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까? 이 세상에서 교육을 받고 그 사회에 적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와 법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민 초에는 이를 몰라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지요. 알고 보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구사하면서 이런 삶의 방식을 배우고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법도 이런 방식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5-6 )
어떻게 보면 이 말씀이 무엇이 천국이고 지옥인지를 말하는 것 같네요. 나무에 붙은 가지는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있는 삶이고 떨어져 나간 가지는 불에 던져지는 뜨거운 삶이네요.
그래서 내가 붙어 있는 가지가 되고 싶어요. 그럼 어떻게 내가 나무에 붙어 있을까? 노력하면 되는가?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지 네가 내게 붙어 있으려고 노력해 봐? 이런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식물과 나무는 삼투압의 원리로 식물이 뿌리로 부터 수분을 얻고 그 영양분을 통해 살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것이 생존의 원리이다. 그런데 이렇게 살지 않으면서 그냥 줄기에 붙어 있어야만 천국 가는거야! 이렇게 이해하면 지식으로 살고자 하는꼴이 되고 만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를 적용한다며 교회에 붙어 살면 천국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가지가 그 본줄기에 붙어 있어요. 그렇게 가지가 자연스럽게 태어나게 되어 있어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뿌리로 부터는 영양분을 받아서 시들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것이 삶 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나무의 가지가 아니면서 그 나무에 붙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서 내가 만약 저 가지 라면 줄기에 붙어서 살아야 돼!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가지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새로 태어나 살아라!, 그러면 그리스도로 살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삼투압으로 살고 그로 열매 맺는 가지의 원리 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가정을 해서 ‘십자가를 믿으면 사는 거야!’ 하며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그 효과를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내가 그 가지로 태어나서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 가지의 삶이 무엇인지? 하늘의 삶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무에 붙어서 어떤 영양분을 받아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만으로 오케이! 하게 됩니다. 믿으면 천국 간다는 식인거죠.
그래서 삼투압으로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알게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모르던 그 삼투압으로 영양분을 받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어야 어떻게 생명이 유지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과거의 나로 부터의 단절과 죽음이고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고 십자가로 사는 것입니다.
이미 나는 밖에 버리워져 있는 가지로써 살고 있습니다. 말라 비뜰어져서 불쏘시게감으로 기다리고 있는 상태 입니다. 이를 인식하게 되면 그 때 새로운 삶이 보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