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북부의 중심도시는 안동이지만, 그와 비슷한 곳에 견줄만한 지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경북 북부의 입구이자 강원도로 가는 길목인 영주시이다.
100여년 전 풍기, 순흥을 합쳐 영주로 개명한 이래 한동안은 주변과 큰 차이가 없는 한적한 시골이었으나,
40년대에 중앙선이 들어오고 해방 이후 영동선, 경북선이 영주역에서 갈라지면서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철도로 인해 시로 승격될만큼 철도로 먹고살았던 동네지만 현재는 버스가 우세한 지역이다.
중앙고속도로가 입지를 뿌리채 뒤흔든 덕분이다.
만든지 오래되어 느릿느릿 가는 철도에 비해 고속도로 타고 슝슝 달리는 버스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 지역을 가던 대중교통은 거의 버스로 이동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너무도 노후화된 시설과 그리 좋지 않은 영주시내 도로망이 시너지를 발휘해
외곽으로 이전하자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주터미널. 다시 발길을 찾았다.
영주댐 수몰예정지인 평은면 일대를 돌다가, 해가 떨어질 때쯤 되어서야 겨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자가용을 끌고 다녔기 때문에 올 수 있었던 곳으로 대중교통을 탔더라면 어림도 없는 거리였다.
영주 자체를 온지가 7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정확히는 군생활하면서 두어번 온 적이 있지만 그건 없는 셈 친다면...
마지막으로 온지 1년 뒤에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다면 초창기에 이미 글이 올라왔을 것이다.
시간이 이리 많이 흘렀나 싶고 이렇게 또 오게 될 줄 꿈에도 몰랐으니 인생사 새옹지마.
언제 마지막으로 왔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익숙한 풍경만큼은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주변 분위기도 건물 생김새도 7~8년 전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좁고 복잡한 도로가 그물처럼 엉켜있는 영주시내도 이전과 똑같다.
이젠 경북에서도 거의 사라져가는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영주에서는 멀쩡히 남아있다.
정작 영문은 Terminal이라 쓰는게 뭔가 싶다. (영어로는 Bus Station이라 하지 터미널은 우리나라, 일본에서만 쓰는 콩글리쉬니까)
건물은 조금씩 세월의 때가 더 낀 것 같지만 가운데 펄럭이는 태극기는 깨끗하니 뭔가 흐뭇하다.
여태껏 수없이 여행을 다니면서 정읍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동네가 바로 영주다.
인구도 대략 비슷하고, 높은 건물 찾기 힘든 것도 비슷하고, 좁은 도로가 엉켜있는 것까지 비슷하다.
다만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모두 최근에 고친 정읍이 한결 낫다. 번화가도 정읍이 더 크다.
조각조각 갈라지고 녹이 슨 '대합실입구' 표지판을 따라가면 입구가 나온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사람이 드나드는 곳일 것 같지만 아니다.
북측은 고가도로가 있어 사람과 차량 모두 접근하기가 힘들어,
사실상 버스터미널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여기다.
하지만 이 자리는 버스의 출입구로 충실히 쓰이는 공간이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버스가 자주 다녔던 그 때 그 시절엔 더할나위 없이 혼잡한 곳이었다.
지금도 주말이나 명절 등 혼잡한 시간대엔 버스와 사람, 택시와 자가용이 뒤엉켜 주차장이 되는 꼴을 볼 수 있다.
분명히 4차선의 '국도'에 해당하는 곳이지만 인도는 정말 좁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로, 두 명이 나란히 다니는 것도 힘들고 휠체어는 엄두도 안 날 수준이다.
대합실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탈 수 있다는게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만,
평일 저녁 시간에도 꽤 많은 사람이 지나다녀 복잡한 편이다.
건물에 버스정류장 간판은 크게 써있지만 정작 입구에는 간판이 따로 없다.
주변에 가게들도 많고 인도가 너무 좁아서 초면이라면 간판보다는 사람을 찾아야 드나들기가 쉽다.
건물이 좁고 낡은 것, 드나들기 불편한것 까지 정말 옛 정읍터미널과 많이 닮았다.
어둑해진 저녁이라 대합실 내부는 제법 어둡다.
그나마 가로등을 켜놓아 한결 낫지만 오래된 터미널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음침한' 분위기는 지울 수 없다.
이런저런 일을 마치고 가는 사람들 덕분에 대합실 자체는 북적이는 편이다.
매표소가 들어가고 바로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고, 정면에는 버스 승차장이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매점 두개가 나란히 붙어있고 끝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다.
매표소 방향으로도 매점과 분식집이 있어 버스 타기 전에 이것저것 준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중앙선의 쇠락으로 중앙선 연선조차 버스에 의지하게 되면서 영주시의 간판은 명실상부 버스터미널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외지인이 필수로 방문하는 곳이어서인지 영주 구석구석을 안내하는 터치스크린이 언젠가 들어왔다.
맛집까지 친절히 나와있어 책자로 보는 것 이상의 수준급의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주에서 갈 만한 곳이라면 소백산, 소수서원, 선비촌 정도인데 이들 모두 풍기와 더 가깝다는 함정은 있다.
영주가 엄연히 죽령 이남 경상도에 속한지라 대구방면 버스가 무척 흥하는 편이다.
한 지역 가는데 방향이 여러 갈래라서 상당히 보기가 힘들지만,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로 나뉘어 있다는걸 감안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왼쪽 두 표는 말 그대로 대구 '방면', 남쪽으로 가는 노선이 적힌 노선으로 공통적으로 안동을 거친다.
