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자생활
현대인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일까? 바로 ‘삶의 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드러난 화두인 웰빙(well-being)이 아닐까 싶다.
웰빙의 사전적 의미는 바쁜 일상이나 인스턴트식품에서 벗어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으로, 우리말로는 ‘참살이’다.
그리고 웰빙에서 다양한 용어가 파생되는데
‘웰빙족’, ‘웰빙 푸드’, ‘웰빙 케어’ 등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고자 애씀에 뭐라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육체적, 세속적인 것에서 한 단계 차원을 높일 줄 아는 지혜를
신앙인들만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편승하는
사조가 바로 세속화로서 이는 신앙인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의식, 그래서 하느님도 필요 없다는 생각, 혹 신앙을
갖더라도 현세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모습이 팽배하고 있다.
여기서 인디언 속담을 들어보자.
“우리가 죽을 때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것은
생전에 우리가 남에게 베푼 것이다.”
웰다잉(well-dying)을 생각하지 않고는 웰빙을 논할 수 없다고 본다.
승화원 화장로에서 천이삼백 도의 불로 두 시간 만에 한 줌 재로
변하는 것이 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은 너무나 허무하다.
신앙인은 그 이상의 것에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한다.
이미 이천 년 전에 예수님은 진정한 웰빙을 말씀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4-58)
세상을 초월하여 우리 수준을 높여주는 웰빙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살되 세상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누리고 차지하라는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중 잠언에서는 우리가 어리석음을 버리고 예지의 길을
가기를 바랐고, 바오로 사도도 구체적인 웰빙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 5, 18-20) 성령으로 가득한 찬양과 감사의 삶이다.
이제 이 시대에 신앙인이 누릴 웰빙 방법은 무엇일까?
자주 고백성사를 통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하느님의 작품인 대자연
속에서 자연 피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학생들도 점수 따기 식이 아닌
진정한 봉사활동으로 참 기쁨을 알고, 가진 바를 나눠주는 자선 활동이나
어려운 이웃의 소리를 들어주고 위로하기 등등은 어떨까?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기준은
자신의 몸이 쪼개지고 먹히기를 바랐던 예수님처럼 사는 것,
즉 나 자신도 쪼개지고 나눠지는 모습에 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신앙인의
웰빙은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것, 요약하자면 ‘예수 살이’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인은 웰빙과 웰에이징(well-aging)을 거쳐 웰다잉으로 초대된
사람임을 기억하고 오늘이 그러한 모든 과정을 잘 맞닥뜨리는,
성령으로 가득한 찬양과 감사의 삶을 봉헌하는 나날이 되면 참 좋겠다.
글 : 李根一 Matthew 神父 – 인천교구
불교 집안으로 시집간 가톨릭 며느리
제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반드시 저를 결혼시켜야겠다는 생각에 All In하신
부모님은 독실했던 당신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사위될 사람의 종교도 따지지
않고, 호텔 결혼식장을 빌려 골수(?) 불교 집안으로 저를 시집보냈습니다.
아니, 보통은 “내 딸과 결혼하려면 세례는 받고 오게나.”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시할아버님, 시할머님 장례는 당연히
불교식으로 상여 메고 절에서 치러 드렸고, 시아버님의 확고한 통보 하에
제사도 정통 유교식으로 치렀습니다. 이러한 시부모님의 영향으로
엉겁결에 법명도 얻은 저는 철저히 불교 예절과 유교 제사 예법을 따르는
천주교 며느리로 맹활약했습니다. 성당은 제사를 다 치른 다음에야 갔습니다.
3년 전 성지순례를 앞두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시부모님, 세례명 좀
가지게 해 주세요. 그동안 두 분의 입교를 위해 열심히 기도한 저의 간절한
소망은 건널 수 없는 강 너머에 있는 것이옵니까?” 이러한 고민을 동행한
신자들과 나누게 되었고, 신부님께도 특별 기도를 청하며 성지순례를 오롯이
그 지향 하나로 불태우고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시어머님께서
“성지순례 잘 다녀왔니? 뭐 할 말은 없고? 내게 해줄 말 없니?” 하시며
연거푸 물어보시는데,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대놓고 신앙을 부추기는
스타일도 아닌지라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다.”고 하자
제 대답에 뭔가 답답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다음 날 시어머님 말씀하시길,
“얘, 나 세례 좀 받자. 어떻게 하면 세례 받을 수 있니?”
아니, 이게 웬 일인가요? 베를린 장벽이 이렇게 무너진 게 아니었을까요?
그 단단하고 높고 망막해 보이던 장벽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일단 아버님께는 비밀로 해 줘.”라는 어머님의
선언으로 막을 연 ‘시어머님 세례 받기 프로젝트’로 저희는 신앙 동행을
시작했고, 그렇게 준비하신 어머님 덕에 시아버님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게다가 시아버님은 성령에 힘입어 남편에게
“세례 받아라. 네가 세례를 받아야 내가 너랑 연결된다.”는
유언까지 남기셨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아내와 불교 신자이신 부모님 사이에서 중립 입장을 취하던
남편은 아버님의 유언에 맘을 급히 돌려, 결국 시아버님 장례를 치르자마자
바로 예비자 교리 반에 등록하여, 초고속으로 세례를 받고 뜨거운 신자가
되었습니다. 제 오랜 소원이 그저 남편과 손잡고 미사 같이 다니는
것이었지만 그간 그 어떤 설득, 협박, 구걸도 소용없었는데,
그게 이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질 일이었다니요!
이제 함께 성당 다닌 지 2년째이지만 여전히 저는 성당에 갈 때마다
그 간절한 소망으로 애탔던 과거가 생생합니다. 그리고 이젠 깨달았습니다.
저는 불교 집안에 시집온 게 아니라 파견되어 왔다는 것을요!
글 : 한젬마(Gemma) – Creative Director,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