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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 주필
[미술여행=윤상길 주필]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시리즈는 시청자가 사랑하는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오직 맛으로 계급을 뒤집으려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과 이를 지키려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의 요리 계급 경쟁을 다룬, 일종의 ‘셰프 오디션’이다.
이 프로그램이 ‘언더독 효과’를 입증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치밀하게 설계된 서사와 연출의 승리에 있다. 단순히 ‘누가 더 잘 하나’가 아니라 백수저(이미 성공한 사람)와 흑수저(재야의 고수)라는 계급 구조를 도입하고, 그 계급의 파괴를 증명해서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95~1498년 사이에 그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벽화 ‘최후의 만찬’. 그 식탁 위 음식 묘사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심한 관찰력이 녹아 있다.
흑수저는 이겼을 때에만 이름을 밝힐 수 있고, 과거 무명 시절의 슬픈 사연에 집중하지 않고, 요리 그 자체 (요리 철학)에 서사를 집중시키고,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펼치면서 그 결과에 승복하는 ‘리스펙문화’를 정착시켰다는 오디션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시킨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요식업계가 활기를 띄고, ‘흑수저’에서 ‘백수저’로 변신한 셰프들의 식당에는 예약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지상파를 비롯한 여러 채널에서 요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여기에는 유명 연예인 등 셀럽들이 참여해 시청률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음식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인기인들은 저마다 요리 솜씨를 뽐내고, 요리만으로 단독 코너를 운영하기도 한다. SNS에서 유명한 유튜버들을 방송사들이 다투어 고정 멤버로 유치하는 경쟁마저 일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발간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표지와 본문.
음식은 세상 누구에게나 ‘생존’의 필수 요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흑백요리사> 같은 음식 요리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유명인, 주로 연예인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 진행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연출의 한 방편일 뿐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연예인뿐 아니라 많은 예술인이 음식과 요리에 관심을 일찍부터 기울이며, 이를 작품에 반영하고, 일반인에게 그 특별함을 전하려는 흔적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술과 요리는 ‘창의성’이라는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소책자에 담긴 그의 ‘냅킨을 접는 다양한 방법’ 스케치.꽃 모양, 궁정 모양 등 다양하다. 사진출처=‘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에서.
캔버스 대신 접시 위에 자신의 철학을 펼쳐내던 예술가들은 생각보다 많다.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사로잡았던 대표적인 화가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클로드 모네(1840~1926), 살바도르 달리(1904~1989), 앤디 워홀(1928~1987) 등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미술가로서만이 아니라 건축가, 과학자, 발명가로도 유명한 천재 예술가이다. 그뿐만 아니라 요리에도 관심이 높았다. 다 빈치는 젊은 시절 베네치아의 한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요리에 조예가 깊었다. 서른 살에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에 들어가 연회 담당자로 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시기 그는 요리에 대해 쓴 짤막한 글들을 <코덱스 로마노프Codex Romanoff>라는 소책자에 모아두었다. 19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마타주 박물관에서 발견된 이 소책자에는 주방, 조리기구, 요리법, 식이요법 등에 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심한 관찰이 담겼는데, 그 수준은 전문 요리사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 소책자는 2019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고?>란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판되었다.
모네의 ‘수련’(1916). 섬세한 색감은 그가 먹었던 화사한 요리들과도 닮아 있다.
여기에 소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 레시피 ‘스파고 만지아빌래’는 ‘먹을 수 있는 끈’이라는 뜻이다. 이게 무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신개념 국수로 오늘날 스파게티의 원조다. 그의 천재적인 식도락가의 면모는 새로운 요리법을 제안하고 기존의 조리 기구를 개선하는 면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는 ‘후추 가는 기구’, ‘마늘 빻는 기구’도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 속 식탁 위 음식 묘사에도 그의 세심한 관찰력이 녹아 있다.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지베르니 자택에서 직접 채소밭을 가꾸고 손님들을 초대해 만찬을 즐기는 미식가로 유명했다.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할 때도 재료의 품종부터 신선함과 맛까지 세밀하게 따졌다. 지베르니로 이사 갔을 때 모네 일가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정원을 가꾸고 채소밭을 가꾸는 것이었다.
