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미친 짓이란 걸 안다. 2주 연속 설악에 다녀왔다. 내혼자. 그런데 이 미친 짓, 괜찮다.쏠쏠하다. 친구 김병일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이번 주는 일요일에 다녀왔다.
6시 30분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는데 이상하다. 고속도로 초입부터 술술 뚫린다. 가평 설악 지날 때쯤인가, 한 번 막혀 서행하더니 한 번도 정체하지 않았다. 똑같이 원통에서 10분을 쉬고도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했더니 눈에 띄게 휴게소 밖에 주차한 차량 대열이 한산하다. 오히려 오색 쪽에서 올라오는 주차장의 차단기가 올라가 있었다. 손님 환영 이러는 듯. 새벽에 산에 오른 사람들이 사라진 시간, 버스에서 내린 산객 10명 정도에 간간이 산에는 관심 없는 어르신을 비롯한 관광객 10명이 고작이다.
휴게소에서 도시락을 판매하는데 산채비빔밥을 비벼서 준다는 것이었다. 만원이란다. 생수 한 병에 캔맥주 하나 사서 가방에 넣고 화장실 다녀와 시간을 확인하니 9시 4분. 산새 소리 정겨운 길이 호젓하다. 불과 일주일 전과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차이라고 해도 이 길, 지나치게 호젓하다.
9시 40분 휴게소에서 1㎞ 떨어진 지점에 이르러 목을 축였다. 지난주에 회장님과 달라무, 아톰 형을 시간차를 두고 만난 지점이다. 쉬지 않고 올랐는데도 지난주보다 다소 늦어진 10시 25분에 삼거리에 이르렀다. 곧바로 걱정했던 너덜길이 시작했다. 정말 뾰족한 바위들이 얼기설기, 질서 없게 발밑에 도사린다. 그러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겨울에 적설을 대비해 깃발을 꽂으려고 박아둔 폴대가 나침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길을 오겠다고 결심한 것이 매우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풍광이 드라마틱했다.
11시 23분쯤 귀떼기청에 이르렀다. 건너편 점봉산 주걱봉 쪽과 멀리 안산, 그리고 백담사(너무 선명하고 가깝게 보였다), 내설악, 중청, 대청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하산하는 길에 삼삼오오 점심을 먹길래 나도 자리를 깔아 주걱봉이 모두 들어오게 카메라 앵글을 잡고 점심 상을 촬영했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계란 후라이도 있고, 아몬드 땅콩, 건조 김, 일회용 포장김치(열었다가 관리가 안될까봐 개봉하지 않았다. 챙긴다고 챙겼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사라졌다) 등 비싸다는 푸념을 피하려고 머리를 쓴 듯한 도시락이었다. 나물비빔밥이라 먹을 만했다. 무엇보다 밥에 따듯한기운이 남아 있어 좋았다. 집사람이 챙겨준 열무김치에다 먹으니 더욱 좋았다. 결혼 30주년이 코앞이라 아내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서울은 흐린데 날이 좋다니 자기도 좋다고 한다. 사실 혼자 가겠다고 하니 걱정이 많았던 집사람과의 동행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귀떼기청 올라올 때 푸념깨나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예서 끝나지 않고 대승령, 장수대까지 가야 하는 일정이다. 집사람과 함께 한다면 귀떼기청까지만 오르고 원점회귀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12시 25분 행장을 수습하고 나섰다. 이제 가끔 중청 뒤 대청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한다. 여전히 너덜길이라 온 신경을 집중해 걸음을 옮기는데 산철쭉이 가끔 얼굴을 내민다. 1시 7분쯤 제법 높은 봉우리에 올랐는데 1471m라고 적혀 있다. 흰 수염을 덥수룩히 기른 80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곳에 올랐다. 훨씬 어려 보이는 부인은 훨씬 수월하게 먼저이고. 갈 길이 멀다 말하길래 난 안산이나 백담사를 얘기하는 건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능선 오른쪽 내설악 쪽은 볼품이 없어지고, 왼쪽 한계령 길 쪽으로 내리뻗은 계곡의 아름다움이 장난 아니다. 많이 쉬었다. 혼자 산행을 하니 맘대로 쉬고 좋다.
흰 수염 어르신이 더 높은 봉우리가 하나 더 있다고 했는데 먼저 가서 보니 1408봉이었다. 큰감투봉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행 게시판에는 1409m로 안내돼 있다. 이곳에서는 한계령 쪽으로 뻗은 계곡이 더 안온하게 보인다. 2시 27분 이무렵이다.
이름 모를 야생화 군락이 예쁘다. 이 일대에만(대승령을 3㎞쯤 남긴 지점이었다) 지천이다. 이 들꽃은 음지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오월 말의 햇볕은 뜨거웠는데 이곳은 햇볕을 가려 서늘했는데 들꽃 천지다. 둥치가 텅 빈 커다란 주목 아래 카메라를 내려놓고 셀피 촬영을 했더니 이런 환상적인 사진이 나왔다. 나무 높이는 6m쯤 된다.
너덜길은 시나브로 끝나고 음전한 흙길이다. 그런데 3㎞를 계속 구불구불 넘나들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니 조금씩 지쳐간다. 짜증도 조금 나고.
