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어록 100여점을 10여년을 목판에 새긴 서각가 전안원 선생님
지난 1980년대 초반부터 목판에 글을 새기기 시작해, 지난 95년까지 총 100여점에 이르는 ‘DJ어록’을 완성했다.
가로 40~60㎝ 세로 120㎝ 두께 3㎝에 이르는 목판은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만 한달이 걸릴 정도로 힘든 작업이다.
이곳에 새겨진 글들은 김 전대통령이 직접 쓴 글과 연설내용은 물론 감옥에서 보낸 ‘옥중서신’ 등 다양하다.
DJ와는 특별한 정치적 인연이나 개인적 연분이 없는 전씨는 “김 전대통령 말씀 하나 하나가 남달라 시작한 것일 뿐”이라며 “힘든 작업이었지만
작품이 하나 둘 완성되어 갈 때마다 성취감도 차곡차곡 쌓여갔다”며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5공화국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80년대 초반, 그를 찾은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갈렸다.
DJ를 주축으로 한 평민당 고위 당직자와 재야인사들이 한 축을 이뤘고, 또다른 사람은 이 같은 전씨의 행보에 대해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었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전선생님을 향해 ‘빨갱이’라고 수근댈 정도로 오해아닌 오해를 샀다”며 “정치적 오해를 떠나 그분(DJ)의 말씀 자체 하나하나가
너무 가슴에 와 새기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그당시에 작품을 하면서도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나와 전선생님이 인연을 맺은것은 10여년 미술관 한편과 창고에 어록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쌓여 빛을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있는것이 너무도 안타까워
전선생님한테 어떻게든 빛을 볼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하면서 서울과 광주 그리고 각 언론사등에 김대중 전대통령 어록을 알리는데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 2005년 광주에 한 신문에서 일면에 크게 다루면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전국에서 김대중 전대통령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는곳에서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한 두 점 정도만 기증해 달라는 내용뿐 작품 전체를 영원히 전시할수 있는 장소를 찿는중에 2005년 광주에 있는 김대중컨벤션센터가
문을 연다는 소식에 무작정 작품 2점을 싸들고 나와 전선생님 둘이서 내려갔다.
하지만 상설 전시할수 있는 그런곳은 아니였다
그러든 중에 서울 연희동 김대중 도서관 등에서 전선생님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곳도 몇점뿐 상시 전시를 할수있는 공간이 쉽게
주어지지는 않았다
10여년 세월동안 피땀으로 일궈낸 작품들을 특정장소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시회를 열고 싶었지만 뜻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분’의 어록을 전시한다는 것도 일종의 부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작품 20여점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DJ 관계자’들에게 흘러갔고 나머지 80여점만이 대전시 유성구 송강동 소재 ‘송탄미술관’ 이층과 한 켠에 남게 됐다.
전선생님은 “어떤 모습으로든 DJ와 만날 수 있길 기대했지만 갑작스런 서거소식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김 전대통령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지금 현재는 광주에 있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 2점이 전시되여 있으며 서울 연희동 김대중 도서관에 3점이 전시되여 있다.
이제 김전대통령이 서거하시고 이 주옥같은 어록도 빛을보지 못하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만 더해간다
전선생님 생전에 혹시 김대중전대통령 기념관 같은것이 생겨서 그곳으로 빛을볼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