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한국 전래 동화든, 외국의 동화든 동화책을 읽고서 상상력을 한껏 발휘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오르거나,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라본 것이든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이나 손가락 사이로 물이 새는 허망함을 한 두 번은 겪어봤을 것이다 모든 동화 한 편 한편이 샛별 같고 주옥같지만 그 동화들 중에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는 안데르센의 힘든 일생과 더불어 아직도 나에게 그때와 다름없이 석류를 깨여 물은 것처럼 아릿한 감동을 주고 있다.
백조의 새끼이지만 오리새끼들 속에서 자랐으므로 색깔이 다르다고 따돌림 당하고, 물살 가르는 것이 거칠지 못하다 하여 핀잔을 듣는 등 요즘말로 말하면 하향 평준화하지 않는 것이요 동양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닭 무리 속의 학이라 이유 없이 질시와 차별을 받는다. 그러나 나중 성장하여 그렇게 같아지고 싶어 했던 오리가 아니라 저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백조임을 발견하고 기쁨에 넘쳐 힘찬 비상을 한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봐도 상큼하며. 인간사회에 여러 가지 함의(含意)를 던져주고 있다.
저 「아라비안나이트」가 처음 어른들을 위해서 씌어 진 것처럼 이것도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여겨질 수 있으며, 이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작가인 대학생이 존경하는 교수의 딸인 어린 계집아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동화로 한 것처럼 단순히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것 이상으로 안데르센 본인을 묘사한 자전적인 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동화가 「뜻은 높고 마음은 깨끗하며 정신이 고결한 사람」이 불운하여 세상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것을 그린 것이며, 작가가 자신에 국한했든 또는 자기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들을 상정했든 현실에서 깨지고 내 쫓김 받는 사람들을-마치 백락(伯樂)이 소금마차를 끌고 있는 천리마를 보고 가엾고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뒤범벅이 되어 웃옷을 벗어 말의 등을 덮어준 것처럼-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쓴 글이라고 이해한다.
작가는 천성이 온후하고 천품이 훌륭한 사람은 일시적으로 어렵고 고생을 하여도 언젠가는 다시 존귀한 몸이 되고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며, 감추고 숨으려 해도 주머니속의 못 같아 결국에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환기하고 있다. 또 근본이 있기 때문에 천박해 지거나 우매해 질수도 없거니와 다중과 범용이 아니기 때문에 고독한 소수일 수밖에 없다는 고백을 미학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미운 오리새끼는 깨끗함과 반듯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동화에서처럼 질시와 박해를 받는다.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함부로 하지 않으며 때로는 고통도 피하지 않는다. 세상에 뜻을 펴고 싶지만 재능을 알아주는 이가 적어 안광(眼光)을 감출 수밖에 없고 목소리는 짐짓 꾸며야 하며 포부는 가슴에 묻어놔야 한다. 일당백(一當百)의 용사요 붉은 피를 흘리듯 땀을 흘리는 준마지만 기예를 펼칠 수 없어 오리가 되어 닭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그 뜻은 황금으로 뺏으려 하나 뺏을 수 없고. 미녀로 꺾으려 하나 꺾을 수가 없다.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만 갈듯이 큰역경과 대환란에서 잉태되며. 기개 있는 인사나 기품 있는 인물만이 알아보고 상대할 수 있다. 역사에서 점지되거나 안배된 백조는 많았지만 굳이 미운 오리새끼를 들라하면, 나는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崔致遠)과 중국 홍군사령관 주더(朱德)를 손꼽고 싶다.
고운(孤雲) 선생은 호가 암시하듯이 골품이 6두품 출신으로써 조국 신라에서는 뜻을 못 펴다가 당나라에서 활약하고 해운대에서 소요하고 가야산에 은거하였다. 그러나 그 지향은 오늘도 이어져 「형이상학」은 해와 달 같이 함께 한다고 자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철저한 공산주의자라서 알레르기 생기는 주더(朱德)는 「모든 것을 다 쥐었는데, 독서를 함으로서 처참하게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자신의 말처럼 독서가 인생행로를 바꾸었고, 인간해방과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온몸으로 항거하였다.
우리는 누구나 하늘의 자손이고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들이지만 도덕적 기상이나 귀족정신, 장부(여장부.대장부)의 늠름함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무기가 용이 되고 잉어가 용이 되는 것은 임자기 있고 인연이 있어야 하지만 미운 오리새끼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내가 될 수가 있고 당신이 될 수 있고 지하철 안 건너편의 마주 앉은 어느 사람이거나 버스안의 서서 가는 어느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미운 오리새끼들을 만나지만 나와 같지 않다하여 몰라보고 지나친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오리새끼나 그 부류인줄 알았는데, 점차 살면서 미운 오리새끼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어쩌나, 백조는 오리와 달라 왕후의 궁전에 자란 듯 품위와 예의를 갖춰야 되고 조선의 선비와 같은 청아한 기상을 지녀야 한다는데. 이는 기품 있는 사회와 품위 있는 지도자에 의해 만개되며 무르익는다 한다. 날씨도 때 이르게 덥고. 대통령선거도 때 이르게 뜨겁다. 이때 우리 국민들을 백조로 대우하는 대선주자가 있다면 견마지로(犬馬之勞)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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