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시고,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이들을 가엾이 여기신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기적의 능력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이러한 기적을 행한다고 소문을 낸다.
그들은 가엾은 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들을 수확할 밭의 일꾼들이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마태 9,37)
오늘 복음은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부족한 내가 어떻게 하느님의 일꾼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합니다.
교리지식도 없고, 신앙심도 없고, 여유는 더더욱 없는 나에게
당신의 일꾼이 된다는 사실은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향기는 서로의 가슴으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는 당신의 일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바쁜 세상 일 중에서 사랑하고 용서하기를 배우는 그 만큼,
하느님의 목소리는 세상 속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티벳인들은 악업을 짓지 않기 위해
매일 기도하고 수행하고 선행한다.
그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정좌한 채 숨을 모아 길게 세 번 내쉰다.
마음 속의 악한 성향을 호흡을 통해 몰아내는 것이다.
먼저 뱀으로 표현되는 질투, 미움을 몰아낸다.
다음으로는 공작으로 표현되는 교만,
남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성향을 몰아낸다.
마지막으로 돼지로 표현되는 욕심, 게으름을 몰아낸다.
티벳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는
친구를 사귈 때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고 한다.
‘이 사람을 내가 어떻게 도울까?’,
‘이 사람에게서 내가 무엇을 배울까?’
우리에게 성공은 출세로 통한다.
그러나 티벳인에게 성공은 얼마나 남을 도왔느냐,
얼마나 자만심을 없앴느냐로 평가된다.
우리는 저마다 3가지 쓸데없는 일에 골몰해 있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쓸데없는 모임에 많이 간다.
돈과 물질문명이라는 잣대로 볼 때 티벳은 가난한 나라다.
그런데 물질문명을 누리는 나라 마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3가지
즉 우울증 환자, 노인성 치매 환자, 사회 범죄가 없다.
오늘도 티벳인 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 생겨나고 그 원인 생겨나게 하소서.
모든 사람에게 괴로움 없어지고 그 원인 없애게 하소서.
모든 사람에게 기쁨 생겨나고 함께 기뻐하게 하소서.
모든 사람이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욕심 없게 하소서.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마귀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하느님 말씀을 잘 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식사 때 감사 기도도 못 바치고,
신자라는 사실을 밝히기조차 꺼립니다.
자신이 없어서 이웃 사람을 성당으로 초대하지도 못하고,
짧은 화살기도를 소리 내어 바치기도 어려워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 것에 사로잡혀서
영적인 것에는 말문이 막혀 있는 것이지요.
정말로 주님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복음 선포가 우리의 사명이라고 확신한다면
사람들의 눈치가 왜 두렵겠습니까?
세상 것이 마음속에 꽉 차 있어서 영적인 벙어리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판 마귀 들린 사람입니다.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그 가치의 순서를 매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첫 자리에 두고 성령께 용기를 주시라고 청해야 합니다.
이웃과 나누는 대화는 ‘세속적인 대화’에서 ‘영적인 대화’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만 바꾸면 성령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