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4일. 첫 출근하여 포장반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공정을 차례로 거쳐 나중에 각
자 적성에 맞는 공정에 배치하겠다고 합니다. 제 생전에(어쩌면 우리들 생전에) 안 하던 일
을 하니 몸이 성할 리가 없습니다. 온몸이 쑤시고 녹작지근합니다. 사장님에게 긴급하게 청
원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야근은 도저히 버티기 어려우니 열흘 정도 적응기간을 달라고 하였
습니다.
이날부터 사회와는 완전히 두절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어제까지 누렸던 개인의 사생활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수도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격일로 새벽마다 가던 수영장도 그만 두
었습니다. 4개 영법을 익히고 오리발을 산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십년도
넘게 주말이면 어김없이 가곤 했던 산도 격주로 줄여야 했습니다. 친지는 물론 친구들과의
잦았던 모임도 끊었습니다.
겨울, 파주는 춥습니다. 기온이 서울보다 2, 3도 낮기도 하거니와 객지여서 더욱 춥습니다.
대체 무엇이 저와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했을까? 무엇하러 우리는 이곳에 왔을까?
7인회의 계속적인 관계유지였습니다. 건물보수과 졸업 후 겨울철이라 마땅히 할 일이 없는
터에 뿔뿔이 헤어지기 보다는 함께 취업하는 것을 교육의 연장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돈도 벌
고, 그 돈으로 시골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노년의 이상향이 그려졌습니다. 저는 고급 카메
라를 사고 에베레스트 트레킹 할 자금을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일하는 게 쉬운 줄로만 알았습니다. 두 번에 걸쳐 H회사를 견학하고도 그때는 그곳의 노동자
들이 하는 일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일이 우리의 일이고 저의 일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일과는 다른, 무언가 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크게 착각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라!”를 외치며 2016년 연말을 한껏 달군 촛불집회는 우리와 동떨어
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토요일 오후이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그들의 여유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주말이면 마음대로 네온사인 휘황찬란한 도심대로를 활보하는 그들이
행복에 겨운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우리들이 보기에 그들의 촛불행진은 축제였습니다.
이곳 노동자(외국인은 물론 한국인에게도)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 헌법재판소, 개헌 등
의 정치용어는 낯설었습니다. 그런 정치용어는 노동현장에 끼어들 틈이 전혀 없었습니다. 연
일 이어지는 야근과 특근이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H회사의 연간 매출액 25억원, 직원수 25명 내외, 아파트 주방가구제조업체입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쯤 됩니다. 그들은 중국,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왔습니다. 주방가구 제조공정
은 크게 MDF 재단, 도장, 엣지 도장, 가공, 엣지 연마, 조립, 포장으로 나눕니다. MDF(Medi
um Density Fiberboard)는 톱밥과 접착제를 섞어서 열과 압력으로 가공한 목재인데 톱밥 입
자가 아주 작고 단단하게 결합되어 강도가 높습니다.
이곳 공장에서 제조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반드시 포장을 거쳐 외부에 반출하게 됩니다. 포
장반이 전체 공정 중 가장 단순한 작업이거니와 가장 힘이 듭니다. 신입직원을 뽑아 포장반
에 배치하면 힘이 들어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곤 했답니다. 사실 우리도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머지않아 그들의 전철을 밟게 될 터였습니다. 입사한 지 열흘정도 지나 사장님 면
담을 신청하여 언제까지 우리에게 포장 일만 시킬 것인가 묻자, 당분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회사가 운영되는 형편을 고려할 때 우리들의 담당업무가 포장 말고는 달리 있을 것 같지 않
았습니다.



포장은 제품이 ① 외부의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두꺼운 포장지로 싼 후에, ② 대형 트럭에
싣도록 파레트 위에 알맞은 크기로 쌓고, ③ 야적할 경우를 대비하여 비닐 랩으로 수 겹을 감
싸는 작업입니다.
