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마음대로 월계관 씌웠다

[김윤배]

마음 챙기기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

예수에 맘대로 월계관 씌웠다…“잘못인가요” 묻자 김수환 답

• 카드 발행 일시2024.03.28

에디터권근영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

관심

 반가사유상 같은 조각을 만들고 싶었어. 흙 붙여 놓고는 너무 닮았으면 어쩌나 해서 국립박물관에 달려갔지. 보고선 ‘아, 괜찮겠다’ 하고 안도했어. 

그 마음을 헤아려서였을까요. 최종태(92)가 돌아본 바로 그 조각, ‘생각하는 여인’(1992)은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국보 ‘일광삼존상’과 나란히 전시됐습니다.

2022년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전시된 최종태의 '생각하는 여인'.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전국의 성당 곳곳에 성모상을 남긴 그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관음상도 만들었죠. 그의 관음상은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권진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관음상이 그리스도를 뒤에서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 전시장 진열장에 비쳤죠.

작품에서 종교 간 화합을 이룬 그는 최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작품 157점을 기증했습니다. ‘마스터피스’는 부활절(31일)을 앞두고 서울 연남동 그의 자택을 찾아갔습니다. 이날도 새벽 4시부터 작업실에 있었다는 그는 “가슴에 안 차니 더, 더, 하던 게 평생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답답하다기보다 홀가분한 표정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서울 연남동 자택 작업실의 최종태. 평생 반가사유상 같은 조각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갓 만든 성모자상 옆에서 무엇을 사유할까.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새벽 4시가 최고” 갓 만든 성모자상 옆 구순 조각가

반지하 작업실로 오전의 햇살이 들어왔다. 석고로 만든 흰 소녀들이 노(老)조각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좌대에 걸터앉은 채 턱을 괴고 상념에 빠진 여인들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서울 연남동에 지은 집에 딸린 작업실, 35년 넘게 최종태(92)와 함께해 온 이들이다.

성모자상을 어루만지는 조각가의 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곳에서 조각가는 이날도 새벽 4시부터 성모상을 매만졌다. 키 165㎝,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은 평생 만들어 온 소녀상·성모상과 비슷한 얼굴이 됐다. 모로 누워 있는 나무 조각상을 어루만지며 “내가 늙어서 누워 있는 모습을 만드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귀가 어두운 조각가는 목소리를 높여야 반응했고, 느릿하게 말을 고르며 나직이 얘기했다.

 3시면 일어나 가지고 4시면 작업실로 가지. 아침 먹기 전까지 세 시간, 새벽이 그렇게 좋아. 예전에 장욱진 선생님 댁에를 많이 다녔어. 그림 그리는 건 딱 한 번밖에 못 봤어. ‘선생님, 그림은 언제 그리세요’ 그랬더니 새벽에 그린대. 새벽에 머리가 맑다고. 새벽이 정말로 좋아요. (나도) 아침 먹고 또 하면 하루 10시간, 옛날에는 일할 적에 잡념이 많았는데 요새는 거의 없어, 그냥 좋아. 

글 싣는 순서

# “새벽 4시가 최고” 갓 만든 성모자상 옆 구순 조각가 (읽는 시간 100초)
# “반가사유상 만들곤 너무 닮았을까 걱정돼 박물관 달려갔다” (여기까지 150초)
# “조각도, 삶도, 죽음도 모르는 것…마음대로 하는 데 90년 걸렸다” (250초)
📌남은 이야기: “영원이 담긴 형상을 하고 싶다” 157점 기증 (270초)

아침에 막 완성한 성모자상의 석고 표면을 조각도로 살살 긁어내며 그가 말했다.

 만들 적에는 좋았는데, 만들고 나서 며칠이면 (마음이) 또 달라져. 그래서 다시 만들어야 돼. 그러니까 끝이 없어. 예술은 끝나지 않는 거여. 

불완전함, 끝없음을 말하는데도 밝은 얼굴이다. 60년 넘게 깎고, 빚고, 그렸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계속 한 걸까.

 만족이 안 되니까, 어딘가 섭섭한 게 있으니까 또 만드는 거여. 그 하나, 완벽한 하나를 못 만들어. 그건 하느님이나 만들지 인간은 못 만들어. 그러니까 계속하는 거여, 안 되니까. 가슴에 안 차니까 더, 더, 하는 거지. 이상하게 그렇게 속상하진 않아. 

반지하 작업실에 즐비한 최종태의 여인상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식민지인 줄도 몰랐는데 해방이 왔다. 열세 살 때였다. 그전까지는 소학교에서 조선어를 쓰면 매를 맞았다. 전쟁 통인 1952년 대전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1년 반 학비를 모아 스물두 살에 서울대 조소과에 들어갔다. 거기서 김종영(1915~82), 장욱진(1917~90) 선생을 만났다.

