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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IN hours of the suicide bombings in London last summer, Julie Nicholson knew, but could not at first accept, that her 24-year-old daughter Jenny had "gone from me" — a victim of the attack.
지난 여름 런던에서 자살 폭탄이 터진 그 시간대에 있었다는 것을 줄리에 니콜슨은 알았으나 처음에는 공격의 희생자로 그녀의 25세 딸이 내곁을 떠나 같다는 것을 처음에는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It was the beginning of an unwanted journey, filled with rage and grief and questions — achingly familiar to those whose close relatives died in the United States on Sept. 11, 2001, or in the Madrid train bombings of 2004. But for Mrs. Nicholson, there was a tortured overlay: less than two years before the attacks on July 7, 2005, which killed 56 people including her daughter and four bombers, she had become a parish priest.
내딸의 죽음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죽은 혹은 2004년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열차 폭탄으로 죽은 가까운 친척들이 느꼈던 가슴아픈 사연과 같은 분노와 슬픔과 의문으로 가득찬 원치 않은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니콜슨씨는 딸과 4명의 폭탄 자살자를 포함 56명이 사망한 2005년 7월 7일 공격이 있기전 2년정도 고통에 시달리다 그녀는 교구 목사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Confronted with an event that shook her world to its foundations, she found she could no longer reconcile her priestly function with her refusal to forgive the killers. "I did not feel there was any integrity in standing in front of a group of people week by week leading them through words of peace, reconciliation and forgiveness when I felt so distanced from those things myself," she said.
그녀의 밑바탕을 흔든 사건을 격으며 살인자들에 대한 용서를 거부하며 그의 목사직을 더 이상 수행할수 없었다. 나는 내스스로 그런 거리감을 느꼈을때 평화, 화해, 용서라는 말로 그들을 이끌며 매주 사람들에 서 있어야 할 어떤 고결함을 느낄수가 없었읍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Earlier this year, she resigned as the parish priest of St. Aidan's in Bristol, in western England. Torn by the collision of faith and rage, she has not officiated at a church service since her daughter died, and although she has not quit the priesthood, her faith is nuanced by doubt. Remarkably, she has steeled herself to utter the name of the bomber who killed himself and six passengers in the second car of a Circle Line subway train 10 seconds after it left Edgware Road station.
올해처 그녀는 영국 서부, 브리스털의 성 아담의 교구 목사직을 사직하였다. 성직자로서의 신앙과 분노의 충돌에 눈물지으며 그녀는 딸이 죽은 이후에 교회의 예배를 집전할수 없었고 목사직을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신앙심은 왜일까라는 의문으로 흔들렸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자폭하며 에드웨어 로스 역을 출발한 10초후에 순환전 지하철 2번째 열차의 6명의 승객을 죽엿던 자폭자의 이름을 완전이 자신에게 새겼읍니다
"I do not say it in bitterness or out of a desire for revenge," Mrs. Nicholson said in an interview on the hard wooden pews of St. Paul's Church in the Clifton area of Bristol, where she now teaches drama to young people. "It's about naming the deed and continuing to live with the reality.
나는 마음이 아프다거나 복수하겠다고 말하지 않읍니다라고 니콜슨씨는 지금 젊은이들에게 드라마를 갈치고 있는 브시스톨 지역의 클립톤에 있는 성 바올 교회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정말 그 이름으로 실 생활에서 살아가겠읍니다
"Retaining the name of Mohammad Sidique Khan is a constant reminder that I have a choice and responsibility in my life. He chose on that day to strap a bomb to his body and go among a group of people randomly and bring about death, including his own. I can't change that fact."
모하메드 시디크 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내인생에 책임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억하겠습니다. 칸은 그날을 골라 몸에 폭탄을 두르고 군중들사이로 가 그자신을 포함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그때 있었던 그 사실을 어떻게 돌이킬수가 있을 까요
SHE was interviewed at a time when St. Paul's had been transformed from church to theater for a production of "The Magician's Nephew," based on the 1955 book by C. S. Lewis in the Narnia series. Mrs. Nicholson was the artistic director. In the silence her words rose toward a vaulted ceiling overlooked by a huge, golden mask of a lion's head — Aslan, in the Narnia tales — buttressed by theatrical spotlights.
