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의 기도
마가복음 10:46~52
찬송가 365장(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주인공은 여리고 성의 소경 거지 바디매오입니다. 그는 언제부터 맹인이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인지 아니면 자라나는 중에 고열에 시달리거나 안질에 걸려서 고생하다가 소경이 되었는지 아예 볼 수 있는 시력을 다 상실했습니다. 늘 이런 처지를 인하여 마음에 깊은 아픔을 가진 바디매오는 삼년 반 전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소문을 들으면서 꼭 예수님을 만나 뵙고 자기 병을 고침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갖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아 바디매오가 살고 있는 여리고 성에 들러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여행을 하시려 여리고 거리를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마침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던 차에 술렁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얘기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접하였습니다. 바디매오는 그 때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고 작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그가 앉은 거리를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바디매오는 크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예수님이 계신 쪽을 향하여 목이 터져라 소리를 쳤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 같아 왠 소리를 그렇게 치느냐고 가만히 있으라고 책망하며 말려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럴수록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를 쳐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침내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가 소란한 중에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그 거리를 지나가시던 예수님께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이르시기를
“그를 부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 쪽으로 달려갑니다. 걸인인 바디매오에게 있어서 그의 겉옷이란 옷이자 이불이자 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겉옷을 내던질 만큼 그의 마음은 예수님을 향하여 간절했던 것입니다. 입었던 겉옷까지 벗어던질 정도로 그는 예수님께 빨리 달려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간절한 소원을 즉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눈을 떠서 세상을 보면서 살고 싶었던 그의 오랫동안의 소원이자 기도 제목을 예수님께 즉시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대답해주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즉시 그의 눈에 시력이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눈이 완전히 밝아져서 세상이 다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그윽한 얼굴에 번진 미소를 보았습니다. 바디매오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는 다른 데 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길을 가는 예수님의 뒤를 바짝 좇아 그를 따랐습니다. 52절에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는 말씀에서 “예수를 따르다”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마가복음의 전형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는 즉시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뿐 아니라 평생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충실한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바디매오의 치유 사건은 기도의 열정, 기도의 간절함의 모범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 듣다가 그가 지나간다는 소리만 듣고서 소리를 쳐서 예수님을 부르되 사람들이 말릴수록 더욱 크게 소리를 쳐서 예수님을 불렀으니, 이는 그의 기도의 간절함을 무엇도 막을 수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간절하고 끈질긴 기도가 주님의 보좌에 상달이 되고 주님의 응답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 이하에서도 기도의 간절함, 기도의 끈질김에 대한 예를 주님께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8:1~8)
이 예수님의 비유에서 그 과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교만하고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와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리니까 결국 재판장이 너무 귀찮고 괴로워서 그 과부의 재판 문제를 속히 풀어주도록 조치한 것처럼, 좋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속히 풀어주시고 오래 참지 않으실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결국 그 냉담한 재판관을 굴복시킨 것은 그 과부의 간절함, 끈질긴 열정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핵심도 간절함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원동력은 바로 기도의 간절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돈 지역으로 제자들과 여행을 가셨다가 그 지역에 살던 헬라 여인이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달려와서 그 소원을 이룬 것 역시 그녀의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와 자기 딸을 위하여 간구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본체만체 들은체만체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여인이 끝까지 매달리며 떠나지 않고 예수님께서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가복음 7:27)
라고 말했으나 여인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의 언어 구사함을 듣고도 여자는 계속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서 대답하기를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말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자기는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는 은혜 중에서 그 부스러기 조각이라도 떨어진 것이면 족하다면서 그 부스러기 은혜의 조각을 내려달라고 끝까지 간청하였기에, 예수님은 그 여인의 이 간절함을 확인하고는 감동하시어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서 나갔느니라”
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인이 서둘러 집에 돌아가 보니 자기 딸이 침상에 누웠는데, 귀신이 벌싸 나간 상태였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그 여인의 기도의 간절함을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핵심은 간절함입니다. 간절함이 없는 기도는 불씨 없는 재와 같습니다. 팥소 없는 진빵과 같습니다. 물 없는 샘과 같습니다. 기도 속에는 불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의 비유 중 하나가 불입니다.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였듯이, 성령의 감동이 있는 기도는 뜨겁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성령의 불이 감싸서 뜨거워야 하겠습니다. 끈질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소경 거지 바디매오처럼, 시돈의 헬라 여인처럼, 재판장에게 끈질기게 매달린 과부처럼, 끈기와 열정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기쁨으로 넘치는 은혜의 응답을 베푸시는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