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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 김애란
내가 씨앗보다 작은 자궁을 가진 태아였을 때. 나는 내 안의 그 작은 어둠이 무서워 자주 울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주 작았던 시절- 조글조글한 주름과, 작고 빨리 뛰는 심장을 가지고 있었던 때 말이다. 그때 나의 몸은 말을 몰라서 어제도 내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
말을 모르는 몸뚱이가, 세상에 편지처럼 도착한 것을 알려준 것은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나를 어느 반지하 방에서 혼자 낳았다. 여름날이었고, 사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빳빳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윗도리만 입은 채 방 안에서 버둥거리던 어머니는 잡을 손이 없어 가위를 쥐었다. 창밖으로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머니는 가위로 방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 어머니는 가위로 자기 목숨을 찍는 대신 내 탯줄을 잘라주었다. 막 세상 밖으로 나온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심장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적 속에서 귀가 먹는 줄 알았다.
태어나 처음 본 빛은 딱 창문 크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아버지가 어디 계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어딘가에 계셨지만 그곳이 여기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너무 늦게 오시거나 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펄떡이는 심장을 맞댄 채 꼭 껴안고 있었다. 어머니는, 발가벗은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을 큰 손으로 몇 번이나 쓸어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잠이 들었다. 나는 외로워졌다. 그러나 세상은 조용했고, 햇빛은 헤어진 애인이 보내온 예의 바른 편지처럼 여전히 저쪽 방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예의 바름, 그것은 태어나 내가 세상에 대해 느낀 최초의 불쾌였다. 나는 주머니가 없어 주먹을 쥐었다.
내겐 아버지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무릎을 높이 들고 뛰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규칙을 엄수하는 관리의 얼굴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내 상상력의 아버지는 십수 년째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데, 그 표정과 자세는 늘 변함이 없다. 아버진 벌게진 얼굴 위로 황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아버지 얼굴 위에 일부러 붙여놓은 못 그린 그림 같다.
나는 아버지뿐 아니라, 운동 중인 모든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네 공원에서 소나무에 대고 배치기를 하는 아저씨나, 손뼉을 치며 걷는 아주머니들을 볼 때마다 내가 괜히 부끄러워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진지했고 열성적이었다. 마치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조금씩 우스워져야 된다는 듯이.
나는 아버지가 뛰는 장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내게 아버지는 항상 달리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오래전 어머니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때문에 생긴 환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머니는 가랑이 사이에 빨래판을 놓고, 거품이 무럭 나는 빨랫감을 힘차게 문지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빨래를 빠는 동안 연신 씩씩거렸기 때문에 화난 사람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한번도 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나를 낳았을 때도 - 뛰어오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양반이라고 불렀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보라고 생각했다. 만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오늘까지만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아버지는 항상 그 다음날 오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늦게 왔지만, 항상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머니는 이 주눅든 지각생의 눈빛 때문에 항상 먼저 농담을 건네던 여자였다. 아버지는 변명을 하지도, 큰소리를 치지도 않았다. 그저 마른 입술과 새까매진 얼굴을 가지고 ‘왔을’ 뿐이다. 상상하건대, 어쩌면 아버지는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안해서 못 오는 사람, 미안해서 자꾸 더 미안해해야 되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 나중에는 너무 미안해진 나머지, 못난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고 싶었을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잘못하고도 다른 사람이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진짜 나쁜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은, 나쁘면서 불쌍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것은 몇몇 ‘사실’들 뿐이다. 사실 만큼 그 사람을 잘 말해주는 것이 없다면, 아버지는 분명 나쁜 사람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버지는 내가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렇게 느렸던 아버지가 단 한 번, 세상을 다해 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돈을 벌겠다고 상경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서울에 온 뒤 가구공장에 취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같은 사람이 돈을 벌겠다고 고향을 떠날 생각을 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쪽으로 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간간이 어머니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항상 더 많이 쓰는 쪽이 아버지였는데, 어머니가 혼자 상경한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의 셋방에 찾아왔다. 늘 사이가 나빴던 외할아버지와 크게 싸운 뒤 감행한 가출이었다. 어머니는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 하나만 가지고 미로같이 구불구불한 길을 더듬어 아버지가 세든 방을 찾아냈다. 갈 곳도 없고 며칠만 있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요량이 같을 리는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올라온 그날부터 어머니에게 끝없는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피에 좋아하는 처녀와 한 방에서 잤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버지의 애원과 짜증과 허세는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아버지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그날만은 ‘평생 이남자의 하중을 견디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결?! ? 어머니는 아버지를 허락했다. 단, 지금 당장 피임약을 사와야만 한이불을 덮겠다는 단서를 달고.
