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 도교에 발상지
항산은 북악이라고 불리우며 동악 태산, 서악 화산,
남악 형산, 중악 숭산과 더불어 5악으로 불리운다.
1982년 항산은 산서 항산풍경명승구라는 명의로 국무원으로부터
첫번째로 국가급 풍경명승구로 지정되었다.
별명은 상산, 항종, 원악, 자악이 있다. 혼원현성의 남쪽으로 10km
떨어져 있으며 대동시로부터는 62km 떨어져 있다. 주봉의 높이는
2016.1m이다.
항산은 고대에 “태항산”이라고도 불리웠다.
한나라시기 한무제 유항의 이름과 충돌된다고 하여 “상산(常山)”
이라고 고쳐지기도 했었다.
항산풍경구는 두 봉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천봉령과 취병봉을
중심으로 하여 천봉령풍경구, 취병봉풍경구, 천불령풍경구,
온천풍경구와 혼원성풍경구군이 있으며 용산일대는 자연보호
구이다.
항산의 주봉은 동서 두개 봉우리가 있는데 동쪽은 천봉령이고
서쪽은 취병봉이다. 항산의 유명한 볼거리인 금룡협곡외에
과로령, 고수암, 비석굴, 환원동굴, 호풍일, 대우만 등은
아름다운 신화전설이 있을뿐만 아니라 신비함도 크다.
현근송, 자지욕, 고첨정 등은 자연경관중의 기이한 풍경이다.
항산은 또한 소나무가 아주 유명하다.
항산에는 문물고적이 아주 많다. 항산산기슭에 위치한 현공사,
응현 불궁사의 석가목탑, 혼원성내의 원각사전탑,
영아나 등은 중국의 고건축사상에서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금나라시가 항산은 문화의 고장이었다. 서원학사, 마애제각, 응련비갈이 아주 많았다.
항산은 산이 높고 바람이 세며 기후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많은 건축들은 모두 절벽에 붙여 건설하였거나 암석을 파서 건설하였다.
그러므로 이곳의 건축은 특유의 모습을 자랑한다.
서한초년 항산에는 이미 사원이 건설되었는데 이미 2000여년의 역사가 있다.
비석굴내의 주묘는 북위시기에 건설된 것으로서 당, 금, 원나라시기에 재건축을 하였다.
명청시기 항산에는 더욱 많은 건축들이 들어섰으며 이로 인하여 “3사4사9정각7궁8동12묘”라고 불리웠다.
항산은 도교활동의 장소로서 역사가 유구하다. 전설중의 8선인의 한명인 장과로가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고 한다.
항산묘, 북악묘는 주요 묘이며 이외에도 침궁, 후사부인묘, 자미궁 등이 있다.
관정, 백호관, 용왕묘, 영관부, 관제묘, 문창묘, 할머니묘, 순양궁, 벽하궁 등 도관건축이 있는데
그중에서 현공사는 제1기관으로 불리운다.
항산은 예로부터 도교의 활동장소로 사용되었다.
도교에서는 36소동천중의 제5동천이 항산으로 꼽는다.
모산도의 조사 대모진군 모영은 한나라시기에 항산에 은거하면서 여러해를 수련하였다.
고대에는 18승경이 있었지만 현존하고 있는 것은 조전, 회선교, 9천궁 등 10여곳이다.
항산은 고금을 막론하고 험준함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4000년전 순제는 수렵을 하다가 항산에 오게 되었는데
산세의 험준함과 기봉을 보고는 바로 항산을 북악으로 명하였다.
진시황은 천하의 12명산을 봉할때에 항산을 천하의 제2대산으로 선정하였다.
역사상 진시황, 한무제, 당현종, 송태조 등은 모두 항산에 왔었으며 제를 올렸다.
역사상의 문인 이백, 가도, 원호문, 서하객 등도 항산을 유람하였으며 항산을 읊는 시구를 남겼다.
항산의 경치는 그림과도 같다. 전체 항산산맥은 서남방향으로부터 동북방향으로 뻗어있다.
해발이 2000m이상 되는 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솟아있다.
북송시기의 화가 곽희는 “태산은 앉아있는 듯하고 화산은 서있는 듯하며 숭산은 누워있는 듯하고
상산은 걷는 듯 하다”라고 묘사하였다.
항산의 풍경을 개괄해보면 “뭇봉우리가 앞다투어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기세는 그야말도 거세차다”라고 할수 있다.