포장작업 주로 2인이 짝을 지어 합니다. ①의 작업은 작업대에 포장지를 깔아놓고 그 위에
기다랗거나 무거운 문짝 등을 한두 개 포개 놓고 포장지를 씌운 다음 접착테이프를 붙입니
다. 접착테이프를 붙인 다음 파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습니다. 하루에 수백 개를 포장합니다.
문짝 등의 제품은 꽤 무겁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손이 퉁퉁 붓고 팔이 시큰거립니다.
②의 작업도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크고 작은 문짝 등을 들고 옮기어 파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습니다. 무거운 제품의 경우 1개에 60kg 정도가 됩니다. 4명이 들어야 합니다. 하루에 수
백 개나.
③의 작업은 포장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포장된 제품을 파레트 위에 쌓아놓은 크기는 대체로
주로 140mm × 110mm × 2260mm입니다. 이것을 랩 4겹 이상을 팽팽하게 둘러야 합니다.
묵직한 랩 뭉치를 들고 몇 바퀴 두르다보면 팔심이 딸리고, 어지럽고, 등줄기에는 땀이 흥건
히 뱁니다.
한 1주일 정도 지나면 손이 붓고 피곤한 것이 어느 정도 나아지리라 예상했는데 날이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면 손은 점점 주먹을 쥐기 힘들 정도로 붓고, 도리어 아
프지 않던 다른 곳까지 쑤시기 시작합니다. 허리, 어깨, 팔, 다리 등등. 수저를 들거나 칫솔질
을 하는 데 불편함을 느낍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확실히 이상한 회사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이상한 줄로 모르겠습니다. 당
장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는 작업방법의 개선을 제안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오직 시
간이 일을 합니다. 하루 작업량의 책정이나 할당 같은 것이 없습니다. 하는 데까지 해야 합니
다. 부지런히 한 작업을 마치면 다른 작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하면 할수록 내 몸
만 상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K부장님이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을 정해줍
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걸릴까? 운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아침마다 짜릿한 스릴을 느낍니
다. 조립부문이나 엣지코팅, 연마공정 등에 일손이 딸리면 임시적으로 그 공정에 투입되기도
합니다. 그곳이 포장보다는 노동강도가 덜합니다.
하루 종일(야근까지 포함해서 11시간 동안) 단순하지만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따분
하고 지겨운 일입니다. 특히 엣지코팅이나 엣지연마 공정은 컨베이어 벨트를 계속 타고 오는
판재를 가지런히 쌓는 작업인데 영락없이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인 ‘모던 타임즈’의 한 장
면입니다. 저도 모르게 벽에 걸린 시계에 눈이 자주 가곤 합니다. 벽시계가 고장 난 것은 아
닌가 하고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국방부 시계보다 더 느리게 갑니다. 느리게 가는 벽시계가
견디기 어려운 고문입니다.



사진은 어제(1.27.) 용문산 산행 때 찍었습니다.
미세먼지가 많이 끼여 원경은 뿌옜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28 16:27
첫댓글 악수님 그런 일도 있군요. 11시간 노동. 쉽지 않은 일이죠. 저도 12시간 맞교대하는 공장에 근무하고 있읍니다만, 안봐도 무슨말씀인지 눈에 선합니다. 그래도 이런일을 해 보지 않으면 이런 인생이 있다는 걸 피상적으로만 알다가 인생마칠 겁니다, 저도 8개월째인데 1년은 채워 볼려고 합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래도 이런일을 해 보지 않으면, 그런 생각으로 버텨봅니다. ^^
@악수 (不徑一事)면 (不長一智)니라
하나의 일을 경험하지 아니하면 하나의 지혜가 생겨나지 아니한다
형님의 도전,열정 파이팅입니다!
새들님^^ 종종 소식을 전해들으니 반갑네요..
@사계 고생많으십니다...그리고 견디어 내시는게 대단하십니다.^&^
그러시군요,,아직까지 육체적인 노동을 해보지 않아서 그 속내를 알수가 없었는데....형님의 일기를 보니.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