아버지가 뛴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부터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오줌 마려운 듯 벌게진 얼굴로 아버지는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고, 아버지를 보고 놀란 개가 짖자 온 동네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뛰고 또 뛰었다. 상기된 얼굴로 장발을 휘날리며, 계단을 넘고, 어둠을 가르며 바람보다 빨리. 아버지는 허겁지겁 뛰어가다 연탄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온몸에 하얀 재를 뒤집어쓴 아버지는 그 즉시 벌떡 일어나, 지금 달려가고 있는 곳이 훗날 어디를 향하게 될지도 모른 채 죽어라 뛰어갔다.
..... 아버지 생애, 그때만큼 빨리 뛰어본 적이 있을까?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안기 위해 달동네를 단숨에 뛰어 내려가는 상상을 할 때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들리지 않았을 ‘아빠! 보기보다 잘 뛰네?!’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그날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피임약의 복용법도 자세히 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얀 재를 뒤집어쓰고 온 아버지에게 ‘몇 알씩 먹는 게 맞는지’ 물었고, 아버지는 ‘두 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머니는 그 후 몇 달 간 피임약을 하루 두 알씩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고 한다. 그 몇 달간 하늘이 노랗고 구역질이 나는 게 어쩐지 이상했다고. 그랬던 어머니가 약사에게 물어 피임약을 한 알로 줄이고, 양동이에 언 물을 깨트려 달빛으로 뒷물을 하고,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며 약 먹는 걸 까먹기도 했던 어느 날, 어머니는 임신을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고 얼굴이 점점 하얘지다가, 아버지가 되기 전날 집을 나가 그 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리기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한다. 달리기는 심폐계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신운동으로, 걷기와 뛰기의 복합된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달리기는 특별한 기술이나 고도의 스피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장소나 기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리기는 강한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다른 것을 잘 모르겠다. 다만 나를 떠난 사람이, 나를 떠난 곳에서 오래 달리고 있는 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갔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전쟁터에 나간 것도, 다른 아내를 원한 것도, 어느 나라 사막에 송유관을 묻으러 간 것도 아니라고. 다만 집을 나갈 때 시계는 챙겨가지 않은 모양이라고.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나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지금 막 후쿠오카를 지나고, 보르네오 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아버지가 지금 막 스핑크스의 왼쪽 발등을 돌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백십 번째 화장실에 들러, 이베리아반도의 과다라마 산맥을 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을 잘 식별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야광바지가 언제나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뛴다. 물론 아무도 박수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올리곤 했다. 그 재치라는 것이 가끔은 무지 상스럽기도 했는데, 내가 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 그랬다. 아버지가 나에게 금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주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끔 지루한 내색을 보였다. 어머니는 ‘내가 느이 아버지 얘기 몇 번이나 해준 거 알아 몰라?’ 라고 물었다. 나는 주눅이 들어 ‘알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시큰둥하게 ‘알지는 털 없는 자지가 알지고’라고 대꾸한 뒤 혼자서 마구 웃어댔다. 그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음란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큼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권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어머니는 내가 성적인 질문을 할 때에도 매번 멋지게 대답해주었다. 아버지가 없는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한번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아저씨를 보고 ‘저 아저씨는 부부관계를 어떻게 할까?’ 라고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나를 한번 흘겨보더니 ‘다리로 하냐?’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막 젖망울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도, 어머니가 보여준 것은 걱정이 아니라, 장난이었다. 어머니는 나와 팔짱을 끼는 척하면서, 팔꿈치로 내 젖가슴을 쿡쿡 찔러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지만, 그때 내 가슴에 퍼지던 가볍게 아린 느낌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 말고 어머니의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어머니와 죽을 때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외할아버지였다. 외할아버지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아버지가 없는 내게 한마디도 걸어오지 않았다는 것과, 평소 어머니 욕을 찢어지게 보고 다녔다는 것이 전부다. 나는 잘 생긴 외할아버지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외할아버지는 평소 나를 만져주지도, 혼내주지도 않았다. 어쩌면 외할아버지에게는 내가 너무 작아, 보이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날 외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양귀비를 달여 드신 후 기분이 좋아지셨을 때였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 갑자기 ‘니가 누구 딸이냐?’ 물으셨다. 나는 큰 소리로 ‘조자옥이 딸이요!’ 라고 대답했다. 외할아버지는 못 들으신 척 다기 ‘니가 누구 딸이냐?’ 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조자옥이 딸이요!’라고 소리쳤다. 외할아버지는 귀가 먹은 듯 다시 ‘잉? 니가 누구 딸이라구?’ 능청스럽게 물으셨고, 나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며 ‘조자옥이! 조자옥이 딸이요!’ 라고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나는 유년의 콘크리트 마당 ?! 효【? 언제까지고 그렇게 소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외할아버지는 그제야 ‘아아, 니가 자옥이 딸이구나?’ 라고 하며 울적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곤 갑자기 ‘그년이 얼마나 드센 년인지 아냐?’ 며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앞에 앉혀놓고 내 어머니의 어릴 적 비행에 대해 낱낱이 폭로하기 시작했다. 나는 큰 눈을 꿈벅이며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열심히 경청하곤 했다. 외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우리 어머니 흉을 봤는데, 그때마다 툭하면 대들고 악악댔던 어머니에 비해, 유순한 큰 이모가 얼마나 좋은 딸이었는가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말씀하셨다.