항산에 오르면 창송취백, 묘관누각, 기화이초, 괴석유동이 유명한 항산18경을 이룬다.
18경은 제각기 특징이 있는데 마치 18폭의 아름다운 그림마냥 관광객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자협안개비, 운각의 무지개다리, 운로의 봄경치, 호구의 현송, 과로의 선적, 단애의 새소리, 석양, 용천의 감고,
유실비굴, 석동굴의 흘러가는 구름, 모굴의 연기, 금계의 횃소리, 구름타는 옥양, 자골의 구름꽃, 비단 같은 그림,
선부의 취월, 역대의 고금소리, 산정의 송도 등이 있다.
금룡협곡
금룡협곡은 천봉령과 취병봉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협곡이 깊고 양측에는 깎아놓은 듯한 절벽이다.
보기에도 하늘이 양쪽 석벽에 끼여있는 듯하며 가장 좁은 곳은 3장에 불과하다.
이곳은 고대 병가들이 서로 쟁탈하던 곳이다.
북위시기 도무제는 수만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이곳에다 산을 깎아서 좁은 길을 내서는 지키고 있었는데
중원을 드나드는 문호로 되었다. 송나라시기 양업 부자는 이곳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북악묘:
북악묘는 명나라 홍치년간(1501~1502년)에 세워진 것으로서 항산의 묘당중에서 가중 큰 것이다.
북악묘는 항산의 주봉 천봉령 남쪽의 석벽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문앞에는 103급의 계단을 올라갔다가 내려가야 산문에 도달할수 있다.
북악묘 문에는 “정원지전”이라는 네글자가 씌여져 있다.
북악묘내에는 북악대제의 초상이 모셔져 있다.
북악묘앞의 복도에는 청나라 황제가 항산에 와서 제들 올릴 때 제작한 비석이 20여매에 달한다.
현공사:
북악항산풍경구내에서 다른 경관은 현공사이다.
현공사는 북악 항산의 산기슭인 혼원현성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의 금룡협곡내의 서쪽 암벽위에 위치하고 있다.
현공사는 북위 후기(471~523년)에 건설되었으며 현존하고 있는 건축은 명청시기의 유물이다.
형공사는 서쪽암벽을 등에 지고 동쪽을 향하고 있다.
마치 정교하고 영롱한 옥조각이 거대한 병풍위에 새겨진 듯하다. 사원내에는 전, 누각이 40간 있다.
남북에는 삼겹처마의 건물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3층으로 겹쳐져 있는데 지면으로부터 백여척에 달한다.
벼랑위에 위치한 이 건축은 3면이 환랑이 에워싸고 있으며
6개의 전각은 서로 교차되면서 잔도로 연결되며 목제 계단으로 서로 통한다.
이 건축의 분포는 말로는 형용할수 없다.
전체 사원은 진실이 아닌듯 하면서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위험한 것 같으면서도 안전하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국내 다른 사원이나 묘당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기발한 구상이다.
현공사내에는 동제, 철제, 흙제, 석조각으로 된 상이 78존에 달한다.
삼성전내의 흙제상은 당, 명나라시기의 여운이 남아있다.
석가, 위태, 천녀, 아난 등은 형체가 풍만하고 표정이 생동하다.
선녀의 우아함, 위태의 늠름함, 아난의 진정함은 서로 부동하다.
삼교전내에는 석가모니, 노자, 공자 등 3교의 선조가 한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중국 종교사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있다.
현공사내에는 조전, 회선부, 벽하궁, 순양궁, 누대정, 침궁, 서장루, 어비정 등이 있다.
고첨정
고첨정은 항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두 우물이 1m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데 수질이 다르다.
한쪽 우물물은 감로와도 같이 달콤하고 시원하며 깊이가 수척에 달하여
아무리 퍼내도 끝이 없어 만인이 음용할수 있다.
당현종 이융기는 이 우물에 “용천관”이라는 명을 하사하였다.
다른 우물은 물맛이 쓰고 떫어서 마실수가 없다.
이렇게 1m를 사이에 둔 두 우물이지만 수질이 판판 다르다.
고정(쓴 우물)은 이미 봉해버렸다.
항산소나무
항산의 소나무는 모양이 특이하다.
그중에서 당나라시기의 고송나무 네그루는 사람들로부터 “4대부송”이라고도 불리운다.
고송의 뿌리는 돌밖으로 뻗어있으며 암석을 휘감고 있다.
항산의 소나무는 단애절벽에도 생장하고 암석틈에서도 생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