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프리랜서 기자이자 회복 뮤지션(Recovering Musician)인 조지 스텝터(George Steptoe)가 자신의 블로그(http://georgesteptoe.co.uk)에 공개한 글이다. 그는 이전에 영국 신문 <해크니 시티즌>(Hackney Citizen)의 기자였고, 현재는 캄보디아의 프놈펜에 거주하고 있다. '크메르의 세계'는 스텝터 기자의 허락을 얻어 본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 글은 다소 시일이 지난 글이긴 하지만, 여전히 캄보디아의 총선 정국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글로 판단된다. [크세] |
(게시일) 2013-8-11
[르뽀] 캄보디아 총선의 시골 사람들
"가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변한다"
“We Can Rise or Die Without Change”: How the CNRP penetrated the provinces
글 및 사진 : 조지 스텝터 (George Steptoe)
그것은 캄보디아의 우기였다. 지난 7월28일 총선이 끝난 이래, 투표 부정에 관한 증언들은 시엠립(Siem Reap) 시에 위치한 야당인 '캄보디아 구국당'(CNRP)의 도당 지구당 건물의 정원을 뒤덮은 푸른색 플라스틱 지붕을 강타하는 폭우만큼이나 봇물을 이뤘다.
캄보디아의 북서부에 위치한 시엠립(Siem Reap) 도는 인구가 90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곳이다. 께 소완롯(Ke Sovannroth) 후보는 이곳에서 새롭게 선출된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녀의 선거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NEC)가 발표한 예비 선거결과를 자체적으로 집계한 결과와 대조해보느라 열중하고 있었다.
소완롯 당선자는 시엠립 도에서 야당이 실제 발표된 것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의 예비 결과는 이 지방에 배당된 의석 6석 가운데 야당이 2석만 차지한 것으로 집계했다. 야당은 지난 2008년 총선에서 1석만 차지했었다. 반면,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은 2008년 총선보다 1석이 감소한 4석을 차지했다.
이러한 내용은 분명 그다지 대단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논랄만한 경향이 발견된다. 이전에는 집권 CPP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여겨졌던 시골 면들에서, CNRP는 눈부신 역적극을 펼쳤다. 불과 12달 전인 작년(2012)에 치뤄진 '6.3 지방선거'만 해도, 야당은 집권 CPP를 혼줄내기엔 상당한 득표 부족에 시달렸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바로 그 점을 극복한 것이다. (아래 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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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시엠립 도내의 4개 면에서 야당인 '캄보디아 구국당'(CNRP)이 작년(2012) 6.3 지방선거에서 '삼랑시당'(SRP)이 얻었던 득표수와 비교하여 이룩한 변화. CNRP는 2012년 7월 '삼랑시당'(SRP)과 '인권당'(HRP)이 합당하여 탄생한 통합 야당이다.
- 하늘색 : 2012년 SRP 및 금년의 CNRP가 얻은 득표수.
- 감청색 : 집권 CPP가 얻은 득표수. |
가령 쯔로우(Chreau) 면의 경우, 집권 CPP는 2012년과 비교하여 단지 47표 밖에 늘리지 못했다. 하지만 CNRP는 2012년 지방선거에서 '삼랑시당'(SRP)이 얻었던 740표보다 거의 3배로 늘어난 2,221표를 얻었다.
이와 유사한 경향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시엠립의 찌끄라앵(Chi Kraeng) 면과 롤로우(Roluos) 면, 그리고 프놈펜(Phnom Penh) 외곽을 둘러싼 지방인 껀달(Kandal) 도의 박깡(Bak Kang) 면의 경우, 집권 CPP의 득표수는 조금씩 감소하고 야당인 CNRP의 득표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CNRP의 시엠립 도 지구당사에서 본 모습은 전국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선거결과는 대단히 박빙이고, 나라 전체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양측은 서로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선거부정 증언들에 관한 조사위원회 설치 협상은 결렬될 처지에 놓여있다.
