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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트로팀 원문보기 글쓴이: 늘푸른선순
2013년 12월에 떠났던 인도네시아 한 달 배낭 여행기가 메거진 '아시아 N'과 테니스 피플에 실렸다. 몇일 전 '아시아 N' 잡지를 받았다. 필자들을 보니 유명인사들이 많았다. 이병효 선생님의 글이 겉 표지를 장식하고 영화계의 거두 전찬일씨나 최재천 학자, 등등 쟁쟁한 분들이 기고하는 잡지였다. 그곳에 내 글이 실렸다. 소금간이 안 맞는 음식처럼 싱거웠다.
나를 지도하는 문교수님께서도 그 잡지에 실린 여행기를 읽어 보시더니 문자를 보내셨다. "좁은 지면에 다 쓰려니 압축이 힘들겠지만 호흡은 괜찮은데 깊은 통찰력이 가미되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고 하셨다. 깨달았으면 패턴을 바꿔야 한다. 한 달을 여행하면 일정을 적고 본 것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곳만 선정해서 그 지역에서 보고 느낀것을 깊이 있게 쓸 일이다. 한 달동안 본 것을 다 적으려니 그야말로 주마간산격이 되지 않겠는가.. 여러번 첨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정성도 부족했던 점을 반성한다. 아래는 메거진 '아시아 N'에 실린 내용
인도네시아 여행기 원문
동기
여행, 어쩌면 지독한 중독인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매 년 한 달씩 다녔던 배낭여행지가 올해는 인도네시아였다.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일주일을 머물렀고 25일 동안 인도네시아의 쟈바 섬과 수마트라 섬, 그리고 발리 섬을 돌아보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인도네시아의 속살들을 제대로 맛보고 왔다. 책을 읽어도 흡수되지 않았던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문화들도 이제는 감이 잡힌다. 옛 선인들이 '독만권서(讀萬卷書), 불여행만리로(不如行萬里路)'라고 표현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일정
인천공항,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멜라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있는 두마이항, 페칸바로, 부키팅키, 빠당,쟈바섬의 자카르타,족자카르타, 브로모,카와이젠, 발리섬의 쿠타와 우붓, 방콕, 인천공항
인도네시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알아두어야 할 것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무슬림의 의무에 충실하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고 싶다고 아무때나 떠났다가 라마단 시기와 겹치면 한 달 동안 점심을 굶고 다녀야 한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아홉번째 달을 뜻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음식, 음료, 흡연등이 모두 금지 되는데 여행자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그 문화를 존중할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브로모 화산에 오르다
인도네시아 130여개의 활화산 중에서도 '신의 산'이라 불리는 해발 2392미터의 브로모 화산을 가기 위해 족자카르타에서 봉고차에 올랐다. 신호등도 없고 오토바이와 기름을 실어 나르는 거대한 유조차가 뒤섞인 도로에서의 운전은 아슬아슬한 자동차 경주를 방불케했다. 열 세 시간 동안 죽음의 질주를 했다. 해발 1700고지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하니 밤 열시가 넘었다. 고산지대라 턱이 덜덜 떨릴 만큼 영하의 체감온도였다. 숙소는 네 시간마다 품어내는 화산의 열기로 눅눅하고 천장에는 이슬처럼 물방울들이 맺어 있었다. 좁은 봉고차에 실려 비탈길을 올라오면서 시달린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습기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최고급 콘도 같은 쾌적한 집을 두고 떠나와 이 고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면 견디기 힘든 밤이었다. 이튿날 새벽 네 시, 일출을 보기위해 4륜구동 자동차로 이동했다.빠난자칸 전망대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0여분 기다렸을까? 세상에 이처럼 경이로운 일출이 또 있을 수가 있을까? 점점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은 화산의 열기를 우유 빛 강으로 바꾸어 놓았다. 크고 작은 화산들은 온통 강으로 둘러싸인 한 폭의 수채화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다면 더 지독한 고생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여유가 생겼다. 해가 산등성이 위에 올라서자 화산재가 사막처럼 펼쳐진 브로모 화산의 분화구에 오르기 위해 다시 이동을 했다. 바람이 불때마다 푸석거리는 짙은 암회색의 화산재가 온 몸을 공격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가 왜 필수인가를 알만했다. 금방 손에 잡힐 듯한 화산은 생각보다 멀어 대부분 말을 타고 갔다. 그리고 249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야 거대한 분화구에 다다르게 된다. 브로모 화산은 분화구 안에 '불의 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활화산으로 2011년에도 폭발해 인도네시아 열도를 긴장 시킨 곳이다. 용암이 끓고 있는 분화구에서 연기를 내뿜는 장관을 보고 있으려니 왜 이곳을 인도네시아 대표 관광명소라고 하는지 알만했다. 한 발만 삐끗하면 저 아래에서 끓고 있는 용암 속으로 떨어져 生과 死는 매우 가깝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매 순간 티없는 희열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삶은 화산보다 더 뜨겁다
