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독한 여자 ●지은이_김춘자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3. 12. 23
●전체페이지_112쪽 ●ISBN 979-11-91914-54-2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세상에서 가장 낮고 소박한 농촌 공동체 삶의 시편!
김춘자 시인의 첫 시집 『독한 여자』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김춘자 시인의 첫 시집 『독한 여자』에는 삶에서의 어려움과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강인함과 성장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곁에 있는 이들의 안부를 묻고 챙기는 애정이 시편마다 오롯하게 담겨 있다. 시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혼자 사는 할매의 방이거나 시골 장터 한켠, 시장 모퉁이 시멘트 바닥, 마을 어귀 비닐하우스, 축사, 작은 마당과 같은 작고 낮은 존재들과 일상의 장소이다.
혼자 사는 연이 할매 집에 들렀다//침대 위 덮어놓은 이불/젖힐까 말까 눈치보는 할매//강아지 키워요? 아니/고양이 키워요? 아니/침대까지 양보하면서 바닥 잠을 청한 지 여러 날/이쁜 것들 이제나저제나 기다린단다//고물거리는 뭔가 있을 것 같아 살포시 이불 젖히니/아뿔싸! 알 다섯 개 눕혀 놓았다//오래된 알,/병아리 되지 못한다는 말 차마 하지 못하고/얌전히 이불 덮어주고 와 아침마다 전화를 한다//병아리 나왔어요?
―「아침 인사」 전문
“혼자 사는 연이 할매”의 불가능한 기다림을 슬쩍 눈감아 주고 오히려 아침마다 “병아리 나왔어요?” 안부 전화를 하는 마음이 애틋하다. 시인은 이렇게 노년의 쓸쓸한 생활과 더불어 병들고 약해진 이웃끼리 서로 기대어 사는 삶의 풍경을 형상화한다.
할배는 작년 가을 폐 수술 자국 아물지도 않았는데, 추위 풀려 얼음 녹는가 싶은 날부터 쇠똥 거름 감나무 사과나무 밑에 고루 뿌리고 논으로 밭으로 바쁜 걸음 재촉이더니, 모내기 마치자 씨앗 뿌릴 밭고랑 보드랍게 골라 놓고 경운기 뒤칸에 괭이랑 호미 할배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는 할멈까지 태우고 밭으로 나갔는데, 119구급차 부르고 손톱 밑에 흙을 쟁인 채 참깨 씨앗 몇 알 손바닥에 움켜쥐고 구급차에 실려 가던 중 목숨줄 놓았는데, 두더지마냥 일평생 땅만 파다 저세상 간 영감
―「농사꾼」 부분
시인이 각별하게 여기는 것은 ‘농사꾼’이다. 생명을 길러내는 땅과 날씨에 의탁해 농사를 짓는 농사꾼의 삶과 애환이 시편들을 이룬다. 농사의 시간은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에 따른다. 절기에 따라 곡식을 심고, 키우고, 수확한다. 노년의 세대에게 농촌의 삶은 고된 노동과 육체적인 아픔을 동반하는 시간으로 집약된다. 폭염, 소한, 대서, 정월 대보름, 춘분, 곡우, 봄밤, 장마 등의 절기와 계절을 가리키는 다양한 시어는 농사와 농사꾼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람은 병을 고쳐 새로 사는데/말 못 하는 짐승은 병도 고칠 수 없나유?/문디 지랄, 어째 멀쩡한 소를
주삿바늘 하나로 쿡 찔러 생매장을 하남유?”
―「식구」 부분
이 시는 농부 김 씨의 이야기를 통해 동물의 삶과 인간의 태도를 보여준다. 사람은 병을 치유하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지만, 말을 못 하는 동물들은 어떻게 그들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소의 건강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주삿바늘 하나로 생매장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다.
