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째 스승 무염족왕
- 염족은 만족해서 싫어한다는 뜻으로 무염족은 만족해서 싫어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며 한글 대장경에는 싫은 줄 모르는 왕이라고 함.
- 선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憶念思惟善知識敎(억념사유선지식교)- 선지식 가르침을 억념 사유하면서 걸어감.
념선지식(念善知識)- 생각하기를, 선지식이라고 하는 분은
能攝受我(능습수화)- 능히 나를 거두어 주고
能守護我(능수호아)하며 守는 지킬 수, 스승님은 능히 나를 지키고 보호해 주시고.
念我於 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無有退轉(념아어 아뇩다라삼막삼보리, 무유퇴전) 나로 하여금 보리심에서 퇴전이 없게 해 주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선재는 갑니다.
如是思惟(여시사유) 이렇게 생각할 때
生歡喜心(생환희심) 마음 속에 환희심이 생기고
淨信心(정신심) 맑은 믿음이 생기고
廣大心(광대심) 마음이 광대해 지고
踊躍心(용약심) 용약하는 마음이 생기고
화엄경에 환희 용약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용약이라는 말은 다른 경전에 잘 나오지 않는 말이다. 화엄경은 생명의 경전이기 때문에 생명성이 충만하면 생명이 넘쳐 깡충깡충 뛴다. 어린이들이 걸어오는 법이 없이 언제나 기쁘고 달려오는데 생명성이 넘쳐서 그렇다. 환희용약이라는 말이 화엄경에 많이 나오는 이유이다.
寂靜心(적정심) 고요한 마음이 생기고
莊嚴心(장엄심) 장엄한 마음이 생기고
이런 선지식은 참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언제나 보호해 주시고, 보리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해 주시는구나 하니 선재의 마음은 기뻐서 날뛰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도 맑아지고, 마음도 넓어지고, 마음이 열리고, 마음도 고요해지고~ 기쁜 마음을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경전 구절 하나하나가 정말 우리의 마음을 보리심에 충만하게 할 때 마음이 가득할 때 마음이 밝은 마음이 우리가 공경하고 늘 스승님을 따를 때 생기는 마음의 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다라당성(多羅幢城)에 다릅니다.
입법계품에 선지식이 계신 곳은 城이라고 나옵니다.
저도 안성에 왔는데 안성도 城자가 들어갑니다. 선지식이 어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지명에 성이라는 곳이 더물죠.
입법계품에 城이라는 곳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염족왕이 있는 곳을 물었더니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왕은요, 궁전 정전 사자좌에 앉아 있어요.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고 있어요.
宣布法化(선포법화) 調御衆生(조어중생) 법을 선포해서 중생을 교화하고 조어한다는 뜻으로
- 宣布法化(선포법화) 법으로 다스린다.
- 調御衆生(조어중생) 재미있는 말이다. 강제성이 있는 말이다.
可治者治(가치자치) 다스리는 것은 다스리고
可攝者攝(가섭자섭) 거두어 줄 사람은 거두어 주고
罰其罪惡(벌기죄악) 죄 지은 사람은 벌을 주고
決其諍訟(결기정송) 소송을 판결해주고
撫其孤弱(무기고약) 재미있는 말인데 撫자가 어루만질 무, 고약-외롭고 약한 이들은 어루만져준다.
皆令永斷 殺盜邪婬(개령영단 살도사음) 모두로 하여금 죽이고 사음하는 것을 영원히 끊게 하고
亦令禁止妄言兩舌惡口綺語(역령금지망언양설악구기어) 이런(망언 양설 악구 기어) 것들을 또한 못하게 하고
又 使遠離貪瞋邪見(우 사원리담진치견) 또 탐하고, 화내고, 삿된 소견 이런 것들도 멀리 떠나게 한다.
선재가 무염족왕을 찾아가보니 금강좌에 앉아 있으면서 십만 군주를 거느리고 벌을 주고 있어요.
