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매화사
안민영
<매화사 2절>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였더니
눈ㄷ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暗香) 조차 부동(浮動)터라
<매화사 3절>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ㄷ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香氣) 놓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期約)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매화사 6절>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山窓)에 부딪치니
찬 기운 새어들어 잠든 매화(梅花)를 침노한다
아무리 얼우려 한들 봄뜻이야 앗을소냐
♣어구풀이
<매화사 2절>
-어리고 : (가지가) 연약하고, 튼튼하지 못하고
-성긴 : 성근, 드문드문한, 짜이지 않고 엉성한
-가지(柯枝) : 나뭇가지
-않였더니 : 아이하였더니, 아니하였는데
-눈ㄷ기약(期約) : 눈 올 때 피겠다고 한 약속. 눈(雪) 올때를 기약함.
‘ㄷ’은 사잇소리(‘ㄴ’받침 아래서의 관형격 촉음).
-촉(燭) : 촛불,
-사랑할 제 : 사랑할 때
-암향(暗香) : 은은한 향기, 그윽히 풍겨오는 향기
-부동(浮動)터라 : 떠돌더라. 부동하더라. ‘터라’는 ‘하더라’의 축약형
<매화사 3절>
-빙자옥질(氷姿玉質) : 매화의 딴 이름. 눈 속의 추위 가운데도 꽃이 피기 때문에
붙인 이름, 글자대로의 뜻은 얼음 같은 모습과 구슬 같은 바탕이라는 뜻
-놓아 : 풍기어
-황혼월(黃昏月) : 황혼(저녁 어둑어둑할 때)에 떠오른 달
-기약(期約)하니 : 꼭 약속하니
-아치고절(雅致高節) : 고상하게 풍류를 즐기는 높은 절개
<매화사 6절>
-산창(山窓) : 산 속에 있는 집의 창
-침노(侵擄)한다 : ①해치면서 먹어든다. ②남의 나라를 불법적으러 쳐들어간다.
-얼우려 : 얼게 하려, ‘우’는 사동 접미사, ‘얼우다’는 동사(옛말)
-봄뜻 : 만물을 다시 피어나게 하려는 봄의 조짐. 곧 자연의 법칠
-앗을소냐 : 빼앗을까 보냐?
♣해설
<매화사 2절>
-초장 : 아직 나무가 어리고(연약하고) 가지가 성기어서 드문두문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지에
무슨 꽃이 필 것인가 하고 믿지도 않았는데
-중장 : 눈 올 때 피마던 약속을 지키어 두세 송이가 피었구마
-종장 : 촛불을 밝히고 너를 더욱 가까이 완상할 때 은은한 향기마저 풍기더라.
<매화사 3절>
-초장 : 얼음같이 차가운 모습, 구슬같이 맑은 바탕이여! 바로 눈속에 피어 난 매화로구나
-중장 : 살며시 풍기는 향기를 내어 어슴푸레한 황혼의 달이 떠오름을 약속하여 주니
-종장 : 아무래도 고상한 풍류를 즐기는 절개와 지조를 지닌 것은 매화 바로 너뿐인가 하노라
<매화사 6절>
-초장 : 차가운 바람이 눈을 몰아 불어와 창문에 부딪치니
-중장 : 찬 기운이 스며들어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맹화를 침범한다.
-종장 : 아무리 얼레 하려고 해도 봄기운을 받아 장차 피어나려고 하는 매화 꽃의
그 뜻까지를 빼앗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체감상
안민영(安玟英)이 지은 8수로 된 연시조 ‘매화사(梅花詞)’는 일명 ‘영매가(詠梅歌)’라고도
하는데, 작가가 헌종 6년(1840년) 겨울, 스승인 운애(雲崖) 박효관(朴孝寬)의 산방(山房)에서 벗과 더불어 놀 때 운애(雲崖)가 가꾼 매화가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매화에 대한 노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이 시가(詩歌)만큼 그 속성이 잘 그려져
매화에 대한 애정이 뜨겁게 나타난 작품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운치가
있는 것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다. 이 시조에 나오는 매화의 모습인 ‘빙자옥질(
氷姿玉質)’·‘아치고절(雅致高節)’ 등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매화사 2절 : 건상한 나무들도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찬바람에 웅크리고 있는데, 어리고 보기에는 미덥지 않은 약한 가지가 봄의 선서(先敍)로써 꽃을 피운 것이 반갑고 한편으론 기특한 것이다. 어둠이 깃들자 촛불을 켜들고 꽃 열매의 암향(暗香:은은한 향기)에 취하여 눈 감고 서 있는 작가의 도취된 모습이 역력하다. 종장의 ‘암향부동(暗香浮動)’은 송나라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시의 ‘疏影橫斜 水淸淺 暗香浮動 黃昏月(소영횡사 수청잔 암향부동 황혼월: 성긴 그림자 옆으로 비껴 물은 맑고 잔잔한데 그윽한 향기 풍기는 어스름 달밤)’에서 원용한 것이다.
매화사 3절 : 매화의 모습은 깨끗하고 맑은 살결과 구슬같이 아름다운 모슴의 여인으로 비유하고, 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너로구나’하며 반기고 있다. 여기서 작가와 매화는 대등한 인격체로서 주객일체(主客一體)를 이룬다.
매화사 6절 : 매화는 흔히 지조 높은 선비를 비유한다. 봄뜻은 그의 뻗어가는 기개요, 바람·눈·찬 기운들은 모두 그 기개에 도전하는 시련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나 그 시련이 아무리 모질더라도 선비의 굳은 지조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노래했다. 이것은 곧 작가 자신의 의지를 매화를 빌어(감정 이입하여 노래한 것이라 하겠다.
♣작가소개
안민영(安玟英, 1816~?) : 자는 성무(聖武), 호는 주옹(周翁), 조선 고종 때의 가인(歌人), 박효관의 제자로 뜅난 가객이었으며, 당시 가객의 모임이었던 ‘승평계(昇平契)’를 통하여 많은 가객과 사귐. 박효관과 함께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 여기에 그의 시조 40여 수가 전하고 있다. 영정시대(英正時代)를 지나면서 단가(短歌)는 가사(歌辭)에 압도되었고, 다시 가사는 산문문학(散文文學)에 눌려 대체로 시가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는데 다만 안민영의 단가는 마지막 향기를 풍기며 새로운 꽃을 피운 바 있음. 저서로는 「가곡원류(歌曲源流)」외에 「주옹만록(周翁漫錄)」 · 「금옥총부(金玉叢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