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다.
양 승복
햇살이 따사롭다. 창문을 여니 봄바람이 밀려온다. 새들이 봄에만 지저귀지 않거늘, 마치 오선지에 가는 잉크 펜으로 경쾌하고 우아한 세 박자 음표를 그리는 듯이. 맑고 청아한 왈츠의 환희를 노래한다. 검은 색 연미복을 입고. 창밖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살구꽃처럼, 주름이 풍성한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와 춤을 추는 모습이 뭉게구름 하늘로 펼쳐진다.
명지바람이 비단결같이 곱다. 아 3월이다. 봄이 왔다.
눈을 감고 노곤해 지는 기분을 느낀다. 겉옷을 벗고 반소매 차림으로 창문에 서서 천지가 열리는 기운을 온 몸으로 받는다. 자극적이지 않은 서늘함이, 청량한 탄산음료의 공기방울이 톡톡거리며 터져 나오는 것 같다. 바람이 싱그럽다. 햇살은 눈이 부시지 않다. 얼마나 그리던 평화인가.
나에게 봄이 오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고약하고 매서운 바람이 길을 비켜주지 않을 것 같았다. 어지럽게 흩뿌리듯이 부는 2월 찬바람을 꽃샘바람이라 하여 바람에 꽃이라는 고운 이름을 붙여 부른다. 그러나 꽃샘바람은 몹시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성품을 가졌다.
2월을 주관하는 할매는 심술이 사나워 잘 섬겨야 한다고 할머니는 떡을 해 놓고 빌었던 기억이 있다.
2월 할매는 딸이나 며느리를 데리고 함께 다니는데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온다고 한다. 딸을 데리고 올 때 바람이 부는 것은 딸의 분홍치마가 바람에 보기 좋게 나부끼도록 하기 위함이고,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 비가 오는 것은 며느리의 치마가 비에 젖어 볼품없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할매의 심술이 얼마나 대단하고 고약스러운가. 며느리를 데리고 나오면 촉촉한 봄비가 내려 겨우내 언 땅을 보드랍게 매만지니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2월 할매를 잘 다스리려는 할머니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2월 심술 할매는 고부간인 며느리보다 딸을 데리고 바람을 휘몰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그 바람에 휘둘리고 있었다. 코로나 병균은 내가 다니는 직장을 살그머니 파고들었다. 코로나에 감염된 환자가 입원하는 사고로 백 명이 넘는 환자들이 감염되면서, 신이 난 2월 심술바람은 온 병원을 휘몰고 다녔다. 몰래 온 손님은 자리를 차지하고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코호트 격리가 되어 출근한 상태로 그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3일마다 하는 검사에서 20명이 넘는 감염 환자들이 나오고, 그 환자들을 하얀 방호복으로 싸매고 또 싸매고 간호하면서 조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나를 어지럽게 했다.
감염이 되면 치료 병원을 정해지고, 환자들이 타 병원으로 떠나면서 다시 3일이 되고, 검사하고 밤이면 감염환자가 손 전화에 문자로 뜨고, 간간히 간호인도 섞이면서 병원은 공포분위기로 변해갔다. 서로 믿지 못하고 잠자리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함께 식사하는 것도 무서워 집에서 보내오는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병원관계자들은 감염자와 직접 접촉하는 간호사를 멀리서 보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2월 할매는 며느리 손을 잡지 않았다. 딸 손을 잡고 연분홍 치마가 바람에 살랑거리도록 바람을 몰고 다녔다. 그 바람은 간드러지기도 하고, 살을 에듯 매섭고, 벼락바람처럼 휘몰아치기도 했다. 한 달여 합숙생활은 심술바람이 매일 휘몰고 다니며 심사를 어지럽혔다. 억측이 난무하고, 서로 믿지 못하고, 작은 일에 소란이 일고, 사악해진 바람은 2월 할매 딸의 치마를 홀랑 들춰내 속곳까지 훤히 보이게 했다.
