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찾아온 10월, 하늘이 참 곱기도 하다. 지천명이란 하늘에 자주 말을 거는 나이인거 같다. 불혹에는 절대 하늘에 혹하지 않았었다. 0과 1로만 모든 것을 답하는 이성만이 삶의 모든것을 충족할수 있다 믿었었다. '하늘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오리라.'는 그 자만과 오만이 나를 점점 지치게 하였고 지쳐가면서 '사는것이 힘들다.'는말을 자주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다.
하늘과 대화하면 언제나 동일한 하늘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 향기의 느낌은 33년간 바다위 섬처럼 따로 떨어져있던 우리가 비로소 같은 시대, 같은 공기에 뿌리 박았던 인연의 탯줄로 인식되어 서로의 위안으로 다가선다. 먼 길 오래 걷다 지쳐 힘들 때, 가슴타는 갈증에 허걱거릴 때, 구차스런 상념들로 밤을 지샐 때 기꺼이 등 내밀며 손 모으며 어둠을 밝힐것이다.

- 그리운 이름들 -
9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 30일은 사랑스런 장고친구들을 60일에 1번씩 보기로 약속한 첫 번째 날이다. 대개가 그렇듯 무겁고 건조한 일상은 이 나이가 받아들여야 할 서러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운명이란 중압감에 가슴눌려 지치고 애태움은 자연스레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서로의 손을 내밀게 한다.
내가 99살까지 산다고 하면 앞으로 이 모임으로 만날수 있는 횟수가 280회 정도이다. 하느님은 나에게 280회를 모두 채울수 있도록 관대할거 같지는 않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은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 자식들 이므로 나라고 특별히 편애하실거 같지도 않고 나 또한 하느님의 편애를 받을수 있는 선행을 한 기억도 특별히 없기에..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친구들과의 사랑나눔이 '280회에 한 참 모자를거 같다'는 이성적 결론이 가끔씩 우울의 늪으로 밀쳐 내려 했으나 '착하게 살면 하느님의 보너스도 받을수 있다.'는 희망의 샘이 그 보다 앞 질러 나를 잡아 끌었다. 맑은 샘룰에 적셔진 내 가슴 한 켠에는 조무래기 건달들의 어깨쭉지에 박혀진 '차카게 살자'가 깊이 세겨져 있었다.
'착하게 살자.' 다짐은 하였건만 오늘 정모에 참석키 위한 설레임과 들뜸은 방금 전의 결심을 약간은 덜 착한 쪽으로 밀어냈다. 처삼촌 묘소 벌초하듯 설렁 설렁 업무를 처리하면서 흐르는 시간을 재촉하였다. 윤성현, 유재완, 신현우, 이승우, 전창수등 몇몇의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어 오늘의 기쁨과 반가움을 함께 나누고져 하였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다음을 기약 하였어도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들의 음성이 그렇게 다정하고 푸근할 수가 없었다.

