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 208. 할힌골 전투 승리의 의미는? ①
▶근세의 자랑거리 할힌골 전투
몽골인들에게 근세 들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꼽으라면
1,939년 일본의 관동군과 벌인 할힌골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내세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륙장악을 위해 기세를 떨치던 일본과의 전투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으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 할힌골 전승기념탑]
그래서 이 전투에서 승리한 9월이면 지금도 승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들이 펼쳐진다.
전투의 현장이었던 할힌골에는 당시의 승전을 기념하는 전승탑(戰勝塔)이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그 곳 할힌골 박물관에는 당시 전투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전쟁 유물들이 비교적 충실하게 정리돼 있다.
[사진 = 전승 기념탑 조각상]
박물관 안 숙소에서 이틀이나 묵었던 필자는 그 곳에 비치된 전쟁 영웅들의 사진과 조각상
그리고 당시 전투상황을 재현한 미니어처 등에서 전쟁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었다.
▶ 넓은 땅, 적은 인구 할힌골
[사진 = 할힌골 솜]
할힌골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천 Km이상 떨어진 몽골의 가장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부 최대도시 초이발산에서도 4백 Km 정도 떨어져 있다.
초이발산에서 할힌골에 이르는 지역은 높은 산을 물론 높은 구릉 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평평한 초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넓은 초원지대에는 게르 하나 가축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금도 빈 땅으로 남아있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산과 구릉이 없는 초지에서는 가축을 기르지 않는다.
가축이 달아나도 찾을 길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할하강을 끼고 있는 할힌골 일대 평원지대는 과거 칭기스칸이 케레이트족의 공격을 피해 도주했다가
이곳에 머물면서 푸른 군대의 군사 체계인 천호제를 정비했던 곳이기도 하다.
[사진 = 할힌골 근처의 평원]
민가가 없기 때문에 초이발산에서 할힌골을 찾아가면서 일행은 중간에 몽골 군부대 숙소에서
하루 밤을 묵고 할힌골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할힌골은 그 면적이 2만 8천 제곱Km에 달한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 보다 더 크다.
그런데 거기에 사는 몽골인은 3천명 남짓이다.
빈 땅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