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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1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1 삼류 작가의 메모
마치 봄 날씨 같은 따뜻한 1월 저녁, 신쥬크의 레스토랑 빌딩의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한 쌍의 남녀와 조우했다. 여성은 35, 6, 아니면 이미 40 가까이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보기에는 '주부'라는 느낌의 갈색의 타이트한 투피스를 입고 고급 핸드백을 들고 있다. 머리 모양은 부풀려 올리고, 방금 화장을 한듯, 로션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외모는 평범한 편으로 가정주부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남성은 일반적인 일본의 샐러리맨 타입이다. 감색의 정장에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있다. 얼굴은 사각형과 원형의 중간 쯤으로, 통통한 체격에, 검은 테 안경을 쓰고 검은 가방을 들고 있다.
한 순간에 이 만큼을 눈에 담을 수 있은 것은, 이런 대화가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말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정말, 그래요..? 나는 몰라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금방 알아 봤어요." "그랬어요? 다행이다..."
귀에 들어온 대화는 그것 뿐이다. 여자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두 사람은 내렸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남자가 앞서서 그곳의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일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삼류 작가의 직업의식이랄까, 습성이랄까, 바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저들은 몇 년 만에 만난 고교시절, 혹은 중학시절의 동급생이다. 어떤 일로 두 사람 모두 지방에서 도쿄로 온 것을 알고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일 것이다.
어쩌면 두 사람은 그 옛날, 서로 좋아했던 사이였을 지도 모른다. "혹시 못 알아보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금방 알아 보았어요." "그랬어요? 다행이다..." 라고 하는 말에서 여자 쪽이 더 옛날의 좋아했던 감정이 묻어 나오는 것 같다.
그것은 옆에 타인이 있다는 것을 잊은 듯한 조금 들떠 있는 듯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 둘은 이제부터 식사를 하면서 추억 이야기에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공통의 추억은 헤어져 있던 세월의 간격을 훨씬 줄여 줄 것이다. 그래서 옛날의 감정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 때가 그리워..." 라고 그녀는 반복하여 말한다. 그리움 속에서 새로운 사랑 같은 것이 싹트고 있다. 남자는 그것을 감지한다. 남자 쪽에도 사랑이 싹틀까? 아니, 그녀에게는 안된 애기지만, 남자에게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녀가 '아줌마풍'으로 보였기 때문이어서 일 것 같다. 그래서 남자의 옛날의 꿈은 깨어져 버리고만 것이 아닐까?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라고 인사치레로 말했지만, 그것은 본심인가, 혹은 쇼크를 숨기기 위한 순간의 인사말인가, 아니면 그녀는 옛날부터 '아줌마풍'의 소녀였는지. 만약 이것을 소설로 쓴다면, 어느 쪽으로 할 것인가, 나는 생각한다. 내 취향으로는 두 번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소설은 흥미롭지 않게 된다. 나의 소설은 나의 짓궂은 전개로 재미를 북돋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짓궂지 않고 로맨틱한 인간이었다면, 이 이야기의 시작부터 우아하면서도 궁색한 러브스토리로 전개되겠지만, 나는 그런 전개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나는 시부야의 돈까스 가게에 들렸다. 영화를 본 후 돌아오는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각별히 돈까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녁 식사 때라 다른 가게에는 자리가 없어, 자리가 빈 그 돈까스가게에 들어간 것이다.
왠지 내가 돈까스 가게에서 돈까스를 먹은 것은 생각해 보니 태어난 후 두 번째이다. 한 번은 친구가 어떤 돈까스 가게의 할인권을 가지고 있어, 그걸로 얻어 먹었다. 30년이나 전의 일이다. 그런 것을 떠올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점내는 넓지만, 테이블의 간격을 좁혀 많은 손님을 수용할수 있도록 만들어진 대중 취향의 가게이다.
바로 오른쪽 옆의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곳에 대학생풍의 남녀가 마주보고 돈까스정식을 먹고 있다. 두 사람은 아무래도 고등학교 시대의 동급생으로 우연히 만난 것 같아 보였다. 옛 친구들의 뒷이야기를 차례로 말하고 있다. 그러는 중 청년이 말했다. "맛있어? 이 돈까스..." "응, 맛있어..."
소녀는 짧게 대답하고 다음 이야기에 들어 간다. 내 생각에는 "맛없어, 이 돈까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맛없는 돈까스다. 기름도 별로고 돼지고기도 별로이다. 양배추 채도 별로이다!
두 사람은 또 ×쨩은, 라든지 ○씨는, 라고 하는 이야기로 되돌아 왔다. 청년은 공기밥 한 그릇을 추가했다. 소녀는 거의 접시의 밥을 먹지 않았다. 돈까스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것은 수다에 열중해서일까, 맛이 없어서 일까. (나는 어쩌면 후자 쪽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잠시 후 청년은 또 이야기를 끊었다. "그거, 맛있어?" "응 맛있어" "정말 맛있어!" "맛있어..." "그래? 다행이다" 안심한 듯이 말했다. "이 돈까스 정식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야. 돈이 있을 때라든가, 뭔가 힘을 내고 싶을 때는 여기에 온다." "그래?"
소녀는 가름한 얼굴의 수재형이다. 청년은 앉아 있어도 땅딸막한 체형의, 피부가 검은 편의 남자다. 이 돈까스 정식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뭔가 힘을 내고 싶을 때는 여기에 온다는 그 말에 나는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 그는 그녀를 만나 '힘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를 옛날부터 좋인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래도 의리로 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록 의리라고 해도 "맛있어"라고만 하지 말고 "음, 맛있어-, 매우!" 라고 힘을 넣어 대답할 수는 없는 것인가.
나는 땅딸막한 청년을 위해 의분을 느낀다. 그녀가 '맛있다'라고 밖에 말하지 않는 것은, 실제로 돈까스가 맛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탓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작년의 메모장 속에서 이 두 개의 짧은 메모를 발견했다. 그 엘리베이터의 남녀, 돈까스 가게의 두 대학생.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때의 만남이 지금도 그들의 삶 위에 무언가의 의미를 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밀려왔다 쓸려가는 해변의 물결에 휩쓸려 가버리는 조개껍데기나 쓰레기처럼, 흔적도 없이 의미 없이 사라져 버렸는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2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2 현대범죄에 대한 고찰
나의 어린 시절엔 "범죄의 뒤엔 여자가 있다" 라고 하며 죄를 저지르는 것은 오로지 남자라고 정해져 있었다. 여자는 언제나 남자의 뒤에 가려저 있고, 남자를 따르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등의 사회적(?) 위치에 설 수 없었던 것이다.
살기 위해 사회의 거친 파도와 싸우는 것은 남자의 역할이었다. 원시시대부터 여자는 집에서 사냥해 온 먹거리를 가지고 돌아오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성질 나쁜 여자라 해도 밖에서는 내색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남자에게 잔소리를 했다.
남자를 꼬드기는 성질 나쁜 여자 때문이 아닐지라도, 반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하는 남자도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여자들은 남자의 범죄 때문에 괴로워 했던 것이다. 여자들은 상냥하고 연약하며 견실하고 성실했다.
그런 여자가 죄를 범할 때는, 화를 참지 못한 살인, 원한에 찬 살인, 혹은 정신불안정에 따른 충동적인 절도 등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 데는 납득할 수 있는 사유가 있었다. 계획적인 범죄는 드물었다.
계획적이지 않다는 것은 죄를 범하더라도, 그에 수반한 경험, 지혜, 사회적 입장 등과는 아무 관련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것이 쇼와 40년대(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 변화해 왔다. '범죄 뒤에 여자 있음'이 아니라 '범죄 뒤에 남자 있음'이 되었다. 주역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젊은 여성이 남자에게 헌상하기 위해 근무처의 대금에 손을 대는 사건이 그렇게 드물지 않은 일로 되어 버렸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해방됨과 동시에 범죄면에서도 해방(?)되어 갔던 것이다.
옛날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헌상한다고 하면, 기껏해야 몸을 팔아서 얻은 돈을, 전봇대 그늘에서 돈뜯으러 온 남자에게 건네 주는 정도였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손에 쥔 주간지를 넘기다 보니 "가공의 갓난아이 천칠백명으로 3억엔 사취한 여사무원의 재테크." 란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대형 재봉틀회사의 건강보험조합에 근무하는 46세의 여성이 의료급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면서 이를 계기로, 가상의 출산을 허위로 조작하여, "배우자 분만비"를 7년간에 거쳐 약 3억엔 착복했던 것이다.
조합원은 4천7백명이 있지만, 본인이나 배우자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있는 조합원은 약 절반 정도라고 해도, 일년 평균, 2백4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는 계산이 된다.
이로 인해 노조의 재정이 악화되어 원인 분석을 시작했는데, 의료비, 특히 분만비가 폭증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다른 회사의 4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원인 규명을 다름아닌 이 여성에게 하게했다. 그 때문에 부정의 발견이 늦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녀는 조작된 보고를 상사에게 하고 있었다." 는 조합이사장의 답변을 읽고, 나는 그녀의 수완이 비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상사를 납득시키는 "조작된 보고"를 그녀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자도 영특해졌구나…" 라고 감탄하는 나는
"구 시대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사를 납득시키는 보고서 작성" 이란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용기도 없다. 우선 그런 주변머리도 없다.
그녀는 이렇게 훔친 돈으로 집을 짓고, 1억 수천만엔의 저당증권과 이자부 국채를 사고,, 일시불의 양로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쁜 돈은 수중에 머물지 않는다." 는 예전부터 전해 오는 말은 훔친 돈은 모두 유흥 등에 탕진하게 마련이라 하지만 지금은 재테크시대이다.
"훔친 돈으로 재산을 증식한다는 견실함을 보이고 있다. 그녀의 근무상황은 매우 성실하여 지각이나 결근은 거의 없었다고 이사장은 말하고 있다.