우리 할머니같이 떡을 해 놓고 빌어볼 수도 없고.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은 작은 자극에 터지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민들레 풀씨처럼 싹을 틔웠다.
2월은 정지되어 있는 듯이 길고 길었다. 처음에는 사명감 같은 의협심도 존재 했는데, 영화에서 보면 이런 경우 서로 싸우다 모두 죽어 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서 코호트 격리는 가두어 놓고 다 걸리도록 기다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검사를 할 때마다 그중에 내가 끼어 있지 않다는 안도감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작은 공간에서 합숙 생활을 점점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200명이 넘는 환자 중에 용케도 20여명이 감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은 종료 되었다,
병원은 환자가 없어졌다. 치료를 받고도 오지 못하고 타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환자들이 빈자리를 메꾸어 나가야 하는 일은 큰 난제였다. 재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에게 최소 인원만 남기고 무급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하루에 몇 십 명씩 재입원을 시켰다. 2월 할매는 더욱 신이 난 듯이 칼바람을 휘젓고 다니며 우리들의 불편한 심기를 흔들어 됐다. 사명감은 나락으로 떨어진지 오래고, 절망의 2월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떠나지 않을 것 같은 2월 할매 심술 바람은 부드러운 꽃바람에 밀려 떠났다. 시간이 그렇게 했다.
모두의 심사를 어지럽히고 가슴에 서늘한 기억을 남기고 세월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는 듯 마는 듯, 이 부드러운 바람을 꽃바람이라 하던가. 비단같이 부드러워 명지바람이라 하던가. 지금은 향기가 있는 바람 속에 서 있다. 이 아름다운 바람이 지나면 어떤 바람이 불어올 것인가. 그 바람이 어떤 바람이든 순응하며 왈츠의 선율에 맞추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살아가야 할 지혜는, 바람을 탈 때마다 터득되어 지는 인생의 과제인 것만 같다.
지구가 앓고 있는 코로나 열풍 속 작은 귀퉁이에서 나 또한 거센 바람 속에 서 있었다. 지금부터 시작인 먼 길이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고난의 시간들은 더 많아 지리라 생각한다. 모두가 그 바람을 잘 타고 넘어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다.
국화 꽃
작은 꽃밭에 국화꽃이 해마다 거르지 않고 핀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국화꽃을 소담하게 피워 보려고 가지치기를 두 번이나 했다. 음달인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린 탓에, 늦게 촉을 틔운 국화는 꽃 피우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을 내내 기다림과 안타까움으로 지낸 적이 있다. 햇살을 뿌려 줄 수 있다면 여로에 가득 담아 흠뻑 줄 것인데.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고 된서리를 맞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몇 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렇게 서로를 알지 못하고 지낼 수가 있나.
올해는 가지를 벌지 않더라고 자르지 않았다. 뱀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며 고개를 들고 하늘바라기 하는 국화 대궁을 모아 묶었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국화들이 어우러져 꽃을 피웠다. 소담하지 않다. 주인 없이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화같이 소박하지만, 그 모습도 마음에 든다. 설렁거리는 가을바람에 가닥을 뉘이니 운치가 있다. 꽃은 이리피어도 저리피어도 좋다.
가을엔 역시 국화다. 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거늘, 소담한 것을 강요하다 해를 거르게 만들다니. 부질없는 욕심에서 나는 한 생명의 절정을 매듭지지 못하고 시들게 하고 말았다.
국화꽃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내 어머니는 가을이면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국화꽃을 품으로 감싸 안으셨다. 해질 무렵이면 어둠과 함께 찾아드는 시린 바람이 국화를 상하게 할까, 어린아이 감싸듯이 도톰한 보자기로 싸맸다. 아침이면 안녕을 확인하고 맑은 햇살에 내 놓았다. 그 모습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늦게 까지 초롱하게 피어있는 국화자랑을 동네사람들에게 하셨다.
