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대나무에는 대부분의 식물이 지니고 있는 유관속이라 불리는 조직에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형성층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나무에는 나무와 같이 나이테도 만들어지지 않는다.죽순의 생장은 꼭대기에 있는 생장점과 각각의 마디에 있는 생장대의 양쪽 부분에서 일어난다. 길이생장의 경우도 나무와 달리 줄기의 끝 부분만이 아니라 마디와 마디 사이에서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져 개개 마디의 세포가 일제히 생장한다. 결과적으로 마디수만큼 동시에 생장하며, 그로 인하여 대나무 줄기 전체의 생장을 한층 빠르게 한다. 가령, 죽순 50개의 마디부에서 각각 2cm씩 자라났다고 하면 이를 모두 합하면 1m의 생장량이 되는 것이다. 대나무의 생장에는 대나무에 함유되어 있는 지베렐린, 카이네틴, 티로신 등의 식물 호르몬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티로신은 생장을 촉진하는 외에 대나무의 줄기를 단단하고 튼튼하게 하는 성분인 리그닌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 잎이나 줄기의 표피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규산은 잎의 광합성을 도우며 줄기의 생장촉진이나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나무는 성장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여름동안 자라서 모든 성장을 완료한 대나무를 그 해의 가을이나 겨울철에 베어도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모죽이 없어지게 되어 양분을 만들어 새로 나올 신죽을 도와주지 못하여 그 이듬해에 나오는 신죽은 점점 가늘어져서 마침내는 제로에 가까운 생산을 하게 된다.
왕성한 번식력과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대숲으로 피하라는 말들을 하고 있다. 이는 대숲은 지진이 발생하여 땅이 꺼지고 내려앉을 경우라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땅속조직의 강인한 자태를 암시해 주고 있는 말이다. 또한, 지상의 줄기가 풍수설해 등으로 넘어져도 땅속줄기가 살아 있는 한 새로운 싹을 내어 어린 대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피해에도 대나무는 유일하게 살아 남은 식물이었다. 또한 베트남 전쟁시 미군이 사용한 다이옥신 투성이의 고엽제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싹을 터트린 것도 대나무였다.
그러면 이와 같이 대나무의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지하경 또는 편근이라 불리는 땅속줄기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왕대의 지하경은 300평당 총 연장이 6km 이상에 달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대나무 지하조직의 위력을 많이 볼 수 있다. 즉, 여름철 홍수로 산사태가 나고 제방이 무너지고 전답이 유실되는 가운데서도 산록이나 하천변, 전답주변에 단 몇 그루라도 대나무가 서 있는 곳은 원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나무류의 땅속줄기 특징은 대줄기와 비슷하나, 다른 점은 대처럼 둥근 것이 적고 마디새가 짧으며 마디새의 공간이 작거나 거의 없다. 또 각 마디에 있는 눈도랑이 유달리 깊으며, 각 마디에는 눈이 있어 이 눈이 생장하여 죽순이 된다. 땅속줄기에 붙은 눈은 대개는 그 좌우면이나 때로는 위아래로 붙은 경우가 있다. 따라서 죽순은 주로 측면에서 나오나 상하면에서도 나온다. 땅속줄기로부터 순이 나오는 것은 보통 3년생부터이나 4∼9년생부터도 나온다. 그러나 3∼5년생이 발순의 최성기이며, 그 이후로는 줄어들다가 7년생 이상이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양적으로도 적지만 아주 가는 대가 나오게 된다. 대나무류의 땅속줄기는 땅속에서만 뻗어가고 있는 단축형과 땅속줄기의 선단부가 줄기가 되어 무더기로 발순하는 연축형, 그리고 그 양쪽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혼합형의 3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 나라 대나무는 대부분 땅속줄기가 땅 속에서만 발달하면서 각 마디의 눈으로부터 한 개의 독립된 죽순이 발달해 나오는 단축형이다. 