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김장을 안 한다...
물론 친정이나 시댁에서 김장하실 때 호출당해 거드는 시늉이야 해 봤지만,
직접 배추사고, 절이고, 어쩌구는 별로 안 했다는 스토리다...
뭐 두어번이야 해 봤겠지...
무슨 깡이냐구?
남들 다 하는 걸 일부러 폼 재려구 안하는 배짱은 없고,
그저 조그만 사연이 있을 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땡까땡까 놀고 있던 그 해 여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졸업하기 직전까지 데이트 몇 번 했던 아저씨가 날 좀 한 번 보잔다구...
'eastern 아직 시집 안 갔나?' 하면서...
뭐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한끼 공짜밥도 반갑고 해서 만나러 나갔다...
세상에...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나...
잘 생겼던 그 양반 인물이 반쪽이가 되어 있었다...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어디 아프셨어요?'
'eastern 은 살이 좀 쪘군...맘이 편했던 모양이지?'
'저야 뭐 백수니까...'
한끼 공짜밥이 '날마다 전화'로 이어졌다...
이게 아니었는데...
그 양반과 다시 시작하려던 건 전혀 아니었다...
진지하게 데이트 신청하는 사람에게 매번 거절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자칫 멀쩡한 사람 우습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핑계가 필요해진 나는 학교 취업 센터를 찾아갔고,
물이 좋았던 그 시절엔 하루 만에 취직이 가능했었다...
하여간 회사 위치도 안 묻고 무조건 다니겠다 그랬으니까...
회사는 집에서 두시간 걸리는 수원 지나 병점이라는 논바닥 한 가운데 있는 기계 공장이었고,
내가 맡은 일은 천여명의 급식을 담당하는 식당이었다...
말이 그렇지 천여명(남자 99%)의 점심과 다시 삼백여명의 저녁과
야식을 책임진다는 건 그리 쉽지 않았었다...
하루에 두세 가마씩인가의 쌀이 필요했었고,
쇠고기를 오십근 사도, '소 지나간 개울물 퍼다 끓였냐?'...정도일 수 밖에 없었다...
여름에 시작한 직장 생활은 통근이 힘든 거 외에는 할 만 했었다...
일단 천여명 중 백여명이 일류 대학 출신의 엔지니어 였다는 것과,
그 중 대부분이 총각이었다는 거...
(통근이 힘들어 시간이 없으니 다들 장가를 못 가고 고시랑고시랑 노총각이 되어가고 있었음...)
그리고 대학출신 여직원은 나 하나라는 환상적인 경쟁력 덕분에,
할 만한 정도가 아니라, 생애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었다...♬
찬바람이 솔솔 불 즈음, 담당과장에게 불려 갔다...
'우리 회사도 김장해야지?'
'기임~장이요?'
그 때까지는 김치공장에서 김치를 사다가 먹었었기 때문에,
김장같은 건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대학출신 영양사를 두었으니 김장을 해야 할 거 아니냐는 요지의 말씀이 하달 되었단다...
높으신 분들이 eastern 월급 아깝다구 부려 먹자구 하면 김장아니라
간장을 담으라도 하는 수 밖에...
근데 뭘 알아야 해 먹지?
일단 납품업자들을 불러 들였다...
새우젓 도매상, 인근 배추밭 주인, 고춧가루 도매상...등등...
'육젓으로 드릴까? 추젓으로 드릴까?
(알 게 뭐야...으으, 짜...)
'태양초가 좀 비싸지만 훨 낫겄지유?'
(역시 알 게 뭐야...고춧가루면 다 고춧가루지...)
드디어 그 회사가 생긴 이래 가장 역사적인 이벤트가 시작됐다...
기존의 식당 아줌마 열 명 외에, 동네에서 손맛 자랑하는 아줌마 열 명을 더 고용했고...
배추 트럭 열 다섯대(만 포기...으윽, 10,000 포기...)
무우 두 트럭,
새우젓 세 드럼...등등의 재료가 도착했다...
그 사이 식당 옆 빈 땅엔, 기계회사(맥주 컨테이너 만드는 회사)답게 뚝딱 어쩌구 하더니,
사흘 만에 웬만한 방 크기의 창고가 지어졌다...