요즘은 여자 단독으로 자신의 생활설계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범죄 이면에 남자는 없다. 굶주림에 우는 아이도 없다. 병으로 고통받는 노모도 없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여자가 죄를 짓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예전의 여자들은 '상냥하고 연약하며 견실하고 성실하다' 는 이야기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지 않았다고 하는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이었을까?
"뇌물, 독직, 뒷거래는 남성들에만 해당하는 말" 이라고 강연한 여성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이 뇌물을 받거나 독직을 하거나 뒷거래를 할 수 있는 직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지 않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어제 2월 29일자 신문에는 전문대학 상학부의 교수가 현금 백만엔을 받고 위조 학생증을 작성해 주고 학생은 백만엔으로 보결 입학했다고 생각하고 수업에 나왔다는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그런 무적학생은 3명에서 5명은 있다고 한다. 1인 백만엔으로서 교수는 3백만엔에서 5백만엔을 손에 넣은 것이다. 요즘은 여자가 범죄에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지식인이 죄를 짓고 있다.
나쁜 일을 한다는 것은 옛날에는 무지, 빈곤이 원인이었다. 적어도 지성과 교양을 몸에 지닌 사람은, 잔꾀를 부려 돈을 모으러는 따위의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지성과 교양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대학교수라면 먹고살기에 곤란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무지하지도 않고 궁핍하지도 않다. 그런데 왜 그는 그런 잔꾀를 부리기까지 하여 돈을 모으러 했을까, 모두가 굶주림을 모르는 풍족한 시대가 가져온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부패인 것이다.
지금은 지성도 교양도 지위도 아무 의미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전 대장성 사무차관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주식 매매 이익 2억엔의 신고를 누락했다고 언론에 보도된 것이 지난 주인 것이다. 그것은 58년부터 60년의 3년간의 조사로 판명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 이전의 신고 누락도 있을지 모른다.
한편, 나는, 59년도에 아사히라는 방송국으로부터 받은 4천엔의 사례금에서, 원천 징수세 10%를 공제하고 받은 3천6백엔의 수입을 '신고 누락'했다는 공지를 지금 세무서로부터 받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까지는 만화에 나오는 도둑은 알록달록한 얼굴가리개용 수건을 쓰고, 버선신을 신고 등에는 커다란 보자기를 메고 있었다. 나는 그 도둑이 그립다. 도둑질하러 들어 가기 전에 그집 주위에서 변을 본다.
그렇게 해두면 그집의 사람은 잠을 깨지 않는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너무 긴장해서 변의를 촉진해서라는 설도 있다).
개가 짖으면 쉬쉬하면서 엉덩이를 까고 변을 보면서,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처마 아래로 숨어 들어간다.
성공하든 말든, 절체절명의 시간이 지난 후 무사히(?) 큰 보자기를 짊어지고 나온 도둑, 그 도둑님이 나는 그립다.
●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3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3 부동명왕님과 마요네즈
꼭 칠년 전의 일로, 어떤 영험있는 사람으로부터 “사토 씨는 부동명왕님이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라는 말을 들은 이래, 저는 부동명왕님을 믿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부동명왕님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지켜 주고 계십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그것을 곧바로 믿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말을 믿고 바로 신자가 되거나 하는 사람은 '단세포' 라고 비웃음을 당하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왜 믿을 수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것을 믿는가라고 조소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그것은 고마운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믿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조심스러워 지고 의심이 많아 지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로(아주 어린 시절부터 조심성 부족으로 곧바로 남을 믿고는 실패하는 인간이었지만), 노후 점점 그 경향이 강해져, 모든 것을 의심없이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의심스러워, 속임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믿고 싶다는 기분의 강해서 믿어 본 결과, "아무래도 이것은 처음부터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었어." 라고 후회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믿고 싶은 마음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부동명왕님이 지켜 주시고 있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3월에 들어서 처음 맞는 일요일, 나는 문득, "그래, 마요네즈를 만들자!"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마요네즈만들기의 명인이라고 예전부터 자부하고 있었다. 그 밖에 자랑할 만한 요리는 없지만, 마요네즈만은 맛있다고 누구나가 칭찬해 주었다. 딸은 전동식 교반기 (젓는 기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손으로 거품봉을 저어서 거품을 만드는 것이다.
더욱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속도가 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빨리 만들 수 있는가, 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백의 문제" 라고 나는 대답하고 있다. 거품봉을 사용할 때는 강하고 신속하게 해야 한다. 느릿느릿 저으면 기름기가 생겨서 맛이 떨어진다(라고 나는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다).
이야기의 전후가 바뀌었지만, 마요네즈를 만드는 방법은 겨자, 달걀 노른자, 설탕, 소금에 식초를 소량 넣어 혼합하고, 거기에 샐러드 오일을 가늘게 부으면서 젓는데, 뻑뻑해 지면 식초를 더해 묽게 한 후 또 샐러드오일을 더한 후 뻑뻑해 지면 식초를 더해 묽게하는 등의 과정을 반복해서 양을 불리면서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달걀 노른자 3개분으로 마요네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달걀 노른자 3개분일 때는 겨자는 3스푼, 소금, 설탕도 3스픈 씩, 샐러드오일도 3컵이다. 식초는 '적당량'으로 여기가 어려운 점이다. 몇 스픈이나 몇 컵이라 할 수 없다. 거품봉을 저을 때의 감촉의 문제인 것이다.
전동식 교반기 따위를 사용한다면, 식초를 언제, 어느 정도 넣으면 좋을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과정을 무시하고 요리책에 쓰여 있는 분량을 한번세 몽땅 넣기 때문에 미묘한 맛의 마요네즈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라고 뽑내듯이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무슨 이유인지 식초와 기름이 분리되어 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일로는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전에도 젊은 가사도우미에게 만들게 하면 자주 이런 분리현상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내가 따로 새로 만들면서 거기에 가사도우미가 만들다 실패한 것을 조금씩 넣어 가면서 잘 섞이게 하여 실패작을 구해내곤 했다. "어때! 이제 제대로 되었지!" 내 솜씨 어때라듯 으젓해 했다.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유연하게 다른 그릇에 새롭게 재료를 정돈해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 또 이번에도 분리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하구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또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분리 현상이 나타난다. "도대체 이것은---" 라고 나는 실패한 마요네즈의 3개의 그릇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겼다. 뭔가 빠뜨린 것이 있는 것 같다. 겨자, 달걀 노른자, 소금, 설탕 ····하나 하나 확인한다. 나는 40년 전부터 마요네즈 만들기의 명인으로 자부해 온 몸이다. 바로 한 달 전에도 만들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당황해 하며 서둘러서 45년 전부터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요리책을 펼쳤다. 이제 머리가 멍청해진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여러번 다시 읽어도 틀리지 않았다. 원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마침내 나는 딸을 불렀다. 딸은 실패한 3개의 그릇 속을 보고, "뭘 이렇게 어질러 놓은거야!" 패잔병을 본듯 의기양양하게 말하면서 예의 그 전동 각반기를 꺼내더니 새롭게 달걀을 깨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실패! 나와 딸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할말을 잊었다. 나는 갑자기 피로감을 느끼고 옆에 있는 의자에 맥없이 앉았다. 딸은 시장바구니를 가지고 나갔다. 달걀을 사러 간 것이다. 사온 달걀로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실패. 이번에는 혹시 식초에 문제가 있나 하고 새식초를 사왔으나 또한 실패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름을 바꾸어 보아도 겨자를 새것으로 사와 시도해 보아도 역시 실패다.
모녀 합계 10개의 달걀을 허비했고, 그 모두가 잘못되어 실패한 것이다. 이제 포기하자, 오늘은 날이 좋지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부엌에 늘부러져 있는 그릇들을 마주하니 부글부글 투쟁심이 솟아 올라, 또 달걀을 깨고 있다. 저녁 먹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벌써 날이 완전히 저물어 저녁 먹을 시간에 되어 있는 것이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도전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으로 합장을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대일대성 부동명왕님, 아무쪼록 마요네즈 만들기를, 성취시켜 주십시오." 세 번 큰 소리로 빌고, 새로운 수건으로 머리띠를 두르고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기름끼가 분리되지 않고 제대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환희작약. 새로 만든 것에 조금 전까지 실패한 것들을 조금씩 더하면서 샐러드 오일을 첨가해 나갔더니, 무려 우리집에 있는 큰 유리병 6개 분이 되었다! 싱크대는 달걀껍질 더미! "역시 부동명왕님이 도와 주셨다!" 고 나는 감격했던 것이었다. 마요네즈가 기름과 분리되서 실패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더욱더 부동명왕님을 믿고 있다.
●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4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4 인간 본연의 심성
가수 하기와라 켄이치가 사진잡지사의 사진 작가를 때려 고소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작년 늦가을이었는지, 초겨울이었는지, 요즘처럼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으면 최근의 일들도 금방 구문에 속해 버린다.
뭔가로 풍문이 많은 하기와라 켄이치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또 그 스캔들장이 켄이치가..."
라는 선동적인 표제로 스포츠지와 주간지가 야단스럽게 보도하고 있었지만, 그후 고소관련 보도는 그기서 끊어져 버렸다.
가끔 만나는 매스컴 관계의 여성에게, 그 고소는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봤더니 "글쎄요? 어떻게 되었지… 그런데 사토 선생님도 의외로 그 사람을 좋아하시나 봐요..." 라며 묘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고소사건에 흥미가 있는 것이다. 잡지사 측은 왜 고소했는지, 그 고소를 재판관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내가 궁금해 할 만큼 이 사건은 아주 기괴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말하면 이런 일이다. 어느 날, 가수 하기와라 켄이치가 영화인 회의인지 무언가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여배우 바이쇼 미츠코와 함께 나오는데, 허락도 없이 갑자기 사진을 찍혔다.
