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창피하기도 하고 멋적기도 해서 올렸다 지웠다 합니다. 이 글은 매트릭스 2, 그러니까 매트릭스 제 2편 리로디드가 나왔을 때 쓴 글입니다. 3편 나오면 보완할까 했는데 그럴 필요를 못 느끼겠더군요. 2편까지만 보고 썼지만 3편 굳이 안봐도 되게끔 결말까지 다 내려놓았다는 자신감도 되겠습니다. 하여간 매트릭스 이야기는 상당히 깁니다. 아주 길지요. 결말까지 가려면 상당히 오래 걸리므로 약간 지루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렵다고 하시는 분이 많아서...한가지 더, 숫자는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해 매긴 것이므로 영화와는 상관없습니다.
매트릭스 2
일단 배경부터 살펴볼까요.
언제나 최우선 순서가 그렇듯이 이름에서부터 출발하지요,
매트릭스란 무슨 뜻일까요. 이 영화로 인해서 대단히 유명해진 단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사전에서 찾은 매트릭스의 의미는 다양합니다.
자궁, 모체, (생물의) 세포간질(간질이 아닙니다. 간격 물질이라는 뜻입니다.), 자모, (인쇄 할 때 쓰는 활자의) 지형,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행렬(수학의 행렬이지요). 등등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쓰임 중에서 이 영화는 무엇을 뜻할까요?
매트릭스 1에서 나온 설명입니다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갖춘 기계가 인공자궁을 만들어 사람들을 키웁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가상세계를 매트릭스라고 부릅니다. 말하자면 인공 자궁 내에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세계가 매트릭스라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세 가지 의미를 동시에 끌어안고 있는 셈이지요. 사람들을 품고 있는 인공자궁인 동시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가상의 세계이며 또한 그 세계가 컴퓨터 화면 상에는 매트릭스, 즉 행렬로 나타나지요.
이 매트릭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아라는 인식이 없습니다. 아 물론 자기는 있지요. 그러나 이들이 가진 자기는 프로그램에 의한 것으로 이들의 정신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에이전트들이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아니 어느 사람이 모습이 갑자기 에이전트의 모습으로 바뀐다고 해야지요. 이것은 그의 정신을 지탱하고 있던 프로그램이 필요에 의해 강제로 삭제당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매트릭스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설정되고 있는 곳이 Zion, 바로 시온입니다. 매트릭스 세계에서 빠져 나온 이들이 만든 도시지요. 혹은 기계가 인공수정을 해서 만들어낸 사람들이 아닌, 자연 상태에서 출산한 모태에서 나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Zion은 유대인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팔레스타인이라고도 하지요. 지금은 이스라엘 전역을 가리킨다고도 합니다. 성지라고도 하고 천국이라고도 합니다.
자, 이 정도면 왜 자이온이 매트릭스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쓰였는지 아실 겁니다. 인공의 반대, 자연 그대로라는 것일 테니까요. 굳이 시온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아시겠지요.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입니다. 감독 워쇼스키 형제는 유대인이 아니던가요.
워쇼스키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요? 글쎄요. 그렇다면 또 다른 선택이 나오겠지요. 감독이 그들이라는 이유로 인해서 이 영화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철학이 어느 것인지 대강은 짐작이 가시겠지요. (철학이라는 건 그들이 사고를 읽을 수 있는 사실만을 조합해서 이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난 배경, 문화적인 배경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설령 그들이 무시하고 만들었다 해도 곳곳에 배어 있지 않습니까. )
다시 곁가지로 샙니다만 이 시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을 눈여겨보십시오. 매트릭스에 살고 있는 인물들과 복장이 전혀 다릅니다. 매트릭스가 존재하고 있는 기준이 현대(설정이 1999년)라면 자이온에 있는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아마 영화 ‘십계’속에 나오는 그 당시의 인물들이 입을만한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매트릭스에 대응하는 설정이니 그렇다 쳐도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지요. 영화가 진행하면서 시온은 어이없이 허물어져 내립니다. 성스러워야 할 시온이 타락했기 때문이지요. 축제의 밤 장면을 보십시오. 그건 열광에 들뜬 난교에 가깝습니다. 축제 장면에서 십계의 어느 부분을 떠올리는 분이 많으셨을 테지요. 과히 다를 바 없습니다. 그 대목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민망해하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을 겁니다. 한 가지 더 첨가한다면 그렇게 긴 컷으로 비추고 있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유색인종이 아니던가요.
곁가지는 밀어두고 이제 매트릭스와 시온, 이 양 세계에서 설쳐대는 주인공들을 살펴볼까요. 아, 참 설쳐댄다고 하지 말고 활약한다고 해야겠지요?
하지만 어쩐지 설쳐댄다고 표현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요? 1편에서 보여주었던 고뇌와 성찰이 없어진 것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가상이란 무엇인지 현실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찾아 헤매던 네오의 고뇌가 2편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선택받은 자, The One임을 자각하고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갈 길을 내딛어서 일까요? 그 선택에 대한 고뇌가 그려지지 않아서일까요? 갈 길이 설정 되어서 인지 모르지만 2편에서는 주인공들의 표정 또한 한결같습니다. 어찌 보면 딱딱하다 싶을 정도로 변화가 없지요. 이미 고뇌는 졸업해서인가요? 자신의 선택에 미련이 없어서인가요? 아니 이제 고민은 충분히 다루었으니 감정보다는 액션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겨서인가요? 어지러울 정도의 액션, 요란한 눈속임과 더불어 행동만이 살아남은 듯한 느낌입니다. 막대 하나를 중심축 삼아 360도 회전하면서 100명의 스미스와 대결하는 그 장면, 감독으로서는 무척 정성을 기울였을 그 장면, 그 현란한 행동이 1편에서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했던 관객들을 화면 밖으로 쫓아내는 구실을 하는 것일 테지요. 아 저건 그저 영화일 뿐이다 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감독이야 관객의 시선을 붙들려고 했을 텐데 그 시도가 오히려 관객을 지겹게 한다면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요. 아무리 새 기술을 활용했다 쳐도 아무리 고난도의 액션을 보여준다 해도 관객이 따분하게 여기면 거기서 무너져 내리고 마니까요. 글쎄 관객이 요구하는 것은 그런 고도의 촬영 기술 혹은 자랑일까요?
첫댓글매트릭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군요. 난해하고 어지러운 대사때문에 이 영화는 더욱 더 상업성이 있는 듯합니다. 모든 세대, 모든 인종을 안고 가려는 듯한 제작자의 의도가 엿보이고... 주인공 키아누리브스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데, 옛날 영화 "리틀붓다"에서 붓다역할을 참 잘 해냈어요. 고뇌와 통찰, 강력한 책임감..
첫댓글 매트릭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군요. 난해하고 어지러운 대사때문에 이 영화는 더욱 더 상업성이 있는 듯합니다. 모든 세대, 모든 인종을 안고 가려는 듯한 제작자의 의도가 엿보이고... 주인공 키아누리브스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데, 옛날 영화 "리틀붓다"에서 붓다역할을 참 잘 해냈어요. 고뇌와 통찰, 강력한 책임감..
참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몇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이렇게 자세하고도 세밀하게 평을 해주시니, 안 보아도 머리 속에서 필름이 돌아가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