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치유
마가복음 5:36~43
찬송가 442장(저 장미꽃 위의 이슬)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초기의 갈릴리 사역 중에 일어났던 한 가지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가버나움의 회당장이었던 야이로가 자기 딸이 병으로 약해져서 죽어갈 때에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간절히 고쳐달라고 구하자 예수님께서 그 집에 가서 그 딸을 살려주십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절대적 신앙을 갖도록 격려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요청을 받아 그 집으로 가는 도중에 혈류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병이 고쳐질 것을 믿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병이 고쳐졌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런 중인데 회당장에서 사람이 와서 회당장에게 그의 딸이 죽었음을 알리면서 예수님을 집으로 모실 필요가 없노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야이로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에 자기 딸이 죽게 됨으로써 이제 더 이상 딸을 고칠 기회가 사라졌다고 생각을 하면서 얼굴이 사색이 되고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곁에서 이 말하는 것을 다 들으시고서, 야이로의 마음을 아시기에 그를 향하여 힘있게 격려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고 하였습니다. 누구라도 딸이 이미 죽었다면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다 생각할 것인데, 예수님은 여전히 믿음을 가지라고 야이로 회당장에게 격려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큰 문제 앞에서 흔들리고 두려워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가지라고 격려한 적이 많습니다. 자기 아들이 어렸을 때붜 귀신에 들리고 간질병으로 고생하여 불과 물에 자주 떨어져 죽을 위기를 겪어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청하였으나 고침받지 못한 상황에 있는 아버지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라고 청하였을 때에도 예수님은 즉각 그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질병이든지, 다른 어떤 일이든지, 그 어떤 상황을 만날 때에 하나님, 우리 주님께서, 우리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집시다. 우리가 마음에 품은 선한 소원이 우리의 여건이나 환경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불가능의 한계를 갖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우리의 소원을 너끈히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굳건하게 믿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기도로 소원을 아룁시다. 소원을 품고 충분히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깁시다. 아이를 낳지 못했던 한나가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다가 엘리의 제사장의 축복의 말씀을 듣자 그 말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았더니 성전에서 돌아가자 놀랍게 아이를 잉태하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을 가집시다. 나사렛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아이가 잉태될 것이라고 말씀하였을 때에, 마리아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죽은 자가 어찌 다시 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 회당장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우리의 선한 소원도 이루어주실 것을 굳게 믿고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두 번째로, 예수님은 일하실 때에 소란스럽지 않은 고요함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들어가실 때 그 집에 제자들 중에 세 사람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시고 다른 제자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그 집 딸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호곡꾼들이 소리를 크게 내면서 울어서 상갓집 분위기를 돋구었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가 연출된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하는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는 주님께서 일하시기가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호곡꾼들을 떠들지 말고 울지 말라고 하셔서 다 내보내셨습니다. 이제 집안이 조용해지게 하시고 아이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고 소녀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사역은 고요하고 조용할 때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30:15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사역할 때에 유다 왕국의 아하스 왕 때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흔들릴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왕을 찾아가 만나 당부한 첫 마디 말씀이 이것입니다.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그리고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 같은 성령의 사역을 외면하고 훙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유브라데 강물 같은 인간적인 힘과 세력만을 추구한다고 책망하였습니다(이사야 8:5~8). 그러므로 우리는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치고 소란스러운 환경이 조성될 때에 도리어 차분하고 조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성령께서 우리 삶에 찾아와 일하시도록 조용히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서 장애 없이 평안히 일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기이한 능력으로 우리의 문제를 완전히 가장 완벽하게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 예수님은 인간적인 허세와 자랑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조용히 누워 있는 소녀 곧 숨을 거두고 죽어서 말없이 누운 소녀를 보시고 그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듯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그랬더니 그 소녀가 곧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열두살쯤 되는 그 소녀가 죽어서 누워 있다가 눈을 뜨더니 일어나 방안에서 걷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아버지 야이로와 그 모친은 놀라워하고 또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깜짝 놀란 것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있는 회당장 야이로와 그 아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3절 전반절에 나온 대로
“이 이를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
고 하셨습니다. 43절 전반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이 경계하셨다고 하였으니, 이는 큰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소문이 나서 소란이 커질까봐 경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사람들에게서 지나친 반응들을 피하시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었을 때에도 사람들이 흥분하여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몰려들자 서둘러서 제자들을 배 태워 보내시고 그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다 보내신 후에 홀로 조용히 산에 올라가서 자정이 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인간적인 열광적 반응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셨으며 자기의 사역으로 인하여 영혼이 유익을 얻으시는 것으로 만족하셨으며 사람들로부터 허세와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리며 세상의 이런 저런 풍조에 영향을 받는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그렇게 표적과 기적들을 행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대단한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있었으나 예수님은 도리어 그들에게 표적 보여주기를 거절하시면서 오직 요나의 표적만을 보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일 동안 있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 자신도 삼일 동안 땅에 묻혔다가 나오는 이적만 보여주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표적만 장차 보여줄 것이라고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표적을 보여주기보다 말씀 사역에 주력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서 사람들에게서 무엇인가 인간적인 환호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우리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들이 됩시다. 사람들에게서 대단한 환호를 얻으려 힘쓰기보다는 주님의 계명을 행하고 주님의 맡겨진 직무를 말없이 수행하며 주님의 뜻만 행한다면 만족하는 자가 됩시다.
넷째로, 예수님은 자상한 배려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소녀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43절 후반절에서 예수님께서 그 부모에게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고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소녀가 지금 살아나서 걸어다니지만 그 동안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서 힘 없이 지냈고 미음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 기간을 지났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몹시 연약해져 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그 소녀의 육신의 기력을 보호해주시려고 먹을 것을 주라고 자상하게 배려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소녀의 생명만 당장 살려낸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당장의 그 소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아시고 먹을 것을 챙겨주라고 자상하게 배려해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심을 우리도 기억하고 본받읍시다. 그리하여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서 약한 자들을 강건하게 해주고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해주고 낙심한 자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어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는 주님의 통로들이 됩시다.
야이로 회당장의 딸을 고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사역의 모습에서 우리는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갖기를 바라십니다. 고요한 중에 사역하길 원하십니다. 자기 자랑 없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집중하길 바라십니다. 자상하여 다른 이들을 살피고 돕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사역 자세를 본받아 우리도 힘써 주님과 성령님의 사역의 동역자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