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묵을 찌게는 다 끼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20년전 어느 봄날, 포항에만 짱박혀 ‘국방부 시계가 고장이 났나? 사회 시계가 1초에 한번 째깍 일 때 국방부의 내 시계는 3초마다 한번씩 째깍일까?’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죽때리며 보내던 나는 모처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임무부대에 묻혀 자정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올라 생전처음 와보는 경기도 어느 산자락에 위치한 부대에 짐을 풀고 전시에 원산만에 상륙하여 ‘김일성의 부랄을 똑 잡아 뗀다’는 찬란한 국가전략기동부대의 임무와는 전혀 무관하게 특수 야삽부대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포항을 떠날 때는 개나리가 필락 말락 하기만 해서 아직도 대지는 온전히 겨울의 마른 잎사귀로 덮혀 있었는데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 곳 북쪽 땅에도 참꽃이 피고 할미꽃이 수줍게 고개를 배시시 숙이게 되었더라.
각설하고 그날도 용감무쌍하기 그지없이 야삽을 휘두르며 ‘김신조 일당이 다시 넘어온다 해도 날카롭기 그지없는 나의 야삽으로 놈들의 호박통을 쪼개버리고 말겠다’는 신념으로 먼지를 뒤집어 썼는데 갑자기 일찍 석식을 끝내고 오랜만에 미지근한 물에 몸뚱이를 담글 수 있는 황공하기 그지없는 기회를 주겠다는 지시를 받고 그 부대의 목욕탕으로 가고 있었다.
이미 그때쯤엔 나도 우리 군대 내에서는 상병계급장을 단 놈들 중에는 위에서 세 번째 짭밥이 많은 때라 적당히 어슬렁거리며 가끔은 뒷짐도 지고 걸으면서도 이빨을 사정없이 깔 수 있을 때였다.
새로 지었다는 목욕탕 앞에서 짝다리를 짚고 암만 잘 봐도 시장터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는 아지매가 들고 다닐법한 잔돈가방 같은 세면백을 대충 손목에 걸치고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앞에는 또 다른 한 무리의 놈들이 목욕탕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근데 당시 우리의 모습은 때가 내려 앉아 뺀질뺀질해진 실잠바(야전상의)를 입고 하루하루 주구장창 땅만 파다 보니 내가 제대하고 너무나 재미있게 본 ‘옥이 이모’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거지 ‘찝게 망태 아저씨’ 보다도 더 추리했었다.
당연히 겉모습은 장개석 군대의 포위망을 피해 장장 만이천 킬로미터를 토꼈다는 모택동의 군대 같았으니 아마 우리가 초등학교 댕길 때 늘 보았던 면사무소 앞 자천거랑 다리 아래 살았던 걸베이 꼴이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모여 있던 그 한 무리의 놈들은 우리와도 너무나도 달랐더란 말이다.
우선 키가 멀대 같았는데 대충 봐도 나보다는 평균 10센치 이상 커 보였다.
그리고 입은 옷들이 무진장 깨끗했고 짜세까지 났었으니 몇년전에 ‘이게 최선이에요?’란 건방지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말을 수시로 날리는 싸가지였지만 체육복 입은 모습까지도 수많은 조선 아줌마들을 오줌 지리도록 만든 현빈이란 놈보다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놈들의 피부란게 얼마나 허여멀건지 놀라자빠질 정도였다.
한겨울에도 뜨신 물을 얼굴에 바를 기회가 없을 뿐 아니라 세수 할땐 당연히 ‘무궁화 빨레비누’로 얼굴을 씻어야 하고 그것조차도 고참한테 들키면
‘허... 시바 군대 다 됐다.... 요새는 쫄병들이 세수할 때 비누를 다 쓴다야... 허 시바...’를 들어야 했으니 당연히 그날 밤에는 기수빠다로 엉덩이를 애무당해야 했을 정도였으니 우리 얼굴이란게 덕지덕지 말라붙은 소똥을 붙이고 살던 고향집에 키우던 소의 엉덩짝과 같았음은 말로 해 무엇하리요.
