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윤의 미술치유] 추사 김정희와 르누아르
'세한도' vs '예술가의 집'
세한도/나무위키
"내 사정을 네가 알아주어 외롭지 않아"
‘추운 날엔 옷을 입어야지’
한 겨울, 집에서 춥다 툴툴 대는 반바지 차림 중년남에게 선비같은 아버지가 건넨 말이다.
인간은 모든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라는데, 모든 환경에 맞추어 불평하는 놀라운 재주도 있는 것 같다.
‘추운 날’ 이란 그림이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1844, 국보 180호)다. 추사는 55세에 제주도로 억울한 유배를 당했다.
명문가의 금수저였던 그는 정쟁으로 겨우 사형을 면하고 9년간 귀향살이를 했다. 당시 제주도로 가는 배 위에서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루아침에 모두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예산에 있던 아내도 얼마 안가 세상을 떴다. 그를 지탱해준 유일한 것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제자 이상적(1804~1865)이였다.
그는 귀한 책들을 구해 잊지 않고 추사를 찾았다. 감동한 추사는 그에게 세한도를 선사했고, 그는 그림을 들고 청나라로 가 문인들에게 선보인다. 작품에 크게 공감한 그들은 요즘 온라인에선 찾기 힘든 ‘아름다운 댓글’ 을 그림에 덧붙이기 시작한다.
세한도의 길이는 점점 늘어 가로 1469.5㎝ (세로 33.5㎝) 에 이르고, 2020년 개성상인의 후손 손창근씨의 통 큰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다. 누군가는 더 이상 아름다운 댓글 릴레이가 이어지지 못함을 아쉽게 여겼다.
세한도는 추운 겨울날 제주도의 유배지를 묘사한 것이 아닌 추사의 내면 풍경이다.‘세한’은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뜻한다.
그림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한 채의 초가집이 둥근 창 하나와 단순한 선으로 어설프게 그려져 있고 오른쪽과 왼쪽에는 각각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가 대칭을 이루며 성글게 그려져 있다.
나머지는 텅빈 여백이다. 추사는 논어에 나오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구절을 적어 시류에 굴하지 않는 제자의 우정을 기렸다.
먹을 듬뿍 머금은 유려하고 윤기 있는 표현 대신 쓸쓸하지만 간결하여 절제미가 두드러진다. 문인화의 걸작이다. 창 하나 덩그러니 그려진 집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 집은 바로 외로운 추사 자신이 아니었을까.
문인화에서 그림을 통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사의(寫意)’라 한다. 그림 자체보단 담긴 의미가 더 중요하고 그린 이의 상황과 의도를 알았을 때 그림은 새롭게 다가온다. 마치 누군가의 그림 일기처럼.
사람들은 세한도를 ‘선비 정신의 기개’ 로 보나, 추사의 붓을 들게 한 것은 사실 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세한도는 훈훈한 ‘정情’의 그림이다.
선비의 고고한 기상은 누군가의 따뜻함으로 비로서 세상에 아름답게 드러난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감정이다.
세한도는 말한다.
"내 사정을 네가 알아주어 외롭지 않아. 고맙고, 리스펙(Respect)해. 올곧고 따뜻한 너의 마음을."
“고통은 사라지지만, 아름다움은 남거든"
마침 비슷한 시기 유럽에도 닮은 그림이 있었다. 인상주의 '(Impressionism)의 대표적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1841–1919)의 <예술가의 집 The Artist s House> 이다.
예술가의 집/ 위키아트
이 그림은 실제의 풍경을 그린 것이나 역시 섬세한 필치나 표현, 기교는 딱히 찾기 어렵다. 아이 그림처럼 한 달음에 그려진 집과 풍경은 남은 물감을 써 버리려고 그린 것 같다.
대충 그린 그림. 그리다 만 그림. 그래서 ‘인상적’ 인 그림. 인상주의가 처음 세상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조롱하려고 쓴 단어였다. 가까이 관찰할수록 사람들은 화가들의 무성의함과 불성실함에 분노했고 비난했다.
하지만 르누아르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느끼고 표현했다.
