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해남 두륜산 대둔사 순례 ②
全南 海南 頭輪山 大芚寺 巡禮 二 -해탈문에서 천불전, 침계루까지-
해탈문에서 바로 나오면 본격적인 경내인데 비경이 펼쳐집니다. 자, 이제 들어가 봅니다.
두륜산 와불(臥佛)
두륜산은 마치 부처님께서 누워 계신 모습입니다.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머리와 가슴부분 부처님 발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와우~ !
두륜산 대둔사 종무소
초의선사가 조성한 무염지(無染池)
이 무염지(無染池) 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깨끗한 연못'이란 뜻인데 이 연못을 바라보며 마음의 때를 벗으라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연꽃이 피면 운치가 그만일 듯 한데 아직은 때가 이르니 상상만 해 봅니다. 이 연못은 향로봉의 화기를 막는다는 풍수적 의미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절에서는 연못의 물이 불의의 화재시 방화수 역할도 하게 됩니다.
무염지 모습
무염지의 전체적인 배치는 절묘한 굴곡모양 연못과 중심에 위치하지 않은 작은 섬을 만들어 놓아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며, 특히 절에서 바라보면 마음'심 (心)자 모양으 로 보인다고 합니다.
무염지 앞에서
여기저기 한창 공사 중입니다.
가허루(駕虛樓)
가허루는 대웅보전에 가기 전에 처음 만나는 전각입니다. 가허루 문 안으로 들어가면 전라 남도유형문화재 제48호인 천불전(千佛殿)을 만나게 됩니다.
가허루(駕虛樓)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건물 중앙은 통로로, 나머지 공간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면 좌우측에는 돌벽을 쌓았으며, 뒷면은 판장문으로 단장하였습니다.
가허루(駕虛樓) 창암(蒼岩) 이삼만(李三晩 1770~1847) 선생 글씨
전북 전주 출신의 창암 이삼만(蒼岩 李三晩)은 이른바 유수체(流水體)란 필명을 떨친 작가로
17세기의 옥동 이서, 공재 윤두서, 18세기의 백하 윤순, 원교 이광사를 이어 19세기 소위 동 국진체(東國眞體)를 심화 확장시킨 조선시대 대표 작가의 한 사람입니다.
가허루 출입구 모습
천불전(千佛殿)
천불전(千佛殿).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선생 글씨.
천불전 안내문
우보처 보현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문수보살
천불전 기도 영험 유래 (千佛殿 祈禱 靈驗 由來)
『이곳 천불전(千佛殿)에 봉안된 천불상은 1813년(순조 13년)에 완호윤우선사(玩湖尹佑禪師) 께서 천불전을 중건하시고 화순(和順) 쌍봉사 화승(畵僧) 풍계대사(楓溪大師)의 총지휘로 경주 불석산에 나오는 옥석(玉石)으로 10명의 대둔사(현대흥사)스님들께서 직접 6년에 걸쳐 정성스 럽게 완성한 千佛로서 그 조각 자체가 서로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정교함과 신비스러움이 더한 천 분의 부처님입니다. 셨으며 千佛이란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거쳐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으로 화장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며 경주에서 조성된 千佛을 2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순조 17년(1817년) 정축(丁丑)11월 18일 경주 장진포를 출발하여 울 산을 거쳐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 대둔사(대흥사)로 향하여 항해 도중 한 척의 배가 울산진 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의 축전(筑前) 대도포(大島浦) 에 표착하였다. 이 배에는 768여구의 옥불을 싣고 있었다. 이 불상들이 축전(筑前) 대도포(大島浦) 현감 꿈에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대흥사)로 가 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현몽하자 현감은 사람을 보내어 사정을 확 인한 후 그 다음 해 7월14일 대둔사(대흥사)로 돌려보내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옥 불을 돌려 보내기 아쉬워 불상 밑면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일본표해록”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모습이었으나 경상도 신도님 꿈에 여러 차례 가사 불사를 해 줄 것을 현몽하여 서둘러서 가 사를 만들어 입혀 드리게 되었다. 千佛께서 입으셨던 가사는 가사불사에 동참한 신도들 가 정에 소장하게 되면 온갖 근심과 걱정 장애가 없어지고 지극 정성으로 염원하는 마음속의 소원이 꼭 성취되는 영험이 있어 그 이후 유명한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千佛 기도 도량입니 다. 이글을 접하시는 여러분들께서도 千佛殿 기도를 통한 영험을 성취 하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옮김-
노란 가사를 입으신 천불
신중탱화
가허루 옆 연리근(連理根)
사찰을 순례하다 보면 연리지(連理枝)와 연리근(連理根)을 가끔 만납니다. 연리지로는 부여 고란사 가는 길에 보았고 연리근으로는 여수 향일암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연리근은 참으로 리얼하게 보입니다.