근데 그 놈들은 어찌 그리도 하얗게 생겨 쳐먹었고 보들보들한 얼굴을 가졌냐 말이다.
놈들의 피부는 동네잔치를 위해 모가지를 짤라 뜨신 물을 퍼부어 터레기를 온통 밀어 놓고 기분 좋게 웃고 있던 돼지의 그것과 비슷했고 나중에 좀 더 시간이 흘러 지금은 같이 사는 여자와의 첫날밤에 보았던 그 살결과 같았다.
아마 그때 놈들을 보면서 ‘이놈들은 PX에서 마음껏 니베아핸즈크림을 사서 얼굴에 쳐 바르면서 살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었다.
한편으로는 경이롭고 한편으로는 이런 기합빠진 새끼들은 아마 여자 군인이 전무했던 우리 군대의 높으신 장교들의 커피를 끓이며 밤마다 그들의 다리와 어깨를 주무르는 특수 임무를 담당하고 있지 않을까 야릇한 생각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여기 모인 자식들도 대부분 나보다 쫄따구니 한번 집합시켜 쥐어 패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 째려 보고 있던 그놈 중 한 놈에게서 아무래도 낯이 익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 순간 그 놈도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더란다.
놈과 나는 동시에 ‘어! 어! 어!.....’를 외쳤고 반가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옴을 느꼈다.
그 멀고먼 땅에서 만난 놈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댕기고 졸업 마지막 해에는 같은 반에서 지냈던 동창놈이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그때까지 고무신 거꾸로 신고 어딘가로 짱박힌 그년에 대한 생각은 홀딱 잊어버리게 했었다.
무슨 사연으로 놈이 거기에 와 있는지 나중에 알긴 했지만 놈은 분명히 내가 입대하고 몇 달뒤에 따라 입대했고 그냥 평범하기 그지없이 날이면 날마다 산이고 들이고 바닷가로 뛰어 댕기던 나와 달리 놈은 멀대같은 키 덕분에 그 멀대들만 골라 만든 특수 찬란하기 그지없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물론 높으신 장군님을 위해 커피를 타거나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은 그들의 어깨며 무릎을 주무르는 일은 아니었지만 놈들은 분명 그 분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일을 주로 했는데 놈들의 임무를 영어로는 ‘Honor Guard’라 하고 조선말로는 ‘의장대’였으니 날이면 날마다 무겁기 그지없는 에무앙 소총을 장난감 다루듯 돌리고 던지며 장군님들의 기분을 어떻게 하면 째지게 할까 졸라 고생하고 있었다.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대부분의 조선관군이 사용하는 가볍기 그지없고 앙증맞은 케이투 소총 대신에 그 놈들은 양키들이 이차 세계 대전때 사용했다는 그 무겁고 긴 총을 들고 다녔는데 그걸 돌리고 던지려면 얼마나 좃뺑이 쳤었겠는가.....
나는 한때 군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얻어터지는 내 신세가 처량해서 날이면 날마다 개만 끌고 다니던 특수병, 군견병을 부러워하곤 했는데 그때 목욕탕 앞에서 만난 그 중학교 동기놈이 하는 짓을 보고는 역시 내가 행복하구나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놈이 속했던 의장대 그 멀대들은 목욕을 끝내고 떠날 때에도 칼같이 오와 열을 맞춰 팔을 졸라 쳐들며 마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동지 앞에서 북녘의 하전사 동지들이 걷는 로봇걸음을 똑같이 걸으며 가고 있었다.
에그..... 불쌍한 놈들..... 그렇게 누가 키가 멀대같이 크라 그랬나..... 우짜랴.... 낳아준 부모를 탓해라.....
