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채용-돈 강요” 843개社 신고 쏟아졌다
[건설현장 노조 불법행위]정부, 건설현장 노조 불법행위 조사
확성기 틀고 공사장 출입구 막는 등
잇단 횡포에 인근 주민들까지 피해
국토부 사례 분류, 수사의뢰 계획
수도권의 공공공사 현장소장 정모 씨(52)는 지난해 8월 한국노동조합총연먕(한노총)의 강요로 발전기금 협약서(위 사진)를 작성하고 500만 원을 내놓았다. 또 다른 수도권 공공공사 현장소장인 박모 씨(43)는 착공 직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한노총 소속 건설노조 20여 곳으로부터 채용 압박을 받았다. 아래 사진은 박 씨가 노조로부터 받은 명함들로 찾아온 사람들은 노조 조직부장, 교섭부장, 지부장 등 다양했다.
“경찰이 건설노조 탄압한다. 현장을 장악하자! 장악하자!”
12일 오전 7시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건설노동조합 노조원 150여 명이 외치는 소리가 현장에 울려 퍼졌다. 이들은 30분 넘게 이어진 ‘릴레이 발언’을 마치고 나서야 느긋하게 작업장으로 향했다. 비(非)노조원 50여 명이 체조만 하고 일찌감치 현장에 투입된 것과 대조적이었다. 한동안 노조원들을 바라보던 현장소장 A 씨는 체념한 듯 “(민노총 소속 근로자들은) 매일 다른 근로자들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작업을 시작한다”며 “작업 효율이 비노조원의 70%밖에 안 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착공한 이 현장은 공사 시작 전부터 노조의 채용 강요와 업무방해에 시달리고 있다. 민노총이 현장을 장악한 뒤로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 간부가 매일 찾아와 한노총 노조원도 채용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동트기 전인 오전 5시부터 확성기를 틀어놓거나 덤프트럭으로 출입구를 막기도 했다. A 씨는 “노조원 10명이 사무실에 쳐들어와 시위한다며 짜장면을 시켜 먹었는데 경찰을 불러도 제지가 안 됐었다”며 “요구를 안 들어주면 피말리도록 괴롭힘을 당하니 결국은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국 건설현장이 건설노조의 불법 집회와 파업, 업무방해, 채용 강요 등 불법행위에 시름을 앓고 있다. 시행사나 시공사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나 입주자 등 시민들에게까지 피해가 확산되며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커지고 있다. 만연해진 건설 현장 불법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대한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등 건설 관련 단체 7곳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13일까지 약 2주간 국토교통부 요청으로 ‘건설현장 불법행위 긴급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총 843개 업체가 피해를 신고했다. 협회 관계자는 “노조 보복이 두려워 대부분 회사는 피해 접수를 꺼린다”며 “그런데도 2주 만에 800곳 넘는 회사에서 피해를 신고한 건 그만큼 많은 현장에서 불법 행위가 만연해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주요 피해 유형은 △채용 강요 △노조 장비 사용 강요 △타워크레인 기사 월례비 지급 △노조 발전기금, 전임비 요구 △공사현장 출입 방해 및 현장 점거 △레미콘 기사 집단 운송 거부 등이다. 국토부는 피해 사례를 분류해 수사 의뢰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노조, 급행비 600만원-발전금 500만원 요구… 거절땐 공사 방해”
기업들 “노조가 채용-돈 강요”… 현장 1곳에 노조 수십곳 채용 압박
“돈 줄때까지 지자체에 민원 제기”
사진 찍고 드론 띄워 꼬투리 잡기도
건설사들 “노조 두려워 신고도 못해”
#1. 경북의 1300채 규모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골조공사를 총괄하는 한 철근콘크리트 업체는 지난해 타워크레인 기사 5명에게 월급과 별도로 총 6억 원을 지급했다. ‘월례비’ 명목으로 1명당 1억2000만 원씩 준 것.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하청업체에서 받는 월급 외 돈이다. 현장 근로자들에게는 일명 ‘급행비’로 통한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월례비를 추가로 쥐여줘야 작업을 빠르게 해줘서 붙은 이름으로 엄연히 불법이다. 회사 현장소장 김모 씨(58)는 “월례비는 기본 매달 600만 원씩 지급하고 시간 외 추가 작업은 시간당 10만 원씩 더 지급해야 한다”며 “기사들이 작업을 천천히 하면 나머지 현장 노동자들이 일을 못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2. “노조 발전 기금을 내지 않으면 공사 못 한다.” 수도권의 한 공공공사 현장소장인 정모 씨(52)는 지난해 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 관계자로부터 으름장을 들어야 했다. 해당 본부가 담당하는 지역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발전 기금 명목으로 돈을 달라는 취지였다. 정 씨는 “조직 폭력배들이 관리하는 지역의 술집을 돌며 보호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돈을 줄 때까지 지자체에 공사장 관련 민원을 제기하며 공사를 방해하겠다고 해서 협약서를 쓰고 500만 원을 줬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 불법행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노조의 불법행위가 이어져 왔지만 현장에서는 노조의 보복과 반발을 의식해 신고조차 꺼려 왔다. 발주처나 시공사들이 당장 공사 지연과 비용 증가를 우려해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요구를 수락하고, 경찰이나 지자체도 소극적인 대응에 그치면서 건설 현장에서는 ‘불법이 관행’이 되고 있다.