대구로 가장 빠르게 가는 노선조차 안동을 경유하며 5번국도의 모든 마을을 거치는 완행버스도 있다.
왼쪽 세 번째 표는 동대구(중앙고속터미널)행으로서 우등, 일반을 합쳐 40~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영주터미널에서 서울(센트럴시티)행과 더불어 고속버스로 운행하는 노선이다.
왼쪽 네 번째(사진의 마지막) 표는 대구북부정류장행으로 약 1시간 간격인데, 위치가 좋지 않아서인지 동대구보다 배차가 오히려 나쁘다.
구미방면은 직행이긴 하지만 하루 6회로 그리 많지 않다.
왼쪽 첫 번째는 서울가는 직행버스로 동서울, 강남행이 적혀있다.
동서울행 노선은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고속버스 면허로 어떻게든 전환하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시민들의 반대에 줄줄이 막히고 있다.
특히 몇 년 전 갑자기 고속버스로 전환되고 차급이 우등에서 일반으로 내려가면서, 지역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결국 이용객들의 크나큰 반발을 불러오면서 원상복구.
사실 더 예전부터 과잉 서비스를 하는 노선이(ex: 생수, 과자서비스)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일부에선 눈이 높아진 이용객들을 탓하는 여론도 있었다.
강남행은 다행히도 그런 논란이 없지만 배차가 겨우 하루 10회에 그쳐 증차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
왼쪽 두 번째는 서울'방면' 안내판으로 단양, 제천행 노선이 안내되어 있다.
풍기, 단양, 제천을 거치는 완행은 들쭉날쭉해도 평균 1시간 배차로 나쁘지 않지만, 제천 직행은 하루 5회에 불과하다.
원주행은 하루 9회, 수원행은 하루 12회, 안산-인천행은 하루 13회, 성남행과 안양-부천행이 하루 6회, 고양(일산)행 하루 2회.
모두가 서울'방면'이지만 중간중간 울진, 천안, 태백, 강릉 등등 전혀 관계없는 방향의 노선도 껴있어서 매우 헷갈리게 안내되었다.
아무튼 지방 소도시치고 노선망은 제법 훌륭한 편이지만, 지나치게 수도권과 경북 위주로 편재되어 있다.
그 때문에 타 지방으로 왕래하기가 까다롭고, 특히 호남 방향은 근처 도시인 안동에서도 가는 노선이 없어 더더욱 힘들다.
여기도 국도 경유 노선과 고속도로 경유 노선의 요금차이가 상당하다.
특히 서울행은 두 업체간의, 고속버스와의, 열차와의 경쟁 덕분에 타지역보다 상당히 저렴한 편인데,
같은 경북권인 김천과 비슷할 정도고 거리상으로 거의 똑같은 부산행과도 4000원 이상 차이가 난다.
심지어 울진보다도 싸다. 이 쪽은 도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요금이 더 높은 까닭도 있긴 하다.
서울, 안동, 대구행을 비롯해 하루에도 수십번씩 왔다갔다하는 승차장의 모습이다.
대체로 몇 십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창문의 틀, 녹슨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 병원의자,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보이는 승강장 등등.
버스 주차장은 넉넉하지는 않아도 좁아서 난리가 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렇대도 조금만 비상이 걸리면 금방 복잡하게 꼬이는 주차장이다.
아마 이 버스들은 이웃 안동처럼 한시라도 빨리 다른 동네로 이사가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미 90년대에 이전 계획을 세우고 부지까지 잡아놓았지만 아직도 이 자리 그대로 영업하고 있다.
이미 익숙해진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한 때 번창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 2층에 아직까지 상업시설(카페)이 남아있다.
카페보다는 다방에 더 가까울 듯한 저 가게, 한 번 가볼걸 그랬다.
해가 거의 넘어가 차도 가로등 불빛도 슬슬 몸을 밝힐 준비를 마쳤다.
시내의 저녁은 조용하면서도 북적이고, 버스터미널의 차들도 쉬는 것 같지만 쉴틈없이 오가며 바쁘게 승객을 나른다.
그 와중에 진짜 영업을 마친 차들은 거의 쉬고 있다. 그리고 사진을 모두 찍은 필자도 잠시 한숨 돌리고 집에 갈 준비를 한다.
모든 것이 끝난 하루의 저녁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오묘하면서 아른거리는 느낌을 준다.
잠깐의 만남을 끝나고 헤어지는 와중에 인사를 건넨다. 나 자신에게도, 2박 3일동안 고생한 동료에게도 하는 인사.
그리고 하루를 꼬박 고생하며 일하신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수고했어 오늘도'
첫댓글 시골스럽군요 보은터미널도 엄청 오래되었던데 옛 시골 생각이나서 그런지 정겹네요 사진 잘보고 갑니다^^
오래된 공간일수록 정겨움이 듬뿍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조금 의외의 결과군요. 길이 워낙 좁고 복잡하다보니 아닐줄 알았는데 경쟁을 더 의식하는 모양이네요.
지금 위치 유지할거면 버스 진입 동선과 터미널 건물을 개선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좋아 시골의 정취이지, 사용해본 경험으로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이용객 입장에선 불편한게 사실입니다. 특히 화장실이라면..
잘 보고 갑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동행 일부 없어진시간이 영주여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주여객이 재작년 말엔가 시외직행이나 완행을 전부 형간전환 및단축하여 정리한것으로 알고있거든요.
그렇군요... 영주여객 차량이 없어져도 크게 달라보이는건 다행히도 없네요.
영주터미널을 자주가는 편이지만 2층에서 보는 영주터미널은 또 색다르네요
시내가 잘보여서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