화산재가 사막을 이루는 해발 2천고지에서도 생은 존재한다. 브로모 화산 주변의 사람들은 화산이 언제 다시 폭발해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급경사진 산을 가꾸어 파를 심고 양배추를 경작하면서 산다. 세계 유일의 유황광산인 카와이젠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매일 죽음의 유황냄새를 맡으면서 80킬로의 유황을 양 어깨에 메고 해발 2천고지에서 4킬로를 내려온다. 그리고 우리 돈으로 6천원의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새벽 네 시부터 올라가서 본 카와이젠의 황금빛 유황광산의 메케한 연기 속에 비춰진 녹색 칼데라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 속에 화산보다 더 뜨겁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광산에서 유황을 건져 어깨에 메고 미끄러운 화산 길을 내려오던 사람들이 주는 충격이 컸다. 짐없이 몸만 내려오기도 미끄러운 길을 무거운 유황을 메고 매일 두번씩 오르내리다니!여행을 한다고 바로 무언가가 남는 건 아니다. 그러나 화산보다 더 뜨겁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돌아와 고개를 숙였다. 내가 누리고 사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 깨닫고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힘이다. 긍정의 체력이 길러지는 과정이다.
인도네시아는 어떤 나라인가?
인도네시아는 1만 8천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오랫동안 네델란드의 지배를 받아왔고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360여 종족이 모여 사는 나라라서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가 많다. 인도네시아는 최근에 수마트라의 시나붕 화산 폭발로 뉴스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듯이 130여개의 활화산이 있어 지구에서 화산분화가 가장 많은 나라다. 또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지만 발리는 다르다. 발리를 왜 신들의 섬이라고 부르는지 도착하는 순간부터 금방 알게 된다. 흰두교를 믿는 발리는 집집마다 거리마다 신을 모시는 신전이 호화롭게 장식이 되어 있다. 하루 세 번 꽃과 음식을 바치는 슬랏맛딴 이라는 제를 지내는 모습은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다. 안전과 안녕을 기원하며 받치는 신성한 제물이 대부분 원숭이와 고양이의 밥이 되고 거리의 볼썽사나운 쓰레기가 되어 뒹군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나 발리등의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가는 곳마다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없었다. 거리엔 마차와 베짝이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섞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빈곤을 겪고 살지만 한없이 친절하다. 바쁠 것 없이 여유로운 국민성은 삶의 질적 수준과 상관없이 평화롭게 비쳐졌다. 한국에 코리안 타임이 있다면 그곳엔 고무줄 타임이 있어서 누구도 서둘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NO라고 직설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왜 인도네시아의 남자는 열성이고 여자는 우성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도 알았다. 현지인 중에서 미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 그리고 많은 인구가 미래에 잠재적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짙다는 학자들의 예견이 유난히 희망적인 여운으로 남았다.
수마트라 섬의 부키팅키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꽃 라플레시아를 보다.
부키팅키는 베트남의 단랏처럼 고산지대여서 시원한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부키팅키에서 3박 4일을 머무는 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인도네시아의 그랜드 케년이라고 하는 시아녹 계곡을 돌아보고 마닌자우 호수를 보기 위해 굽이굽이 48개의 급커브를 돌아 가는데 아슬아슬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또 횡재를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 라플레시아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날 비가 내려 질척거리는 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꽃을 보러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일행들은 아프리카 밀림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며 미끄러지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라플레시아는 주로 7월에 피는 꽃으로 3년에 한 번, 일주일간 피는데 약 30시간 정도만 꽃잎을 벌린다고 했다. 그런데 날씨가 따뜻해 1월에 꽃잎을 벌리고 있다니 우리는 엄청나게 큰 꽃을 보며 경이로운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매우 행운이 깃든 여행이라며 자축을 했다.
루악커피와 빠당요리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커피 생산국이기도 하다. 그 중 75% 이상이 수마트라산이다. 고급 가요 마운틴이나 아라비카등 다양한 종류의 값비싼 커피 중에서도 으뜸인 루악커피의 진짜 맛을 부키팅키에서 맛보게 되었다. 수마트라산 루악커피는 잘 익은 커피를 먹고 사는 사향고양이의 똥으로 만든 것인데 서울 청담동의 한 커피숍에서는 한 잔에 5만원씩을 받고 있다. 가끔 여행은 예기치도 않게 부유한 경험을 하게 한다. 수마트라지역 이외에도 어디를 가나 루악커피를 맛보는 여행코스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빠당으로 가는 중간에 한 식당에 들르게 되었다.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은 음식들이 탁자 위에 수 십 가지가 차려져 있었다. 빠당 요리는 상에 놓인 음식 중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먹고 접시 수를 세어서 계산을 하는 아주 독특한 방식이었다. 나물류 고기류 생선류 튀김류등 갖가지 미리 차려 놓은 것까지는 좋으나 달려드는 파리 떼를 처리하는 방법은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빠당 요리는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인기가 좋아 여행지마다 빠당 요리 전문코너가 있었다.
