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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2:25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니체의 말처럼, 종교에서도 권력을 추구하려는 목적에서 행
하는 일이 적잖습니다. 그렇게 종교가 정치화하고 거룩함 속에 세속이
뒤엉켜버리면, 종교는 가장 추악하고 비정한 영역이 되고 맙니다.
There are people who use religion politically. As Nietzsche says that all living
things are driven by the will of power, religion does not do much for the
purpose of seeking power. When religion is politicized and secular is intertwined
in holiness, religion becomes the ugliest and most heartless re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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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변질과 타락은 외부요인보다 작은 경로이탈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일상탈출은 판도라의 상자이고, 신뢰와 순종에서 벗어나 불신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인간은 자기방어적이 되어 기만의 길을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세겜을 수도로 삼고 그곳을 요새화했습니다.
A person's corruption and depravity often results from a path that is smaller than
an external factor. So escape from daily life is Pandora's box, and when you're
caught in distrust and fear away from trust and obedience. Humans seem to
become self-defensive and go down the path of deception. Jeroboam, who
became king of North Israel, made Shechem the capital and fortifie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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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쪽이나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적들로부터 길르앗을 보호하기 위해 얍복 강변의
부느엘에 성을 쌓았지만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백성들을 보며 여로보암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자기를 좇던 이들이 반역의 마음을 품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여로보암을 세우신 하나님도 따르는 백성도, 신뢰하지 못합니다.
To protect Gilead from enemies invading from the northeast or east, he built a castle
in Bunuel by the Yapbok River, but Jeroboam is in fear as he sees the people visiting
Jerusalem. I'm worried that those who followed them might have feelings of treason.
Neither the God who built Jeroboam nor the people who follow him, they do not trust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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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최남단인 ‘벧엘’과 최북단‘단’에 산당(신12:5-7)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십계명을 무시한 채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곳에
두었습니다. (출20:4-5) 게다가 레위 자손도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며(신18:1
-18),자기 맘대로 초막절 날짜를 변경하여 지키게 했습니다(레24:34-36).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왕권 유지를 위해 자신이 조종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무늬만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North Israel's southernmost "Ben El" and its northernmost "Dan" (신12:5-7) are
intended to strengthen their political position. In addition, he made a golden calf and
placed it there, ignoring the Ten Commandments.(출20:4-5) In addition, he made a
priest who was not even a Levite (God 18:1-18) and changed the date of the first
act to keep it (Re 24:34-36).The initial was nowhere to be found, and only the
patterns designed to be manipulated and used for the maintenance of royal authority
were relig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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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길을 따라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쳐주셨는데도(11:38), 자신은 물론
백성들까지 미혹하여 혼합종교의 신봉자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에로스가 나를 우상
숭배로 이끈다는 아티클 하나를 읽었습니다. 사람의 타락의 원인이 경로이탈 때문인데
그것의 시작은 죄 성이고 일상탈출은 기회의 공모자가 되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Although he taught me that obedience along David's path is the only way to live (11:38),
he seduced himself and the people into believers in mixed religions. I read an article
that says Eros leads me to idolatry. The cause of a person's depravity is that it is a
crime, and daily escape is bound to be a co-conspirator of opport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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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사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로는 단순히 사랑 혹은 감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에로스는 매우 종교적이라서 기독교적 사랑인 아가페 혹은 기독교 신앙의 예비 단계로
여겨졌다. 그러나 스웨덴 출신 신학자 안더스 니그덴은 에로스에게서 ‘종교적 동경과
갈구’를 보았고, 특별히 ‘이것들은 그 시대에 충일했던 신비주의 제의들과 구원이론
들에서 표현되었다’고 말한다.
The eros common in love between men and women are not just a matter of love or
emotion. Eros was so religious that it was considered an agape, a Christian love, or
a preliminary stage of Christian faith. However, Swedish theologian Anders Nygden
says he saw "religious yearning and longing" in Eros, especially "these were
expressed in mystical rituals and redemption theories that were loyal to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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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덫으로 작용했고 또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로스에 뿌리를 내린 경건은 ‘기독교의 선구자라기보다 가장 위험한
경쟁자’이다. 왜냐하면 에로스의 동기가 받아들여진 후부터 기독교는 아가페와의 경쟁
관계를 넘어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p164-165,아가페와 에로스1988,크리스천
다이제스트)
“ Eros served as a trap for Christians and is still ongoing. In this sense, the godliness
that took root in Eros is "the most dangerous competitor than a pioneer of Christianity."
Because after Eros's motivation was accepted, Christianity was confused beyond its
competition with Agape (p164-165, Agape and Eros 1988, Christian Dig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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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가페가 아닌 에로스에 기반을 둔 삶은 필연적으로 이방 종교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고,그 결과 종교적인 관습까지도 주저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람은 아가페에 근거한 삶을 살 때만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있습니다.
Eventually, life based on Eros, not Agape, inevitably arouses curiosity about stranger
religions, and as a result, even religious customs are accepted without hesitation.
A person can escape idolatry only when they live a life based on Ag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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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 스며든 세속주의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 불안의 요인은 일탈 때문이 아닌가?
What are some secularism permeating our church?
Isn't the cause of my anxiety due to devi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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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왕 여로보암의 통치(25-33)
a.여로보암의 방비:25
b.여로보함의 두려움:26-27
c.여로보암의 배역: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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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이(25a)
에브라임 산지에(25b)
세겜을 건축하고(25c)
거기서 살며(2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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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25e)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26a)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26b)
만일 이 백성이(2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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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26d)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26e)
이 백성의 마음이(26f)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2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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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고(26h)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26i)
이에 계획하고(27a)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2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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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27c)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28a)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28b)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2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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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벧엘에 두고(29a)
하나는 단에 둔지라(29b)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30a)
이는 백성들이(3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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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까지 가서(30c)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30d)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31a)
레위 자손 아닌(3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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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31c)
여덟째 달(32a)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32b)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3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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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 올라가되(32d)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32e)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32f)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3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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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33a)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33b)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33c)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3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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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이용한 정치_ religion-based politics
무분별한 인선_ reckless appointment
비슷하나 같지 않은_ similar but not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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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에 이에 여로보암의 타락을 내버려 두신 주님,
이제 그만 야인시대를 끝내고 싶은데 아직도 길이 보이지 않은 것은
내 욕심을 스스로 버릴 때까지 나를 버려두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을 봅니다.
내 존재감의 부재로 인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관계가 불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두려움과 불안의 그림자는 사라질 것이오니 주여,
온전한 순종으로 행복해지게 하옵소서.
The LORD, who has left Jeroboam to Rehoboam for the depravity of
Jeroboam, I want to end the wild age now, but I still don't see the way
because I see God who has no choice but to leave me alone until I abandon
my greed. The fear of the absence of my presence is because God's
relationship is insufficient. If you do as God wishes, the shadows of fear
and anxiety will disappear, so make you happy with full obedience.
2023.10.5.thu.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