● 채용·노조 전임비 등 강요… 불법이 관행으로
수도권 공공공사 현장소장을 2020년부터 맡고 있는 박모 씨(43)는 공사 초기 지반 공사를 마무리할 즈음부터 한노총으로부터 채용 압박을 받아 왔다. 박 씨는 한노총뿐만 아니라 수십 곳에 달하는 노조에서 명함을 주면서 비슷한 요구를 해오자 이를 모두 거절했다. 결국 노조의 업무방해로 계약상 공사 기간을 지키지 못했다. 박 씨는 “노조가 고용노동부나 지자체에 현장 안전 관리가 허술하다는 등의 민원을 수없이 제기하며 공사를 방해해 발주처와 계약한 공사 기간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국토교통부의 긴급 실태조사 결과 가장 많았던 피해 유형은 이 같은 채용 강요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나 한노총이 ‘소속 노조원을 채용해 달라’고 건설 현장에서 강요·협박하는 것. 수백만 원에 이르는 노조 전임비나 발전기금 요구도 당연시되고 있었다. 노조 전임비는 노사 협상 등을 전담하는 전임자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회사가 지급하는 비용. 건설현장에서는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 전임자가 없는 등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노조가 전임비를 요구하며 돈을 받아냈다.
● ‘사진 찍고 드론 띄우고’ 집요해진 노조
건설사가 노조원 채용이나 전임비 요구 등을 거절하면 불법 시위나 업무 방해가 시작된다. 경기 과천에서 상업시설을 짓는 현장 소장은 “지난해 조합원 차량 40대를 동원해 현장 출입구를 막아버려 레미콘 타설이 막혔다”며 “현장 사무실 앞에 고음 스피커를 설치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음악을 틀어 업무를 마비시켜 버렸다”고 했다.
업무방해 행위는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건설사를 운영하는 이모 씨(58)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서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으려고 현장 사진을 찍는다. 최근에는 현장에 소형 드론을 띄우는 노조도 있었다”며 “현장 출입문을 벗어나기 직전 안전모를 벗는 모습까지 찍어 민원을 넣는다”고 했다.
태업도 빈번히 이뤄진다. 골조 건설현장에서 ‘갑(甲)’으로 통하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특히 심하다. 전국 현장마다 철근콘크리트 업체들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작업 잘 부탁한다”며 월례비 형식으로 매월 500만∼600만 원을 지급한다. 철근콘크리트 업체의 한 임원은 “월례비를 안 주면 태업을 하기 때문에 하루 일하는 양이 평상시 50% 정도로 감소한다”며 “공사기간을 못 맞추면 지연 보상금을 내야 하고, 다른 공사가 진행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본다”고 했다.
이 같은 불법행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건설사나 현장 근로자들은 보복이 무서워 피해 신고조차 꺼린다. 이번 국토부의 ‘건설현장 불법행위 피해사례 긴급 실태조사’에서 건설사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것도 ‘익명 보장이 가능하냐’였다고 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노조가 있는 대부분 현장에서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건설사들이 현장이 노출될까 봐 두려워 신고조차 못 했다”며 “이번에도 절대 익명이 보장된다고 해서 겨우 피해 사례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송진호 기자, 정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