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왕 제14년, BC 701년에 있었던 일입니다(1절). 그렇지만 1절과 2절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 차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앗수르의 왕인 산헤립(Sennacherib) 유다의 여러 성읍을 쳐서 이미 함락한 후에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예루살렘의 남서쪽으로 약 45km 정도 떨어진 유다의 성읍인 라기스(Lachish)에 주둔하고 있던 산헤립이 랍사게(Rabshakeh)에게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하고,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을 종용(慫慂)하게 되는데, 그것이 2절 이후의 말씀입니다. 랍사게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앗수르의 고위 관리를 일컫는 칭호입니다. 이 랍사게와 랍사게가 이끄는 엄청난 군사들이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윗저수지의 수로 옆에 주둔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물길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히스기야 왕과 남왕국 유다 백성을 향해 도발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엘리아김(Eliakim)과 셉나(Shebna), 요아(Joah) 등을 사신으로 랍사게에게 보냈는데(3절), 랍사게는 온갖 모욕적인 말로 히스기야 왕과 남왕국 유다 백성을 모독하고,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랍사게는 유다 백성이 애굽을 의지해 보았자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6절). 그리고 유다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겠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에게 유다를 치라고 말씀하셨다고 도발합니다(10절).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만 경배하라고 해놓고는 그 신전을 헐어버리지 않았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7절). 그렇지만 랍사게의 이 말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히스기야는 우상을 섬기는 산당과 제단을 헐어버린 왕입니다. 그런데 랍사게는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제단을 허물어버린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진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상기(想起)한다면(사 8:7, 8; 10:5, 6), 하나님께서 랍사게에게 유다를 쳐서 멸하라고 하셨다는 말은 거짓일 뿐입니다(10절).
랍사게가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을 조롱하는 말을 하자, 히스기야가 보낸 사신들은 자기들이 아람 방언을 알아들으니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말고, 아람 방언으로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합니다(11절). 유다 백성이 듣고 동요(動搖)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랍사게는 오히려 유다 백성이 듣도록 더 큰 소리의 유다 방언으로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하는 말을 따르지 말라고 말하면서,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않고 항복하면 평안할 것이라고 회유(懷柔)하면서 앗수르의 신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고 강하니 여호와 하나님도 예루살렘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져낼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합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히스기야 왕과 남왕국 유다 백성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도발한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보낸 사신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21절). 히스기야 왕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독적인 말을 들은 사신들은 히스기야 왕에게 돌아와 옷을 찢으며 랍사게의 말을 전하였습니다(22절).
랍사게의 말은 마치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과도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무능(無能)하고 허약한 것일 뿐이라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세상의 권력과 물질과 지식과 능력을 자랑하며 그것이 최고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모독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벌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그렇게 조롱해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당당히 살아가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