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경기 여주 이포보 농성 현장에 있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MBC '후플러스' 기자 친구였습니다. 예감이 불길했습니다. 지난번 전화 통화에서 '후플러스'가 폐지되거나 시간대가 이동될 지도 모른다면서 하소연 했었거든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다급한 목소리로 경영진의 '후플러스' 폐지 방침을 전했습니다.
"정호야, 우리 프로그램 폐지된대..." "정말?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됐습니다. 친구의 우려대로 MBC '후플러스'가 이번 가을 개편에서 폐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재철 MBC 사장이 지난달 30일 임원회의에서 '후플러스' 폐지를 전제로 편성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하네요.
MBC '후플러스' 홈페이지 캡쳐화면.
김 사장이 내세운 이유는 바로 낮은 시청률이었다고 합니다. 경쟁력이 없고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거죠. 마치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듣는 듯합니다. '돈이 안 되니까 없애자' '비효율적이니까 민영화하자'는 식입니다.
누구를 위한 효율성인가요.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시청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모든 프로그램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김 사장은 MBC가 공영방송이라는 것을 잊은 것 같습니다.
'후플러스'는 그동안 '뉴스 후' 시절부터 사회의 공공성을 위한 심층 보도를 해왔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기자협회에서 주는 이달의 기자상과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상을 네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후플러스'의 탐사 보도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후플러스'의 시청률이 낮다고 판단된다면 더 노력해서 시청률을 높이면 될 일입니다.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탐사 보도를 통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PD 수첩'의 4대강 사업 관련 프로그램이 얼마나 큰 관심을 받았습니까.
김재철 MBC 사장이 'PD수첩-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을 결방시킨 가운데 18일 오전 여의도 MBC 사옥 현관 앞에서 김 사장(오른쪽)이 출근을 하자 MBC 조합원들이 불방사태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이런 노력 대신 프로그램을 폐지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MBC 경영진이 'PD 수첩' 사태에 이어 다시 한번 비판적인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후플러스'보다 시청률이 높은 예능 프로그램 편성으로 MBC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는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MBC는 돈벌이를 위해 존재하는 곳은 아닙니다.
'후플러스' 전, 현직 제작진도 그저께 사내 게시판에 이번 조치를 비판하는 성명을 올렸습니다.
"시사프로그램을 시청률만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 <후플러스〉의 폐지는 '탐사 심층 비판' 보도 기능의 심대한 약화를 불러올 것이다. "이는 결국 언론 자유를 침해하려는 권부의 압력에 MBC 경영진이 굴복한 결과이며 MBC의 보도 기능 위축, 나아가 한국 언론의 자유를 옥죄려는 시도다."
MBC는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높은 '무한도전'이나 '무릎팍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만의 채널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시사보도 프로그램도 있어야 하는 채널입니다. 좌우의 날개처럼 균형을 이룰 때 공영방송 MBC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청률 때문에 공영성을 포기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MBC 기자들의 투쟁이 있을 텐데요. 누리꾼,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쥐새기가 ' 국정을 잘 꾸려간다'는 명박방송이 아닌,
사기를 치며,국민의 피를 빨아먹는다'라는 옳은 방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