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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국방개혁안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사병 복무기간을 24개월로 환원하겠다는 입장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18개월로 단축될 육군 사병의 복무기간은 현재 21개월이다. 이미 줄어든 복무기간이 다시 늘어난다는 해괴한 발상을 이 대통령이 제지했다. 아마도 21~22개월 정도로 절충될 모양이다.
병력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군 감축의 핵심 사안이다. 이를 유보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국방예산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병력 감축을 보완하려면 첨단무기를 보강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비싼 크레인을 살 돈이 없어 일용직 노동자 수백명으로 이를 대신하겠다는 것과 같다. ‘장비를 사람으로 대신한다’는 인본주의가 결여된 발상 자체가 거북스럽다.
병력감축 등 개혁안 18년 미뤄져
1993년 국방부에 설치된 ‘21세기 연구위원회’는 2002년까지 현역 병력을 50만명으로 10만명 줄인다는 방향을 담은 국방개혁안을 구상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육군의 반발과 국방예산 부족을 핑계로 채택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국방부는 99년에 ‘국방기본정책서’를 채택하면서 2015년까지 병력을 50만명으로 감축하고 군 구조조정을 완결하겠다고 했다. 이 문서를 만들기 위해 96년부터 국방부의 자문에 10개월간 응했던 13명의 민간인 중 한 명이 바로 현재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이끌고 있는 이상우씨다. 그러나 이 문서도 예산부족과 군의 반발로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자 2005년에 국방부는 2020년까지 병력을 50만명으로 감축하고 부대 수를 대폭 줄이겠다는 ‘국방개혁 2020’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라! 지난 18년 동안 똑같은 개혁목표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금슬금 연기되는 것을.
이제 복무기간 단축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면 그 다음 순서로는 병력 감축도 유보하겠다는 안을 검토할 것이 뻔하다. 예전에도 항상 그랬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다. 예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94년부터 2010년까지 투입된 국방비 총액은 309조7726억원이다. 94년 당시의 국방예산 10조753억원은 2010년에는 29조639억원으로 명목상 288% 증액되었다. 94년에 국방부는 90년대 말이면 대북 재래전력 열세가 극복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도 ‘육군 전력은 북한 대비 70%’라는 주장이 18년 전과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국방예산을 늘리면 늘릴수록 군은 더 배고프다고 말한다. 90년대는 매년 잉여병역자원이 30만명 정도 발생했다. 의지만 있었다면 50만명으로의 감군과 18개월 이하의 복무기간 단축은 2002년에 벌써 끝났을 일이다.
부대 수 줄이면 국방예산 절감
전방에서의 열악한 주거와 복지, 빈약한 개인장구 등 사병의 복무 현실은 25년 전 필자가 군대생활할 당시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전쟁의 양상은 현대화하는데 군의 경계 및 근무는 까마득한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 일선 전투원의 생명가치가 총체적으로 경시되는 현실 자체는 309조원이 아니라 600조원을 투입해도 변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공짜나 다름없는 징집병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개혁안을 번복해온 국방부의 발언들, 장비와 전투원의 생명가치가 동일한 화폐단위로 치환되는 국방경제학을 우리 국민들은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국민에 대한 이런 모욕을 정부 당국자가 하는 이 현실 자체가 바로 개혁의 대상이 아닌가? 복무 단축이 물 건너가면서 그 다음 순서로 병력 감축도 유보하자는 말이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결국 국방개혁 안 하겠다는 말 아닌가? 이러려고 안보총괄점검회의를 만든 것인가? 96년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역사와 국민 앞에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