왕대, 솜대, 죽순대 등 대경죽종은 모두 이 형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유용죽종은 죽순대의 땅속줄기가 깊이 뻗어 약 1m의 깊이에 달하고 있으며, 왕대나 솜대는 60cm 정도까지, 오죽 같은 세죽종은 40cm에 이른다. 대체로 직경이 굵은 죽종은 깊게, 가는 죽종은 얕게 뻗는 경향이 있다. 땅속줄기는 10여 년이면 고사하지만, 한편으로 해마다 새로운 땅속줄기를 발달시킨다. 그러므로 기성죽림의 땅 속에는 언제든지 일정한 양의 땅속줄기가 뻗어 살아 있다. 한편, 대나무 1본을 심었을 때 매년 얼마나 땅속줄기가 신장하게 되며, 일정한 연도가 지나서는 얼마만큼 신죽이 발생하게 되는 지를 알 수 있다면 죽림조성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나무연구의 권위자인 일본의 우에다박사에 따르면, “대나무를 심은지 4년째 되는 해에 왕대는 연장 18.56m의 땅속줄기 신장에 신죽 발생수는 10본이었다. 죽순대는 28.40m 신장에 10본의 신죽이 발생했다. 또 6년 후에는 왕대의 땅속줄기는 42m가 추가되어 총 연장이 104.74m의 달했고 발순은 17본으로 총 30본이 발생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1㏊에 700본을 심었다면 6년 후에는 2만 1,000여 본의 신죽이 서게 되어 완전히 성죽림이 된다. 대나무의 땅속줄기는 해마다 뻗어 가지만 나이가 많아지면 발순력이 쇠퇴하고 마침내는 죽고 만다. 그러나 노쇠한 땅속줄기가 죽더라도 여기에서 이미 자라난 새로운 젊은 땅속줄기에 의하여 신죽이 발생한다. 따라서 수목의 고사와는 달라서 땅속줄기의 자연고사는 대나무의 번식에 영향을 그다지 미치지 않는다. 도리어 노쇠한 땅속줄기의 고사에 의하여 갱신이 빨리 반복되는 것이 죽림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땅속줄기의 신장은 지상부 죽간의 성장이 완성하는 무렵부터 시작하여 8∼9월에 최성기를 가지며, 11월 중하순경이면 완료한다. 성장이 가장 왕성할 무렵에는 신장하는 땅속줄기에 동화양분이 가장 많이 공급되고 있다. 그래서 한번 신장완료한 땅속줄기는 대나무 줄기와 같이 아무리 시일이 지나고 나이를 더하더라도 더 이상 비대하지 않는다.
항균성이 뛰어나다 대나무의 줄기나 껍질, 조릿대의 잎에는 살균작용이 있으며, 벼과의 다른 식물보다 탁월한 항산화성과 방부력을 발휘한다. 죽림 속에서는 동물이 죽더라도 잘 썩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기를 낚을 때 다래끼 바닥에 조릿대 잎을 깔아 두면 비린내를 없앨 수 있다. 또 물고기를 선물로 할 때 조릿대 잎을 1장 넣어 두면 신선도는 오래간다. 옛날 사람들은 여행을 나설 때 죽순 껍질로 도시락밥을 싸고 대나무통에 마실 물을 넣어 다녔다. 문명의 발달로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들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지방의 원주민들은 아직도 대나무통을 잘라 물통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최고급 생과자나 금방 만든 찰떡의 포장에 이용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대나무나 조릿대는 식품을 오래가게 하는 순 천연의 보존제로서 이용되고 있다. 이것은 대나무나 조릿대에 들어 있는 규산이나 엽면에서 발산되는 테르펜이라 불리는 물질과 함께 항균성과 항산화성이 탁월한 성분인 폴리페놀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포도주나 녹차에도 이 폴리페놀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대나무나 조릿대는 울창한 산림을 집으로 하는 동물에게도 귀중한 영양원이다. 곰이 겨울잠에 대비하여 음식물을 끊기 전이나 겨울잠에서 깨어나 맨 처음 음식물을 먹을 때는 대잎 외에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영양분도 섭취하고 빈속에 먹어도 탈이 없기 때문이다. 또, 소나 말이 병이 들어 음식물을 먹지 못하게 된 때도 약제보다도 조릿대의 잎을 주는 것이 회복이 빠르다고 한다. 실제로 대나무의 항균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일본의 한 유명식품회사에서는 맹종죽의 짙은 녹색의 표피로부터 항균성분을 추출하여 항균작용이 미치는 범위를 조사한 결과, 맹종죽 중의 항균성분이 퀴논유도체임을 밝혀냈다. 