그녀는 나르니아 시리즈로 루이스 원작 1955년도 책을 원작으로 매지션의 조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교회를 떠나 극장을 선택했던 그 시간에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니콜슨은 미술감독이었습니다. 침묵을 지키다 극장용 스포트라이트로 받혀진 나르니아 이야기중 올산장면의 라이언헤드의 거대한 황금 마스크를 처다보며 볼티드 천장을 처다보며 말을 높였다
Her words, though, seemed to evoke a different work by Mr. Lewis — "A Grief Observed," published in 1961 after the death of his wife, the American poet Helen Joy Davidman — at a time when his faith was shaken into the suggestion that God "hurts us beyond our worst fears and beyond all we can imagine."
그의 말에서 우리의 공포를 초월하고 우리의 모든 생각을 초월하여 신이 우리에게 상처를 안긴다는 의심으로 신앙심이 흔들렸던 그때 미국 시인 헬렌 조이 대이비드만 즉 그의 부인이 죽은후 1961년에 출판된 슬픔을 가지고라는 작품을 만든 루이스씨의 또다fms 작품을 보는것 같았다
As Mrs. Nicholson spoke, she gave the impression of someone who has wandered in darkly remote and difficult spiritual terrain, questing for answers that remain elusive.
"July 7 was an emotional earthquake," she said. "In an earthquake, everything is shaken to the core. The foundations are split and everything is exposed and you can't start rebuilding until you have sifted through the rubble and the muddle. Issues of faith are part of that rubble and muddle."
니콜슨씨는 깊은 외딴 어두운곳을 해매고 어려운 정신 세계와 알수 없는 대답을 얻으려 하며 방황하는 어떤 사람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7월 7일 정서적인 지진이었다고 그녀는 말햇다. 마음의 지진이 모든 것을 흔들어 노았다고 말했다. 사람의 기본을 산산조각내고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들어 나고 여러분들은 잡석이 뒤섞인 곳에서 새로 태어나기 전에는 다시 마음 잡을수가 없을 것입니다
One thing has become clear, and not only in this interview but also in appearances that Mrs. Nicholson has made on BBC television presenting a documentary about parents severed from their children by violent death or incurable illness. "In terms of forgiveness for this act, I don't think it's incumbent on me to offer it," she said. "It's not mine to give.
한가지는 분명해 졌습니다, 오늘 인터뷰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폭력적인 죽음과 치유할수 없는 병을 가진 어린이들을 가족들이 돕는 비비씨 텔레비전이 방영한 다큐멘타리에서 분명해 진것이 있습니다. 이런 행동에 용서라는 말을 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는 생각하지 않읍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내가 줄것이 아무것도 없읍니다
"I think forgiveness is a cheap grace," she continued, arguing that easy forgiveness may simply hide the underlying causes of conflict and pain. "We have to be careful that we are not continually putting layer after layer on a deep and festering wound. I felt it after 9/11, and I feel it now."
나는 용서라는 것은 값싼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계속 말하기를 쉽게 용서한다는 것은 갈등과 고통의 내재적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깊고 곪아터진 상처를 켜켜이 계속 쌓아 두어서는 안될것입니다. 나는 911테러후에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읍니다
In the BBC documentary, broadcast in mid-April, she allowed the cameras to follow her to the Edgware Road subway station at the mouth of the tunnel where her daughter died. "If I stand looking at the tunnel in Edgware Road, that's when I feel consumed with rage and bitterness," she said. "But we should be outraged at what's going on in the world. Anger is not negative. Why shouldn't I be outraged? Why shouldn't I be bitter and angry?"
4월 중순의 비비씨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그녀는 딸이 죽은 에드가웨어 로드 지하철역 터널입구에서 그녀를 따르는 방송을 허용했다. 내가 에드가 로드 터널을 바라보며 서 있을때 나는 분노와 가슴아픔에 사로잡힌것을 느낌니다라고 그녀는 말햇다. 하지만 그녀는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노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왜 우리가 분노해서는 않된단 말입니까. 왜 내가 가슴아파하고 분노하면 않된단 말입니까?
MRS. NICHOLSON'S life seems to have been something of a quest, but Christianity has always been part of it. At age 12, she said, she visited a church in the High Anglican tradition that uses some Roman Catholic ceremony. A choir was practicing. The perfume of incense lingered. "I found it a transcending experience."
니콜슨씨는 어떤 진리를 찾고자 했던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언재나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기독교의 한 부분이었다. 12세때 그녀는 로만 카톨릭 의식을 사용하는 전통이 있는 하이앵클리칸에 있는 교회를 방문했다. 성가대가 연습중이었다. 냄새나는 향이 가득찾다. 나는 뿅가는 체험을 했다
Later, she trained as a nurse and became a health administrator. She reared two daughters, Jenny and Lizzie, and a son, Thomas, then returned to college to study English and drama. In the 1990's she taught high school English, and at the age of 46, in 2000, she was ordained in Bristol Cathedral. By January 2004, she had her own parish to tend.