잘 읽어 보세요.
소원을 담은 기원등
침계루가 보입니다.
심진교(尋眞橋)와 연결된 침계루(枕溪樓)
심진교 밑의 개천은 금당천(金塘川)이라 합니다.
침계루(枕溪樓)
침계루(枕溪樓) 편액.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
침계루(枕溪樓)는 금당천(金塘川)에 놓여 있는 심진교(尋眞橋)에 연하여 자리한 2층 누각입니 다. 이 누각을 통로로 지나면 바로 대웅보전이 나옵니다.
설명에 의하면 『주심포식 겹처마 맞배건물로 낮은 기단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그 몸체를 구획지었다. 중층 누각건물로 하층은 돌담과 판장문으로 마감한 광 으로 구성되며, 상층은 평면에 널마루를 깐 홀로 이루어진 강당류의 평면을 구성한다. 건물 외부는 대웅전을 향한 내벽을 제외하고 삼면을 판벽과 판문으로 처리하였으며, 어칸에는 원 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골기있는 필법의 ‘침계루(枕溪樓)’ 편액과 그 배면 에 ‘원종대가람(圓宗大伽藍)’이라 쓴 두 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침계루 안쪽은 원종대가람(圓宗大伽藍)이란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이 침계루(枕溪樓), 원종대가람(圓宗大伽藍)은 밖에서만 바라만 보았을 뿐 올라갈 수 없었으나 설명 안내문을 적어 봅니다.
『공포는 이익공으로 내부기둥이 없는 오량가구를 구성하여 상부 서까래 사이로 회골이 드러 나는 연등천장을 단장하고 있으며, 상하의 기둥을 서로 분리하여 상하층의 쓰임새를 구분짓고 있다. 건물은 30평의 규모로 상층에는 법고와 1587년명 범종ㆍ목어ㆍ운판 등 사물이 봉안되 어 있으며, 좌우 측벽으로 감실형 틀 속에 금어 현암(玄菴)이 조성한 사천왕탱이 걸려 있다. 이외 대흥사의 사적과 내력을 알 수 있는 ‘대웅전중창상량문(大雄殿重創上樑文)’과 ‘중조성천 불기(重造成天佛記)’ 등 24기의 현판과 시액이 침계루 사면에 걸려 있다.』
이제 동국진체의 명필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편액이 걸려 있는 대웅보전으로 안내 합니다.
☞ 다음은 제3부 대웅보전과 삼층석탑, 그리고 표충사입니다.
|
첫댓글 연리근까지 보게되는군요. 연리근을 향해 기도하신 모든 불자님들, 소원 성취하시길 _()_
대둔사 연리근은 유명합니다. 예전에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 나무가 오래도록 살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_()_
와불은 그때 못봤는데 어쩜 그렇게 생길수가 있을까 참으로 신기함니다. 다시 또 가고싶은곳 입니다._()_
왜, 못 보셨을까 앞으로 순례길에 다른 곳에 가지 마시고 동행하세요. _()_
카메라 앵글 잡기가 넘 좋은곳 같내요, 함께 못한 아쉬움이 넘내요....나무묘법연화경()()()
아마도 많이 바쁘셨을 겁니다. 셋째 주에마산 두륜산 산행이 있는데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을 것 같네요. _()_
천불전을 보니 생각납니다. 대흥사 천불에 관한 이야기를 해남 사람들에게 많이듣고 기록도 봐서 그곳을 갔을때 꼭 확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그런데 가방을 벗어놓고 부처님께 삼배하고 천불상 앞으로 가서보니 옥이 아닌 하얀 칠을 한 모양
이었어요 천개의 옥부처님을 보고 싶었는데..그 생각하다 가방도 잊고 나왔습니다.부처님 때문에 여러사람 고생했어요^^
저도 이상해서 대사에 전화해서 여쭤보았더니 천불부처님에 칠을 한 것이 아니라, 하얀 옥불이랍니다.
그렇군요. _()_
대흥사 뒤 산 모양이 진짜 부처님이 누워 계시는 모양입니다. _()_
불연이 깊은 곳입니다. 천하의 명당이라 그런지 인물도 많이 출현하셨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