퀴논이란 동식물과 미생물계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화합물로 일반적으로는 염료로 알려져 있다. 맹종죽 중의 항균성분은 벤조퀴논의 분자내 일부가 변화한 유도체인데, 천연물로써 매우 강력한 항균작용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램양성균, 효모, 백선균에 커다란 효과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져 있다. 또한 맹종죽 추출물의 급성독성(급성독성의 평가단위는 반수치사량 LD50으로 표기한다. 실험용 쥐 등에 약제를 경구 투여하여 반수가 치사한 양을 체중 1kg당으로 산출한 수치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안정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및 변이원성(일정 조건 하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지의 여부를 조사하는 시험으로 직접적인 독성보다는 오히려 장기적, 유전적으로 해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지표로 이용된다)에 대한 안정성을 조사한 결과, 맹종죽추출물의 급성독성치는 LD50 5,000mg/kg을 초과하여 식염의 급성독성 LD50 4,500mg/kg, 커피의 카페인 LD50 1,950mg/kg에 비하여 높은 안정성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3종류의 균체를 이용한 변이원성 시험결과 맹종죽추출물에서는 변이원성이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 절강농업대학의 솜대잎추출물에 대한 실험용 쥐의 실험결과에서 대나무잎이 피로방지, 학습능력향상, 산화방지 등 인체의 노화방지를 위한 새로운 자원으로서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옛 조상들이 대나무를 식품보존제나 약제로 이용하였던 지혜가 오늘날의 과학으로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자연적인 신비성을 지닌 식물이다 대나무는 빠른 생장력, 왕성한 번식력, 질긴 생명력, 용도의 다양성 등 불가사의한 힘을 간직한 식물이다. 좀처럼 꽃을 피우는 일이 없는 대나무가 드물게 60년에서 100년 정도의 주기로 일제히 쌀알 만한 크기의 꽃을 피우는 일이 있다. 개화한 다음 해에는 그 부근 일대의 죽림은 어린죽도 노죽도 말라 버린다. 대나무가 개화하여 말라죽는 현상에 대해, 대나무는 번식력이 강하여 한 본의 모죽이 수년 후에는 수십 본으로 늘고 제한된 지역 내에서 너무 군생하면 과밀 상태가 되어 토양의 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어쨌든 일반 수목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대나무의 내부는 비어 있는데, 예로부터 그 빈 공간이 신의 매체라 생각하여 대나무에는 악귀를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어 왔다. 일상 생활에서도 축하하거나 기쁨을 나타낼 때 대나무는 없어서는 안될 재수 있는 물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 예로서 우리의 전통민속놀이인 봉죽놀이가 있다. 봉죽놀이는 조기잡이가 성행하였던 서해안 일대에서 풍어를 기원하며 행하던 집단 가무놀이이다. 일반적으로 만선으로 돌아오는 배에 꽂는 풍어기를 봉기라고 하는데, 흔히 긴 대나무 장대에 오색 종이꽃을 달았다. 봉기를 대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봉죽이라 부르며, 황해도와 경기도 일부지역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히면 ‘봉죽 받았다’라고 한다. 한편, 점집이나 무당이 사는 집의 문 앞에는 붉은 기나 한지로 꼬아 만든 종이를 매달은 대나무가 반드시 서 있는데, 이는 대나무를 통해 하늘의 신을 자신의 몸 안에 불러들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대나무가 인간의 마음과 신의 뜻이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글·사진 / 박상범(임업연구원 남부임업시험장, 농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