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죽음을 대속적 죽음으로 이해함에 있어서 세 가지 관점을 취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제시한 객관으로서의 대속적 죽음이다. 예수는 실제로 하늘(영계)에서 하느님의 제안을 받고 그의 영화로운 아들의 직위를 기꺼이 버리고, 천사보다 조금 못한 인간의 지위가 되어 이 땅에서 고난을 받다가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어야만 했던, 예정된 수순이라고 보는 것이며, 두 번째는 칸트의 인식론적 관점으로 보는 견해이다. 즉, 그(예수)의 인생 행로와는 무관하게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천적 인식 구조에 의해 예수의 죽음을 인간을 위한 대속적 죽음으로 보게 된다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예수가 실제로 인간의 죄를 대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 지와 무관하게 대속론이 형성되었다는 관점이다. 세 번째 관점은 스피노자의 관점을 적용해 보는 것이다. 그는 모든 사물과 그 진행은 그것 대로의 참관념을 지니고 있으며ㅡ이 관념을 스피노자는 신의 관념 또는 형상적 관념이라 말한다ㅡ인간이 그 사물이나 상황을 접촉 했을 때, 그 사물의 참 관념과 그것을 접한 인간의 본성(=성향)이 서로 결합되어 사람마다 공통 관념과 독특한 관념을 가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무한한 방식으로 무한하게 나타나는 것은 신의 속성이 사물과 인간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스피노자적 관점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생전에 제자들에게 보인 경향은 그가 겸허한 마음과 사랑의 대명사라 불릴 만큼 헌신적인 삶을 보여주었고, 유리하는 백성들의 질고를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을 나타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그러한 관념과, 그들이 예수는 메시아일 거라는 그들의 강한 추측이 결합되어 예수의 죽음을 죄인의 죽음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으며, 유대인 제사의식에서 나타난 동물 희생보다 우월한 대속적 죽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칸트나 스피노자 관점의 공통성은 사물의 본질 또는 참 관념을 인간이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을 칸트는 순수이성의 한계라 보고 있으며, 스피노자는 인간이 전체의 부분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만 알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 모든 관점을 떠나서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그가 적어도 나쁜 짓을 해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골수 유대교인들은 이사야서의 어린 양이 당하는 고난의 대목을 예수에게 적용시키는 것을 듣기 싫어하지만, 순수하고 죄 없는 자가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은 자연의 순리의 부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특성은 곧 신의 속성이기 때문에 매우 공의로울 것인데, 왜 선한 자가 고난을 받고 악한 자가 번영하는 가에 대한 '아삽의 고민'이 성경 시편에 실려 있다. 여러분은 이 고민을 해결할 합리적 방안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