캄보디아의 강자 훈센(Hun Sen) 총리는 지난 27년간 국가를 통치해왔다. 그는 국제사회의 제3자가 이번 선거부정 조사에 개입하는 일을 거부했다. CNRP의 삼 랑시(Sam Rainsy, 삼랭시) 총재는 이 문제에 관해 대규모 시위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아직도 최종적인 선거결과를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설령 예비 선거결과를 그대로 수용한다고 할지라도, 야당은 훈센 총리의 집권당에 상당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총 123석의 캄보디아 국회 의석수 가운데, 집권 CPP는 이전에 90석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CNRP는 최소 55석을 확보하여 여당의 의석을 68석으로 감소시키며 추격하고 있다.
도시 지역들에서 야당 지지자들의 물결이 넘쳐난 일은 전례없는 일이긴 했지만, 놀랄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기대감을 가진 젊은층들의 움직임이 정치적 자각이 움트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젊은이들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보다 참여적이고, 보다 적극적이다.
캄보디아는 불균형적으로 젊은층 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이다. 젊은이들은 휴대폰을 통해 소셜 미디어(SNS)에 접근하면서, 사실상 집권 CPP가 독점하고 있는 기성 언론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신세대들은 유혈의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기도 경험한 바 없으며, 진보를 향한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그들은 야당의 차량행렬에 참가하면서, 그러한 믿음들을 공개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은전주의(=기증품 제공 등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고,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지며, 유권자에 대한 협박도 남아있어, 집권 CPP의 승리는 거의 보장된 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따라서 집권당에 도전하는 야당에게는 협소한 공간만 남아 있었지만, 이번 총선에서 CNRP는 어떻게 시골 면소재지들에서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소완롯 당선자는 도시에 나가 일하던 젊은 노동자들이 투표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이 노년층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여당의 감시망을 피한 사적인 귓속말 네트워크(=입소문)가 퍼져나가면서, 야당의 지지가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장을 보러갔던 시골마을 주민들이 그곳에서 CNRP의 로고 깃발이나 선거운동 집회를 보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여당의] 부정부패와 협박 전술에 이골이 났다. 그래서 변화를 향한 의지가 생겨났고, 그것이 여당에서 뿌리는 돈이나 관영 매체들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
이러한 이야기는 롤로우 면에 거주하는 뽀이 쭘(Poy Chum, 86세) 할머니에게서도 동일하게 튀어나왔다. 그녀는 현재 6세 된 손녀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성년 자녀들 3명은 현재 태국에서 거주하면서 일하고 있다.
뽀이 쭘 할머니는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볓집으로 이어만든 부엌에서 무쇠 난로의 불을 지피던 할머니는 열정에 넘쳐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개발에서 낙후되고 만연한 부정부패로 인해 자신이 파탄 직전까지 내몰렸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당이 통치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내 자식들과 손주들은 혜택이 없다. [정부의 경제적 토지 양허권(ELC: 국유지의 장기 임대권) 발급으로 인해] 땅만 잃었을 뿐이다. 내 사위가 땅에서 임차인을 몰아내달라고 경찰에 요청하니 100달러를 요구했다. 우리는 정의를 찾으려면 돈을 지불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
뽀이 쭘 할머니는 손녀 딸의 미래를 생각하면 집권 여당의 보복조치 정도는 두렵지 않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걱정 안 한다. 나는 전쟁통에서도 살아봤다. 만일 죽게 되면, 죽으면 그만이지. 난 신경 안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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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뽀이 쭘(86세) 할머니와 손녀 딸. |
막 람(Mak Lam, 57세) 역시 롤로우 면 주민이다. 그는 퇴역 군인이고, 이전에는 자기 마을의 여당 당원도 지냈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08년에 '인권당'(HRP)으로 옮겼고, 이번 총선에서 CNRP에 투표했다. 막 람 씨는 다른 많은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공영방송인]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VOA) 크메르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뉴스들을 접한다면서, 정치 문화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들이 이제 많이 깨어났다. 그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좋은 일을 바라고 있다. 만일 CNRP가 이긴다면, 내 아이들이 마을 행정에 참여토록 할 수 있다. 야당의 승리는 자식들을 위해 도로를 청소하는 것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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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롤로우 면에서 만난 막 람(57세) 씨. |
홍 속 호우(Hong Sok Hour) 상원의원은 2012년 상원의원 선거(간접선거 방식)에서 SRP 공천으로 당선됐다. 그는 2008년 총선과 비교하여 야당이 약진한 것은 대단한 변화이며, CNRP의 승리는 오늘날 캄보디아가 처한 상황에 대한 신뢰할만한 전망이 실제적으로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8년에는 희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야권이 통합됐고, 국민들을 위한 승리가 현실화됐다는 점이다." |