안부를 묻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과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땡감즙에 광목을 담그고 허리 휘도록 치댔다/머리까지 퍼런 물 차올라 숨이 가쁜 엄마는/가슴속 응어리 풀어지기도 전 기억을 잃었다//무거운 광목 빨랫줄에 널었다/수술실에서 깨어난 엄마 숟가락 여러 번 놓치고/걸음마 연습으로 다시 일어서려는데 해는 산을 넘고 있었다//구김살 광목 팽팽하게 말랐다/종일 엄마를 만났는데도/몇 번을 더 적시고 말려야 할지 감히 알지 못한다
―「감물 들이기」 부분
연륜과 혜안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한 시간’을 겪어낼 때 얻게 되는 선물이다. 기도는 안부의 다른 이름이다. 남편을 가슴에 묻고 밭고랑에서 살았던 엄마는 지금은 시인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해바라기」), 엄마의 딸인 화자는 항암으로 입맛 잃은 남편이 먹고 싶다는 콩잎짠지에 “양념보다 기도를 흠뻑 적신다”(「콩잎짠지」). 신이나 절대적 존재에게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고 이루어지기를 빈다. 그 간절한 마음이 있기에 “그리움은 가시에 찔려도 아프지 않”(「산딸기 익어가는 6월은」)고 “분홍빛으로 피어나”(「상사화」) 이제는 오롯이 사랑이 되는 여정을 서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삶은 순대를 사고 돈 만 원 건네는데/엄지손가락 하얀 붕대 돌돌 말아져 있다/흘린 피가 소주잔은 넘을 거란다/도마질에 빗금 간 손가락 소름 돋는데/새살 돋아 나오는 중이라며 웃는다/혹한에 뿌리까지 얼었다 싶어도/봄이 되면 잎 대궁 밀어 올리는/대파를 닮았다
―「독한 여자」 부분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는 여자가 힘들고 모진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견디고 살아왔는지 시리게 보여준다. 겨울에는 얼어서 보이지 않지만 봄이 오면 다시 “잎 대궁 밀어올리는/대파”처럼, 여자 또한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고 견뎌내는 강인한 의지와 끈질긴 인내를 지니고 있다. 칼에 엄지손가락이 베어도 “새살 돋아 나오는 중이라며 웃는” 모습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시집 『독한 여자』는 시인의 눈동자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곁에 있는 얼굴들이 하나둘씩 살아난다. 한 사람의 일생을 기억하고 시로 풀어내는 일은 비록 기억을 스스로 잃게 된다 해도 소중한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지속해 온 힘은 인간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가슴에 담긴 것을 표현하고 말하고 이야기하는 존재이다. 김춘자 시인은 충실한 호모 나란스(Homo Narrans)이다. 무엇보다도 농촌에서 살아온 할머니, 어머니의 인생, 이웃과 삶의 이야기가 때로 유머와 동심으로, 때로 지혜로운 재치로 곡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
■ 차례
제1부
아침 인사·11
통증클리닉·12
오월·13
정월 대보름·14
대서·15
독한 여자·16
노총각 영수 씨·18
차이나타운·19
바닥·20
난로·21
꽃을 보다·22
최 씨·24
단맛·26
늙은 호박·28
봄밤·29
제2부
개 찼습니다·33
고갯길·34
달·35
대꼬바리·36
감물 들이기·38
천둥소리·40
강재남 여사·41
백년초·42
정신줄·43
한여름 숨바꼭질·44
비 오는 날·45
마당에서·46
소한·47
증명사진·48
사계절 장미·50
제3부
식구·53
골짱·54
농사꾼·55
춘분·56
곡우·57
무거운 하루·58
꿀 따는 날·60
수수께끼·62
초승달·63
피서·64
웅성거리다·66
폭염·67
안부가 궁금하다·68
혹 붙였다·70
인큐 애호박·71
상주 동학제·72
제4부
해바라기·75
짐짝·76
콩잎짠지·77
봄비·78
소문 찾아가는 길·80
안녕, 새들아·82
밤나무 아래서·84
만찬·86
짠내와 쩐내·87
대추나무 등불·88
망초꽃·89
집으로 가는 길·90
산딸기 익어가는 6월은·92
백일홍·94
상사화·95
해설│김정숙·97
시인의 말·111
■ 시집 속의 시 한 편
담배 한 대 피우자는 듯
사위에게 권한다
자네도 해보게
아니요 저는 아직,
이걸 하면 얼매나 든든한데
치매 5년 차 엄마가
위암 수술 1년 차 사위에게 건네주는
기저귀
―「정신줄」 전문
■ 시인의 말
슬픈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지를 못했다
부끄러운 나는 연습을 했다
볕에 앉아보고 비에 젖어도 보고
부드러운 바람과 꽃도 만났다
긴 시간 그랬다
외로운 내가
더 외로운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시를 쓴 게 아니다 내 안의 엄마를 쓰고 싶었다
어쩌면 더 오래된 엄마가 되어봐야
‘독한 여자’를 품으로 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외롭지 않은 연습이었다
2023년 초겨울
김춘자
■ 표4(약평)
김춘자 시인의 첫 시집 『독한 여자』에는 “연이 할매”의 불가능한 기다림을 눈감아 주고 오히려 아침마다 “병아리 나왔어요?” 안부 전화를 하는 마음과 ‘숙이 할매가 오봉밥상 이고 가는 복잡한 길’을 먼저 열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래전 농촌 공동체 삶의 풍경으로 펼쳐진다. 세상에서 가장 낮고 소박한 곳을 알려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이 시집 속의 공간으로 데려가고 싶다. 한없이 낮고 깊은데 환하고, 슬픈데 따스하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인정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툭툭 튀어나와 걸어 다닌다. “서울 조카 장가간다고/읍내 가서 파마하고 돌아오는 옥산댁도 보”이고, 다리 아픈 “내 친구 덕이”와 “노름꾼 옛 서방도 바람둥이 새서방도” 보인다. 시집 전체가 가히 사람의 세상, 사람의 마을이라 할 만하다. “치매 5년 차 엄마가/위암 수술 1년 차 사위에게 건네주는/기저귀”라는 대목에서는 그만 눈물과 웃음이 섞인 신음을 토할 수밖에 없다. 김춘자 시인의 시에는 인생의 슬픔과 행복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 시집이 세상 평판의 높은 데를 차지하기를 바란다._김주대(시인)
■ 김춘자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느티나무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