그렇게 대승령 닿은 시간이 오후 4시 3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참 볼품 없는 대승령이다. 조망할 수가 없어서다. 게시판에 적혀 있는 ‘고생과 환희의 교차점 대승령’ 그대로다.
작은 바위를 촘촘히 박아놓은 길을 700m쯤 내려가고 간간이 데크 길을 깔아놓은 곳을 지나니 대승폭포인데 얘걔. 거의 물이 없다. 산이 바짝 말라 있다. 월요일 비가 예보돼 있으니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5시 3분이 넘어 있었다. 남은 거리는 900m. 장수대 앞 도로에 관광버스가 주차돼 있는 것이 빤히 보였다. 여기서 10분 정도 머물렀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데크 길 전망대에서 하염없이 주걱봉 쪽 바라보며 골바람을 만끽했다. 이게 또 5분이었다. 119 소방대원들이 주말을 마치고 훈련을 하기 위해 서넛이 가쁘게 계단을 밟아 오른다. 수고하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도 놀리는 일 같아 그냥 눈인사만 했다. 앞서가던 여자 산객 셋이 탁족을 하고 있다. 물도 거의 없는데.
장수대를 통과한 시간이 5시 25분이 조금 못 됐을 때였다. 12.6㎞인데 8시간 남짓 걸렸다. 충분히 7시간이면 걸을 수 있는 구간인데 난 조금 늦장을 부리고 사진을 많이 찍고 기다렸다.
버스 표를 파는 데가 없어 관리소에 문의했더니 그런 거 없고 현금 준비해 타야 한다고 일러주는데 10분 전 막차가 출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다. 아 이곳의 막차는 요일별로 다른데 원래는 5시 15분이 동서울행 막차라는 것이었다.
앞에 산장에 가서 문의를 해보라고 한다. 산장은 관광버스 타고 온 이들의 음식 대접에 여념이 없었고, 자신들은 버스를 타지 않은 지 너무 오래돼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나처럼 띨띨한 산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터로 간다고 했다. 2만 1000원 조금 넘게 요금이 나왔다. 정말 베스트 트라이버란 이런 기사를 두고 말한다. 코너링이 기막히다. 더욱 기막힌 건 내가 놓친 버스가 원통 터미널에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 표를 끊고 나오니 막 출발한다. 달려가면 충분히 탈 수 있는 거리인데 그러지 않았다. 택시 기사 말로는 따로따로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세 등산객이 버스를 탔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대승령 내려오는 길에서 내가 본 사람들일텐데 어쩌나 싶었다.
터미널 건너편 시장 골목에 현지인 남정네 셋, 여자 둘과 남자 셋, 이렇게 두 테이블 손님이 모여 있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메뉴를 살펴보니 바지락탕이 눈에 띈다. 옳거니, 주문하고 맥주와 소주 한 병씩을 내가 냉장고에서 직접 뽑아오니 안주인이 맥줏잔 드릴까요, 그런다. 이 안주인 센스 있네. 바지락은 통영에서 어제 왔단다. 부침개 안주를 곧바로 내온다.
소맥 두 잔을 털어넣고, 화장실에 가서 씻고 상의를 갈아 입었다. 얼굴과 목덜미에 땀이 덕지덕지 묻어 나온다. 씻고 나오니 바지락탕이 끓고 있었다. 물 좋네. 부추와 고추 썰어 넣어 먹을 만했다. 다음 차가 6시 20분이라 했는데, 시계를 보니 6시 9분이다. 에라 모르겠다. 다 먹고 일어나자.
6시 35분쯤 일어나 계산하고 터미널 갔더니 동서울 막차는 7시 30분이었다. 털썩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 지켜봤다. 20분쯤 됐을까? 흰수염 어르신 부부가 나타났다. 이분들은 날 기억을 못했다.
버스에 먼저 올라 아무 자리나 앉았더니 이 어르신이 표를 보여주며 자기 자리라고 비키란다. 이 분들은 인터넷으로 이 막차를 미리 예약했던 모양이다. 이 버스는 홍천 터미널 등 들르는 곳이 많았다. 또 젊은 승객, 특히 젊은 아가씨 승객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미군인 듯 흑형 하나에 백인 넷도.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9시 50분. 한계령 일대 막차와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명심하자, 한계령 일대 막차는 5시 15분이다. 토요일은 승객 많을 때만 7시 15분 오색을 떠난다. 특별 증편이다.
꿈결 같다. 2주 연속 설악을 다녀오니 더욱 실감이 안 난다. 그런데 여전히 뚝섬역 내설악 사진 촬영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이번에 점봉산 주걱봉의 모습을 철저히 눈에 담아왔다. 이제 결론을 내리기 위해 3주째 설악행, 남교리~안산~대승령~장수대를 꿈꾸게 된다. 과연 집사람이 허락할까?
첫댓글 결국 다녀왔군. 알고는 못 간다는 그 길을. 대단하네. 산행기도 잘 읽었네. 담주도 기대하네. 지난해 아내와 장수대-대승령-십이선녀탕 길을 걸어보니 안산은 못 올라가게 막아놓아 아쉽더군. 글고 용대리가 아니라 남교리.
큰산에 연짝 2주 가기가 쉽지 않은데, 과연 애산가구만! 설악 장쾌한 능선이 좋고 고즈넉하고도 회사한 풍광이 좋네..설악 가고프다!!
기운도 좋다.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다녀라~~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