이중으로 된 스텐레스 컨테이너 가운데 스티로폼을 채워 넣은 김치 냉장고가 된 것이다...
(아마 이것이 한국 최초의 김치 냉장고일 껄?)
그로부터 일주일...
eastern 의 행색은...
바지 위에 고무장화, 그 위에 흰 까운, 그 위에 회사 작업복 잠바
(스몰도 너무 커서 소매 걷어서 입었고 거의 반코트 길이였음 - 남자용),
그리고 공장 직원용 털귀마개, 털장갑 위에 고무 장갑...그리고 나중엔 마스크까지...
'eastern 선상님(식당 아줌마들은 날 선생님으로 불렀었다...), 파가 모지랄 거 같은디유?'
'그래요? 더 주문할 께요...'
'선상님, 이거 갓 못 쓰겄어유...한쪽은 얼었는디유?'
'녜, 따로 놔 두세요, 다시 들여올 거예요...'
'eastern 아가씨(동네 아줌마들은 날 꼬박꼬박 아가씨라구 불렀다...), 이거 간 좀 봐 줘유...'
'으음...좀 싱거운가?'(알긴 뭘 알아? 그냥 그래 보는 거지...)
하루종일 끼니조차 못 챙기고, 이리 불려다니고, 저리 뛰고,
전화하고, 소리지르고, 급하면 들고 나르고...
그러다가 너무 힘들면 화장실가서 조금 울고...
저녁 때가 되면 손 발 얼굴은 새파랗게 얼어서,
말을 제대로 못 할 정도가 되었고...
집에 돌아가면 그대로 쓰러져 아침까지 끙끙 앓곤 했다...
월요일에 시작한 김장은 꼬박 토요일 오후까지 계속 됐고,
만포기...으윽...10,000 포기의 배추는 차곡차곡 김치냉장고로 들어갔다...
그 동안 가끔씩 싱싱한 짜투리 겉절이와 배추된장국이 급식됐고,
모든 직원들이 그 일주일간의 이벤트에 어찌나 흥분했던지, 회사 일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나한테 앙고라 장갑 사다준, 긴 속눈썹 나풀나풀하던 그 과장님,
날마다 자판기 율무차(커피는 나쁘다구) 뽑아다 주던 그 키다리 청년,
내 작업복 잠바 주머니에 포켓 난로 슬그머니 넣어주던 그 까치머리 노총각...
다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한다...)
그 다음 주에 사흘을 몸살을 앓고 결근한 다음 날,
나는 담당과장에게 사직서를 들고 갔다...
'왜 이래, eastern? 알아, 알아...힘들었던 거 안다구...
푸욱 쉬어, 더 쉬어...한 일주일 푸욱 쉬고 다시 나와...'
'아뇨, 저 결혼해요...'(결혼하면 사직해야 한다는 조항이 생각나서...)
'거짓말 말고...사귀는 사람도 없었잖아?...사장님께서 보너스도 주라구 하셨다구...'
'진짜예요...선 본 사람이 결혼하재요...'
(선 본 것도 사실이었고, 그 당시 심정으로는 아무나 붙잡고 시집가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내 사표는 그로부터 한 달 간이나 수리가 되지 않았었지만...
나는 몇 개월에 걸친 힘든 통근과, 김장사건으로 너무 몸이 안 좋아져서
어영부영 그동안에 못 찾아먹은 월차, 년차 다 찾아먹으며 쉬었다...
몸무게는 39킬로로 떨어졌고, 딱 주먹만한 얼굴이 얼마나 한심했던지,
내 사표 소식에 부모님께서 가장 기뻐하셨다...
어쨋든 나는 내가 담은 김장 한 종지도 못 먹고 나왔지만,
그 김장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몇 년 후까지도 직원들이 eastern 하구 김장하구 같은 단어인 줄 안다지 뭐예요?
hahaha...
여자로 태어나 김장 만포기...으으...10,000 포기 했으면,
평생 책임량은 다 채운 거 아닌가?
easter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