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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10-10-04 13:37:00
독일 사회에 또다시 메가톤급 태풍이 몰아쳤다. 그 중심부에는 독일연방 중앙은행의 이사였던 틸로 자라친(Thilo Sarrazin·65·사진)이 있다. 그는 8월 30일 자신의 책 ‘자멸하는 독일: 우리가 어떻게 우리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나’를 냈다. 자라친은 지난 연말부터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레트르 앵테르나시오날’이라는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아랍 및 터키계 이민자들은 독일 사회에 동화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비판했기 때문.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화 없이 혜택만 누리려 해”
“국가에 의존해 먹고살면서도 이 나라를 부정하고, 자녀교육에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끝없이 ‘머리에 히잡 쓰는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터키인들은 높은 출산율로 독일을 점령하고 있다.”
이처럼 자극적인 발언으로 지난해 독일 사회에 큰 분란을 일으켰던 자라친이 이젠 통계, 수치 자료로 가득한 책을 출간해 자기 견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나섰다. 이 책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 ‘독일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 핵심 원인으로 그는 이주민 정책의 실패를 꼽았다. 독일은 1960~70년대 경제 호황기에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받아들였으나 정치권에서는 지금까지도 이주민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으며, 이를 엄격히 규제할 만한 법 규정도 마련하지 않았다. 따라서 몇십 년 뒤면 독일 전체 인구 중 혈통적으로 진정한 독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이주민의 비중은 높은 출산율에 힘입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게 자라친의 주장이다. 덧붙여 그는 이민자들은 언어적, 문화적 핸디캡을 갖고 있어서 현재 수준의 기술과 생산 업무조차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이 다수가 될 미래의 독일은 현재보다 못한 나라가 되리라고 단언했다.
교육의 질 저하도 불 보듯 뻔하다. 최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관련지어 독일 사회 전체가 교육 문제에 민감해졌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제도 및 환경 개선, 저소득층 자녀 집중 지원 등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자라친은 “이런 외적 요인보다 중요한 게 내적 요인, 즉 학생의 유전적인 학습 능력이나 문화적 측면”이라고 본다. 즉 학생에게 학습동기를 불어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학생 스스로가 수업을 따라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 덧붙여 그는 “이슬람계 이주자들은 전통적으로 교육에 대한 열의가 부족하고, 아직도 여자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져 고도의 추상작업을 해야 하는 대학교육을 받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문화의 풍토 속에서 자란 이민자 및 자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수백 년간 쌓인 유럽의 정신사라든지 자연과학적 성과를 이해할 수 없는데, 심지어 그들은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이로써 자라친은 터키 등 이슬람권 이민자의 사회 동화라는 독일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를 건드렸다. 지금까지 독일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더 많은 물질적 지원으로 해결하려 했다.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바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라친은 “문제 해결의 열쇠는 대다수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봤다. 이슬람계 이민자는 대부분 사회에 동화할 생각조차 안 하고, 독일 정부가 제공하는 저소득층 지원금에 의존해 살고 있다. 교육 수준도 매우 낮다. 게다가 상당히 종교적이며, 각종 범죄에 자주 연루된다. 베를린 시 재무장관을 역임한 자라친은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에 사는 이민자를 사례로 들며 이렇게 말했다.
“독일 이민자들은 저소득층 지원금 신청서를 대신 독일어로 써줄 사람과 새살림 꾸릴 거처를 찾는 데 도와줄 사람만 만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국처럼 이민의 전통이 깊은 나라에서는 이민자라 해도 단 1센트도 거저 얻지 못한다. 수년간 거주하며 그 사회에 동화해야 비로소 사회보장을 청구할 수 있다. 그 보장이라는 것도 독일에 비하면 별 혜택이 없는데, 이조차 5년으로 제한됐다. 미국 이민자는 자기 밥벌이 정도를 할 줄 알아야 하지만, 독일 이민자는 독일에 들어오는 순간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다. 그렇다고 독일 이민자들이 행복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 이민자의 77%는 그 사회에 동화하는 데 5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의 터키계 78%는 여전히 ‘앙겔라 메르켈이 그들의 총리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스스로 노력해 사회에 동화하지 않고, 단지 혜택만 누리는 사람은 고마워할 줄 모른다.”
독일 전역에서 이 책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그가 이슬람권 이주자를 명시적으로 지목해 비판한 것을 ‘망언’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유전적 요인이라든지, 혈통적인 의미에서의 ‘독일인의 멸종’을 거론한 대목에서 옛 나치 시대의 망령을 떠올린 이들도 있었다. 곧바로 그에게 각종 제재가 취해졌다. 그가 소속된 사민당에서는 해당(害黨) 행위를 문제 삼아 출당 조치를 취했다. 중앙은행 이사회는 그의 제명을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를 두둔했다. 그의 표현이 거칠기는 했지만, 그가 지적한 문제가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시각이다. 오히려 그가 많은 사람이 속으로만 생각해왔던 것을 용기 있게 말했다며 찬사를 보낸 이들도 있다.
이민자 적대감 유럽 전역 확대
터키 등 이슬람권 이민자들의 사회 동화 문제는 독일의 민감한 이슈 중 하나다.
메르켈 총리는 자라친의 주장에는 거리를 뒀지만, 이 문제를 두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봤다. 9월 초 ‘빌트 암 존탁’과의 인터뷰에서 메르켈은 “이슬람 청소년의 높은 범죄율은 통계적으로 입증된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교육뿐”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이주민이 경찰서, 관공서 등 공직에서 일한다면 이런 문제는 많이 완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욱 놀라운 건 독일인 5명 중 1명이 자라친의 견해에 동감한다는 사실이다. ‘빌트 암 존탁’이 9월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8%는 “만일 자라친이 이끄는 야당이 창당한다면 기꺼이 표를 주겠다”고 밝혔다. 기존 좌파당 지지자들이 가장 많은 지지 의사를 밝혔으며, 기민련 지지자도 꽤 됐다. 자라친의 출당 조치를 추진한 사민당의 지지율은 일주일 사이 2%포인트 하락했는데, 그 이유는 자라친이 제기한 문제를 당이 해결하려 하지 않고 덮는 데만 급급했다는 것. 포르자 연구소 만프레트 귈르너 소장은 “사민당 지지자 대부분이 이주민과 직접 경쟁하는 사회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당이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라친을 내보내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고 분석했다.
이 와중에 자라친의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출간 일주일 만에 온라인서점 아마존의 독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독일 전역에서 열릴 예정인 그의 북 투어 입장권도 매진됐다.
이는 최근 유럽 전역에서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영국인 64%는 “현 수준의 이민자 수용이 영국을 살기 더 나쁜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 영국인 63%는 “이민자 때문에 의료보험 서비스가 악화됐다”고, 66%는 “교육 시스템이 더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스페인에서도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이 높았다. 최근 경제위기로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응답자의 67%는 “이민자 때문에 구직이 더 어려워진다”고, 32%는 “임금이 더 적어졌다”고 말했다. ‘집시 추방’이라는 사르코지 정부의 강경책이 진행 중인 프랑스에서는 응답자 48%가 “이민자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주간동아 756호 (p64~66)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첫댓글 우리나라에서도 곧 닥쳐올 현실이군요.
지혜로운 판단과 현명한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슬람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이슬람 국가의 사법, 문화, 종교가 총망라된 시스템이라 절대 타 국가에 동화될 수 없다던 어떤 분의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