반대로 어머니가 내게 제일 많이 한 말 중 하나는 ‘사람은 가정환경을 잘 타고나야 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기가 외할아버지와 싸운 뒤 집을 나오지만 않았어도 팔자가 달라졌을 거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외할아버지 앞에 앉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누까풀을 깜짝거리며 얌전히 앉아 어머니의 하소연을 경청했다.
그 후, 두 사람이 서로 얼마나 미워했는가를 떠나, 혼자 아이를 낳은 어머니를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빈정댔고, 외할머니에게 첩의 빤스를 빨게 한 외할아버지를 어머니가 얼마나 원망했는가를 떠나, 내가 외할아버지를 인정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것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어머니에게 던진 한마디 말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 ‘우연히 들른’ 사람치고는 너무 오래 앉아 있었고, 사소한 트집과 참견을 끊임없이 하던 외할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참견을 다 하다 더 이상 참견할 것이 없자 어머니의 침묵 앞에서 난처해 하셨다. 뭔가 화제를 궁리하던 외할아버지는 다시 착한 큰 이모와 어머니를 비교하는 말씀을 일장 늘어놓으셨다. 온갖 욕을 다 쏟아낸 뒤, 어머니의 침묵 앞에서 또 한 번 당황한 외할아버지는, 다 마신 주스 컵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모자를 잡고 일어나셨다. 어머니와 나는 형식적인 배웅을 했다. 그런데 대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외할아버지가, 조그맣고 당당한 자신의 등짝 너머로 이상한 말씀을 던지며 사러지셨다.
‘그래도 내가 연애를 하면 작은년이랑 하지, 큰년이랑은 안 한다......’
외할아버지는 며칠 후 돌아가셨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내 어머니의 매력을, 그 작은 비밀을 알고 계셨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그걸 알고 잇는 사람은 나만 남았다.
어머니는 택시기사다. 처음에 나는 어머니가 택시기사를 직업으로 택한 이유가 서울 곳곳을 누비며 나를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어머니가 택시를 모는 진짜 이유는 아버지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나는 달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란히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십수 년의 원망을 안고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는 어머니의 표정과 거처를 들킨 아버지의 표정이 내 머리 위를 수선스럽게 뛰어다닌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붙잡는 대신, 아버지보다 더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 복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택시운전을 힘들어했다. 박봉, 여자기사에 대한 불신, 취객의 희롱. 그래도 나는 어머니에게 곧잘 돈을 달라고 졸랐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새끼가 속도 깊고 예의까지 발라버리면 어머니가 더 쓸쓸해질 것만 같아서였다. 어머니 역시 미안함에 내게 돈을 더 준다거나 하는 따윈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달라는 만큼만 돈을 줬지만, ‘벌면 다, 새끼 밑구먼으로 들어가 내가 맨날 씨발, 씨발, 하면서 돈 번다’는 생색도 잊지 않았다.
