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좀 퇴치 특효약을 소개합니다
무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1980년대 초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내가 20대 초반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때 나는 군대에 있었는데 아마도 일병쯤 되었을 때 같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 부대에서는 연대 RCT 훈련을 떠날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 훈련은 군대에 와서 처음 받는 것이었는데, 잠도 자지 않고 이틀을 행군하는 빡센 것이라고 고참으로부터 누누이 들어 익히 알고 있어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군화 안에 습기가 차면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히니까 양말을 여러 개 준비하라는 말도 들어서 다섯 켤레 있던 군용 양말도 모두 빨아서 빨랫줄에 늘었다. 그런데 일은 여기서 꼬이고 말았다. 훈련 출발 두 시간 전 양말을 걷으러 갔는데 내가 늘어 두었던 양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군대서는 먼저 보면 임자’라고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없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제 양말도 신지 않고 맨발로 군화를 신고 훈련을 떠나야 할 판이었다.
나는 빨랫줄 끄트머리에 양말이 한 켤레 있는 걸 보고 그쪽으로 갔다. 그것은 낡아 진한 녹색, 즉 국방색이 거의 누런 색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매직으로 ‘무좀’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빛이 바랜 양말을 보며 한참 동안 갈등을 하고 있었다. 이 양말을 슬쩍할 것인지 아니면 양말을 신지 않은 채 훈련을 뛸 것인가를 두고……. 군대에서 아무리 ‘먼저 보면 임자’라지만 나는 군에 와서 남의 물건을 슬쩍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다섯 켤레의 양말을 도둑맞고 수십 킬로미터의 훈련을 양말 없이 걸을 자신은 없었다. 나는 두 눈 딱 감고 그 빛바랜 양말을 슬쩍했다. 그놈의 ‘무좀’이란 글자가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찬밥 따뜻한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또 남이 손대지 못하게 엄포용으로 적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좀’이라고 적혀 있던 양말의 글자는 엄포용이 아닌 팩트였다. 그날 이후로 사십여 년을 나는 무좀과 함께 살고 있다. 이 무좀은 양말을 자주 신지 않아 발에 통풍이 잘되는 여름철에는 좀 기세가 수그러들었다가 늦가을부터 겨울철에는 최대한의 기세를 떨쳤다. 퇴근해서 양말을 벗고 발을 씻을 때 발가락 사이 갈라진 살갗 틈으로 물이 들어가면 그 쓰라린 통증은 날마다 겪는 고통이 되었다.
십여 년 전 중국에 패키지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여행사에서는 저녁에 발 마사지 코스를 집어넣는 일정을 짜 두었었다. 나는 발 무좀이 심하다며 발 마사지 일정을 한사코 거절했다. 나는 그 코스를 안 받아도 돈은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여행사의 조선족 가이드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빠지면 발 마사지를 하러 온 사람 한 사람이 하루 일을 공치게 된다며 제발 좀 받아달라고 가이드는 오히려 나에게 사정을 했다. 사흘째 종일 여행을 다니느라 무좀은 평소보다도 더 심하게 악화되어 있었다. 발 마사지를 받는 30분은 나에게 편안한 휴식의 장이 아닌 좌불안석의 장이었다. 이따위 패키지 여행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속으로 다짐에 또 다짐을 했다.
무좀에 좋다는 약은 참 많이도 구입해 발라 보았다. 약국을 찾아 약사에게 물어 구입한 경우도 있고, 인터넷을 하다가 화면에 보이는 무좀약 광고가 있으면 눈이 번쩍 뜨여 앞뒤 재지 않고 주문하기 일쑤였다. 그저 선전하는 것만 보면 무좀의 특효약 같지만 발라보면 역시 아니었다. 심지어 전통 5일장에 가서 고약도 사서 써보고 나환자들이 쓰는 약도 구입해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항상 헛수고였다. 처음 바를 때는 차도가 있는 듯도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재발하였다. 내 발가락에서 살고 있는 무좀의 균은 이제 어지간한 약에는 내성이 생긴 슈퍼 내성 무좀균이 된 듯했다. 결국 나는 무좀 퇴치를 포기하고 무좀과 함께 살기로 했다. 더 이상의 약을 바르거나 처방받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무좀을 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참으로 긴 시간이 흘렀다.