화가난 하기와라가 필름을 돌려달라고 하자, 카메라맨은 돌려주지 못한다고 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지며 하기와라는 카메라맨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연예저널에서는 예전부터 하기와라와 바이쇼미츠코 사이의 여러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뒷받침할 사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잡지사 쪽은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하기와라 쪽은 성가시기 때문에 싸움이 되었다. 하기와라가 화내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하기와라는 지금까지 예능저널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있었다.
그가 카메라맨을 때린 것은, 여태 쌓여 온 울분이 폭발하였음에 틀림없다. 아니 일부러 옛 고사를 들어 비유할 것도 없이, 무례를 당하면 화가 나게 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심리인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기괴한 발상이 아닌가. 남이 싫어하는 짓을 무리하게 하여 상대의 화를 유발시켜 놓고 오히려 피해를 당했다고 고소를 하는 것이다.
해코지쟁이가 약자를 해코지하자 돌연 참지 못한 약자가 역습해 온다. 그렇게 되면, 당한 해코지쟁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지 않으러고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사과하는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하겠지만 자신이 잘못해 놓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고자질하러 달려가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해코지쟁이는 자신의 행동이 나쁜짓이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햇코지쟁이 아이 만큼도 자기인식을 갖지 못한 잡지사의 독선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호치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를 하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메이지 34,5년경의 일이지만, 당시의 귀족원의장 고노에 아츠마로의 주창으로 국민동맹회가 결성되어 그 대회가 홍엽관에서 개최되었다.
아버지가 신문기자 자격으로 그 대회에 참석코자 입장하려 하니까 장사풍의 남자가 다가와 "어이, 신문장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못들은 척하고 있자 남자는 계속해서 불렀다. "어이 신문장이, 들리지 않나!" 나의 아버지는 청년일 때, 당시의 국수주의자로 일본신문 사주였던 쿠가카츠난(陸羯南) 으로부터 사사받고 있었다.
신문사는 장사를 위해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신문기자라는 것은 청빈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지도자로서 기사를 쓸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신문장이"라고 불려 화가 났다.
"신문장이라니 무슨 그런 무례한 말을..." 그렇게 나무라자 상대는 "신문장이니까 신문장이라고 했는데 뭐가 잘못이야!" 라며 대들자 아버지는 바로 그 남자의 빰을 세차게 내려쳤다. 빰을 앚고 비틀거리는 것을 다시 쓰러뜨린 후 그위에 올라 타고 계속 때렸다.
그러자 이를 본 다른 장사들이 달려들어 아버지를 에워쌌다. 이 광경을 본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몰려 와 홍엽관의 현관은 대난투극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소란함을 듣고 안 쪽에서 고노에 아츠마로가 나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츠마로는 말했다.
"그것은 코이케가 나쁘다. 사토 군에게 사과해라." 그는 현양사의 코이케 헤이이치로라라는 장사였다. 그는 "두들겨 맞은데다 사과리니, 불공평하다, 나는 당신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지만 나의 말로 당신의 손읗 때렸다고 생각하니 화가 진정된다." 고 말하며 사과를 했다;
간단하고 명쾌한 사과이다. 참으로 메이지 시대다운 이야기이다. ---난 너에게 맞았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내 말로 너의 손을 때렸다고 생각하니 화가 진정된다... 그렇게 말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것이 지금은 왜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일까?
웃고 싶을 때는 진심으로 웃고, 울고 싶을때는 마음껏 울고, 심기가 불편하면 화를 낸다. 그리고 화가 날땐 폭력을 휘두를 때도 있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인간의 자연스런 심리'가 비틀어지고, 왜곡되고 말았다.
현대에 있어서 무엇보다 나쁜 것은 폭력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하기와라 켄이치는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대의 잘못을 상쇄시겨 버렸다. 이것이 메이지시대였다면 하기와라의 폭력은 당연한 행위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썼다고 해서 나는 여기에서 하기와라 켄이치의 폭력을 옹호하려는것은 아니다. 현대사회를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자신에 대한 감정의 억제와 관리를 통해서 우리가 이룩하여 온 것에 흠이 가는 것을 걱정할 따름이다.
몇 년 전, 가수 사와다 켄지가 신칸센열차 안에서 어떤 승객으로부터 자신을 비하하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 화가나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건이 있었다. 사와다가 때린 것은 그의 자부심 때문이다. 받은 모욕에 대해 싸우는 것은 남자로서의 사와다의 당연한 행위이다.
그러나 언론은 엄청나게 사와다를 비판하고, 그 때문에 수년간 사와다의 가수생활은 침체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어떤 잡지에 사와다의 행위를 옹호했는데, 여성 독자로부터 파로 편지가 왔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은 이후 삼가하여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나의 아이는 초등학교 5년생의 남자 아이로 폭력은 않된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아직 한 번도 누구와 싸운 적이 없이 여동생을 귀여워하는 마음씨 착한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고 나는 "그렇게 키워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묻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5년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싸움을 한 적이 없는 소년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문제가 있는 아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즉 싸울만한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는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과 같은 것으로 고통 받는 것이 아니고 건강한 소년이라면 그가 한 번도 싸움을 한 적이없다는 것은 '부자연스런 현상' 이다. 달리고, 뛰고, 소리지르고, 깨뜨리고, 장난치고, 그리고 싸움질도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불타는 에너지를 이런 식으로 발산하고, 소화시킴에 의해 균형잡힌 성장을 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날의 어른들은 아이들이란 그러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든지 '폭력'은 모두 '악'으로 부정되고 있다. 그렇게 어른들이 교육시키고 있다. 옛날의 아이들은 맞고 때리며 싸움으로 에너지를 조절했는데, 지금의 이이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발산하면 좋을까.
아니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아이들의
'왕따괴롭힘'은 발산구를 잃은 에너지가 안으로 축적되었다가 발효하여 음습한 타인 귀롭힘의 형태로 분출되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이의 자연스런 심성'을 억누르고 있으면서, 반대로 어른들은, 왕따괴롭힘에 대한 선생님의 주의가 부족하다고 힐책하거나, 아니면, 부모의 방임의 책임이라고 비난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린이의 자연스런 심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조차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헤메고만 있다. 그러나 그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른들 자신이 어떻게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회복시키면 좋을지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찾아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거역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기와라 켄이치는 카메라맨을 때린 후에, 자신은 카메라맨을 결코 때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말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어쩌면 '폭력은 악이다' 라는 시대가 내린 정의 때문일 것이다.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은 사후 수습책으로 그러한 코멘트를 내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기와라는 모처럼(?) 때려 놓고는 스스로 자신을 치졸한 사람으로 바꾸어 버렸다.
"확실히 내가 때렸어! 그것이 어쨌단 말이야!" 라고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았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폭력은 예찬받을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겁이나 비열이 용서되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5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5 다민족 시대
아내이자 어머니이지만 여자가 아닌 자신--- 그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질문을 받았다. 그것이 요즘의 30대 가정 주부의 고민이라고 한다.
아내이자 어머니이지만 여자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라고 내쪽에서도 질문하고 싶어졌다. 여자이기 때문에 아내이고 어머니가 아닌가? 지금 아무리 줏대없는 남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해도, 남자가 아내나 어머니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물으니 상대방은, 그런 질문을 받을 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라고 실망스런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 정색을하고 나무라면 민망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토 선생님은 아마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이라고 머뭇거리면서
"그런데 어쩌다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서의 즐거움...여자다운 생활...삶의 보람이랄까, 그런 것이 없어요...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적해 집니다. 뭔가 하고싶다! 라고 줄곧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점점 더 안절부절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 그래요?" 라고 나는 알듯 말듯 건성으로 외국어라도 들은 듯한 기분으로
"끈질긴 것 같지만, 아내로서의 자신, 어머니로서의 자신은, 여자로서의 자신이 아닌가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자로서의 자신은 어떤 자신입니까?" 라고 묻는다.
그런데 그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자신이 있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면서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웃음은 자조의 웃음 같기도 하고, 나의 무지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를 개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드문, 국민의 대부분이 동일민족이기 때문에 서로가 한마디 말로 열마디를 알아 듣는다. 많은 말을 쓰지 않아도, 서로가 곧바로 알 수 있는 공통의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활하기 편하다, 라고들 말하고 있다.
열마디의 말 중 여덟까지만 말하고, 나머지 두 마디는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듣는다는 신뢰 관계가 암묵적으로 성립되어 있어, 오히려 그렇게 하는 편이 함축성이 있어 서로가 좋아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미국 같은 곳에서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영국계, 스페인계 등등, 다민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감성이 집합되어 있어 아무래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매사를 에두르지 않고 분명하고 단순한 형태로 말하지 않으면 이해 받기 힘들게 된다.
일본인처럼 '함축'이란 것을 소중히 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말하면 입술이 추워지는 가을 바람(무심코 한 말에 스스로 후회한다)'는 바쇼(松尾芭蕉:에도시대 하이쿠 시인)의 시에도 나와 있듯이 하이쿠에 해박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일본인이라면 대체적인 그 뜻을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단지 가을의 정취를 느낄 뿐만 아니라, 이 시구에 함축되어 있는 속뜻까지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라고 오랫동안 나는 생각하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칠지도 모르는 일본인의 ‘싱긋싱긋 웃는 웃음’도 말 이외의 뭔가를 전하고 있다는 뜻의 웃음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그러나 요즈음, 자꾸만 머리에서 맴도는 것은, 일본도 최근에 이르러 다민족 국가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일본인끼리니까 헤아릴 수 있다는 편안한 마음이 없어지고 있다. 일본인끼리이기 때문에 '서로 통한다'는 것은 감성이나 발상의 토양이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얼굴은 같지만 다른 토양에 다른 감성, 다른 가치관을 키워온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 "어머니이자 아내이지만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라는 생각의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된 토양에 조심스러운 꽃을 피워 온 노년층은, 어머니이자 아내인 것 이상으로 뭔가 더, 활기찬 자신의 길이 없는가 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 길을 가려면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한 채로,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위치를 감수하고 일생을 보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 개인은,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실격자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며 살았지만 '여자로서의 삶의 보람'을 만끽한 것은 아니다. 더 말하자면 '인간으로서의 삶의 보람'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여자로서의 삶의 보람'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여자로서의 삶의 보람"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조차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념적으로도 모르고 실감으로도 모른다. 동년배의 옛 친구에게 이것을 말하자, 그녀는 한마디로 말해 버렸다. "그런거, 우스운 말이야! 뮈가 여자로서의 인생이야!"