그날도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고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었고, 지난밤 손님과 말다툼을 한 어머니의 수다를 묵묵히 들어야 했다. 이야기 도중 흥분한 어머니가 숟가락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씨발 내가 그렇게 잘못했냐?’ 라고 동의를 구할 때 맞장구를 져야 했고, 운동화를 꺾어 신으며 어머니에게 만 원을 어디에 쓸지 해명해야 했다. 학교에선, 책상에 반쯤 누어, 마른 침을 삼킬 때마다 출렁이는 교생선생님의 목울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다를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문제는, 집에 돌아왔을 때 생겼다.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는 한 장의 편지가 들려 있었고, 방바닥에는 아무렇게나 뜯은 편지 봉투가 떨어져 있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가위로 바닥을 찍었던 방바닥 위였다. 나는 봉투에 쓰여 있는 주소를 보고 그것이 항공우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해독할 수 없는, 그것은 이상한 예감으로 가득 찬 편지 앞에서 답답한 촌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걸까?’ 나는 편지를 낚아 챘다. ‘뭐야?’ 어머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편지는 모두 영어로 쓰여 있었다. 나는 어머니 앞에서 체면을 생각하며 더듬더듬 편지를 해석해 나갔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편지를 두세 번 읽어본 후,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래?’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마른침을 한번 삼킨 후 대답했다. ‘아버지가 죽었대.’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내가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어머니가 늘 그래줬듯이, 뭔가 재치 있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마땅한 농담이 떠오르지 않았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십수 년 만에 우편을 타고 가뿐하게. 의도를 알 수 없는 선의처럼, 종지감 없는 연극이 끝난 뒤에 터지는 어정쩡한 박수처럼 아버지는 돌아왔다. 낯선 억양의 인사를 건네며 돌아온 부고. 그때까지도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세계 곳곳을 달린 이유가 결국 우리에게 당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당신이 죽었다고 말하기 위해 먼 곳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세계를 뛰어다닌 것이 아니라 미국에 살고 계셨다.
편지는 아버지의 자식이 보내온 것이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사전을 찾아가며 편지를 해석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버지는 미국에서 결혼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조금 놀랐다. 아버지가 애초에 가정을 원하지 않은 남자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를 버린 이유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녀를 정말 사랑했거나, 아니면 그곳이 여기보다 도망치기 쉬운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몇 년 후 아버지는 이혼을 했다. 구체적인 이혼 사유는 쓰여 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무능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부인은 위자료를 요구했다. 한 푼도 없던 아버지는 주말마다 부인의 집에서 잔디를 깎겠다고 말했다. 나는 언젠가 ‘미국에선 잔디를 깎지 않으면 이웃에게 신고를 당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부인은 운동장만 한 잔디밭이 있는 사내와 결혼했다.
약속대로 아버지는 주말마다 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아버지는 감시카메라 앞으로 얼굴을 바싹 내밀며 ‘헬로우’ 인사를 한 뒤, 잔디를 깎으러 타박타박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상상하건대, 부인이 새 남편과 거실에서 다정하게 맥주를 마시는 동안 아버지는 바깥에 쭈그리고 앉아 잔디깎이 기계를 손봤을 것이다. 처음에 부인과 남편은 아버지를 불편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신경쓰지 말아요’ 라고 했을지 모르고, 아버지는 점점 없는 사람이 되어갔을 것이다. 아버지는 거실의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부부가 서로를 껴안을 때마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온 그 친구가, 타국에 있는 아버지의 유족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라면, 아버지는 정말 그랬다고 한다. 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적어 보낸 아버지의 자식이 도대체 어떤 자식이지 궁금했다. 분명, 아버지를 닮아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나는 부부가 거실에서 나눴을 정사를 상상했다. 통유리 앞에 달싹 붙은 그녀의 젖꼭지와 입김, 그리고 다급히 내려가는 블라인드. 먼 곳에서 찌푸린 눈으로 ! 그곳을 바라보다, 부르릉, 잔디깎이 기계를 몰며 전투적으로 돌진했을 아버지. 그러나 더 나가지 못한 채, 그저 그 앞에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했을 아버지. 참다 못한 부인은 아버지에게 최신식 자동 가솔린 기계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창고에 있는, 구식 잔디깎이를 고집했다. 그것은 언제나 굉장한 소음을 내며 정원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부인의 새 남편과 싸우다 싸움이 붙었다. 남편이 아버지가 잔디 깎는 방식에 대해 참견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다툼이었다. 아버지는 대꾸 않고 죽어라 잔디를 깎았다. 그런데도 남편의 잔소리는 계속 됐고, 급기야는 언성을 높이며 온갖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순간, 묵묵히 잔디를 깎던 아버지는 칼날이 무섭게 돌아가는 구식 잔디깎이를 들고 그에게 돌진했다. 남편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잔디밭에 쓰러진 채 바들바들 떨었다. 내 생각에 아버지가 그 사람을 해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부인의 남편이 상처를 입었다. 그러자 이번엔 아버지가 당화했다. 피를 본 남편은 이성을 잃은 채, 온갖 악담을 퍼부었고, 결국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다. 순간 겁이 난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다 창고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창고 구석에 있는 새 잔디깎이 기계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서부의 총잡이처럼 잔디깎이 기계에 펄쩍 올라탔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시동을 켠 뒤, 창고를 박차고 나와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잔디깎이 기계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도망쳤다. 아버지가 지나는 곳마다, 푸른 잔디 ! 가루들이 싱그런 풀냄새를 뿌리며 흩날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디로 가려 한 것이었을까.