인상파 화가들에게 아름다움은 황금빛 햇살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역사와 도덕, 근심과 깊이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러 캔버스와 물감, 이젤을 들고 야외로 나가 바쁘게 붓질을 했다.
밑그림의 시간은 없었다. 빛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마법이였지만 시시각각 변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세계의 덧없는 순간을 잡기위해 노력했다. 빛과 색상을 사용하여 이전에 볼 수 없었고, 보지 않았던 움직임과 분위기를 창조해냈다.
그 햇살 아래 모네는 연못과 수련을, 세잔은 산과 사과를, 르누아르는 여성과 사람을 그리며 생생한 색상과 부드럽고 둥근 형태로 일상생활과 인간관계의 뉘앙스를 포착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들(1892), 오르세 미술관/위키백과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예뻐야 한다. 삶에는 이미 불쾌한 일이 너무 많다.” 그의 말처럼, 르누아르에게 세상은 썩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작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들(1892)>, <뱃놀이 일행의 오찬 (1881) >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에는 순수한 예쁨과 흥겨움이 화사한 봄날처럼 흩날린다.
<예술가의 집>은 르누아르의 대표작은 아니다. 세한도처럼 작품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배경도 없는 습작에 가깝다. 하지만 과감한 채색과 속도감 있는 붓질은 젊은 인상파 화가의 탄생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집>에서 그가 움켜쥐려 했던 순간의 아름다움은 무엇이었을까. 불쾌한 세상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위해 분투하는 자신 아닐까.
인상주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재현' 하는 미술의 고정 관념을 거부한다. 실제의 자연은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현실은 개인의 마음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인지하는 모든 것은 각각의 독특한 기억과 감정을 통해 걸러진다.
이는 '계몽주의를 계몽한'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사람은 생각하기 전에 느낀다" 는 주장과 맞닿는다.
이성보다는 순수한 자연상태의 느낌과 감성이 인간을 행복으로 이끈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아이같은 낙천적이고 밝은 감성으로 세상을 본다. 아름다움의 순간을 쥐는 건 이성이 아니라 느낌이다.
1879년 한 미국인 평론가가 ‘정신병원 환자들의 그림 전시’라고 했던 ‘인상적인’ 그림들은 현재 사람을 치유하는 병원이나 치과의 단골 그림이 되었다.
'임산부에게 해롭다' 며 기피됬던 인상파의 그림들은 대중에게 가장 인기있는 미술로 수집가들에겐 부의 상징이 되었다. 심지어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평가된다.
추사와 르누아르에겐 둘 다 그림에 담긴 마음, 정과 느낌의 표현이 더 중요했던 공통점이 있다.
추사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그것을 보아주는 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르누아르는 그만의 시각과 표현을 통해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스쳐가는 아름다운 순간을 드러내고자 했다. 둘 모두 현실의 벽에 불평하지 않았다. 꿋꿋하고 용감히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붓을 들어 당대와 후대의 사랑을 받았다.
사람의 감정만큼 믿을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찰나의 감각이나 느낌만큼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 게 있을까. 하지만 이 아름다움의 경험들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힘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삶은 쉽다고 아무도 말한 적 없는 것처럼, 세상은 원래 아름답다고 누구도 귀뜸하지 않았다. 생의 아름다움은 스스로 찾아낼때만 존재한다.
비루한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 누군가와의 정이 있기에, 못 생긴 세상의 예쁜 순간을 나만의 생생한 느낌으로 찾아갈 때 아름다운 세상은 그려진다고 19세기의 두 그림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젊은 마티스가 심각한 류마티즘으로 고생하며 작업하는 르누아르에게 왜 그리 무리하냐고 묻자. 그가 답한다. “고통은 사라지지만, 아름다움은 남거든 (The pain passes, but the beauty remains).”
이 말은 과거의 추사가 미래의 르누아르에게 했어도 꽤나 어울렸겠다.
팔순을 훌쩍 넘긴 선비 아버지의 말에 반바지 중년남도 주섬주섬 츄리닝 바지를 입는다. 돌이켜보니 덧없이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아름다운 찰나다. 존경하고 감사하고 따뜻하다.
글 | 임성윤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