생각해 보면 국화를 사랑한 사람은 아버지였던 거 같다. 어머니께서 자리 보존하시고는 국화꽃은 방안에 피었다. 오래도록 국화가 피어있었다. 아버지는 국화를 꺾꽂이 하여 화분에 옮겨 심고, 여름 내내 정성을 드렸다. 먼 길 가시는 날이면 삼일에 한번 한 컵씩 물을 주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꽃을 피워 겨울에도 국화 향을 치매를 앓는 어머니께 바쳤다.
어머니는 지고지순한 분이었다. 나이도 어머니가 한 살 연상이셨으니 누이 같은 부인에게 투정을 부리신건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많이 타박하시고, 살갑게 대하지 않으셨다. 치매를 앓는 중에도 물을 떠 다 드리면 당신 드시기 전에 두 손으로 아버지께 먼저 드리던 어머니. 그 마음을 아셨는지 아버지는 십 여 년 동안 어머니 병 수발을 정성껏 하셨다.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국화를 더 사랑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은 국화향기가 그윽했다.
그 것이 사랑이었나. 아버지가 가꾼 국화를 함께 즐기는 마음이 한마음인 것을 두 분은 알고 계셨을라나. 그래서 겨울이 오는 길목에 방으로 들여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으셨던 그 마음을, 그 뜻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내가 잘라버린 국화처럼 어머니는 인생을 피우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마음을 홀로 애석해 하셨다. 향은 날아가고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내 마음속에 어석거리는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가을에 내리는 찬 서리처럼 말이다.
가을에만 피는 그윽한 국화꽃 향기를 항아리 가득 피워 넣은 도공이 있다. 괴산에 가면 도예가 칠산 임재영선생이 평생을 받쳐 모은 우리나라 역사가 한곳에 전시되어 있다. 작품의 종류와 규모가 어마하다. 태고 적에 빗었을 것 같은 수많은 단지들에 흠뻑 빠져 헤매고 있던 순간. 검은 빛을 띠는 단지가 발걸음을 머물게 했다. 누가 부르는 듯이 손대면 안 되는 금기의 원칙을 어기고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단지 안에 있던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수 만송이 국화꽃이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도공은 이렇게 많은 꽃을 어떤 연유로 단지 안에 피웠을까. 수많은 윤회의 굴레 속에 나와 어떤 인연이 있어 내 손을 잡았을까. 흙을 잇대어 맞춰 두드려 흠을 없애고 모양을 만드는 과정은, 항아리를 돌려가며 안과 밖에서 마주치기를 수없이 해야 한다. 그 마주치는 도구를 국화모양으로 파서 밖에서 치는 힘으로 국화꽃 수를 놓았다. 정교하고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피어 있는 국화꽃이 가득 피었다. 그리고 국화가 시들지 않게. 향이 날아가지 않게 1000도가 넘은 불의 노래를 며칠 밤을 새워가며 들려준 도공.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던 그 향기는 무엇이었을까. 수 만 송이 국화꽃을 단지 안에 피워낸 사랑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엄청난 크기의 단지 안에 한송이 한송이 도공의 마음이 꽃이 되어 아름답고도 슬프게 간직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도공을 만나고 싶다. 그를 보면 수만 송이 국화꽃 향기가 날것만 같다. 국화꽃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가 보고 싶어 국화를 소중하게 감싸던 어머니. 국화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위해 겨울에도 꽃을 피운 아버지의 마음이 도공이 만든 단지만큼 깊고 향기 나는 사랑 아닐까.
그리움이 더해 가는 것들은 그만큼의 깊이가 있는 마음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마당에 피어있는 국화향이 아름답다. 내 마음이 깊어 지고 있는 것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까닭인가.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이제야 터득한 송구한 마음일까. 도공의 절절한 사랑노래를 들려오는 때문인가.
가을은 국화 향기가 있어 흡족한 날들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