- 미리 본 오늘밤 풍경 -

- 미리 본 오늘밤 얼굴들 -

- 미리 본 오늘밤 환희 -
느리 달리는 시간을 에세연기로 밀어내며 아침에 새로 뜯은 담배곽에 5개피 정도 남았을 때 드디어 사무실을 나섰다. 전쟁터 출정하는 병사가 무기와 장비 챙기듯 디카와 여분의 밧테리, 포켓용문고, 메모수첩, 에세한갑, 핸드폰, mp3, 안경, 그리고 펄떡이는 심장을 서류가방에 꼭꼭 챙겨 넣었다. 끝까지 고민하던 아내와의 약속은 두 눈 딱 감고 책상 서랍 깊이 잠재웠다.
10월의 문턱까지 달려온 짧아진 가을 해는 주위를 어느새 옅은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어스름한 가을바람의 살랑임 반주에 맞추어 낙엽들이 부딧끼며 이리 저리 댄스를 즐기고 있었다. 성미 급한 무릎을 덥는 긴 부츠, 버버리 체크목도리, 안중근의사가 썻을 법한 두툼한 독립군 모자 등 지나는 이의 옷 차림은 어느새 가을의 한부분이 되어 겨울의 문을 두드리는듯했다.
마두역에서 신논현역까지 28개역 73분간의 지하철 여행에서 우리들 그 시절보다 세상이 살기 좋아진 건 아니였다. 편해졌다는 표현이 어울릿듯 함을 새삼 실감하였다. 다정함, 따뜻함, 정겨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낮선 뉴욕의 지하철 한 칸에 앉아있는 듯한 어색한 착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 다가 올 오늘밤 미소 -
여러 승객들에 돌려가며 읽혀진 후 선반위에 버려진 신문들은 도시인들이 게걸스럽게 소비한 정보의 배설물처럼 보인다. 모두의 귀에는 이어폰이 꼽혀있고 핸드폰을 움켜 쥐고서 엄지손가락 만으로 문자를 눌러대는 솜씨는 가히 신의 경지였다. 비가 내려도 옷과 살갖만 젖을뿐 가슴은 전혀 젖지 않을 듯한 얼굴을 이었다. 자신만의 성(城)에서 옆사람을 경계하는 듯한 그들 얼굴에선 따스함이 질식사 해버린듯 하였다.
역이 바뀔 때마다 문이 열리면 한 무리의 차가운 바람만이 밀려 들어오는 듯하였다. '디지탈'이라는 과학은 살기 편한 기계는 만들어 냈지만 밤새워 눈물 흘리며 정성스레 손으로 쓰는 편지를 앗아가 버렸다. '언젠가 편하고자 하는 과학에 위기를 느낀 인간들은 과학발달을 최대한 억제시키느라 허둥지둥 정신을 못차리게 될 날이 반드시 오지 않을까?' 상상했을 때 '다음은 신논현역입니다.'라는 건조한 안내멘트로 73분간의 차가운 지하철여행을 빠져나왔다.
10월 연휴를 앞둔 금요일 저녁의 강남은 설레임과 들성임의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그들을 감싸 안으며 바쁜 발걸음을 재촉 하였다. 제 갈길 움직이는 젊은이들의 싱싱함에 내가 끼어들 틈 이라곤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적어도 가운데 간지나는 띠 두른 스타벅스잔을 들기전까지는...
습관적으로 손목위 하얀 숫자판을 보니 6:30분, 약속시간 까지는 30분의 여유가 있었기에 길 가 가로수벤취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가을밤의 어스름에 묻힌 담배연기의 하얀 꿈틀임이 방금 전 젊은이들의 팔딱임 이상으로 하늘로 향했다. 하늘을 향하는 연기 사이로 낯선 색의 다른연기가 꼬물대며 따르고 있었다.
옆을 보니 딸아이 정도의 애된 계집애들이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작은 분노가 일었으나 그것을 내색하기는 세상이 너무 앞질러 있거나 내가 너무도 세상에 뒤쳐져 있었던 것이다. 옆에 휴지통이 있건만 반 쯤 피다만 장초를 계집애들 앞에 집어 던지는 것으로 나의 얹찮음을 표시하고 그 자리를 떳다. 등 뒤로 '헐 뭐야, 저 아저씨, 아이 짱나 xx...' 란 조잘댐이 내 귀를 울적하게 하였다.
약속장소인 '청정횟집'은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었다. 입구에서 소리꾼 성인이, 멋진 중년 아자씨 윤구와 약 2주만에 다시 잡은 손은 그 때와 변함없이 여전히 따뜻하였다.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성인이가 걸친 개량한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항상 성인이의 소리자락을 들으며 2% 부족한 무엇이 있었는데 이제야 지대로 소리꾼의 포스가 느껴지는 듯하였다. (쥘부채만 손에쥐면 거의 용의 눈에 점을 찍을 듯 할텐데..)

- 긴 시간을 돌아왔다 -

- 모자람 없는 관심과 애정을 갖자 -
친구들의 기억력을 돕기 위한 이름표와 '명성이 원주 집들어 올리기 모임', '두현이 사위보던 날 모임'을 어렵게 앨범으로 제작 하여준 성인이의 노고와 배려에서, 두현이가 기증한 만만치 않은 부피의 기념타월을 손수 오늘의 모임 장소로 옮기느라 땀을 뻘뻘흘린 성인의 수고에서 성인이의 문구점 상호 '문구천사'가 허위가 아니었음에 흐믓하였다.
이층의 마련된 룸으로 들어서니 김동춘 전 동문회장, 명성이, 영준이, 석우, 기철이, 기성이의 환한 미소가 반겼고 낯설었지만 너무 친근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33년이란 시간의 흐름은 '낯섬'이란 가슴 시린 기억으로 머물도록 했으나 그 시절'장고'라는 같은 자궁에 머물렀던 우리는 긴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 곧 '친근함'이란 손 잡음으로 서로를 감쌋다.
'TV는 사랑을 실고'의 배경음을 받으며 가물한 기억의 저 편에서 '페이드 인' 되면서 서서히 다가오는 얼굴들은 김광식, 강대모, 김성원이었다. 광식이와 대모는 그 시절 같은 반을 안 했어도 요즘 들어 졸업앨범을 자주 펼쳐든 탓에 이미 나의 기억 상자에 저장된 그들의 10대적 모습으로 그들을 쉽게 알아 보았고 웃으며 다가 설 수 있었다.

