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는 마음 밝은 마음」
「닦는 마음 밝은 마음」이런 제목의 불교책을 쓴 김재웅 선생은 1964년 스물네 살 때, 백성욱 선생을 은사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못돼도 지금 나이가 104살이니, 아마도 타개했는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정진하기는 했어도 출가하지는 않은 모양으로 법명이 없다. 그저 ‘법사’로 불리고 있지만,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15개 법당을 이끌며 수행·지도하고 있다’고 한 것으로 봐서(책 출판 당시)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데, 자신을 바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불교에 입문한 것은 1950년 당시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지내기도 한 백성욱 선생을 은사로 모시면서였다고 하는데, 3.1운동에도, 상해임시정부에서도 활동하기도 한 백성욱 선생은 1953년에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오늘날 동국대학교 면모를 닦았고, 1962년부터는 모든 활동을 접고 부천 소사에 초촐한 도량을 짓고 구도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그 무렵에 그를 찾아가 만났다고 하는데, 백성욱 샌생은 1981년 음력 8월 18일 입적했는데 그날이 생일이었다고 한다. 불교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백성욱 선생도, 김재웅 선생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저자 김재웅 선생은 스승을 만난 과정과 수행과정, 방편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나, 나는 그보다는 책 제목에 관심이 간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여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닦고 또 밝게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마음을 어떻게 닦아야 한다는 것인지, 얼마큼 닦아야 한다는 것인지,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밝은 마음」에 대해 스승 백성욱 선생은 하루해를 비유하며 “정오의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셨을 때 석가여래께서 금강경을 설하셨기에 금강경은 광명 그 자체니라”고 하셨다고 하고, 부처님의 마음 덩어리이고, 광명 덩어리인 금강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면 3천 년 전의 석가여래의 밝음을 향하고, 그 밝음을 통하게 되어 자기 마음의 그늘진 업장은 해탈되고, 성리(性理)는 밝아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모두 15장으로 된 책의 마지막 장이 「보살의 길」인데, 보살로서 행할 길이라는 뜻인 모양이다. 나는 이 장부터 읽어 볼까 하는데 그것은 모두 읽는데 부담이랄까 아니면 뻔한 불교 이야기일 것이라는 자만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이 장이 증보판을 내면서 가장 최근에 법사께서 하신 법문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의 법문 중에는 비유가 아주 많다. 여기서도 비유를 많이 쓰고 있는데, 부처 생전의 비유인지는 설명이 없다.
“배 농사를 짓는 사람은 배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있는 배를 수확하기 위해서 배나무를 키운다. 그것은 공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마음은 이렇게 닦아야 하는구나.’하는 깨침이 있을 때, 그 순간부터 실천해야 한다. 선근이 깊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스스로 깨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법문을 듣고 아니면 스승의 가르침으로 깨친다. 스스로 깨쳤든 법문을 듣고 깨쳤든, 깨치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 깨우치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배꽃만 보고 배 열매를 수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안동 하회마을에는 ‘북촌댁’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고택이 있다. 대지 1,700평에 72칸의 한옥으로 된 것인데, 7대에 걸쳐 200년간 영남 일대의 부와 명예를 누리던 집이라고 한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류성룡의 10대 손이자 경상도 도사(都事)를 지낸 류도성이다. 어느 여름 늦은 밤 강 건너 부용대 쪽에서 사람들을 싣고 건너오던 배가 뒤집혔다. 상갓집에 갔다 오던 수십 명을 태운 배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그만 전복되고 만 것이다. 가로등도 손전등도 없던 시절에 주변은 어두웠고, 물에 빠진 사람들은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이들을 구할 배는 없었다. 그런데 마침 이쪽 강변에 춘양목이 잔뜩 쌓여있었다. 류도성이 기와집을 짓기 위해 3년째 건조시키고 있는 목재였다.
