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서 퍼온 글]
명월관에 재력가이며 풍운아 손병희가 왔다.
명월관 대표 안순환은 이곳에서 가장 신뢰하는 기생 주산월(주옥경)에게 손병희 일행 대접을 맡겼다.
손병희는 33살 위지만 19살 주산월에게 하대할 수가 없었다. 주산월의 분위가가 그랬다. 주산월은 당시 대스타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광고주가 스타를 보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대의 명성을 들었소 궁금한 것 하나 물어보리라 견제가 많았을 것인데 어찌 다동기생조합을 만들었오?”
“평양에서 기생으로 입적했고 일본에 의해 관아에서 기생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어 이제 한양에 와서 돈을 벌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기생아비들에게 수익을 빼앗기는 기생들이 많고 그녀늘 가운데 기생아비들을 등에 업고 예와 기를 갖춘 기생아비가 없는 기생들을 억압하기에 이왕 기생으로 살기로 했으니 바른 기생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오 대단하구요 내 응원하리라”
산월이 부르는 수중가와 가야금 연주를 눈을 감고 들은 손병희는 박수로 호응을 했다. 일행중 한 사람이 산월이 그림을 잘 그리니 청하자고 한다.
산월은 소리도 부족해 죄송한데 자신의 그림으로 눈을 어지럽히기 싫다고 하자 그림에 심취에 있던 손병희는 산월에게 그리하라고 청한다.
붓을 잡은 자태와 사군자와 기러기가 노는 모습을 순식간에 그리는데 손병희는 구름가운데 천사를 만나는 마음이었다. 손병희는 주산월을 마음에 품고 가족들과 의논을 하여 주산월을 보다 큰일을 하게끔 하였고 아내로 맞이했다.
기녀 리더 주산월은 주옥경되어 300만 동학의 어머니가 되었다. 손병희의 깊은 뜻과 종교심 애국심을 알기에 주옥경은 어렸지만 어린 신부가 아닌 동지였다. 마지막까지...
3.1 혁명으로 손병희가 서대문형무소로 들어가자 주옥경은 서대문형무소 가까운 곳에 초가집을 얻어 손병희를 보살폈다. 형무소에서 병을 얻어 몸이 마비되어 풀려난 손병희는 얼마 후 사망한다.
주옥경은 일본으로 가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들어와 천도교의 발전과 애국 특히 여성인권을 위해 혼신을 다하며 여생을 보냈다.
청계천 변에 있는 다동(茶洞)은 궁궐 안에 필요한 차와 채소 과일 등을 재배하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재료를 다듬어 보내는 궁궐다방의 준비공간이었다.
조선이 망하면서 궁에 있던 상궁들이 민가로 나와 차와 음식을 팔게된 곳이 지금의 다동이다. 다동은 갑오경장 이후 해체된 장악원의 예인들과 전국의 일패기생들이 모여 요정을 차렸다.
200여명의 일패기생가운데 60명이 다동에 있었다는 통계를 보았다.
법정동은 다동인데 행정동은 명동이다.
명동은 주민 22000명의 작은 인구지만 명동안에 법정동은무교동, 다동, 태평로1가, 을지로1가, 을지로2가, 남대문로1가, 삼각동, 수하동, 장교동, 수표동, 남대문로2가, 회현동1가, 회현동2가, 회현동3가, 충무로1가, 충무로2가, 명동1가, 명동2가, 남산동1가, 남산동2가, 남산동3가, 저동1가, 예장동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