.
오늘 복음을 찬찬히 살펴보면 ‘손’에 대한 말이 참 많습니다.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에서 볼 수 있듯이,
손을 통해 치유되고 손을 통해 축복과 생명이 전해집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어머니는 자주 배탈이 나는 저에게
“엄마 손은 약손!” 하시면서 손으로 배를 계속 쓸어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손을 통해 전달되어 아픈 배를 낫게 했습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주라고 손을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이웃과 손잡고 다정하게 살며
서로 화해하고 축복해 주라고 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서로 손가락질하고 못된 일을 꾸미라고 손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되어 누군가를 보살펴 주라고 손을 주셨습니다.
내 손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의 핵심 낱말은 ‘손’입니다.
손이라는 말이 담긴 구절들은 이렇습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저 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이 구절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세 사람의 손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손, 그리고 이미 죽은 회당장 딸의 손입니다.
여인의 손은 간절한 믿음이 담긴 손입니다.
회당장 딸의 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손입니다.
이 두 손이 예수님의 손과 만나 새 생명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복음 안에서 그려진 예수님의 손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의 손은 병든 자를 어루만지시는 치유의 손이었고,
죄인들을 향한 용서의 손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으신 손이었으며,
빵과 포도주를 드시어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신 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손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랑의 손이었습니다.
여인의 손과 예수님의 손이 만나 치유가 이루어졌고,
회당장 딸의 손과 예수님의 손이 만나 생명이 전해졌습니다.
우리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예수님을 향한 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거부하는 손입니까?
예수님의 손과 닮은 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손과는 거리가 있는 손입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게 된다는 뜻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면 하늘도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옛부터 우리네 여인들은 치성을 다하였습니다.
남편이 먼 길을 떠나면 아내는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빌었습니다.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길라치면 어머니는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것처럼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그분 앞에 선뜻 나아가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몹쓸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불치병을 죄의 결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뒤에 서서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여인처럼 어떠한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시며
은총의 삶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마태 9,21)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기대만으로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이 닿기를 갈망하며
이리로 저리로
해매 다니던 시절이 있었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내 의지대로 마음껏 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는 이미
지난 날 부끄러운 내 삶의
작은 발걸음까지도 다 세어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후한 값을 쳐 주고 계셨네.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