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고통없는 사회’에서 오늘날 사회를 ‘좋아요의 사회’ 라고 말합니다. SNS에서 ‘좋아요’를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사회현상이라고 하면서 고통이 성숙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회라고 통렬히 비판합니다.
‘왜 일하는가’의 저자인 사이먼 시넥도 어려움을 돌파하지 못하면서 인생의 의미만 찾는 젊은 세대들을 향해 인생의 의미란 의미 없는 일들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어려움을 회피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 말합니다.
직장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직업적 능력이 탁월해져야 하고, 또 관계적 깊이를 통해 다른 사람과 협업을 통해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업무적 능력의 향상과 관계적 깊이의 향상은 때로 의미 없는 일의 반복을 통해 이뤄지곤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하지만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성향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회피하는 경향은 서구 사회가 가져온 세속적 관점 때문입니다. 행복의 정의를 물질적 축복에만 한정 지어버리면 보이는 세상에만 집중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영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초자연적인 세계인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연주의 세계관을 가질 때 이 땅에 있는 물질보다 더 귀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 땅의 물질이 행복을 안겨준다는 개념은 결국 인생에서 고난을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셔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선언합니다. 어려움을 통과하지 않는 성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육이 자랄 때도 무거운 것을 드는 과정을 통해 자랍니다. 영적인 근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란 힘들지 않은 삶이 아니라 힘들지만 영광스러움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등산하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경험하는 환희가 있습니다. 만약 등산을 좋아해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힘들게 왜 올라가느냐”고 질문을 하면, 어렵고 힘들지만 더 큰 기쁨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는 어려움을 통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삶을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히 12:2)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편안한 삶이 아니라 힘들지만 더 큰 기쁨이 있는 영광스러운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힘들지 않은 인생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신앙이란 힘들지만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또한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며 참된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기도 : 어려움 속에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십자가의 고통을 통과하신 그리스도의 인내와 성숙을 배우는 우리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