- 2011 명종이 -

- 2011 성인이, 영준이 -

- 2011 병긍이, 정식이 -

- 2011 광식이 -

- 2011 정식이 -

- 2011 영선이 -

- 2011 자균이 -

- 2011 윤구 -
오늘의 모임을 위해 중국에서 달려온 대모, 마산에서 중요 일정을 제끼고 올라온 광식이, 청주에서 찾아와 준 성원이,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왜 이들은 바쁜일상 뒤로 하고 그 먼 거리를 마다 하지 않았을까? 낯 간지러운 얘기 같지만 그것은 아마도 사랑일것이다. 젊은날 연애질 하며 주절대던 그 흔한 사랑이 아니라 먼 길 돌아온 이 나이 만의 무게와 향기를 지닌 '지천명사랑' 이라고나 할까?
광식이, 대모, 성원이와 33년만의 재회의 정을 나누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뒤 이어 병긍이, 명종이, 영선이, 기성이, 태수, 종원이, 광록이, 시운이, 종철이..등 마음 따뜻한 얼굴들이 속속 자리를 채우며 오늘 뜻깊은 모임의 첫 단추를 풀렀다. 지금의 이 자리를 위해 음양으로 땀을 아끼지 않았던 명성이의 우리들 지나쳐 왔던 과거에 대한 회한과 다가올 앞날에 대해 '모자람 없는 관심과 애정을 갖자.'는 취지의 인사말이 모두의 가슴에 작은 희망의 열매를 심어 놓았다.
'41회 동기들이 부럽고 자랑스럽다.'는 김동춘, 김성린 (전)현 동문회장의 축하의 인사가 끝났을 때 우리들 모두의 마음에 '친구들이여, 끝까정 함께가세.'라는 짙은 결의를 세겨 넣은 듯하였다. 화창한 봄날, 유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를 하며 술로서 맹세하듯 청청한 가을 밤, 앞으로 자주 함께 하고자 하는 열망과 기원을 서로의 이슬잔에 꾹꾹 눌러 담았다.

- 2011 광록이 -

- 2011 종원이 -

- 2011 태수, 성원이 -

- 2011 종철이, 대모 -

- 2011 기혁이, 영준이 -

- 2011 시운이 -

-2011 현우 -
이슬 만으론 못 미더운 듯 명성이가 준비한 섹시한 러시아산 보드카로 이슬이 내려간 목줄기를 다시 진하게 쓸어내렸다. 보드카의 짜릿한 열기가 참이슬로 후끈해진 뱃속에 험한 불길이 일게 하였으나 태수의 건강한 중년다운 넉넉한 미소가 잠재웠다. '서지않은(?)사람은 나에게 오라.'는 성린선배의 끈끈한 후배사랑에 너무 서서(?) 탈 이라는 종철이는 막내가 4살인 4남매를 두었다고 한다.
선박설계를 한다는 자균이, MBC 아나운서 출신의 반할 만한 목소리의 광식이, 중국에서 사업에 성공한 대모, 벌려논 사업 '내일 문 닫을지도 모른다.' 너스레를 떠는 희근이, 공군사관학교의 어엿한 물리학교수인 성원이, 속초에서 커다란 항구를 만들었다는 현우, 언제나 조용한 미소로 다가서는 한의사 종원이 등등...이들 모두의 하늘을 닮은 듯한 선한 미소에 나는 점점 취해갔다.
금촌과 파주에서 뒤 늦게 도착한 두현이와 준수도 어쩌면 나와 같은 성질의 목마름과 조갈증을 느끼는게 아닐까? 깊은 동지애로 얽힌 그들과의 소소한 일탈에서 나만 항상 위안을 받고 내 짐을 그들에게 떠넘기는 듯 해 미안함 지울 길 없지만 게의치 않고 기꺼이 나를 감싸않는 그들의 넉넉함에서 지천명 들어선 이들만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친구들을 위헤 마련한 보푸래기 안 나는 고운타월이 우리들 피곤한 삶 들어 앉은 '마음속 보푸래기를 말끔히 씻겨 주리라.'는 기쁨에 두현이에게 묵직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 감사의 여운에 발 맞춰 역시 멀리 익산에서 18시 KTX를 타고 달려온 불굴의 한의사 호영이의 송글한 땀방울이 가슴 밑바닥 한 자리를 놀빛으로 흥건하게 적셨다.