나중에 그녀는 간호사 교육을 받아 건강 관리사가 되었다. 그녀는 두딸인 제니와 리제와 외아들인 토마스를 낳아 길렀고 그때 영어와 드라마를 배우기 위해 대학에 돌아왔다. 1990년대 그녀는 고등학교 영어를 갈쳤고 46세인 2000년에는 브리스탈 성당에서 성직을 제수 받았다. 2004년 1월 그녀는 봉직할 교구를 사사 받았다
But nothing can prepare someone for events like 9/11 or 7/7.
"It was like slowly falling dominoes, and each was more doom-laden than the last," she said of the hours in which hope and denial gave way to the pain of reality.
하지만 911과77테러에 아무것도 도움을 줄수가 없었다. 그것은 실패한 도미노현상이었고 매번 마지막이 아니라 더욱더 운명을 짊어 졌었다고 그녀는 희망과 부정이 현실생활의 고통으로 교차하는 그 시간에 말했다
It is tempting to ask a priest where God was at that moment, but she had never believed in a God so omnipotent as to control all events. "I have never ceased to believe in the possibility of the existence of God, and I have never ceased to be a priest," she said.
신이 매순간 함께하고 있다는 곳을 찾는것은 매력이지만 그녀는 진이 모든 사건을 다루는 전지전능한 존재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결코 신의 존재 가능성을 언재나 믿고 나는 목회자가 꼭 되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But for her the divine being is far from the schoolbook image of "a white man with a white beard in some other dimension," she said. "The great gift of Christianity is a structure to explore that great mystery that for convenience's sake we call God."
하지만 그녀는 신성이란 고차원적인 하얀 수염을 가진 하얀 사람으로 그려니는 교과서적 이미지가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선물은 우리가 우리의 편의를 추구하는 신을 부르기 위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계속 공부하는 것입니다
"There was a moment when I thought, where is faith?" she said. "Is that helping me in this moment? For a number of months it was more a hindrance than a help." Yet signs and symbols did matter.
도대체 신앙심이 어디에 있는것이야 가로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신앙이 이순간 나를 돕고 있는 것일까? 신이란 도움보다 장애를 더 많이 주고 있다고 몇 달동안 생각한 적이 잇었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상징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For her BBC documentary, the subway company, London Underground, agreed to halt a train briefly at the place where her daughter died. The moment was entwined with her musings on the Pietà — the Christian vision of Mary cradling the broken Jesus after his crucifixion. After the bombing, she said, "physically holding and cradling" her daughter was impossible. But she had wanted for months to enter the tunnel "and just stand a moment at that place where my daughter's life ended."
비비씨 다큐멘터리가 촬영되는 동안 런던 지하철 회사는 그녀의 딸이 죽었던 그장소의 기차운행을 잠시 중단했다. 그 장면은 십자가에 못박힌 비통해하는 마리의 음성 크리스천 버전 피에타로 그녀의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짜여 졌다. 폭탄공격 사고후 그녀는 딸의 신체를 보듬고, 얼르고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몇 달동안 터널을 가보기를 원했었고 딸의 영혼이 마지막 머물렀던 그 장소 그 순간에 그냥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We don't expect to outlive our children," she said. "Most parents would want, if they could, to be with their children at that moment and care for them into death as they did in life. I feel that going into the tunnel and just pausing for a moment was as close as I could be to that moment where her life ended in that place.
"I feel that on a spiritual and emotional level I have cradled her, I have expressed what I needed to express of the Pietà."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먼져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읍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모든 부모들은 할수만 있다면 그 순간에 그녀의 자식들과 함께 했기를 바라고 그들이 이승에서 했던 것처럼 자식이 죽었을때도 죽은 자식을 보듬어 주고 싶어 합니다. 나는 터널로 가 그곳에서 내딸의 생명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그곳에 가깝게 다가가 잠시 멈춰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읍니다
--------소쓰:뉴욕 타임즈---------
achingly(에이킹리):가슴아픈, reconcile:화해하다,만족하다, integrity:정직,성실,고결함,
faith:신앙,신념, officiate:사회를 보다, 예배를 집전하다, quit:그만두다, utter:전적인,철저한
Retain:보류하다, 유지하다, strap:가죽끈,혁대,두르다, elusive:알수없는,split:조각나다 째지다,sift:체질하다, muddle:뒤석이다 underlying:밑에 있는, fester:곪다,linger:오래머물다
transcend:초월하다, ordain:성직을 주다, tend:이바지하다, entwine: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