이외수의 소설 중에 <꿈꾸는 식물>이란 작품이 있다. 주인공 민식은 안개가 늘 자욱이 끼어 있는 호수를 낀 도시의 장미촌으로 불리는 집창촌의 포주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국립대학 법대생이다. 그의 위로는 형이 둘 있는데, 첫째 형은 중학교 때부터 퇴학을 당하고 전과자로 형무소를 갔다온 불량배이다. 포주인 아버지를 도와 매춘부들을 관리하며 그녀들로부터 최대한의 돈을 뜯어낸다. 둘째 형은 중학교 때까지는 수재로 통했으나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장미촌의 분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만 침잠하는 사회 부적응자가 된다. 이상 증세는 둘째 형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민식도 마찬가지다. 공부도 사랑도 삶도 질식할 것만 같은 장미촌의 분위기에 눌려 병들어 간다. 결국 집에 불을 태우면서 파국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무좀 이야기를 하다 뜬금없이 무슨 소설 이야기를 하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래 이야기가 두서없이 산만해진 건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이외수의 소설 속에 무좀 처방이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 둘째 형은 이상 증세가 심해지면서 종일 방에 박혀 바깥출입을 하지 않다가 밤중에는 몽유병 환자가 되어 밤거리를 방황한다. 결국 아버지와 큰형은 작은형을 정신병원에 넣으려고 한다. 이때 둘째 형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고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항변하면서 이런 상식적인 사실들도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 예수는 뱀띠였어요, 계산해 보면 뱀띠라는 걸 알 수가 있죠. 무좀은 낙지나 오징어를 삶은 물에 발을 담그면 신통하게 나아요. 치질에는 깨금발뛰기가 약이고 발 저린 데는 뒷걸음질이 약이래요. 그리고 야뇨증에는 당근을 구워 잡수세요. 야뇨증! 야뇨증! 아버지는 야뇨증이잖아요. 이래도 내가 미쳤어요?”
나는 “무좀은 낙지나 오징어를 삶은 물에 발을 담그면 신통하게 나아요.”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오징어와 낙지라고! 설마 그럴 리가! 아무리 소설이고, 소설은 허구라지만 작가가 전혀 근거 없는 말을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자기가 창작하는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름 하나 짓는데도 작명소를 찾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 나오는 박영채는 부모가 일찍 죽는데, 이때 英彩(영채)는 그 이름자에서 조실부모(早失父母)하는 것으로 나온다고 들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나와 마트에 들러 만 오천 원짜리 큼직한 문어 한 마리와 소주 한 병을 샀다. 나는 이외수를 믿기로 한 것이다. 문어를 푹 삶은 물을 대야에 넣어 식탁 밑에 놓고 발을 담갔다. 발가락 사이 갈라진 살갗으로 물이 닿자 따가웠다. 그리고 문어숙회 안주에 소주를 홀짝거렸다. 무좀이 낫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다. 나환자 고약도 효과가 없는데 문어 삶은 물이 어떻게 큰 효과가 있으랴. 그저 무좀을 핑계로 집사람에게도 떳떳하게 좋은 안주에 술 한잔 걸치는 게 이게 바로 횡재가 아닌가 말이다. 설령 무좀이 낫지 않더라도 이외수를 원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좀은 깨끗이 나았다. 발가락 사이 갈라진 살갗이 아물더니 다시는 재발하지 않고 있다. 벌써 2개월이 지났다. 겨울에 특히 기승을 부렸던 무좀은 이제 흔적이 없다. 평생 무좀과 함께하기로 했던 마음은 이제 접어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통해 이외수 님께 고마움의 뜻을 전한다. (2023. 2. 7.)