- 보푸래기 안 나는 고운타월 -

- 2011 호영이 -

- 희망을 열다 -

- 희망의 열매 -

- 세월의 선물 -

- 세월에 순응할 나이 -

- 그래도 함께 웃을수 있음이 흐믓하다 -

- 무엇이 두려우랴! -

- 우리들 미소의 향기 -

- 대한민국 한의학계의 미래 -
바쁜 일정탓에 2시간 여의 촉박한 머무름에도 불구하고 땀 뻘뻘 흘리며 달려와준 그의 두 손에는 직접 조제한 두툼한 보약상자가 아직도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채 들려져 있었다. 친정에 온 시집간 딸 보약 먹이는 친정 애미의 끝 모를 자애로운 표정으로 보약상자를 뜯는 호영이의 얼굴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날들 처럼 그리도 온유하고 평화스러 보일 수가 없었다.
호영이에게 건네 받은 보약은 아마도 그의 지난 아픔과 서름의 보상이였기에 조심스레 받아들어 "호영아, 정말 고맙다. 잘 먹을께!"라는 예의로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대신하였다. 식도를 타고 흐른 호영이의 애정 어린 선물이 여지껏 들이킨 소주와 보드카로 걷잡을수 없이 손상된 간장, 위장, 신장, 췌장 등... 나의 5장 6부를 부드러이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들 서로의 간절했던 분위기에 취함인지 멋진 개량한복이 잘 어울리는 성인이의 걸죽한 음성으로 전해지는 소리 한자락은 흐릿한 정신줄 끄트머리에서 나의 귀청을 호강시켰다. 그의 목젖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젊은사람 늙지말고, 늙은사람 죽지마라'던 소리의 한 대목에 이르러선 감동의 앙상블이 꼬리를 물면서 찔끔 가슴을 적시는 듯 하였다.

- 하늘닮은 미소 -

- 2011 기성이, 현우 어깨동무.. -

-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기 -

- 앞으로 이렇게 늙어가기 -

- 앞으로 이렇게 마주하기 -
'이 나이에 이르러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무슨 영광을 바라겠는가? 무슨 대단한 가르침을 얻겠는가?' 라는 마음 비운 담담한 체념과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이, 지녀 온 아픔들이, 함께 못한 아쉬움이 우리들 이토록 평온하고 안온한 얼굴로 그려지기에 더 할수 없는 만족과 희열의 풍선들에 참이슬을 가득 가득 채워서 깊어지는 가을밤 짙은 하늘로 날려보냈다.
하늘 오르는 풍선이 줄을 이으며 덩달아 나의 혀놀림이 쇠하는 듯 하였으나 정신줄 만큼은 가출 시키지 않으려고 매운탕 국물에 혀를 담그려 할 때 오늘 모임의 180분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다. 우리는 최대한 편한 모습으로, 천진한 표정으로, 해피한 웃음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아쉬운 1차 횟집을 나섰다.
횟집을 나선 모두의 얼굴엔 세월을 낚았다던 강태공의 은은한 여유와 배용준의 뺨을 100번 때리고도 남을 살인미소가 세겨져 있었다. 길 옆의 예쁜 언니들이 함께 사진을 박자고 할 정도로 50을 넘긴 아자씨들이 그렇게도 멋있었나 보다. 내가 보기에도 확실히 뽀대나 보였다. 인위적으로 꾸며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이 나이 만이 풍길수 있는 아자씨들의 중후한 포스가 황홀한 가을밤을 진정으로 압도했다.
우리는 같은 편의 표시로 두현이가 건내준 붉은 타월을 목에 두르고 호프집으로 리버사이드로 몰려 다니며 그 시절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보상받듯 목청을 돋으며 긴시간 건배하고 까불고 어깨동무하면서 노래하고 웃어제꼈다. 각 자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작은 슬픔 한 조각만은 그대로 감춘 채로...

- 우리들 서름 내려놓기 -

- 서로의 슬픔 마셔주기 -

- 작은 슬픔 한 조각만은 그대로 감춘 채로... -

- 품위도 잃지 않기 -

- 까불기도 오래하기 -

- 오래토록 같이 웃기 -
친구들과 헤어져 소슬한 가을밤길 걸으며 문득 영화 '친구'의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란 카피를 떠올렸다. 오늘 긴시간, 그들과 함게 했기에 정말 두렵고 서러운게 없었다. 찬란한 기쁨과 부푼 희열로 그들 에게서 용기와 위안을 받은것이다. 그 동안 살아 오면서 함게 하지 못했기에 늘 공허이 주춤이며 쓸슬했던 것이다.
뒤 늦게 다시 찾은 친구들과 앞으로 함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이 늦은 새벽 까지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희망 만으론 살 수 없지만 희망 없이는 더더욱 살 수 없지 않은가? 그러하기에 내가 숨 다하는 그날까지 내 희망의 씨 뿌리는 작업은 스스로도 감동할수 있도록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늘위의 저 달이 33년 전 그 날로 부터 늘 머리위에서 나를 지켜 봐 왔듯이...

첫댓글 저희 도서부 선배님이신 김상일선배님도 보이십니다 ㅋㅋㅋㅋ
동기 소식 잘 보고 갑니다,친구는 버리기는 쉬워도 간직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데요,동기모임 영원히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