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제주시 이호2동 990-1번지(오도9길33)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마을 터, 학살 터
호병밭은 병풍을 둘러친 듯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당시 이호2구에서 가장 위(남)쪽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1948년 12월 7일 오전 토벌대는 이호2구의 고승현(23 男)을 비롯한 장년층 8명과 노형에서 소개온 강창호(37 男), 현씨(현상지 현상지(玄庠智, 1930년생, 2021년 91세) • 1930년 노형동(개진이) 출생 • 1947년 늦은 초등학생으로 3·1사건 목격 1948년 11월 19일 노형마을이 전소되는 장면 목격 •1948년 12월 7일 소개되어 이호리 호병밭에서 큰형 총살 당함 • 1948년 12월 13일 이호 큰가름에서 마을주민 집단학살 목격 • 1949년 1월 22일 노형 베염나리 계곡 근처에서 아버지 등 가족 5명 철창으로 도륙된 모습 목격 • 1949년 1월부터 3개월간 피난길 • 노형동 베염나리→걸시오름 움막→구분동산 움막→큰두레왓 영덕궤→청산이도 움막→ Y계곡 안먹돌궤 등으로 토벌대에 쫓겨 다님 • 1949년 3월 백기를 들고 오라파출소로 귀순(컬처제주 http://www.culturejeju.kr)
씨의 큰형) 등 청년들 12명을 이곳에서 학살했다. 전날인 12월 6일 인근 일주도로에서 전주절단사건이 발생하자 도두지서는 호병밭마을에 들어와 전주복구작업을 해야 한다며 이호 주민과 소개와 있던 노형 주민을 데려갔다. 작업이 완료되자 경찰은 동원했던 주민들을 호병밭마을의 속칭 ‘자운당’이라 불리는 묘지가 있는 밭으로 데려가 학살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 20여호의 주민들이 살던 호병밭과 이호2구에서 가장 큰 마을인 가물개를 불태웠다. 그리고 주민들을 ᄀᆞᆯ왓과 큰가름으로 소개시켰다. 당시 호병밭의 호주는 고계종, 고홍로, 김귀련, 김규협, 김대현, 김병용, 김병철, 김병후, 김성태, 김임규, 김철, 김하련, 김현탁, 김화규, 현덕환 등이다. 그 후 가물개마을 등은 복구되었지만 호병밭은 복구되지 않았다.
현재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길 양쪽으로 단독주택 3채 정도가 들어서 있다. 특히 길 서쪽에는 아파트와 어린이집이 들어서서 마을 전체가 변화되었다. 마을 끝자락에는 올레와 대나무숲이 남아 있으며, 주민들이 학살당했던 묘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2020년 개정증보판 제주4·3유적Ⅰ)
《작성 22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