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심(心) ․ 의(意) ․ 식(識)인가작성자문문|작성시간23.10.17|조회수66목록댓글 2글자크기 작게가글자크기 크게가
무엇이 심(心) ․ 의(意) ․ 식(識)인가
이 심(心)은 무슨 심일까요? 의(識)는, 우리가 알듯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오늘날 말하는 심장이나 머리가 생각하는 것, 이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지각과 감각은 모조리 의식 상태이며, 이것은 심이 아니라 의식작용입니다. 제6의식작용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들 신체의 안과 밖, 이 양 손을 한 번 들어 벌린 둥근 범위, 즉 뇌의 생각이나 심리의 지각과 감각을 포괄한, 과학에서 아는 인체의 백광[光圈]이 도달하는 전감(電感) 백광의 범위는 모조리 의식의 범위로서 제6의식 범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심리학이 말하는 잠재의식은 제8아뢰야식이 아니라 제6의식입니다. 여러분은 특별히 주의하기 바랍니다! 심리학에서 오늘날 말하는 잠재의식을 불법의 제8아뢰야식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당신은 외할머니집 안으로 잘못 들어가 버린 것으로, 틀려도 크게 틀린 겁니다! 제가 보니 허다한 새로운 불학 문장들이 그렇게 써져 있습니다. 그건 정말, 아이쿠, 심어 넣은 치아가 빠질 정도로 우스운 일입니다! 완전히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의식의 범위입니다.
이른바 심(心)의 범위는 어떨까요? 제8아뢰야식의 범위입니다. 이 범위에는 3계우주(三界宇宙), 심물일원(心物一元)의 것, 형이상의 일체(一體)를 포괄합니다. 가장 연구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제8아뢰야식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번 연구에서는 여러분이 잘 깊이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정좌하여 불법을 학습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나 염불해서 정토에 왕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이치를 통한 뒤에는 틀림없이 왕생합니다. 이상이 심(心)과 의(意)입니다.
식(識)은 무엇일까요? 비유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식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것으로만 비유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다들 큰 바다를 알고 있는데 큰 바다를 우리가 본적이 있습니까? 명광법사는 바다를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도 본 적이 없는데 당신이 본적이 있어요? 나는 나이가 당신보다 많습니다. 유식학을 배움은 바로 여기 ‘인명(因明)’에 있습니다.
우리는 바다의 물을 보았습니다. 바다는 무엇일까요? 하나의 추상적인 명사입니다. 많은 짠물이 모여 쌓여서 이루어진 것을 ‘바다[海]’라고 부릅니다. 바다는 하나의 명칭입니다. 이 이름[名]은 그런 하나의 상(相), 하나의 현상(現象)을 대표합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말하기를 배가 그 위에서 간다고 하지만 물의 표면에서 가는 것입니다. 배가 해상에서 간다고 하는 것은 인명적인 관념에서는 틀렸습니다. 문학적 관념에서는 그래도 됩니다. 그렇지요? 당신은 이해하셨지요? (남선생이 아래의 학우에게 물었다. 과학을 배우는 여러분은 당연히 이해했을 겁니다. 맞지요?) 그러므로 정말로 논리 인명적으로 말한다면 당신은 바다를 본적이 있을까요? 아무도 바다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큰 곳 하나가 물이 모여 쌓여있는 것을 본적이 있는 것을 말하기를, 우리는 인위적으로 가정하여 그것에 하나의 명사를 두어 바다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현상인데 이것은 하나의 명상(名相)일 뿐입니다.
바다에 대해서, 자, 우리는 이 하나의 명상을 이해했습니다. 이 바다의 표면에는 파도[浪]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지요? 파도위에는 물보라[浪花]가 있고 물거품[水泡]이 있음을 봅니다. 그렇지요? 이게 다 있습니다.
당신은 바다가 움직이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이 말에 당신은 감히 답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대신해서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해양학(海洋學)을 연구해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닷물의 깊은 부분은 아예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상면의 표층의 파랑이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바닷물 깊은 곳은 수위가 올라가거나 낮아지거나 않습니다. 그렇지요? 상면의 파랑이 움직이고 있는데, 이 파랑을 의(意)라고 가정합시다. 우리들의 생각은 바로 그 바닷물의 파랑인 의(意)입니다. 해수의 상면의, 파도[波浪] 상면의 작은 물보라를 식(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비유인데, 이것은 인명에서 ‘종인유(宗因喻)’의 유(喻)의 작용입니다. 나의 지금 이런 말이, 인명을 배우고 논리를 배우는 사람은 하나의 비유라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비유로써 이를 설명하여 식(識), 심의식(心意識)의 식(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심소조(唯心所造), 유식소생(唯識所生)! 이것은 식(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유심(唯心)은 이 물질경계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계의 바람이 식의 파도에 분다[境風吹識浪]’고 하는데, 어떻게 이 경계를 조성할까요? 어떻게 물질을 조성할까요? 우리들 오늘날 과학은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당신이 바닷물의 한 물보라를 보면 천연적으로 구성된 일종의 돌이 있는데 여러분은 본적이 있습니까?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모두 본적이 있습니다.
해수 상면인 해상은 파도[浪]로서 첫 겹[第一重]인 이것을 우리는 ‘의(意)’라고 비유합니다. 파도 상면에는 물보라가 있고 또 작은 물보라가 있는데, 이것을 식(識)으로 비유합니다.
(남회근 저작, 인터넷상의『유식과 중관』에서 뽑아 번역하였음. 심의식의 차이, 지성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대학강의)』제3편을 읽어보기 바람/역주)
출처:https://m.cafe.daum.net/youmawon/88iH/1068
첫댓글 심의식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 카페 불자님들은 남선생님의 가르침을 깊이 사유해 보시길
2번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습니다. 패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오온, 색수상행식에서의 식과 여기서 말하는 식이 같은 개념인지요?
부끄럽지만 이 책, 저 책을 읽어봐도 저는 아직 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뚜렷하게 설명할 수가 없군요. 식의 대상인 '법'과 오근인 '의'의 개념도 모호하고요.
그냥막연하게 그런 의미겠구나 하는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