라고 그 친구는 내 말에 진정성이 없다고 화를 내는 것이다. 그녀의 추찰로는, "여자로서의 인생을 살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은, 아마, 예를 들면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독신 시대와 같이 기분내킬 때 가고 싶은 곳에 놀러 가고, 세련되게 멋부리고 외도나 연애 같은 것을 하며 즐기며 마음조려 보고 싶다…는 그런 것이라고 처음부터 그러한 선입견을 가지고 그녀는 말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하라주쿠 주변의 카페 테라스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 담배를 태우고 있으면, 맞은편 테이블에 있는 신사와 문득 시선이 맞주치고, "좋은 날씨입니다." "그렇군요. 산들바람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혼자 오셨어요?" "네? 네에..." "이렇게 하고 있으니 마치 파리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아, 파리.." "마로니에가 아름다울 무렵입니다..."
등등, 해도 않해도 좋을 것 같은 이야기를 거드름피우며 나누고, "또다시 언젠가 뵙기를 바랍니다." "네? 하지만 다시 만날 일이 없지 않을까요? 우연이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아니, 그건, 간단해요. 의지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군요.." ---이런 말로 서로 즐거워한다.
그렇게 하여 그것이 이윽고 의사연애로 발전하고, 바람을 피우게 되고 또 고민하게 되고 행복감에 젖게 되고 갑자기 멋쟁이가 되었다고 주위로부터 그런 말을 듣게 되어 기뻐하기도 하고...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다,
그래, 그런 것이야--라고 마음대로 정의를 내리고 우리는 분개한다. 저속적이다고 해도 우리의 세대는 기껏 그렇게 밖에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내이고 어머니인 것이 싫증이 닌다? 싫증이 난다는 것은, 자신에게 그만큼의 힘 밖엔 없다는 것이니 어쩔 수 없잖아!"라고 갑자기 화가 치민다. 그렇게 말하다 보니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보내 와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린 자신에게 생각이 미치게 되는 것이다.
되돌릴 수도 없다, 라고 해도 희망찬 앞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자신의 일생을 생각하면 바보가 된 것 같은 절망적인 마음이 들기 때문에 가능한한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말자고 하며,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열심히 살아 왔어. 남편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고 억지로 자랑스러워 하지만 내심으로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어쩌지하며 암담해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남편이 먼저 세상울 떠나도 별로 암담하지 않다. 생활의 기반만 확실하면 오히려 남편이 먼저 가도 나쁠 것이 없다. 아무튼 나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할 일은 다해 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만족감은 있어요!"
라고 마음 속에서 혼자서 속시원하게 불만을 누르고 만족해 한다. 우리 세대는 그 날 그 날을 일심불란하게 살아야 하는 조건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생활밖에 없다! 아! 이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따위의 불만을 토로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촌각의 여유도 없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일해 온 세대와, 여유가 너무 많아, 여자로서의 자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라고 고민하고 있는 세대가 지금,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게다가 또 하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사는 것은 삶의 흐름인데, 이와는 달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라고 잘라 말하는 신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 세대들은 고민하는 주부들을 향해 말할 것이다.
"오로지 가족만을 위한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자꾸자꾸 하고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라고 실로 간단 명료하다. 그러나 '자꾸자꾸 하면 된다'라고 해도 무엇을 자꾸자꾸 하면 좋을지 모른다.
젊은 세대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고 결연히 선언하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 파트타임으로 하루 일하고 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여자로서 삶이다" 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설령 직장에서 약간의 연애사태가 있었다고 해도.
그런 것을 보고, 노년층은, "남편도 아이도 있는데, 무슨 짓이야!" 라고 화를 내겠지만, 젊은층은 "그게 어때서, 즐거우면 그만이지." 라며 대수롭지 않아 한다.
그렇게 해서 '번민히는 중년주부'들은 더 즐거운 것, 더 불타는 것을 지향하여 안달하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여자끼리이지만, 지금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모 부인잡지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요즘 인터뷰 같은 것은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그것은 앞서 언급한 '다민족 사회'에서는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할 자신감이 없어서이다), 억지스런 의뢰에 어쩔 수없이 승락은 하였지만, 그 때 사진도 찍는다고 해서 주저했다.
최근 몇 개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많아, 자거나 일어나거나, 하루 종일, 잠옷을 입은 채로 지내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머리의 세트 정도는 해야 하고, 기모노도 입어야 한다. 그것이 싫어서 사진 촬영을 수반하는 취재는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상대방의 열의에 못이겨 (강하게 거절할 만큼의 에너지가 없어), 승낙은 하였지만 약속의 날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병약한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부담감이다)
그런데 약속 전날의 일요일, 잡지사의 담당청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저어, 내일, 찾아뵙게 되어 있는 ××입니다만 내일 선생님의 차림은 기모노입니까, 양복입니까?" 대답의 말을 찾는 데 시간이걸린 이유는 그 질문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런 질문을 할까. 인터뷰에서 사진을 찍을 경우는 기사의 첨부사진로 게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모노인지 양복인지를 애써 전날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 오면,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라고 당황해 하는 것이다. 이쪽은, 기사의 첨부사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승낙했는데, 이야기하는 투로 봐서는, 마치 컬러 그라비아 촬영이라도 하는 것 처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선 질문에 대답해야 하기 때문에 "추운 날에는 기모노를 입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는 거듭해 물었다. "기모노의 색상은 어떤 색깔입니까?"
"무슨 색깔이라니...이제와서 왜 그런 것을 묻는 겁니까? 나는 여배우가 아니니까... 내 같은 할머니 사진 따위 아무려면 어때서요."
내 서슬에 상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내 안에서는 분노가 응어리져 있다. 그 분노는 상대방의 진의를 모르는 것과 모르는 채로 화내버린 것에 대한 뒷켕김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뒷켕김을 가진 채 카메라맨과 인터뷰기자를 맞이했다. “어제는 화를 내어 죄송했습니다” 라고 사과한다. 계면쩍음을 감추려고 억지로 웃어 보였고, 어쨌든 인터뷰는 순조롭게 끝났는데, 사진을 찍는 차례가 되어 카메라맨이 이렇게 말했다.
"이전의 시노야마키신(篠山紀信1940~写真家) 씨가 짝은 사진 정말 훌륭했지요. 오늘은 그에 못잖은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말을 듣고 나는 "아하" 하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카메라맨은 자기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시노야마 씨보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고 염원했다. 그 때문에 기모노인지 양복인지 어떤 색인지 물어, 미리 이것 저것 준비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담당자는 그 취지를 나에게 설명해 쥤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카메라맨이 얼마나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열정을 태우고 있는지 그 때문에 기모노는 무슨색인가를 물어 달라고 한다는 설명을 듣게 되면, 나는 화내지 않고 납득했을 것이다. "본분 열심"을,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여기는 나는, 기꺼이 어떤 색의 기모노를 입고, 겉옷은 이렇게 허리띠는 이것으로,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아무리 일본인은 열마디 말 중에 여듭만 말해도 통한다고는 하지만 한마디 말로는 열을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날 잡담으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하니까, 젊은 세대에 속하는 남성이 말했다.
"아니, 그런 말 귀따갑게 들었어요. 그건 OX식으로 자란 세대의 특징이랍니다. 표현하거나 설명하거나 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전후 국어교육의 잘못입니다.”
"흠, 그래요... 그런 것이군요." 라고 대꾸하는 나는 맥이 빠졌다. OX식으로 자란 세대의 특징입니다, 라고 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교육의 책임인 것이다.
"뭐야, 그렇게 말히는 태도는!" 라고 같은 세대끼리라면 나무랄 수 있고 그러면 네 하고 고친다. 그러나 지금은 OX식 교육으로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잔소리를 하는 쪽이 이상하다고 상대방은 상대방대로 난처해 한다.
이 단절을 어떻게 메우면 되는지, 나로서는 모른다. 그사이에 우리 세대가 죽어 사라져 버렸을 때에는 OX식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끼리, OX식 민족 국가로 돌아가 OX식으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겠다 라고 나는 자포자기 상태로 중얼거린다.
●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6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6 뭐가 우습나
"주간 요미우리" 6월 29일호에 전 중의원 법무위원장인 후케 토시이치(福家俊一) 씨가 쓴 이야기가 실려 있다었는데 내용이 재미있어 마침, 함께 있던 젊은 여성들에게 들려 주었다.
“옛 국회와 최근 국회를 비교하면 야유의 질이 달라졌다. 현대의 야유는 저급하다” 며, 후케 씨는 야유라는 것은 본래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전쟁 전, 대장성 장관을 지내고, 2.26 사건으로 암실당한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 1854- 1936)는 원만한 둥근 얼굴로 "달마 대장상" 이라고 불렸지만 그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예산위원회에서 해군의 확장 예산안 제안 사유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 설명 속에서 그는 지금 열강제국과 어깨를 나란히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해군력의 증강이 필요한가를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속담에 도율(桃栗)3년 감(枾)은 8년 이라고 합니다만..." 그러자 그 때 위원석에서 미키 부키치(三木武吉 1884-1956)가 외쳤다.
