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남도여행 완도타워, 명사십리
강진청자마을, 장흥억불산을 다녀와서!
신지도(薪智島)의 명사십리 해수욕장
신지도 하면 명사십리해수욕장이다. 이곳에 왔다면 먼저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달려가 볼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내로라하는 해수욕장
중에서 ‘명사십리(明沙十里)’란 이름을 갖고 있는 곳들이 많다.
함경도 원산의 송도원해수욕장이 그 원조 격이다. 대개 ‘밝은 모래’
라는 뜻의 ‘명사(明沙)’십리로 부른다. 신지도에도 ‘명사십리’가 있다.
그런데 이곳 명사십리는 ‘모래가 운다’는 뜻의 울명(鳴)자를 쓰는
명사십리(鳴沙十里)라 부르며 4km에 조금 모자라는 3.8km에
달하는 ‘십리’라는 단어를 합해 ‘명사십리’로 부르고 있다. 신지도의
명사십리가 ‘우는 모래’란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이렇다.
조선 시대 왕족 사대부로 관료 사회의 부정부패와 시국의 참상을 과감
하게 비판했던 이세보. 그가 철종 때 외척 세도 일가의 전횡을 논하다가
이곳 신지도로 유배를 오게 됐다. 그는 밤이면 해변에 나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유배의 설움과 울분을 실어 손가락이 닳도록 모래톱에 시를
쓰고 읊었다고 전해진다. 그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았으며, 그가 죽은
뒤에도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우는 소리가 10리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또박또박 백사장으로 걸어 나가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귀를 기울여 보면
영락없이 그 울음소리가 들린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서 울려 나오는 그
해조음은 모래가 울거나 파도가 모래에 해금을 켜듯 들려오는 신비의
울림같은 것이다. 해송 숲이 백사장에 병풍을 치고 서 있다.
고금도로 건너가는 송곡 마을은 울창한 소나무가 많다. 마을 뒤편 성산
에서 명사십리까지 소나무 숲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고 산책로 끄트머리
용주암에 물맛이 일품인 약수터가 있으며 인근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다. 마을에는 조선 시대 진을 설치하고 수군을 배치
했던 지역임을 알리는 만호비와 진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종두
로 유명한 지석영이 살던 집(적소)이 남아 있으며 또 동헌터, 장정터
형장터, 무기고 등 임란 때 설치한 진(陣)의 여러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 있다.
출처:(한국의 섬 - 전남 완도군, 아름다운사람들)
바닷가의 추억/ 71
김희갑:작사
김희갑:작곡
키보이스:노래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만난 그 사람
파도 위에 물거품처럼
왔다가 사라져간 못 잊을 그대여
저 하늘 끝까지 저 바다 끝까지
단둘이 가자던 파란 꿈은 사라지고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바람이 불면 행여나 그 님인가
살며시 돌아서면 쓸쓸한 파도소리
저 하늘 끝까지 저 바다 끝까지
단둘이 가자던 파란 꿈은 사라지고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바람이 불면 행여나 그 님인가
살며시 돌아서면 쓸쓸한 파도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