쟈바섬에 도착
빠당에서 가루다 항공을 이용해 자카르타로 이동, 드디어 쟈바섬에 도착했다. 수마트라 섬 사람들은 다혈질의 한국인을 닮았고 쟈바섬 사람들은 내성적인 일본인을 닮아 조용하다고 한다. 그곳에서 한인테니스회원들을 만났다. 그동안 뉴질랜드나 호주 등에서 만난 교포들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여성테니스 회원들이 농담처럼 던진 표현들이 기억에 남는다. 남편따라 인도네시아를 가게 되면 세 번을 운다고 한다. 한 번은 후진국으로 가기 싫어서 울고, 두 번째는 너무 좋아서 울고, 마지막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서라고 했다. 물가가 싸고 인건비가 저렴해 집에 가정부 한두 명은 다 두고 살 정도로 주부들이 손에 물을 적실일이 없다하니 가이 그럴만하다고 수긍이 갔다.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정치 경제의 수도인 만큼 도로가 깔끔했다.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족자카르타
인도네이사의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족자카트타는 지금의 공화국이 되기 전까지 자바지역의 수도였다. 왕궁과 전통복장인 바틱, 그리고 다양한 공연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앙코르왓보다 더 오래 전에 지어졌다는 보로부두르 불교사원 앞에 서면 입이 딱, 벌어진다. 웅대하다. 똑같이 조각된 종(鐘) 수백개가 탑돌이를 하고 있는 듯 둥글게 서 있다. 사원에 올라가서 본 새벽 풍경은 인간의 세상 같지가 않다. 천상같다. 바닷속처럼 고요하다. 살아온 삶, 살아갈 내 삶에 대해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곳이다. 더 머물고 싶었던 곳,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세계 10대 불가사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을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감동을 받는 곳이다. 보로부두르에서 본 일출이 필름처럼 머리에 저장되었다.
다시 인도네시아를 여행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바로 족자카르타로 가서 감성깊은 볼거리들을 천천히 돌아본다. 불교, 이슬람, 흰두의 전설적인 사원들을 보고 전통 무용극인 라마야나 댄스를 관람한다. 그리고 브로모로 이동한다. 화산 정상까지 올라갈 때에는 에델바이스 꽃을 사들고 가서 분화구에 던지며 기도를 한다.그다음 카와이젠으로 간다. 카와이젠의 유황광산과 아라비카 생산하는 현장을 보고 발리로 건너와 롬복까지 가보고 싶다. 이번 여행은 롬복을 가보지 못했다. 자카르타는 수도여서 잘 정돈된 맛은 있지만 반향이 크지 않았다. 부키팅키의 마닌자우 호수도 크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고생을 하며 다시 갈 만큼은 아니었다. 생각만큼 물이 맑지 않았다.
후기
발리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부타라는 사람을 만났다. 아들 넷을 키우고 있는 부타는 한국에서 2년간 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때 배운 한국말을 곧잘 했다. 한국 자동차 최고이고 한국 스마트폰 최고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60대 중반이라며 56세인 자신이 죽기 전에 꼭 한국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이 얼마나 부강한 나라인지, 이번 여행에서 깨달았다. 가는 곳마다 히잡을 쓴 무슬림의 아가씨들이 메이드인 코리아 스마트폰을 들고 카톡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하면 대부분 "오 삼성!"하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 주었다. 잘사는 나라에서 온 부자 여행자가 된듯 어깨가 펴졌다.
똑똑한 여행자들은 돌아 올 때 무언가 들고 온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비우고 돌아왔다. 다 갖지 못하고, 다 누리며 살지 못한다는 불평을 두고 왔다. 미적지근한 일상이 어느 누구에게는 6천원의 고된 품팔이를 하는 땀이자 눈물이라는 것을 알고 왔다. 주어진 삶에 감사를 드려야한다. 우리의 삶이 책 몇 권, 그리고 여행 몇 번을 한 느낌으로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지만 갑작스럽게 깨닫고 점차적으로 수행해 간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단어로 이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첫댓글 매번 여행기를 보고 들을 때 마다 부럽다.... 송선순씨는 멋진 인생을 즐길 줄아는 후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