"달마는 9년…" "이 유모어, 이것이 야유라는 것이다. 요즘은 '멍청한 놈' 이라든지 '무슨 말 지꺼리는거야' 라는 따위 시끄러운 소리 뿐이다. 다른 사람의 연설을 들을 때에는 조용히 경청해야 한다. 그러다가 이거다 싶을 때는 모두가 재미있어 할 짧은 한마디로 의표를 찌르는 것이다. 이것이 국회에서의 야유인 것이다" 라고 후케 도시이치 씨는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젊은 여성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웃으려고 하는데 그 젊은 여성들은 정색을 하고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처다 보고 있는 것이다. "재미없습니까?" 라고 도리없이 내가 물었더니 한 여성이 말했다.
"달마는 9년이란... 무슨 뜻입니까?" "다카하시 고레키요 라는 사람은 달마를 닮았답니다." "네에...?" 멍한 표정들이다. " '면벽 9년'이라는 말 모릅니까?" "몰라요" "달마는 벽을 향해 9년간 앉아있기를 계속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아 네..."
"그러니까 달마와 닮은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도율 3년 감 8년'이라고 했기 때문에 달마는 9 년이라고 야유를 한 것입니다." "아 네..." 라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또 다른 한 여성이 말했다.
"말하자면 복숭아와 밤은 3년 걸려 열매를 맺고 감은 결실을 보는데 8년이 걸린다... 그렇게 장기간 군비를 증강해 나가자고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말했다. 그러자 미키 부키치 씨는 '달마는 9년!' 이라고... 즉, 달마도 9년 걸려 깨달음을 얻었으니 당신도 서둘지 말라는 뜻이 됩니까?"
더 이상 우습지도 재미도 없다. 나는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이 민망해졌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대학의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대학의 선생님이 바빴기 때문에, 자료준비를 하지 못한 채 강의에 섰다. 거기서 그 선생님은 학생들을 향해서 말했다,
"오늘은 권진장(勧進帳:가부키18번 중의 하나)으로 시작..." 이 말에 와아 하고 웃어야 할 참인데 아무도 웃지 않는다. 교실 안이 썰렁한 기운이 돌면서 모두들 선생님의 얼굴만 쳐다 보고 있다. "학생들의 웃음을 유도히기 위해서는 권진장(勧進帳)이란 가부키극에 대한 설명부터 하지 않으면 않될 것 같습니다." 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아주 옛날에, 아버지 미나모토 요리모토(源頼朝 1147-1199)에 의해 쫓겨난 미나모토 요시츠네(源義経)가, 부하인 무사시보 벤케이 및 시텐노와 함께 수행승 모습으로 변장하고 오슈로 가는 도중, 검문소에 다다랐다. 그러나 통행증이 없었기 때문에 진짜 수행승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권진장을 외워 보라고 한다. 그래서 벤케이가 백지로 된 권진장을 읽는 흉내를 내어 위기를 면한다고 하는 가부키 18번 중의 하나가 '권진장' 이라는 것이다." 라고 하는 설명을 했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불충분하기 때문에 원래 권진장이라는 것은 절의 불상 건립을 위해 돈이나 공물을 모으는, 그 취지를 기록한 문서이며, 이 경우 벤케이는 남도(南都)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의 귄진(勧進-축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읽는 척을 했다 라는데까지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않되었다. 즉, "오늘은 권진장으로 시작하겠다고 말한것은, 시전준비 없는 백지교재로 강의를 하겠다, 라고 하는 의미야 라고··
그러나 학생들의 무반응에 맥이 빠져 그기까지 설명할 기분이 나지 않아 그 선생님은 고독감을 곱씹으며 강의를 했다고 한다. "정말로 요즘은, 농담 한마디 하는 것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겠습니다..." 라고 나와 그 선생님은 개탄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지금만큼 사람들이 잘 웃는 시대는 과거에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더욱이나 텔레비전 방송국의 오락 프로그램은 '웃음꾼' 이라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여, 프로그램을 고조시키기 위해 웃음소리를 내게 하고 있다고 한다. 진행자 중에는, 이 웃음꾼을 지휘하는 사람이 있어, 때맞추어 양손을 올려 지시를 하면 웃음꾼은 이에 따라 "와하하하" "껄껄껄" 하고 나름대로의 웃음소리로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텔레비전 카메라는 그것이 녹음된 웃음소리가 아니라,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웃고 있는 객석을 일부러 비추어 보여 준다. 확실히 남녀노소, 큰 입을 벌리거나 혹은 그 입에 손을 대고, 어깨를 흔들거나 몸을 뒤로 젖히기도 하며 객석은 애써 웃음으로 가득차 있지만, 원래 웃음이라는 것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애써서 웃는 웃음’이라는 것도 묘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웃음꾼들도 점점 숙련되어
가기 때문에, 저것은 웃음꾼 같지? 아니 진짜 손님 같애, 그럴까? 라는 등 TV를 보면서 웃음꾼의 정체규명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본 텔레비전에서 젊은 사람들이, 별로 우습지도 않은 일로 크게 웃고 있어서, 오늘의 웃음꾼은 과잉연기 같다고 하자 아니야 요즘의 젊은 여자아이들은 진짜로 잘 웃어요 라고 하여 놀랐다. 아카시야 산마(明石家さんま- 희극배우-사회자)가 나와서 뭔가 말하자 "와아" 하고 웃어 졌힌다.
나로서는 무엇이 우습는지, 전혀 모르겠다. "우하하 우하하" 웃어대면, "뮈가 그리 우습나." 라고 화내고 싶어진다. 다케시가 무엇인가 말한다. 또 '우하하' 이다. 나로서는 웃는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뭐가 그렇게도, 숨넘어가듯 웃을 정도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녀들은 산마나 타케시가
좋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 웃기려고 무언가를 말하면, 가령 웃음을 폭발시킬 정도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웃기려 하고 있다." 고 생각함에 의해, 반사적으로 "핫하하.."하고 웃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젊은 그녀들(혹은 그들)은, 속된 말로 "젓가락이 굴러가도 웃는다." 는 나이라서, "우스운 일을 당해서 웃는다."가 아니라, "웃고 싶다는 욕구때문에 웃는다." 즉 웃는 것은 에너지의 발산이기 때문에, 오락 프로로서는 재미는 없을지라도, 에너지 발산의 계기만 주면 좋은 프로로 평가된다는 사고 때문이 아닐까?
잉여에너지가 없는 나 같은 할머니는 그래서 '뭐가 우습나!' 라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화면 속의 웃음의 소용돌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겨울 중학교 2년의 S라는 남자
학생이 왕따괴롭힘을 당하고 자살했다는 사건이 있었다. 그 원인 규명 단계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교실에서 그 남자 학생의 장례식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S군이 죽은 걸로 하자'고 하여 모두가 회람쓰기용 색종에 추도의 말을 돌아가며 쓰게 됐다. 그 추도사 색종이는 다른 학급에도 돌다가 세사람의 교사에게도 돌아게 되었다. 한 명의 교사는 그 추도사 색종이에 '편안하게' 라고 쓰고 다른 한 사람은 '슬퍼요' 라고 썼다.
이 일이 문제가 되었을 때, 한 명의 교사가 한 말이 신문에 게재되었다. "S군의 조문을 위해서라고 부탁받아 한번은 거절했는데, 학생들이 "농담, 농담으로"라고 부탁해서, 써 버렸습니다."
또 다른 교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락극에 사용한다고 해서 '바보같은 짓 하지 말아 라' 라고 나무랐지만, 결국 '잘가라' 라고 썼습니다."
그것을 읽고 교사의 불식견에 분개하고 있던 사람들은, 더욱더 분노했지만, 나의 분노는 반대로 식었고, 허공에 떠돌던 분노는 갈 곳을 잃었다. ---농담, 농담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
명색이 교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식견없는 말을 할 수 있나 라고 비난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요즘은 '농담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별 볼일없는 사람이다' 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회통념과 같은 것이으로 인식되고 있는 세상이다. 어쨌든 재미있는 사람, 남을 웃게 하는 사람이 사랑받고 존경받는 세상이다. 그 내용이 천박하더라도, 말이다.
학생들의 농담에 웃으며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교사는 학생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함께 웃으며 웃게 해주는, 말이 통하는 교사가 아니면 학생은 따라오지 않는다. 성실함은 경원받는다. 아니, 미움받는다. 학생들의 인기를 얻지 못해 교육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교사는 우습지 않아도 학생과 함께 웃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다.
어떤 학교에 초로의 대머리 선생님이 있었다. 이 대머리 선생님은 학생에게 인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대머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어 학생들을 웃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머리!” 라고 학생들이 말해도 교사는 화내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말하기 전에, 스스로 대머리라고 광고를 했다고 한다.
만담가처럼 익살꾼처럼 스스로 자신의 대머리를 광고하는 인간적인 '여유'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안심하고 대머리, 대머리를 연발했던 것이다. 그 중에는 뛰어올라, 철썩! 하고 손바닥으로 대머리를 때리는 학생도 나오는 있은 모양이다. 그래도 '아하하' 하고 웃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여유'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게 교사로서 살아남기 위한 테크닉, 아니 인내였다. 그는 참을수 없는 어려움을 견디며 ‘좋은 교사’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농담이라고 해서 장례놀이에 참여하게 된 선생님의 심중을, 나는 그렇게 이해하여 주고 싶다. 그러나 마음 곧고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은 “진정한 좋은 교사는 그런 교사가 아니다!” 라고 화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좋은 교사"의 이상형을 말한다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상적인 교사'가 되기 위한 '신념'을 갖도록 지금의 젊은 교사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장례식 놀이를 당한 S군은, 교실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조의문색종이와 선향과 사탕 그리고 밀감 등의 제물을 보고, "뭐야, 이것" 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띄웠다고 한다 .
나는 이 "웃음을 띄웠다"라는 한 줄을 읽고 가슴이 찢어지듯 했다. 불과 14살의 소년이 자신의 장례식 놀이를 당하고 화내지 않고 웃음을 띈 것이다. 농담이다 농담···. 이라고 그는 자신에게 그렇게 되뇌였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 농담이기 때문에 화내거나 울지 말자고.