김주원 기자

1965년 당시 국립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만났다. 그때부터였다. 여인상에 본격 매진한 것은. 1971년 국전 추천작가상 부상으로 미국·일본·이탈리아·이집트 등지를 여행했다. 석 달 남짓 세계의 아름다움을 본 그 눈으로 다시 보고 싶었다. 돌아온 다음 날 반가사유상을 보러 갔다. 더 좋았다. 그다음 날엔 석굴암 본존불을 보러 갔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가기 전보다 더 좋더라고. 그걸 보려고 (여행을) 간 거지.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를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저렇게 그려내는구나… 

최종태, 서있는 사람, 1980, 청동, 162x33x2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서 있는 사람’(1980)은 일찌감치 이건희 자택에 들어갔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온 화랑 관계자가 이 작품을 보고는 “이 사람이면 되겠다” 한 것이 인연이 돼 파리의 국제아트페어 피악(FIAC)에 나갔다. 1985년의 일이다. 한국 첫 참가(가나아트)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의 소녀상에 슬픈 기가 있다고 했다. 식민지·전쟁…. 어렵게 살아서 그런가. 반가사유상 같은 미소를 만들고 싶었다. 슬픈 기운을 걷어내는 데 한참이 걸렸다.

'신라의 미소',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반가사유상은 미소기가 있잖아, 살짝. 이게 눈만 웃으면 안 돼. 몸 전체가 웃어야 웃는 거여. 실제 웃으려면 몸이 다 관계되는 거야. 미소 짓는 조각, 온몸으로 웃는 조각, 세계적으로 찾기 어려워.   

# “반가사유상 만들곤 너무 닮았을까 걱정돼 박물관 달려갔다”  

‘생각하는 여인’(1992)을 만들 때도 그랬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을 내리감은 여인은 왼쪽 무릎 위에 오른발을 올렸다. 반가사유의 자세다. 그러나 오른팔을 붙든 왼손, 굽고 납작한 상체, 왜곡된 비례와 전신에 거칠게 패인 홈이 외려 현대적이다. 선이 단순해지니 표정은 깊어지고, 염원은 강렬해진다.

 반가사유상 같은 걸 만들고 싶어서. 드디어 만들었는데 너무 닮게 보일까 걱정돼 흙 붙여 놓고는 그 길로 중앙박물관에 가서 봤지. 보고는 안심했어. 

최종태, 생각하는 여인, 1992, 청동, 65x35x4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이 작품은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마련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로 세상에 알려졌다. 불상·불화·사경 등 불교 유물들이 놓인 전시실의 맨 앞에 자리 잡은 현대 조각이었다. 바로 옆에 국보 일광삼존상(삼국시대·6세기)이 놓였다.

국보 일광삼존상, 삼국시대, 6세기, 높이 8.8㎝.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컬렉션

당시 전시를 연출한 국립중앙박물관 이수경 학예연구관은 “자연 앞에서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경전·불상 같은 종교 미술을 만들어 냈다. 이 대목을 최종태의 조각으로 시작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가장 큰 특징은 융합,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삼성가에 ‘생각하는 여인’을 판매했던 화상은 “원불교 신자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에게 성모상보다 반가사유상에 가까운 이 작품을 보내드렸다”고 돌아봤다. 혹자는 ‘생각하는 여인’의 얼굴이 그의 아내 김절자씨를 닮았다고도 했는데.

누구 얼굴인가요?  

“그저 한국 사람의 얼굴이지, 모델을 써 본 적이 없어.”

여인상은 뭘 저렇게 생각하는 걸까요.

“모든 것이지.”

# “조각도, 삶도, 죽음도 모르는 것…마음대로 하는 데 90년 걸렸다”

성모상의 소맷부리를 매만지는 최종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신이 있는가, 어디 있는가. 질문이 많던 때였다. 대학 시절 불경을 배우러 다녔다. 매일 저녁 세 시간씩 반년 동안 서울 종로구 대각사에 갔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불교 강의는 그때가 처음이라 했다. 졸업 후 고향에 가서도 그런 공부할 곳을 찾다가 친구의 권유로 성당에 갔고, 거기서 영세를 받았다.

조각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몰러, 미안하지만. 내가 쉰 살 때 별별 일이 있었어. 아침에 이불 속에서 막 눈을 뜨려는데 머릿속으로 ‘조각은 모르는 것이다’, 천둥 치듯, 귀로 들린 게 아니라 머리로 들리더라고. 그게 그렇게 좋아서, 9시 정각 4학년 수업에 들어가서 ‘오늘은 내가 중대 발표를 하겠다. 조각은 모르는 것이다’ 했더니 학생들이 막 웃었어. 감정이 통한 거지.”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모르는 것이여. 어려운 것, 중요한 것, 그런 건 다 모르는 거예요.”

죽음이란, 삶이란 무엇인가요.

“죽었다 온 사람이 없어. 그래서 몰라요.”

모른다는 답이, 완벽함은 절대 만들 수 없으리라는 깨달음이 되려 그를 자유케 했다.

 너무나도 환하고 확실한 답이라,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 환하게 밝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니까.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DNA: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에 전시된 최종태의 '관음보살상'(왼쪽), 권진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유리에 비친 관음상이 뒤에서 예수상을 품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스승 김종영·장욱진에게서는 뭘 배웠나요.

