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노래하는 윤도현 원문보기 글쓴이: 나도윤씨
며칠 전 윤도현밴드(이하 YB)의 소극장 공연을 보고 와서 요즘 밤마다 이러고 있다.
사춘기 때, 원인 모를 열병에 달뜬 아이의 마음처럼 여러 감정과 충동에 휩싸여 늦은 밤까지, 정확히 말하면 이른 새벽까지 음악을 듣는다.
딱히 하는 일 없이 음악을 듣는다. 한때 좋아했던 음악들도 찾아 듣고, 처음 들어보는 음악도 장르를 불문하고 마구 들어본다. 평소 들어봐야지 하곤 잊었던 음악들도 생각나는 한 찾아 들어본다. 마음 가는 음악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 소극장 공연이, 요즘 나의 목말랐던 감성을 제대로 자극했지 싶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음악감상만을 위한 음악감상이 얼마만인가.
가수가 본업이 되고부터는 거의 모든 일상이 정해진, 혹은 불규칙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고, 다음날 컨디션을 생각해 즉흥적인 행동을 매우 삼가거나, 일단 음반 작업에 들어가면 우리 팀의 음악 만을 모니터 하기도 바쁘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나 멋진 공연을 볼 때면 거의 항상 마지막엔 풀어야 할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 너는? 잘하고 있니? " 한마디로 머리 속에 잔소리꾼들이 많아진 것이다.
어떤 일이나 얻는 것이 있으면 그 만의 책임과 희생이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니 불평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저 자연스레 나오는 한숨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빅마마 5집 앨범 발매가 예상보다 좀 늦어져, 복잡한 머리와 빈 마음으로 찾아간 공연장.
홍대에 위치한 작은 소극장에 빽빽히 들어선 관객들. 10대 청소년부터 2,30대 젊은 이들은 물론이고, Rock 이라는 장르에, 주말이라 스탠딩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40,50대 중년 분들도 많이 보였다. YB 단독공연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컬 윤도현씨는 얼마 전까지 진행하셨던 러브레터 라는 TV음악 프로그램에서 새 음반이 나올 때마다 가끔 뵀지만, 공연 무대에서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나비처럼 훨씬 자유롭고 멋져 보였다. 물론 MC도 잘 어울리셨지만 역시 뮤지션은 공연장에서 진정한 멋이 난다는 걸 새삼 느끼며.
MC 때 한동안 하셨던 짧은 스포츠 머리에서 길고 덥수룩한 헤어스타일로 바뀐 후 잠시 낯설었던 게 사실이지만, 공연장에서 새 음반의 음악들을 들어보니 왠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뭔가 다시 초심의 마음으로 회귀하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뒷얘기로 공연 이틀 전 윤도현씨 할머니께서 갑자기 임종하셔서 밤새 상을 치르고 오전에 발인까지 다녀왔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공연을 이끄는 컨디션이나 무대 매너는 자연스레 엄지손가락을 들게 했다. 심지어 고 3때 좋아하던 레드 레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의 이미지도 언뜻 오버랩 되었다. 개인적인 슬픔이 때론 뮤지션을 더욱 열정으로 이끄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른 멤버 분들의 연주 역시 훌륭했다. 개인의 역량은 물론이고 척척 맞는 호흡이 그들이 그동안 함께 해 온 시간들을 묵묵히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솔직히 YB 단독 공연을 처음 본 나로써는 미디어에 많이 알려져 있는 대중적인 타이틀 곡들만을 떠올리며, 선입견 아닌 선입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근데 웬걸, 그래서 더욱 놀랐다. 아니 저런 음악도 하는구나. 그 섣부른 선입견이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역시 앨범은 전곡을 다 들어봐야 한다.
요즘 여러 일들로 답답했던 내 마음이 YB의 시원한 ROCK사운드와 돌려 말하지 않는 직설적인 가사, 절규하는 보컬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특히 드럼 톤과 기타 사운드에서, 이번 앨범에 멤버들이 사운드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난 그 투박하고 날카로운 빈티지 사운드가 참 좋았다.나도 지금은 이렇게 여성스럽고 점잖은 보컬 그룹에서 매끄러운 화음을 맞추고 있지만, 실은 19살부터 21살까지 홍대 근처 '하드코어'라는 클럽에서 ROCK 밴드를 했었다.
그 시대에 로커가 되고 싶은 젊은이라면 한번쯤은 우러러 봤을, '커트 코베인'이 있었던 너바나(nirvana)의 음악을 주로 카피했다. 당시 리더 오빠의 자작곡들로 채워진 혼성3인조 밴드였다. 포지션은 부끄럽지만 드러머였다. (노래를 하는 지금의 나로써는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드럼에 나름 꽤 진지했다.) 그러나 각자 대학에 입학하고, 군입대하면서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꿋꿋이 자기음악을 해 온 친구들 앞엔 밴드를 했었다고 명함 내밀긴 좀 낯뜨겁지만, 지금도 나의 무의식 안엔 한창 예민했던 그 젊은 시절의 음악들과 이미지와 정서들이 일종에 향수처럼 고스란히 살아있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고, 지금은 이렇게 전혀 다른 음악을 하고 있지만, 많은 고민과 열정이 담긴 음악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YB의 공연을 보면서 빅마마와 장르는 다르지만 둘다 팀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15년이라는 그 짧지 않은 시간들을 팀으로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대중 음악인이면서 그룹 음악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당면하는 문제겠지만, 앨범의 수가 한장 한장 늘어가면서 대중성과 음악성의 부담감을 떨치고, 팀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적절한 합일점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멤버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구체화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이번 새 앨범을 작업하면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YB 처럼 오래 활동하는 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이렇게 성숙해가는 거겠지...
공연 막바지에 애정어린 말투로 멤버를 소개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정신적 지주이자 큰 형님이신 베이시스트 밝은 별 님, 각종 기계작업과 엔지니어에 능하시다는 기타리스트 허 준 님, 본인은 드럼만 열심히 치시겠다고 멤버들에게 선언하셨다는 투베이스 카리스마 드러머 김진원 님.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자신의 빛을 발하고 서로를 서포트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왠지 이 분들, 정말 그들의 꿈처럼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렇게 자유로운 음악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멤버분들의 꿈대로 롤링스톤즈처럼 오래가는, 한국 음악사에 남을 멋진 밴드가 되시길 조용히 바라본다.
처음엔 손을 들어올리는 것도 어색했는데, 나중엔 나도 모르게 스프링처럼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마지막 즈음, 이번 타이틀 곡의 또다른 가사버젼, '엄마의 노래'라는 곡이 연주될 땐 눈물이 났다. 매주 화,수,목,금,토,일요일을 3주나 공연한다는 데 저러다 몸살 나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이 관객으로 하여금 뭔가 울컥하게 했다. 오랜만에 관객에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된 것 같다.지루하고 힘든 일상에 음악으로 에너지를 수혈할 수 있는 음악인이라는 게 괜히 뿌듯해지기도 했다.나도 어서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순수란 다치기 쉽고, 연약하단 의미로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음악에서 순수란 매우 큰 무기이다. 순수한 열정, 사랑, 연민, 불의를 향한 순수한 저항... 그 안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커다란 힘, 바로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점점 거대 상업화 되어가는 음반 시장에서 음악의 순수를 찾아보기 힘들고, 그 파도에 쉽게 흘러가는 이들도 많지만, 다른 한편엔 그럴수록 더욱 좋은 음악을 만들려 고민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풍류를 알고 멋진 야망을 가진, 배짱 두둑한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