사건 이후 교육위원회는 정례회의에서 이 문제를 토의했다. 그 자리에서는 “교사 쪽에는 장례놀이에 가담할 마음이 없었나” “괴롭힘과 장난을 구별하지 못할 것 같으면 교육자로서 실격이다” 라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세 명의 교사가 특별히 괴롭히는 쪽에 가담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교사들은 '농담'이란 말 한마디에 대한 저항력이 부족했다. 마치 옛날 어사의 마패처럼 "농담"이란 한마디는 상대를 침묵시켜 버렸다.
선생님들은 농담이 통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교사들의 사활이 걸려 있다.
지금은 웃음에 지성이 없어졌다. 웃음의 격조가 무너지고, 웃음도 농담 반의 웃음이 되고 있다. 어디에 진심이 있고 어디까지가 농담인가. 농담이 삶 속에 들어와 베어 있어, 농담, 농담이라며 웃어야 매사가 진척되는 것이다.
함께 웃지 못하면 같은 패거리에 끼일 수 없으니까, 우습지 않아도 와아하고 웃는다. 농담은 더 이상 "여유"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니다. 지금은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웃을 수 없는 것이다.
●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7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7 산 위 누옥에서의 사색
예년과 같이 홋카이도의 산 위의 누옥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전화도 하지 않고, 우편함 속의 우편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가끔 우편함을 들여다 보면 어느새 와 있었는지 여름 안부엽서가 훌쩍 던져저 있을 뿐이다. 실로 한가로운 날들이다.
정원에는 10년 전에 심은 병꽃나무가 2, 3 그루 꽃을 피우고 있을 뿐, 그외에는 다른 꽃도 없다. 여름 시작 무렵 이웃마을 사람이 서툴게 깎아 준 정원의 잡초가 나날이 자라, 분명 어제는 없었다고 생각되는 야생머위의 둥글고 작은 잎이 잡초 사이에서 얼굴을 내며고 있다.
요즘 계속 안개로 가려져 있던 하늘이 오랜만에 맑게 개여, 먹이를 찾는 솔개 5, 6 마리가 오르락 내리락 날고 있다. 해안 쪽에서 괭이갈매기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리는가 하더니, 갑자기,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그러던 하루, 드물게 전화가 울렸다. S주간지의 편집부에서, 이번에, 출판회사 소학관으로부터 쇼와문학전집이 나오는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는 것인데 왠지 어두운 목소리이다.
"그 전집에 수록되는 작가의 인선에 흠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그래요...? 그런 전집이 나오는 줄도 몰랐습니다만" 이라고 나는 애매하게 말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고노 다에코(河野多惠子 소설가) 씨로부터 얼핏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인선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많은 분들이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말을 들은 나는 수긍이 갔다. 이 사람은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인 나에게 의견을 물어 그 답변으로 기사를 흥미롭게 만들려는 의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쨌든 평상시부터 나는 줄곧 다혈질로 악명이 높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이 사람에게 말을 걸면, 꼬리에 불붙은 말처럼 뛰어오르며 화낼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기대하고 그는 고생을 마다않고 내집 전화번호를 조사했을 것이다. 초상집의 조문객 같은 침울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나에게의 조의를 나타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순간 온수기라고 해도 불씨를 당기면 기다렸다는 듯이 확하고 점화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나이탓인지 불씨도 습기가 많아, 아무리 성냥을 그어대도 붙지 않을 때도 있는것이다.
원래 나는 그러한 영광괴는 거의 인연이 없는 인간이다. 관심도 없다. 나오키상을수상한 것도, 우연히 운좋게 그런 기회가 돌아왔기 때문이었지,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걸작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나오키상이라는 것은, 그 작품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가 향후, 직업 작가로서 계속 정진할 수 있을지 어떨지, 그 가능성에 주어지는 상이라고들 말하고 있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열심히 쓰자, 라고 생각하면서 분발하였다.
'전쟁과 같은 나날들'이라는 제목의 그 수상 작품은 마츠모토 세이쵸(소설가) 선생님이 크게 추천해 주셨다고 듣고 매우 기뻤다. 그것은 수상 자체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한편 타계한 시바타 렌자부로(소설가) 씨가 크게 반대였다고도 들었지만,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신이 평소 존경하고 있는 작가에게 인정되면 그것으로 만족인 것이다.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울면서 기뻐할 만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상 대상이 되지 않았던 무명의 작가 중에도 뛰어난 재능이 숨겨져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곤란하게도 '세상사'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쿠타가와상이나 나오키상을 수상하면 울면서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 그게 뭐길래." 라고 상과 인연이 없는 작가가 그렇게 말한다면, 세간은 그것은 수상 못한 사람의 비아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사람의 가치관에대해 우리나라만큼 몰이해하고 둔감한 국민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내가 홋카이도의 이 벽지에 산장을 지을 때, 도중에 예산 부족으로 천장 마감을 하지 않은 집이 되었다. 예산이 부족하면 천장 마감이 없어도 되고 벽판자 없어도 된다고 해서, 벽판자 대신에 비틀즈와 록가수들의 포스터를 발랐다. (그것도 비틀즈가 좋아서가 아니라 딸이 중학생 때 록을 좋아해서 수시로 모아 두었던 것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예술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생활 모습이라고 험구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류 작가'라고 자칭하며 살고 있는 몸이다. 록 가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즐긴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포스터가 큰 사이즈이기 때문에 붙이는데 별로 수고롭지 않아서 사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술가라는 것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같은 벽판자 대신에 붙여도 더 아름다운 것을 선택해야 했지 않았나 하고 예술가파는 말한다. 나는 무뚝뚝해서 예술가 따위가 아니라고 역정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드디어, 버럭성미쟁이에 더하여 이상한 취미의 기인이 되어버렸다.
'기인 변인'이란 직함이 부여되고 나서부터는 나도 다소 편해졌다. 그 이유는 그 직함에 의해서 비로소 나의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일 뿐, '세상'이라는 것은 역시 견고한 하나의 가치관의 갑옷을 탄탄하게 착용하고 있다.
그들은 쇼와문학전집에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작가라면 누구나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내가 "쇼와문학전집? 그게 어쨌단 말입니까!" 라고 말한다면, 세간은 본인이 누락된 섭섭한 아쉬움을 빗대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쇼와문학전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앞으로는 그것을 목표로 더욱 노력하겠다." 라고 말한다면, 잘난 척하고 있어도 역시네, 라고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 할까.
나는 S잡지의 기자를 향해 무엇이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이것은 실로 어렵다. 솔직한 마음을 말한다면 "쇼와문학전집에 들어가도 좋고,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어느 쪽이라도 좋다." 라는 말이 된다.
아니면, "이웃마을 축제에, 꽃가마를 못탄다고 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네요." 라는 말도 된다. 이것이 올림픽에서 패한 것이라고 한다면, 느낌이 달라질 것 같다.
선거에서 낙선했다면 낙선의 변을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문학 전집에 입후보한 것이 아니다. "순수문학" 이라는 이웃마을의 축제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말했다. "그런 것을 나에게 물어봐도, 뭐라 해야 좋을지..." 상대는, "그도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라고 수긍은 하면서도, "그러나 '쇼와의 문학'이기 때문에, 쇼와의..." 라고 끈질기다. 그렇게 힘주어 말해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며칠 후 신문을 펼쳤더니 문득 눈에 띄는 잡지광고가 있다. "쇼와 문학 전집에서 빠진 유명 작가들. 무라키미 하루키(村上春樹), 쇼지 가오루(庄司薫), 와타나베 쥰이치(渡辺淳一), 사도 아이코(佐藤愛子), 야마모토 유조 (山本有三), 다미야 도라히코(田宮虎彦) 등."
예의 침울한 목소리 기자의 주간지다.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교분(?)으로 나도 "유명 작가"에 끼게 되었구나 하고 내 얼굴엔 옅은 미소가 지나갔다. 그날 오후, 빠르게도 옛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코 씨, 정말 섭섭했겠어, 이번 일은···" "뭐가?" 나는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랐다. "쇼와 문학 전집의 건···" 나는 생각치도 못한 말에 "아니, 별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유감이야, 강건한 너니까 별 걱정은 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라고 뭔가 화재로 집이 몽땅 타버린 사람에게 하는 위로의 말 같다. "뭐 별로 대단한 일로 생각치 않고 있어. 나는 원래가 순수문학 작가가 아니어서 상응한 결과라고 생각해."
"순수문학! 아, 순수문학! 순수문학이란 도대체 뭐야!" 친구는 흥분한다. 여기에서 순수문학에 대해 논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나는, "뭐, 괜찮아. 이 일로 원고의 주문이 오지 않게 되어, 밥줄이 끊기는 것도 아닌데." 라고 말해 준다.
그래, 그렇긴 한데, 하지만 아이코 씨, 나는 너의 친구로서 굉장히 아쉬워---" 귀찮구나!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내심으론 그렇게 말해 줘서 기뻐하고 있지 않나 하는, 괜한 생각을 하고 싶어진다.
같은 날에 속달이 도쿄의 빈집에서부터 회송되어 왔다. 알지도 못하는 독자로부터 온 것으로 “아무쪼록 신경쓰지 마시고, 좋은 작품을 써서 촐판사 소학관을 앙갚음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혀 있다.
나는 점점 불쾌해져 왔다. 청빈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웃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주먹밥이나 찐고구마 같은 것을 가져왔을 때 이런 기분이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분이다.