불쌍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또 고향 친구와 만남과 헤어짐이 아쉽기도 해서 놈들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참 쳐다볼 때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 그것은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보기 대령 행진곡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휘파람곡이었다.
그 동기는 기억이 나는지 모르지만 그때 내 귀에 들린 그 곡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흘러 모두 자기 자리를 잡아 가정을 꾸리고 돈벌이하며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다가 몇해 전 출장 간 서울에서 시간을 내서 어느 카페에서 그 놈을 만나 한잔 기울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봇같은 뻣뻣한 동작으로 군생활을 했던 놈은 특기를 살려 제대 후에 경찰시험을 치른 후 군대에서 그의 재롱을 보며 흐뭇해하던 장군님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높은 분께서 사시는 곳을 지키는 일을 한참 하다가 이젠 잘나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강남의 어느 경찰서에서 마찬가지로 잘나가는 경찰관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마 경찰관 생활을 하는 몇몇의 우리 동기 중에 가장 정상적이고 성실하고 공정하게 일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그렇게 평가할 것이라 본다.
그날 겁나게 맛있는 양주를 병째 비우며 언젠가 꼭 고향 경찰서장을 한번 하고 싶다던 그 친구 놈은 역시나 믿음직했고 든든했으니 역시 사람은 서울에서 굴러야 한다는 믿음을 나에게 굳게 심어주었다.
왜냐면 그가 나를 끌고 갔던 그 카페의 여주인의 얼굴을 보면서 그의 안목이 무척 세련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쯥....
돌이켜 보면 철없던 시절에 젖소를 키우며 목장을 하고 싶다던 그 놈의 꿈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목장’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어린 시절에 유행하던 김정렬 형님의 ‘숭구리 당당’ 개다리 춤을 교실에서 추던 그의 모습도 겹쳐 떠오른다.
태규야 잘 사나?
첫댓글 태규 잘산다 ! 완전 삐까삐까하다
와..... 대단해요(선생김봉두 버전)
나도 군대서ㅅ사단체육대회때 2년선배
용환이 만났다 아이가!
어찌나 반갑던지...
첫 인사가 "니 여는 우예 왔노"카드라.
우예 오기는 우예와!
"개 같이 끌리가 인제 원통까이 왔지!"
캣다.
근데 우리소대 꼴통이 용환이 동긴기라.
둘이서 뭔 말을 햇는지 그뒤로는 꼴통이
나를 안갈구더라....
우쨋든동 인연이란게 참 소중한기라.
나는 실무배치받는 첫날 내무실에 들어가니까 아는 놈이 있드라. 고등학교때 같은 반이었지. 그라고 이병때 연대과업정렬하러 가니까 태호가 마찬가지로 이병 달고 꺼죽하게 있드라. 서로 말도 못하고 눈짓만 하고 돌아섰다. 그라고 춘제가 500미터 떨어진데 있었는데 이게 어리하게 진해로 전출가는 바람에 같이 생활못했다. 내가 제대하고 면회가니까 억수로 불쌍하게 군바리 생활하고 있데.
내가 젤 흐뭇했던게 언젠지 아나?
군대는 나보다 보름 먼저 간 골초가 제대는 내보다 석달 늦게 했을때다.
얼매나 통쾌했는지....
긍게 군바리는 먼저하고, 짧게 하는게 최고여...
아, 자천 조??라고 1년 선배도 트럭에 부실싣고 왔드라.
말년에 화산에사는 고교동창 친구라고
들어왓길래 잘해줫거든!
근데 제대하고 영천서 만낫는데
이쒝기가 경례는 고사하고 반말비스무리하게 하는기라....
잘 해주는거도 사람 봐가메해야지...
생긴거는 까재미카 호형호제 할만하게
생긴게 싸가지는 금호강 똥물에 밥말아쳐묵엇는지....
그럴줄알앗시마 씨게 갈가뿔긴데...
사람속을 내 우찌 알겟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