많은 중생들이 도둑질하고, 사림하고, 간통하고, 삿된 소견을 내거나 원한, 탐욕, 질투를 뿜었거나 하여 몸에 오랏줄을 지고 왕 앞에 끌려와 있고, 죄에 따라서 형벌이 가해지는데
손과 발을 끊기도 하고, 귀와 코를 베기도 하고, 눈을 뽑기도 하고, 머리를 찢고 가죽을 벗기기도 하고, 타는 불에 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한량이 없으니, 부르짖고 통곡하는 형상이 중합대지옥과 같았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선재는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쿠, 나는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 보살행을 구하고 보살도를 닦는데 이 왕이 선한 부분은 하나도 없고 이 큰 죄업을 지으면서 중생을 핍박하고 생명을 빼앗으면서도 장래에 그런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떻게 여기서 법을 구하며, 대비심을 내어 중생을 구하겠는가 생각을 합니다.
作是念時(작시념시)에 이렇게 생각할 때에
空中有天(공중유천) 공중에 하늘이 하나 있어서
而告之言(이고지언)호대-선재에게 말하되
善男子야
汝當憶念普眼長者善知識敎(여당억념 보안장자선지식교) 너는 응당 보안장자의 스승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라.
이에 선재는
仰視而白之曰(앙시이백지왈) 우러러보면서 말하기를
我常憶念(아상억념) 나는 항상 억념할 것이다.
初不敢忘(초불간망) 처음 그것을 감히 잊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말하기를
“善男子야
汝莫厭離善知識語(여막념리선지식어)-너는 선지식 가르침을 떠나지 말아라. 알겠니?
善知識者- 선지식이라는 분은
能引導汝하야 至無險難安隱之處라. 선지식은 그대를 능히 인도하여 험난하지 않고 편안한 곳에 이르게 할 것이다
善男子야
菩薩의 善巧方便智가 不可思議- 보살의 좋고 교묘한 방편지는 늘 생각할 수 없으니
攝受衆生智가 不可思議요 護念衆生智가 不可思議이다-
成熟衆生智가 不可思議며 守護衆生智가 不可思議며
度脫衆生智가 不可思議며 調伏衆生智가 不可思議니라.
- 화엄경은 불가사의 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인데 우리는 안다는 마음이 많이 있는데 화엄경에는 불가설 말할 수 없다, 불가사의다 이것은 결국은 모른다는 말
- 참선할 때 화두선에서도 늘 모르는 곳으로 향해 가는데 화엄경의 선은 이런 점에서도 많이 통한다.
- 불가설, 불가사의라는 말은 화엄경에서 안다는 마음을 내지 말라, 안다는 생각을 내지 말라 이런 것을 불가설, 불가사의로 말한다.
우리의 얕은 생각으로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보살의 선교방편지가 모든 생각과 상식을 넘어 있는데, 그것을 생각 못하고 이런 나쁜 짓 하면서 어떻게 배울 것이 있나라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더 큰 세계로 못 보는 것이죠. 스승님은 우리가 늘 못 보는 곳을 보십니다. 그래야 우리를 성장시키고, 한 단계 더 높혀 주죠. 내가 아는 것만 알고 나와 같은 틀에서 못 벗어나는 분이시라면 스승님이라고 할 수 없죠. 그래서 처음에 문수보살이 선지식 가르침에 허물을 보지 말라. 眞선지식, 참된 선지식에게 의심을 내면 안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승열바라문처럼 불에 뛰어들라 하면 뛰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승열바라문 때와 마찬가지로 무염족왕을 봤을 때 선재의 의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난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이것을 반도행(도에 반하는 행동)이라 말합니다.
10번째 승열바라문, 18번째 무염족왕(60화엄에는 만족왕), 26번째 바수밀다 여인 이 세분이 반도행을 보이는 분으로 입법계품에 나옵니다.
하늘의 이야기를 듣고 선재동자가 왕에게 엎드려 보살도를 다시 묻습니다.
무염족왕은 선재의 손을 잡고 궁전으로 들어가 함께 앉습니다.
선재에게 궁전을 보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선재야, 너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만일 참으로 악한 업을 짓는다면 이런 과보와 이런 욕심과 이런 건족, 이런 부귀, 이런 자유자재를 못 얻겠는가?
선재야, 나는 보살여환 해탈을 얻었다. 환과 같은 해탈을 얻게 되었다.”
보살여환 해탈은 42번째 나오는 마야부인의 해탈과 비슷하다. 마야부인의 해탈 이름은 보살대원지환 해탈문(보살의 대원의 지혜 해탈문)
“선재야 나는 보살여환해탈을 얻었는데 나의 국토에 있는 중생들은 살생하고, 훔치고, 삿된 소견을 가진 것이 많아서 다른 방편으로는 그들의 나쁜 행동을 버리게 할 수가 없어. 나는 저런 중생을 조복하기 위해 나쁜 사람으로 변해서 여러 가지 죄악을 짓고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이야. 그리하여 중생들이 보고서 무서운 마음을 내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겁나는 마음을 내어 그들이 짓던 모든 나쁜 업을 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려는 것이야.