예술원 회원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고, 사전공작에 분주에 시간을 보내다 영광스럽게 예술원 회원이 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곤도코(今東光) 씨와 같이, "그런 것, 필요 없어." 라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되고 싶어하는 부류와 되고 싶지 않다는 부류와 어느 쪽이 위인지 아래인지 하는 구분은 본래, 없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각각의 가치관 뿐이다. 남보다 위에 서고 싶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추앙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그 열정에 의해 뛰어난 작품을 낳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을 무시하지만 같은 업적을 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30살이 넘었는데도 결혼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아니, 가련하고 불쌍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30을 지나면 여자도 천덕꾸러기인데 일부러 않그런 척한다." 면서, 험구를 하는 것이다. 험구를 하면서도 애타게 이곳저곳 혼처를 수소문하는 것도 그녀에게 "남과 같은 행복"을 가져다 주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인은 "어떻게든 도움을 받고 싶다." 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나친 참견이라는 얼굴을 한다. 그러나 “30 지나 결혼하지 않는 것은 불행하다” 라는 관념에 묶여 있는 사람은 그 지나친 참견이라는 얼굴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람에게, "남과 같은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그런 것을 바라고 있지 않아요." 라는 말이라도 하게 되면, 그 때부터 그녀를 적으로 돌려 세우게 되기 때문에, 그런 대꾸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불쌍하고 가엽다고 위로받고 있는 가운데 점점 그녀는 비참한 기분이 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세속에 타협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는 거야!" 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자신을 잃게 되어, "역시 나의 생각이 틀린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혼은 하고 싶을 때 하면 되지만, 정말로 자신이 결혼하고 싶어져서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않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인지, 자신도 모른 채 결혼하지 않는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까.
요즘 갈은 정보화 시대에 각자의 가치관을 서로 확인할수 있는 일인데, 균일한 틀 속에 갖히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여기까지 썼을 때, 친한 어부가 물고기를 가져와 주면서 말했다.
"선생님, 뭔가 하는 문학의 책에 낙선했다 면서요." 세상사 소문이란 무서운 것으로 이런 시골에서까지 나를 난처하게 만든 출판사 소학관에 처음으로 원망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역시 전집에 들어가고 싶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8
28 '구김살 없다' 란 말은?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면 "어쨌든 구김살 없이 키우고 싶어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언제쯤의 일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요즘은 그런 대답을 하는 사람이 적다. 아마 부모들은 그 답에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구김살 없이 키우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은 단지 희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구김살 없이 키우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것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아쉬움이 배어 있는 말이다.
"그렇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라고 하지마라. 공부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몇 년인가 전까지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아니면 아버지나 집안의 한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공부하지 않는 아이의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지금 공부해 두지 않으면, 머잖아 후회하게 됩니다. 이 성적 가지고는,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에도 갈수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조바심이 많은 사람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앞날을 걱정하는데, 가족 중 일부로부터는 '앞으로 남은 세월이 길고 인생은 여러가지 가능성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구김살 없이 키우는 것이 좋다' 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당신(혹은 할아버지)은 실태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있어요.” 라고 어머니는 불평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논쟁을 시작할 준비도 없기 때문에 침묵으로 비켜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한 반론 따위는 아버지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없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대학에 가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 지금은 그런 태평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큰 부자들 뿐입니다." 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그런가, 라고 입을 봉한 채 부자가 못된 자신을 생각해 강하게 주장도 하지 못하고, 아 허무한 세상이 되었구나, 라고 속으로만 중얼거릴 수 밖에 없다.
모든 가족, 먼 친척까지도, 그래 그래 공부, 공부로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그리고 아이들 자신도 같은 뜻이다. 학교에서 돌아 오면 가방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놀러 뛰어나가 버리는 것이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가방을 들고 총총걸음으로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 한 동안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이쇼 출생의 옛세대 생각이고, 아이들은 그렇게 학원에 가는 것에 아무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거기에는 친구도 있어 서로 즐겁게 지낼 수 있다. 오히려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야말로 불쌍한 아이로 여겨진다.
학원에 가지 못하는 이이는 "자 놀자!" 라고 기세좋게 집을 뛰쳐나가도, 거기에는 같이 놀아 줄 친구가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멍하게 길가에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하다못해 개와 놀려고 해도 같이 놀 개도 없다. 개를 혼자 놓아 주어 달리게 해서는 않되기 때문에 목줄을 당기며 걸어야 한다. 개의 주인은 개의 배설물 처리도 해야 되기 때문에 개와 놀 수도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앞으로 어른이 되어 가기 위한 강력한 에너지가 타오르고 있는 용광로와 같은 것이다. 달리고, 뛰고, 넘어지고, 기어오르고, 떨어지고, 싸우기도 하면서 그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이다.
개구쟁이들의 행동은 악의에서가 아니라, 분출되는 에너지가 넘쳐서라고 이해해 주고 꾸짖기 보다도 믿음직하다고 격려할 일이다. 몇 시간이나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계속 공부를 하는 것에 고통을 느끼는 것은 '어린이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한편으론 어른은 그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 자연(에너지)을 억누르고, 꾸짖고, 욱박지르고, 복종하게 하여, 무리하게 공부를 시키는 것에 의해, '노력' '인내' '극기심' 등을 주입시키려 했다. 그렇게 하여 옛날의 부모와 자식은 조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부모들은 아이를 꾸짖거나. 욱박지르지 않게 되었다.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들이 모두 '좋은 아이' 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부해라, 왜 하지 않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 뭐가 될래"라고 꾸짖지 않아도 대부분의 아이는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모두, 어른들 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부모가 걱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공부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장래의 큰꿈 때문에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장래의 생활에 대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아이들은 머리에 떠올린 적도 없는,
그 불안이나 걱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이인 주제에 남부럽지 않은 여유있는 삶, 그런 것을 생각하다니 어이가 없다
그것이 지금, 미래의 '꿈'이 아닌 중단할 수 없는 '목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은 사라졌다. 대신 손때 묻은 현실의 목표가 있다. 무엇을 위해 학교에 가는가, 라고 물었을 때, 옛날의 아이들은 대부분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개중에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똑똑한 아이는 대답히기도 하였지만, 그 '훌륭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훌륭한 사람이란 아마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단지 막연히 거기에 학교가 있기 때문에 간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알아야 하기때문에 간다. 가지 않으면 야단맞으니까 갼다는 정도의 자각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의 아이들을 인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행복한 인생을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마음아픈 것은 그러한 아이들의 사고를 어른들이 부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채소가게의 아이는 채소가게를 이어가면 되는데, 애써 대학에 갈 필요가 있을까 하고 지난 날 사람들은 자주 입에 올리곤 했다. 채소가게의 실무에 대학의 학력은 필요하지 않는데 대학에 가는것은 허영심 때문이라고 말들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채소가게 옆에 슈퍼마켓이 생기면 채소가게는 망하는 것이다. 망하면 샐러리맨이 될 수밖에 없다.
직장인이되려면 대학의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직장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채소가게를 융성하게 만들려면, 예를 들어 "근대경영학" 같은 것도 배워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생을 감내하고 남못잖은 노력으로 분투하면 반드시 길은 열린다는 등의 생각은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다. 노력보다 지식이다. 그 지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기술'을 연마하는 지식이다.
'손일까 득일까' 그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지식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이, 일본인 전체의 목적이자 가치가 되고 있어, 그것이 능숙한 인간이 지금은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이들을 압박하여 ‘좋은아이’로 만들고 있다면 그 아이는 병들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언젠가, 20대의 아들을 가진 나의 여자 친구가 다음과 같은 술회를 했다.
그녀가 학력 사회에 휩쓸리지 않고 극복해 보려고 생각해 두 아들을 교육했다. 삶의 목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잘 생각해서 앞날을 결정해라. 모두가 대학에 간다고 해도 의미없이 대학을 지망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다고 한다.
특히 장남은 허약했기 때문에 학력보다 건강이 먼저다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를 존경하던 아들들 중 장남은 대학에 가지 않고 독학으로 외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했다. 그녀가 프랑스어 교사이기도 해서,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차남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록 밴드를 만들어 자유롭게 사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8년이 지난 지금, 장남은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마스터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처지이다.
3개국어가 가능해도 독학의 학벌로는 취직처가 없다. 우선, 이해관계를 무시한 가치관이 통하는 곳이 일본에는 전혀 없는 것이다.
"아들의 가치관을 나는 높이 평가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 인정받아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아들은 나를 원망하고 있지나 않을까. 어머니의 쓸데없는 말 때문에 인생길이 어긋나 버렸다고 후회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를 구김살 없이 키우고 싶다는 말을, 이제는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된 기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구김살 없이 자라면 아이는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 때문에 불쌍한 생각이 들더라도, 공부시겨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더욱 불쌍한 처지가 된다는 것을 아는 부모들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녀들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독한 마음을 먹지 않아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그래서 아이는 공부를 한다. 어쩌면 공부로 날밤을 지새는 매일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아이들이 애처롭고 불쌍하다고 딱하게 여겨도, 아이들로서는 무엇이 애처롭고 불쌍한지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생각은 모두 버리고, 그들은 그들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전쟁시대의 소년항공병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죽어 갔던 것처럼, 지금은 경제대국의 산업전사가 되기 위해서 고투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어떤 식으로 발산하고 조절되고 있을까? 그 에너지는 안으로 쌓여 갈 곳을 잃어, 자살이나 괴롭힘이나 폭력의 형태로 폭발하고 있다.
그것은 부모나 교사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사회의 본연의 자세,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것에 문제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비극인 줄도 모르고 비극의 한 가운데를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것을 측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내 감상에 불과한 것일까?
●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9
29 불편한 심기
5월 11일 아사히신문의 조간은 제국은행 사건의 히라사와 사다미치(平沢貞通 화가) 씨의 사망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전후의 혼란기인 쇼와 23년 1월, 도쿄도 도시마구의 제국은행 시이나마치지점에서, 은행원 등 16명의 사람들이 청산가리가 들어간 용액을 마시고 12명이 죽고 현금 등을 빼앗긴 "제은 사건"의 사형수, 히라사와 사다미치는 위독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10일 오전 8시45분, 폐렴 때문에, 수감처인 도쿄도 하치오지시의 하치오지 의료감옥에서 사망했다.