모네의 미식가로의 모습은 미술사학자 클레르 주아가 요리와 식생활을 중심으로 화가 모네의 일상사, 생활사를 밀착하게 서술한 책 <모네의 그림 같은 식탁>에 자세하게 묘사된다.
이 책에서 클레르 주아는 “‘인상파’라는 말의 기원이 된 <해돋이-인상>의 작가이자 ‘수련’ 연작 등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사람인 모네. 그는 맛있지 않으면 음식이 아니며, 음식은 맛있게 먹기 위해 먹는 것이라고 여긴 진정한 식도락이었다”라고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모네는 한번 정한 식사 시간은 일종의 의식처럼 평생 지키고,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할 때도 재료의 품종부터 신선함, 맛까지 세밀하게 따졌다고 한다.
이 책 후반에는 모네의 후손인 장-마리 툴구아, 유명 셰프이자 작가인 조엘 로뷔숑의 도움을 받아 복원한 모네의 <요리 수첩>이 실려 있다. 수프, 소스, 전채 요리와 다양한 메인 요리, 후식과 티타임용 간식 그리고 잼과 저장식품까지 모네가 즐겨 먹은 음식들의 요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남긴 요리일기에는 계절별 식재료를 활용한 정갈한 프랑스 가정식 레시피가 가득하다. 모네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색감은 그가 먹었던 화사한 요리들과도 닮아 있다.
영화로 옮겨진 살바도르 달리의 요리 레시피. 사진출처=영화 ‘폭풍의 언덕’ 스틸컷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도 요리에 엄청난 진심이었던 작가다. 그는 단순히 음식을 즐기는 것을 것을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레시피와 예술철학을 담은 요리책 <갈라의 만찬>을 출간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갈라는 그보다 10살 연상의 부인이다.
하지만 이 요리책에 대해 한 평론가는 “이 책은 갈라를 위한 책이었으며 대부분의 레시피는 유명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차용했다. 음식을 먹는 기쁨을 무시하고 열량이나 따지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책을 덮어라”라고 혹평했다. 달리가 그의 무즈 갈라만을 위해 만든 책이란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한 레시피를 마련한 순정남의 기록이다”란 찬사도 뒤따랐다.
그는 일반적인 요리보다는 화려하고 기괴하며 연극적인 요리를 선호했다. 예를 들어 ‘개구리 요리를 곁들인 파이’ 같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메뉴들이 등장한다. 이 달리의 요리 이야기는 영화 <폭풍의 언덕>에서 차용됐다. 아카데미 수상 작가인 할리우드의 에머랄드 펜넬 감독은 달리의 요리책에서 튀어나온 기괴한 만찬 장면을 영화에 삽입해 화제가 됐다. 기발하고 정교한 10여 가지의 테이블 세팅이 준비된 식사 장면이다.
<폭풍의 언덕> 제작팀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의 요리책 <갈라의 만찬>에서 영감을 받아 생선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젤리, 모자를 쓴 새우, 콧수염과 귀걸이를 한 바닷가재 등 상상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요리들을 제작했다”라고 밝혔다. 그만큼 달리의 요리 레세피는 예술계 여러 곳에서 흥미의 대상, 독특한 표현으로 관심을 끌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스프 캔(통조림)’, 사진출처=뉴욕 현대미술관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음식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캠벨 수프 캔(통조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단 음식을 지독하게 좋아하는 ‘디저트 광’이었다. 그는 화려한 요리보다는 가공식품이나 사탕, 초콜릿 갚은 대중적인 맛에 집착했다.
그는 “혼자 먹는 식사가 가장 편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뉴욕의 맛집들을 탐방하며 음식의 시각적 요소를 즐겼다. 그의 팝아트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소재에는 그의 음식 사랑이 숨겨져 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네의 <오믈렛 오에르브>, 달리의 <카사노바 칵테일>,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통조림>등 음식과 요리 작품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예술이 캔버스를 넘어 식탁 위에서 완성될 때, 그 요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하나의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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