필자가 대화를 나눠본 시골마을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내용은, 선거결과가 어떻든간에 민주적 다원주의가 증대한 일 그 자체가 캄보디아의 승리라는 것이었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인 훙 똘(Hung Tol, 43세) 씨는 쯔로우 면에서 세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신변안전 때문에 자신이 어느 당에 투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번 선거과 과거의 선거들보다 "진짜 경쟁"에 가까워진 일을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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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쯔로우 면에서 만난 훙 똘(43) 씨와 장모, 그리고 여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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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쯔로우 면에 붙어 있는 CNRP의 로고. |
껀달 도, 박깡 면의 미어 마위(Meas Mavy) 제2 부면장은 야당 소속으로서, 주민들에게 민주적 변화의 가능성을 확신시키는 일이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마위 씨는 자신의 면에서는 모든 면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변화의 새싹이 뿌려진 것은 이미 10년 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보다 열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점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2002년부터 지역 공동체와 관계 구축에 나섰다. 주민들에게 그들이 [야당을 지지해도] 안전할 것이며, 제거당할 우려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
마위 부면장은 박깡 면에서 CNRP가 시각적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주민들에게 정기적으로 소식지를 전하고, 박깡 면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공개 포럼도 개최했다.
마위 부면장은, 면 단위 시골에서 삶의 표준은 정체된 데 반해 빈부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시골 주민들이 야당에 투표한 일을 절망에서 나온 행동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민들은 만일 스스로 깨어나지 못하면 현실이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만일 자신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신들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 채 죽을 것이라는 점이다." |
야당의 삼 랑시 총재는 수도 프놈펜에서 외국인 혐오주의(xenophobia)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필자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면 단위 지역들에서 반-베트남 정서는 현저히 적게 표출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층에 흐르고 있는 정서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했다.
필자가 마위 부면장을 만나러 가는 동안, CNRP의 호 완(Ho Van) 껀달 도당 위원장은 선거부정을 막기 위해 야당이 베트남계 유권자들의 투표를 막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박꽁 면에 거주하는 양 빡(Yang Pak, 58세) 씨는 오토바이 수리점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부인인 라이 세멧(Lay Semet, 52세) 씨는 도로변에서 '조니 워커 블랙' 병에 휘발유를 담아 파는 노점을 하고 있었다. 양 빡 씨는 삼 랑시 총재의 민족주의 자극 발언에 그다지 감명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야당을 지지한 것은 반-베트남 정서 때문이 아니라, CNRP가 제시한 7개항의 공약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 빡 씨가 말을 마칠 때 쯤, 그의 친구 한명이 사진을 들고와 보여주었다. 그것은 이날 아침에 프놈펜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들에 무장병력이 배치된 사진이었다. 부부는 그 사진을 보며 웃었다. 적어도 양 빡 씨에게 있어서만큼은, 집권 CPP의 겁주기 전략이 과거처럼 잘 통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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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깡 마을에서 만난 양 빡(58세, 좌측) 씨와 그의 부인 라이 세멧(52세, 우측)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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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판단이 잘 안 됩니다만..
뽀이 쭘 할머니가 참 대단한 가르침을 주셨네요..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군요.
캄보디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선의 최종 발표을 해서
피를 보지 않고는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 보이고
야당인 CNRP당은 시위와 동시에 정권을 쟁취한 후
어떻게 무엇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 기대치를 충족할 것인가?
고민해야 된다고 봅니다.
원래 양아치들과의 싸움이란 것이...
일정 부분 깡다구가 좀 필요한 일이죠..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면..
결국 호구나 노예가 되지요..
허철 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세상 일이란 것이..
만족할만한 결과와 더불어,
안전한 과정도 함께 제공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요..
말씀대로..
이제 보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시기로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