류도성은 배 사고 소식을 듣고 구명보트 대신 목재를 강물에 던지라고 했다. 일부는 불을 밝히기 위한 화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후 류도성은 어렵게 춘양목을 다시 구해 3년을 말린 후에 집을 지었고, 그 집들이 지금의 북촌댁이다. 이러한 자세로 정신과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준 그가 존경스럽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부처처럼, 보살처럼 되기 위해, 즉 성불하기 위해 불도를 닦고 절에 가 기도도 하고, 출가하기도 한다. 누구나 깊이 수행하면 부처가, 보살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보살행을 행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기야 요새는 절에 가보면 보살이 너무 많다. 여자 신도들을 모두 보살이라고 부른다. 그런 여자 보살 아닌 진짜 보살이 되고자 하면 보살행을 행해야 한다. 보살 아닌 사람을 우리는 중생이라고 부른다. 알 듯 말 듯 불교를 대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중생이다. 보살과 중생의 차이는 무엇일까.
중생은 결과를 무서워하고, 보살은 원인을 무서워한다. 깜깜한 중생은 죄가 되는지도 모르고 두려움 없이 덤벙덤벙 죄를 짓고, 죄지은 과보를 받게 될 때가 되어서야 무서워하고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보살은 죄지은 과보가 무섭다는 것을 알고, 죄지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중생에게는 죄가 있지만 보살에게는 지혜가 있다. 중생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몸이 편한 쪽으로 머리를 굴리고 꾀를 낸다. 그러나 보살은 여러 사람의 건강과 안정을 염려하고 자신의 이득을 마다하고 희생한다. 꾀만을 내는 사람은 죄업을 쌓고, 지혜를 내는 사람은 공덕을 짓는다. 자신의 이득을 내는 꾀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위하여 보살심을 가지고 보살행을 실천한다. 그것이 영원히 밝은 곳을 향해 가는 길이다. - 278쪽
불자가 공부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옛말에 ‘신언서판’이라는 네 가지 사람을 보는 기준이 있었다. 사람의 자질과 인품을 평가하기위해서 정한 기준이다. 身은 얼굴과 신체 몸가짐을 말하는 것이고, 言은 말하는 것, 書는 글 쓰는 것, 判은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니 마음가짐과 몸가짐도 단정해야 하며 온화하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말할 필요가 없다. 또 말은 조리가 있어야 하고 남에게 블쾌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글을 통해서는 학식을 내보이고, 일은 옳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身言書判을 다시 새겨 본다.
이찬원의 노래 중에 〈시절연연〉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는 인연 잡지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말며…, 뭐 그런 가사다. 이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중년의 보살이 큰딸이 29살인데, 혼사 문제가 걱정이라며 법사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인연이 있겠지요. 좋은 배필 만나 부처님 잘 모시길 발원하면 됩니다.”라고 했다. 그 후에 다행히 인연이 생겨 딸이 시집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딸을 시집보내고 나니, 오직 딸을 친구삼아 지내던 지난날이 그리워졌다. 영감과는 사이가 나빴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짝을 만나니 미련 없이 가버린 딸에 대한 배신감이 생기고, 내 빼앗긴 청춘을 무엇으로 보상하랴며 그동안 살아온 인생 모두가 무상한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는 복은 받지 않고, 짓는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수동적이 아니라 주동적이 되라는 말일 것이다. 복을 받거나 복을 짓는다는 것은 잘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복 짓길 원하고 실제로 복 짓는 실행이 이어지면, 그 결과는 잘살게 될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이제 그 방법을 찾을 일이다. 방법은 이렇다.
1. 복 짓기를 원하면 복 지을 그릇을 키워라.
비는 고루 내리지만, 그것을 받는 것이 컵이면 컵만큼, 사발이면 사발만큼, 대야면 대야만큼 받친다. 복 많이 짓겠다는 발원도 그와 같다.
2. 물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복이다.
노동의 대가며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물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통해 복을 지어야 한다. 일상의 무엇이라도 낭비하지 않고, 아끼는 마음에서 복은 온다. 음식도, 물도, 전기도 아끼는 것이 곧 복이다.
3. 복은 적극적이어야 한다.
지은 만큼 받는 것이 복이다. 자기의 복 남 주지 못하고, 남의 복 자신의 것으로 하지 못한다. 베푸는 마음에서 복은 지어진다. 부처님의 밝은 법이 중생계에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복 짓는 일이다.
4. 재앙을 막아야 복이 새 나가지 않는다.
깨진 그릇에서 물이 새듯, 재앙이 닥치면 복이 새 나간다. 병원비, 소송비, 화재, 사기당함. 등등이 재앙이다.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가 재앙이다. 정진해 기도하며 밝은 마음이 이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