그냥 좋아서 갔어. 뭘 배우려고, 뭘 들으려고 간 게 아냐. 장욱진 선생은 ‘나는 심플하다’ 대낮에 상당히 거하게 마시고는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어느 날은 ‘나는 고독하다’ 그랬어.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요새 알았어. 자기 내면에 있는 걸 아무도 보는 이가 없어. 알아주는 이가 없어. 그걸 내가 터득하는 데 40년 걸렸어.

반으로 자른 이면지에 매일 연습처럼 그린 것이 과일상자 한가득 쌓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추상 미술이 주를 이루던 1970년대, 장욱진은 손에 닿는 크기의 작은 화폭에 집·나무·가족을 그렸다. 화단에선 그의 그림을 아이 같다 깎아내렸다. 알아주는 이 없이 혼자 가던 그 길을 최종태는 눈여겨봤다. 스승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에세이집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2017)를 출간했다.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이웃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겨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확실하게 승리한 사람의 얼굴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린 '십자가의 길 15처'(2021). 최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한 부조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곧 부활절이다. 최종태는 소래의 성 바오로 피정의 집에 ‘십자가의 길’을 만들던 때를 말했다. 사형부터 죽음까지, 예수가 받은 고난의 장면마다 기도하고 묵상하게끔 만든 조각이다. 첫 장면, 사형 선고를 받는 예수의 모습에 그는 가시 면류관 대신 월계수를 붙였다. 마침 거기서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을 만났다. “실은 제가 가시관을 했다가 마음에 안 들어 월계수로 바꿨습니다. 잘못한 것 아닙니까” 물었다.

 추기경이 ‘이분은 승리가 예고된 사형수다. 그러나 미리 갖다 붙인 게 뭐가 잘못이겠나’ 했어. 그때 추기경이 ‘글쎄…’라고만 했어도 나는 다시 고쳤겠지. 그러나 앞으로 성상을 조각할 때마다 ‘이게 맞나’ 걱정이 앞섰겠지. 그런 마음을 추기경이 싹 잘라준 거여. 그게 지도자여. 한국 교회 미술에서 ‘미술가 여러분들 마음대로 하시오’ 선언한 셈이지. 대단한 천재였어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린 자선음악회에 나란히 앉아 내내 다정한 모습을 보였던 법정 스님(왼쪽)과 김수환 추기경. 중앙포토

법정(1932~2010) 스님도 그랬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관음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말에 가타부타 없이 맡겼다. 관음상의 도상에 충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2000년 길상사 관음상 점안식에서 최종태는 “이 땅에는 경계가 있지만, 하늘에는 경계가 없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작업실 위층 채색 목조각들 사이에 선 조각가 최종태. 평생 만들어 온 소녀상의 표정을 닮아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추기경도 스님도 갔지만 면류관 대신 월계관 쓴 예수도, 성모상 닮은 관음상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학창 시절의 스승도, 세상에서 만난 스승도 모두 떠나고 나니 “등 뒤에 기대고 있던 게 없어진 양 허전하다”고 했다. 다 배운 뒤 거기서 벗어나는 게 예술가의 일. 미술사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평생이 걸렸다. “그전에는 이렇게 그리면 마티스가 들어 있고, 거기 피카소가 들어가고 했는데 이제는 없어졌어. 마음대로 하는 데 90년 걸렸어”라며 웃는다. 승리의 미소다.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은가요?  

“승리한 사람, 그게 최고의 바람이여.”

📌남은 이야기: “영원이 담긴 형상을 하고 싶다” 157점 기증

 이왕 주는데, 거기서 보관하고 관리를 잘해준다니까 줬지. 

덤덤한 말에 덧붙임이 없었다. 지난달 그는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작품 157점을 기증했다. 1970년대 천사상부터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바티칸 순방 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한 소녀상과 예수상도 포함됐다. ‘바티칸 소녀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옥빛 청동상, 면류관 쓰고 웃는 예수 부조다. 고통을 초월한 얼굴에 교황도 놀랐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한 '그리스도'와 '성모'. 최종태는 이 에디션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권근영 기자

최종태는 "종교성이 있는 작품을 골랐다. 절반은 성당에 있는 것, 나머지는 성당에 없는 것"이라고 157점을 축약했다. 관장인 원종현 신부의 말이다.

 그가 제작한 가톨릭 미술에서 우리는 오히려 타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 그리고 존중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에 채색한 '성모자'(2014)가 한국 어머니와 아기 얼굴처럼 친숙하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조각가 중 자코메티를 가장 좋아한다는 최종태는 "영원이 담긴 형상을 하고 싶다, 영원이 곧 하느님"이라고 말했다. 교회 조각의 토착화, 불교 조각의 현대화에 앞장서며 보편을 지향해 온 그의 작품은 ‘최종태 기증전시실’에서 관객과 무료로 만나고 있다. 전시의 제목은 ‘영원을 담는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