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세계신문 김용필 대표는 "가리봉동은 1965년 한일수교와 1992년 한중수교로 인해 가장 많이 변화하는 동네였다"고 소개했다. 1965년 한일수교로 구로공단이 생기고 가리봉동은 노동자의 도시로 한국산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동포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해,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다문화지대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일본 교수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중국동포 제2의 고향 가리봉동은 중국동포들로 구성된 외국인자율방범대가 최초로 설립된 곳이다. 한때 가리봉동은 외국인범죄의 온상처럼 여겨졌던 부정적 이미지가 컷던 곳, 이곳에서 외국인자율방범대 조직구성에 처음부터 관심 갖고 지켜보아온 구로경찰서 이대화 주임은 "동포들의 자율방범대 활동으로 범죄에방 효과가 높아졌고 실제 가리봉동의 외국인범죄가 30% 급감하는 효과를 보았다"고 소개했다.
가리봉동에 주민소통마당이 들어섰다. 지난 10년 넘게 최첨단 도시로 재개발한다는 바람으로 가리봉동은 정지상태에 있었다. 이로 인해 건물은 더욱 노화되고 민심도 흐트러져 있는 상태이다. 올해 초 가리봉동에 들어선 주민소통마당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러 의견을 듣고 도시재생 방안을 논의하는 곳이다. 게다가 주민(약 1만5천명)과 중국동포(약 8천명)가 함께 어울려 잘 사는 동네를 만드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가리봉동이었지만 현재는 금천구 가산동을 편입된 가산디지털단지역(구 가리봉역)에서 가까운 곳에 구로공단 시절 노동자들의 쪽방생활을 엿볼 수 있는 체험박물관이 있다. 가리봉동의 역사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일본 오사카도 공단지역이라 가리봉동의 쪽방과 비슷한 구조의 방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일본교수들은 벽에 걸려 있는 기록사진과 동영상 등을 흥미롭게 보았다.
가리봉동에 위치한 지구촌어린이마을은 한국의 일반 어린이집에 갈 수 없는 중국동포 자녀(2세~6세)들을 위한 집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리봉동은 어린아이들이 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중국동포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외국 국적이다 보니 정부 보조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동포교회 김해성 목사의 노력으로 협동조합 방식으로 설립되었다.
가리봉동 현장견학에 도움 준 구로경찰서 이대화 주임
이주민-선주민 갈등과 치안활동도 들려주었다.
이번 가리봉동 견학 안내자는 15년간 이곳을 지켜온 구로경찰서 외사계 이대화 주임(사진)이다. 가리봉동에는 내국인 주민(선주민)과 외국인 중국동포(이주민)들 사이에 여러 갈등이 내재하고 있다. 이대화 주임은 요약해 소개했다. 첫째, 쓰레기 무단투기로 인해 생기는 갈등, 둘째,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문제, 셋째, 도로소통을 방해해서 생기는 문제, 넷째 고성방가이다. 이 외에도 가리봉동 저변에는 드러나지 않는 치안문제들이 많다. 이런 지역특성을 잘 알고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경찰관의 주요역할임을 강조한다.
또한 이 주임은 일본 교수들에게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펼치는 중앙선, 정지선, 지정차로를 잘 지키자는 ‘선선선’운동도 인상깊게 소개했다.
■ 일본 오사카시립대학 인권문제연구센터 소개
일본 오사카시립대학 인권문제연구센터는 일본의 부락해방운동을 위한 실천적 연구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매해 두 차례 평화와 인권, 피차별부락, 재일조선인 등을 테마로 현지 답사를 실시하고 있다. 작년 상반기에는 일본 동북지방의 쓰나미 피해와 조선인 부락의 현황을 조사했고, 하반기에는 히로시마로 유입되는 중국인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금번에는 교원 5명이 가리봉동 일대의 속칭 '조선족 타운'을 방문하여 '타운' 형성의 경과와 문제, 과제 등에 대해 조사하고, 관련 시설을 견학하였다.
이번 가리봉동 방문은 고성만 연구원(한국인, 통역)의 연계로, 시마 카주히로 교수, 후루쿠보 사쿠라 교수, 노구치 미치히코 교수 외 1명으로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