편지는 아버지가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말로 끝맺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식은 가족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으며, 장례는 공동묘지에서 조용하게 치러졌다고 전해 주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텔레비전 앞에 자기를 놔둔 채 직장에 나갔던 아버지를 온종일 기다리며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가 이혼을 당한 뒤에도 주말마다 아버지를 기다렸고, 지금은 자기가 아버지를 잊을 수 있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이국의 이복형제인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랐던 저는,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해 알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품에서 찾아내 당신들의 주소 앞으로 어머니 모르게 편지를 보냅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정작 거짓말을 한 것은 나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어떤 교통사고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데 왜 이렇게 긴 것이냐.’ 고 물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랑 살았는지, 정말 다른 말은 없는지..... 하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날 밤, 아버지가 왜 집을 나갔는지 묻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물어보고 싶지 않은 말일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침울한 표정을 보자 울컥하니 신경질이 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매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버지가..... 미안하대. 평생 미안해하며 살았대. 이 사람 말로는.’ 어머니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나는 내친 김에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엄마, 그때 참 예뻤대......’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부분에?’ 나는 편지를 훑는 시늉을 하다, ‘아버지는 어머니 집에 와서 매주 잔디를 깎았습니다’라는 부분을 짚어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여기’. 어머니는 울 것같은 표정으로 그 부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손으로 곱게 ?! 타망낫?. 그때 나는 농담잘하고 씩씩한 내 어머니가 - 한번도 울어본 적 없으나 성대가 부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날 어머니는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턱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린 채 가만히 누워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의 생활,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잔디깍이, 뭐 그런 것들.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도 내 머릿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해왔던 상상이라 잘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버지를 게속 뛰게 만드는 이유는, 아버지가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내가 아버지에게 달려가 죽여버리게 될까 봐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러자 갑자기 나는 서러워졌고, 그 서러움이 나를 속이기 전에 빨리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택시요금 할증이 다 풀릴 때 즈음이 되서야 들어왔다. 나는 딸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불도 못 켜고 조심스레 옷을 벗는 어머니를 상상했지만, 어머니는 발로 나를 툭툭 차며 외쳤다. ‘야! 자냐?’ 나는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미쳤어? 택시가사가 무슨 음주운전이야?’ 어머니는 말없이 상긋 웃더니 이불 위로 이내 꼬꾸라졌다. 어머니는 말아 쥔 주먹처럼 몸을 작게 모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불을 덮어줄까 하다가 그냥 그대로 놔두었다. 얼마 후 어머니는 추었는지, 스스로 이불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어둠 속, 어머니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어머니한테 얼핏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왠지 모르게 골이 나서 ‘아주 나쁜 엄마군!’ 이라고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주 긴 고요가, 어머니의 숨소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작게 움츠러든 몸을 더욱 안으로 말며,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무엇도 없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잘 썪고 있을까?’
그날 밤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내가 상상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후쿠오카를 지나, 보르네오 섬을 건너,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가는 아버지. 스핑크스의 발등을 돌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거쳐, 과다라마 산맥을 넘고 있는 아버지. 웃으면서 달리는 아버지. 달리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 그러다 나는 문득, 아버지가 그동안 언제나 눈부신 땡볕 아래서 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야광 반바지도 입혀드리고, 밑창이 말랑말랑한 운동화도 신겨 드리고, 바람이 잘 통하는 셔츠도 입혀드리고, 달리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상상해왔다. 그런데 그 중 선글라스를 씌워 드릴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아버지가 비록 세상에서 제일 시시하고 초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 그런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아픈 것은 같이 아프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상상했던 십수 년 내내, 수지 않고 달리는 동안 늘 눈이 아프고 부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밤 아버지의 얼굴에 선글라?! 보? 씌워드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먼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기대감에 부푼, 그러나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작게 웃고 있다. 아버지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마침 입맞춤을 기다리는 소년 같다. 그리하여 이제 나의 커다란 두 손이, 아버지의 얼굴에 선글라스를 씌운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젠, 아마 더 잘 뛸 수 있으실 것이다.
-제38회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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