95살이었다. 히라사와는, '무고'를 주장해, 사형 확정 후에도 옥중으로부터 누명을 호소해 재심 청구나 특사 출원을 반복해 왔지만, 그의 죽음에 의해 일본 범죄 사상 예가 없는 흉악사건은 수수께끼로 남은 채로 일단 종지부가 찍혔다.
쇼와 23년 8월의 체포로부터 약 39년, 30년 5월의 사형 확정으로부터 32년이라는 히라사와의 옥중 생활은, 일본의 사형수로서는 최장. 또한 이 정도로 고령의 죄수도 예가 없었고, 사형수의 시효문제와 사형제도의 시비, 운용을 포함한 형사정책의 실태 등에 대해 많은 논란을 일으켜 왔다.” 라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일종의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한 심기가 되었다. 그것은 안타까움과 노여움과 답답함과 비참함이 섞여서 이 사회의 모든 것이 불편한 심기의 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츠모토 세이쵸(松本清張 소설가) 씨의 '일본의 검은 안개'를 읽고 히라사와 사다미치 씨의 무고함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불편한 심기?'의 원인은 무고한 사람이 사형을 선고받고 39년간이나 옥중 생활을 강요받아 온 것 뿐이 아니다. 사형을 선고하고 32년간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법무성 형사국장은
“사형 집행에 대해서는,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구체적 사례에 맞게 신중하게 대처해 왔다. 히라사와에 대해서는 사형의 재판확정 후 32년이 경과하였지만 그사이 17회에 이르는 재심청구와 5회에 걸친 특사의 출원이 있어 제반사항을 검토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재판의 집행에 관계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히라사와의 사망에 관하여 소감 등을 말하는 것은 삼가하고 싶다” 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있지만, 나의 불편한 심기는 "제반의 사정' 등이라고 하는 알맹이도 없는 말의 공허함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다. 실은 그 얼마 전, 나는 히라사와씨의 병세에 관한 아래와 같은 보도를 요미우리 신문에서 읽었다.
“제은 사건의 사형수 히라사와 사다미치(95), 센다이 구치소에서 하치오지 의료감옥으로 이송되어 내일(4월 29일)로 2년이 된다. 이달 5일에는 폐렴이 악화되어 호흡곤란으로 위험한 상태에 빠졌지만, 그 후 3주간 히라사와는 다시 의식을 되찾아 증상도 안정되어 왔다고 한다. 95세의 고령으로 중병과 싸우는 생명력의 강인함에 히라사와의 집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도쿄신문은 기관절개를 하여 목구멍에 차오르는 가래를 없애기 위한 튜브를 설치하고, 허벅지의 점적주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의료진은 심폐에 대한 부담을 고려하여 지난달(3월) 초에 강심제의 양을 줄여 다른 약으로 바꾼 것도 보도했다. 내가 품고 있는 '불편한 심기?'는 실은 이 보도를 보았을 때부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현대의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해 왔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의학의 진보" 라고 하는 것에 관해서이다. 의학의 진보로 우리는 병을 치유하고, 장수를 하게 되고, 죽음의 그림자를 멀리 밀어낼 수 있게 되었다. 20년 전이라면 아무리 손을 쓰도 죽음을 면치 못할 사람이 지금은 계속 살아남고 있다. 이것은 뭐라해도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축하할 일이라고 기뻐하는 사이에 곤란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걱정이 기우가 아닌 것으로 다가 왔다. 그것은 환자의 고통이나 절망을 무시하고, 어쨌든 "생명을 연장한다" 라는 것에 의료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환자가 어떠한 상태에 있더라도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온 몸에 점적관을 꼽고 산소 텐트 속에 갇혀 숨만 쉬고 있을 뿐의 존재여도 말이다. 옛날에는 없었던 그러한 생명유지방법이 지금은 있다.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명만을 유지하고 있다' 라는 상태에 놓인 환자의 절망과 고통에 대해서는 의사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가족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도 의사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히라사와 씨의 사망 기사를 읽고
'불편한 심기' 가 된 것은, 그의 임종에 곧 그럴게 될지도 모르는 내 모습을, 진보된 현대 의학의 잔혹함과 함께 비추어 보았기 때문이다. 95세의 사형수의 기관을 절개하고 튜브를 설치할 필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라고 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27일 면회한 양자 다케히코씨(28)에 의하면, 기관 절개에 의한 산소 흡입이나 영양제 등의 점적은 계속되고 있고, 눈을 확실히 뜨고 의식은 똑똑히 하고 있는 상태이고 "아빠, 저 왔어요" 라고 말을 걸자, 눈깜빡임으로 반응하고, 안색도 좋고 호흡도 온화했다고 한다. '안색도 좋고 호흡도 온화했다.' 는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라고 나는 물어보고 싶어졌다.
90살의 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형수는, 기관지 절개까지 하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나의 독단적인 생각이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언제쯤 편안하게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것은 현대의학의 진보가 가져온 잔혹한 이야기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95세의 고령으로 중병과 싸우는 생명력의 강인함에 히라사와의 집념을 보여주고 있다." 고 신문은 썼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이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범행을 뒷받침할 물적증거는 아무것도 없고, 현재의 형사 소송법의 원칙에 따르면 확실히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어야 할 히라사와 씨를 석방할 용기도 없어, 질질 끌면서 감옥에 가두어 놓고는 병이 생기니 기관지절개를 하며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켜 놓고, 그 결과를 신문은, '집념을 보여 주고 있다.' 고 천연스럽게 쓰고 있다.
마치 이것은 사형집행을 할 수 없는 대신에 의학의 힘으로 히라사와씨의 고통을 늘려 더 괴롭히려고 하는 악마의 손장난이 된 것 같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관런자 입장에서는, 그것을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형수를 이렇게까지 소중하게 대우해 주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어, 권력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할 생각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 중 어느 것도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의학의 진보에 따라 현대인은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버릇이 붙어 버렸다. 그런 자신들의 '버릇'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인간의 마음을 보는 것을 잊어버린 채, 육체, 그것도 부분 부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기관에 막힌 가래는 기관절개를 하여 제거하면 되듯이---.
현대 의학은 그 방법을 발견했다. 발견하면 대상불문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막힌 수도관을 자르고 오물을 제거하는 것처럼. 이때 의술이 생각하는 것은, 95세의 '인간'도 아니고 그의 '마음'도 아니고 그가 끌고가는 '인생'도 아닌, 오직 '가래가 막히는 기관' 뿐인 것이다.
히라사와 사다미치는 '물건'로서 거기에 눕혀쳐 '수리'를 받았다. 그리고 참고 견뎌온 인내의 세월을 보내 왔었지만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의료당사자는 가령 며칠이라도 한 생명의 죽음을 저지하고 연명시켰다는 만족감을 위해서 히라사와 씨의 절망적 괴로움은 생각하치 못한 것 같다.
수술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의지를 빼앗긴 채 단지 호흡만 하고 있는 육체. 그것을 과연 "살아 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기피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이 임박한 상태에 처해 있는데도 죽지 않은 사람을, 단지 "생명력이 강하다" 라고 말하며 축하해 주어야 좋은 것일까? 단지 끊어지려고 하는 생명을 무리하게 붙잡아 두고는 생명럭이 강하다고 찬양하는 것은 이보다 더한 잔혹한 일이 없는 난센스가 아닐까.
5월 21일자의 '주간문춘'에 '히라사와 사다미치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히라사와 씨의 마지막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다. 옆으로 늘어뜨린 흰머리를 하고, 39년의 옥중생활을 견딘 사망자의 얼굴이 크게 찍혀 있다.
그것은 아무 고민의 흔적도없는 평온한 얼굴이다. 마침내 이 세상의 업고에서 벗어나
안식에 잠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까지 견뎌 내야만 했던 고통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안심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사진 옆에 설명 두 줄은, "히라사와의 죽음의 얼굴은 황달로 인해 안색이 황색으로 변해, 카레가루 같은 색이었다." 카레가루와 같은 안색이 될 정도의 황달은 아마 약의 부작용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카레가루색이 될 때까지 그의 생명을 살렸다. 그것을 그는 받아들였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에 대해 나는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 의학의 힘으로 장수가 보장됨으로써 우리에게는 새로운 명제가 주어졌다. 우리는 장수를 기뻐하면서 모두가 가슴 속에 불안을 숨기고 있다.
치매 노인이 되어 가족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워하고, 불치의 질병을 안고 병원의 침대에서 무료한 날들을 얼마나 보내게 될지를 걱정하고, 가족들로부터 간병도 받지 못하고 홀로 죽어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있다.
병원에 들어간 이상 의사는 '절대자'로서 우리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의사는 의사인 이상 '죽게 하지 않아야 한다' 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 거기에서는 죽음은 '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은 채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쾌유될 희망도 없는 늙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서 온 몸에 바늘을 꼽고 절망적인 삶을 계속하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죽으면 않되는 것일까? 그런 소박한 의문을 나는 가진다. 가족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혹자는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것(왜 죽지 말아야 하는지 등을 말하는 것)은 당신이 건강하고, 죽음이 아직 멀리 있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이고, 실제로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어떤 상태에서도 살고 싶다고 절실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고.
그러나 비록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사람의 정신은 노쇠해 감에따라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 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더욱 인간다운 죽음이며, 그로 인해 그 인생은 완료하게 될 것이다.
그 체념을 방해하는 것이 '죽음은 악'이라고 하는 의사들의 강박관념이다. 회복의 전망이 없는 환자가 문득 눈을 뜨고, "아아, 나는 아직 살아 있었나" 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기뻐해야 할까, 절망해야 할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어느 시점에서 마무리하면 좋을지 모르는 채, 숨만 쉬는 연명에 질질 끌려가면서 생명의 불씨는 조금씩 사라져 간다. 그러한 죽음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암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