선재야, 나는 이렇게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열가지 나쁜 업을 버리고, 열 가지 착한 일을 행하여 구경에는 마침내는 즐겁고 편안하며 온갖 지혜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야. 나의 몸이나 말이나 뜻은 한 중생도 해친 일이 없어. 내 마음에는 차라리 미래에 무간고를 받을지언정 잠깐만이라도 모기 한 마리나 개미 한 마리를 괴롭게 하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사람은 복전이니 [人是福田]이라 모든 선법을 능히 일체 모든 선한 법을 내는 연고입니다.”
人是福田(사람은 복전이라) 이니 能生一切諸善法故라-능히 사람은 일체 선법을 다 낸다.
묘광성에 대광왕이 계시니 가서 뵈어라
선재동자는 떠날 때는 아주 간단하게 떠납니다. 무염족왕의 발에 절을 하고 수없이 돌고 하직하고 물러섭니다.
무염족왕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보살도를 행한다고 할 때 보살의 행은 좋은 것만 가지고는 이룰 수가 없어요. 나쁜 것도 해야 합니다. 사실은 좋은 것을 하나 나쁜 것을 하나 그 과보는 전부 좋은 결과는 중생들의 몫인데 나쁜 짓을 하면서 생기는 그런 과보는 또 보살의 몫입니다.
예를 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왜군을 잔인하게 죽인 적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 왜군이 조선 수군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여러 전투에서 장군이 이겨서 나라를 구하고 많은 백성을 구했지만 그렇게 잔인하게 왜군을 죽이고 전쟁이지만 살생을 많이 한 과보는 장군의 몫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전선사가 고양이 목을 벤 경우도 있는데 많은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선사가 고양이 목을 베어서 많은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이루었을지 몰라도 그렇게 목을 베는 것은 살생이기 때문에 그 과보의 몫은 선사의 몫입니다.
그래서 무염족왕이 한탄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저들을 다스릴 때 나쁜 섭기를 버릴 수가 없어.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일부러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 자로 변해서 저렇게 하는 것이야. 그러나 내 마음에는 한 번도 저 사람을 해친다는 생각이 없어. 미워하는 마음도 없어. 너희들이 보기에는 내가 저놈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내가 화가 나서 저놈들을 처단하는 것 같지만 내 마음은 그런 것이 하나도 없어. 한 생각도 없어.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한 중생도 해친 일이 없어. 해쳐도 해친 일이 없어. 내 마음에는 개미 한 마리도 괴롭히려는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모든 복 밭인 선법을 창조해 내는 사람을 그렇게 하겠는가? 무염족왕의 쓸쓸한 하소연입니다. 이런 것을 아는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저런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하지만 저 분의 사실, 내면에 있는 깊은 자비심, 슬픔 같은 것을 보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선재도 마찬가지였고, 저는 처음에 화엄경을 볼 때 승열바라문, 무염족왕, 두 분을 보고 선재가 놀랐듯이 놀랐어요. 특히 무염족왕은 더 그랬습니다.
선재 역시 그러했고, 밝은 천신의 어떤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선재 역시 무염족왕은 아주 나쁜 사람이야 하면서 무염족왕의 가르침을 들을 생각도 안하고 다른 곳으로 갔을지도 모르죠~~~
첫댓글 무염족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싫은 줄 모르는 왕이니 무엇을 싫어하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중생을 교화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 대 자비심!!!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나쁜 일의 본보기라고 여기며 하게 되면 걸리는 마음이 없고 죄가 되지 않을 것인데 어리석게 모르고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큰 좋은 일을 위해 한 악이라도 결국은 자신이 그 과보를 받는다는 말씀이 마음이 아픕니다.
녹취가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덕분에 화엄경을 구석구석 공부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녹취 감사합니다. 화엄경 선지식의 가르침을 덕분에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충격적인? 내용이네요. 알고 있는 것에 한방 더 두드려 맞은 느낌. 오늘하루 곰곰 생각해보아야 겠습니다. 선재동자를 찬탄하는 아침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은혜갚는 하루되기를 발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반도행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